“그들을 잘 접대하고 있느냐?”
“네, 성대하게 환영연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래, 부족함 없도록 하고, 소문은 더 퍼지지 않도록 조치했겠지?”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미 잘 처리해 놓았습니다.”
“잘했다. 그나저나 아까 부른 대제사장과 율법 학자들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것이냐? 이놈들도 나를 무시하는 게냐.”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이제 곧 당도할 것입니다.”
“흥.”
헤롯은 기분이 상했다. 가뜩이나 메시야에 대한 소문 때문에 화가 나는데, 대제사장과 율법 학자들마저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마음이 급하다. 한시라도 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유대인의 왕은 오직 자신뿐이다.
헤롯은 소문을 들은 즉시 사람들을 보내어 박사들을 몰래 궁으로 데리고 와 잔치를 벌였다. 질문을 하던 박사들이 사라지면 유대인의 왕에 대한 소문이 잠잠해지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해도 소문이 진화되지 않는다면, 예전에 사용했던 것처럼 백성들이 모이지 못하게 강제할 수도 있고, 백성 사이에 심어놓은 끄나풀을 통해 거짓 소문을 풀 수도 있었다.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사실 헤롯 왕가에서 태어난 왕자를 축하하기 위해서 온 것이다. 이런 소문을 여기저기서 퍼뜨린다면, 백성들은 그것이 진실인 줄 말고 덥석 미끼를 물어버릴 것이다. 그쯤 되면 그가 퍼뜨리지 않은 거짓 정보까지 자연스럽게 만들어져 돌아다니게 되니, 모든 문제가 해결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헤롯이 자랑하던 세상의 통치 방법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대제사장 맛다디야가 율법 학자들과 함께 들어왔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
“죄송합니다. 전령을 받자마자 움직이긴 했는데….”
“시끄럽다. 다음에도 이런 식이면 그때는 각오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메시야가 어디에서 태어난다고 기록되어 있느냐?”
그들 중의 한 명이 대답했다.
“유대 베들레헴입니다.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습니다.”
“베들레헴?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 말하는 것이냐?”
“네, 다윗왕의 고향입니다.”
“그래? 알겠다. 나가 보거라.”
대제사장과 율법 학자들은 헤롯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멀어지는 그들을 보면서 헤롯은 또다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예전 대제사장인 시몬은 행동이 빠릿빠릿하고 자신의 말을 잘 따랐는데, 맛다디야는 그런 모습이 영 부족하다. 저래서야 유대인들을 잘 통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대로 두면 분명 언제고 한 번은 문제가 터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하지만 지금은 그 문제를 따질 때가 아니다. 일단 메시야라는 급한 불을 먼저 꺼야 한다. 이 작은 불씨를 그냥 뒀다간 온 유대를 다 태워버릴 수도 있다.
헤롯은 소문이 잠잠해지길 기다렸다. 저녁쯤 되자 실체가 없는 그 소문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조금씩 잊히고 있었다. 이제는 박사들을 만날 차례이다. 일단 그들을 만나 상황을 파악한 후, 그 결과에 따라 다음에 할 행동을 정할 것이다. 헤롯은 박사들을 불러들였다.
세 명의 박사는 헤롯 앞에 나와 예의를 표했다.
“어서 오시오. 부족한 건 없으셨소?”
“아닙니다. 분에 넘치는 환대에 감사할 뿐입니다.”
“뭐 그 정도로 그러시오. 하하하. 우리 왕국에서는 일상이지요.”
세 명의 박사는 오랫동안 단련된 의례적인 웃음을 보였다. 권력자와의 만남. 그들로서는 이미 수없이 겪어오던 일이었다. 권력자들은 몇 가지 부류가 있다. 자신이 뛰어난 사람인데 신하들까지 충신인 경우. 자신은 뛰어나나 신하들이 간신인 경우. 자신은 부족하지만, 신하들이 충신인 경우. 자신도 부족하고 신하들도 간신인 경우. 헤롯의 경우는 다분히 본인은 뛰어나지만, 신하들이 간신인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파르티아에서 들은 소식과 이곳에 오며 직접 눈으로 본 바로는 헤롯왕에게 직언하고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다. 직언을 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의 곁에는 간신밖에 안 남을 테니, 헤롯왕 앞에서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그것이 박사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갑시다. 여러분들은 메시야를 찾아온 것입니까?”
메시야라는 단어에 세 박사는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헤롯이 왜 저 단어를 입에서 꺼내었을까? 좋은 의도일까, 나쁜 의도일까? 그들은 헤롯의 표정을 살펴보았지만, 도무지 진의를 파악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사들보다 훨씬 더 험한 인생을 살아온 헤롯은 자신의 본심을 감추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로마 황제 앞에서도 떨지 않는 그이니, 권력자를 경험했다고는 하나, 본질상 학자에 불과한 파르티아의 박사들을 속이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걱정하지 말고 이야기하시오. 내가 당신들을 괜히 환대했겠소이까? 나도 오래전부터 메시야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소식을 가져온 당신들이 정말 고마워서 그런 것이오.”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선한 표정을 지은 헤롯. 그 표정에 속은 박사들은 경계심을 풀고 조금씩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네, 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저희는 저 멀리 파르티아에서 유대의 메시야를 찾아왔습니다.”
“그럼 어떻게 메시야의 탄생을 알게 되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소?”
“정확하게 말하면, 메시야가 태어났는지 확신은 하지 못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박사들은 자신들이 파르티아에서 목격한 별에 대해 설명했다. 유대를 상징하는 물고기자리에서 목성과 토성이 세 번에 걸쳐 하나가 된 사건. 그리고 염소자리에서 갑자기 나타난 신성까지.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진 않았지만, 기분이 좋아진 한 단순한 박사 덕에 생각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헤롯은 귀를 기울이고 듣다가, 궁금한 것이 생길 때마다 질문하며 별이 나타난 시기를 자세히 물었다. 목성과 토성의 만남은 2년 전의 이야기였고, 신성이 나타난 것은 올해 초의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그 별이 메시야의 탄생을 의미하는지 아닌지는 일단 가서 확인해 봐야 알 수 있다는 이야기로군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이를 찾았던 겁니다. 메시야가 이미 태어났다면, 유대인들이 알고 있는 게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아쉽게도, 우리는 아직 들은 바가 없소이다. 메시야께서 태어나셨다면, 정말 기쁜 일인데 왜 아무도 몰랐을까요.”
“혹시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신 것 아닙니까?”
“2년 전에 별이 나타났다고 했으니, 이미 태어나셨다고 보는 것이 옳지 않겠소?”
“그럴 수도 있지만, 태어나기 전에 미리 보여준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언들처럼 말입니다.”
“예언이라…. 뭐, 그럴 수도 있겠군요. 그럼 어디서 태어났는지 짐작 가는 곳이 있소?”
“저희는 베들레헴에 가보려고 합니다.”
“베들레헴?”
박사들의 입에서 베들레헴이란 단어가 나오자, 헤롯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의 확실하지 않은 태도에 조금은 안심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 메시야가 태어났는지, 안 태어났는지 확인조차 안 된 정보를 가지고 찾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율법 학자와 같은 지명을 말하는 그들을 보자, 그냥 흘려들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직감이 들었다. 오랜 세월 수많은 위기 속에서 살아남게 한 동물적인 감각. 그 감각이 이 사건을 최고 등급의 위험이라 경고하고 있었다.
“알겠소. 그러면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시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박사들을 떠나보낸, 헤롯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눈 속의 실핏줄마저 팽배해 온 얼굴이 악마와 같이 붉게 보였다.
만약 정말로 유대인의 메시야가 태어났다면, 결단코 반드시 죽여 버리고 말 것이다. 감히 내 왕국을 찬탈하려 하다니.
마음속의 분노와 질투가 그를 악마로 바꾸고 있었다.
* * *
베들레헴이 남쪽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박사들은 아무 생각 없이 하부 도시로 내려와 남쪽 성문으로 길을 나섰다. 이 길로 가면 베들레헴 동쪽으로 빠지기 때문에,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산을 올라야 베들레헴에 갈 수 있는 힘든 길이었다.
“뭐야, 괜히 걱정했구먼.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인데?”
“사람은 겉으로 보이는 게 다가 아니네. 자네 아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것 아닌가?”
“아니, 뭐가 어때서 그러나. 헤롯왕도 메시야에게 경배를 드리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 말을 어떻게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겠는가?”
“에이, 사람하고는. 왜 이렇게 사람을 못 믿나?”
“자네가 너무 잘 믿으니, 나라도 의심해야지.”
“쯧쯧쯧. 쓸데없는 고집 하고는, 그렇게 의심하며 살다가는 제명에 못 죽네.”
또다시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 두 사람의 대화는 잘 나가다가, 갑자기 곁길로 흐르곤 한다. 나름 재밌기도 하지만, 하루 종일 그런 대화를 듣고 있으면 머리가 어지러워지곤 한다. 여행 기간 동안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본 젊은 박사는 대화가 길어지기 전에 얼른 주제를 바꾸었다.
“그나저나, 이제는 정말로 메시야가 태어났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군요. 박사님들 기대되지 않으십니까?”
“그러게, 말일세. 드디어 그날이 되었군.”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듯한 박사의 표정. 그리고 그런 친구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또 다른 박사.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메시야가 정말로 태어난 거였으면 좋겠구먼.”
“왜, 자넨 메시야가 안 태어났으면 하고 바라지 않았나.”
“뭐 말이 그렇다는 거야. 말이. 자네는 농담도 모르나?”
“그것참, 진담처럼 들리는 농담이구먼.”
박사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해가 서산으로 완전히 지고 투명한 밤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은하수를 가득 채운 별들과 별들 사이를 움직이는 또 다른 별들. 목성과 토성, 화성, 달.
“이봐, 왕의 별이야.”
“어제까진 안 보이더니, 오늘은 나타났구먼.”
“저쪽은 남서쪽이네요, 잠시만요.”
젊은 박사는 간략한 정보가 적혀있는 작은 여행 지도를 꺼내었다. 지도를 들어 별의 방향과 맞춰보는 박사. 그 시선 넘어, 먼 산 위에 작은 불빛들이 보인다.
“어? 우리가 잘못 나왔나 봅니다.”
“응? 남쪽이 베들레헴이라며?”
“남쪽이긴 한데, 예루살렘 서쪽 성문으로 나가야 베들레헴으로 바로 갈 수 있다고 지도에 나와 있네요. 이 길은 산 아래로 이어지니 결국 베들레헴 동쪽에 도착해서, 서쪽 방향으로 산을 올라야 하고요.”
“이 친구 똑똑한 줄 알았더니, 헛똑똑이군.”
“그래도 자네보단 똑똑하지 않겠나.”
“그러면 자네가 가장 덜 똑똑하겠군. 자네보단 내가 더 똑똑하니 말일세.”
또다시 시작된 만담. 젊은 박사는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더니, 별이 가리키는 남서쪽으로 낙타를 몰고 먼저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의 뒤에선 언제나처럼 두 친구의 끝없는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하늘에 떠 있는 왕의 별이 찬란히 빛나며 그들의 앞길을 비추어 주었다. 천구를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별. 그들은 별빛의 인도를 받으며 베들레헴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마태복음 2:5-6, 8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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