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요세푸스가 쓴 유대고대사에 나오는 내용을 헤롯의 입장에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본문의 서술들은 지극히 헤롯 대왕 개인의 관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즉, 객관적인 진실이 아니라, 주관적인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헤롯은 성경에서 잠시 등장하고 사라지지만, 그의 왕조는 신약 전반에 걸쳐서 영향을 줍니다. 유아 살해를 명한 헤롯 대왕, 세례 요한을 죽인 헤롯 안티파스와 헤로디아. 이 헤롯 안티파스는 나중에 예수님을 잠시 심문하기도 합니다. 또한 아리스토불러스의 아들이자, 헤로디아와 남매간인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사도 야고보를 죽였고, 그의 아들인 헤롯 아그립바 2세는 사도 바울과 대면하여 변론을 듣기도 합니다. 이 아그립바 2세 시기에 유대인들의 대대적인 반란이 있었고, 이후 유대 왕국은 로마에 멸망하여, 유대인들은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접근조차 못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성전 자리에 제우스 신전이 세워져, 예루살렘과 성전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이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는 이런 역사적인 사건들을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가지만, 이 또한 중요한 것입니다. 역사를 알게 되면, 예수님의 말씀이 그 시대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렸는지, 제자들과 사람들의 반응이 왜 그랬는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대와 사회적 배경 없이 나 홀로 존재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성경은 역사와 무관한 내용이 아닙니다. 성경 속 등장인물들도 역사 속에 실존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을 이해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지금, 이 시대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을 통해 무엇을 하시고자 하는지 조금 더 깨달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헤롯왕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 개인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아 살해를 명한 헤롯 대왕은 단순히 나쁜 놈이라고 인식하고 넘어가기엔 굉장히 복잡한 사람입니다. 유대인에 편입된 이두매인 출신의 그는, 하스모니안 왕조가 로마의 속국으로 전락하는 중에 갈릴리의 행정관으로 부임하며 역사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다 안티고누스의 반란으로 갑자기 유대의 왕이 되는데, 유대고대사에는 이때 그가 왕이 될 생각이 없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로마로부터 왕으로 선택될 수 있었던 것은 이전부터 보여 왔던 그의 가문의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가족은 아버지 때부터 로마의 전쟁을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로마의 적과 끊임없이 싸웠고, 또 승리했습니다. 로마 입장에서는 그 이상 괜찮은 속국의 지배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반란을 제압한 후, 그는 정식으로 왕위에 올라 유대를 다스리는데, 그는 심한 기근과 지진 같은 재해를 극복했고, 주변국과의 몇 차례 전투에서도 승리합니다. 로마와의 관계에서도 잘 처신했는데, 지배자들이 원정을 떠날 때마다 직접 군대를 이끌고 찾아가 도움을 주었고, 때마다 엄청난 재물을 선물로 주면서 개인적인 친분까지 쌓아 갑니다. 그는 2차 삼두정치의 일원인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중요한 동반자가 되었고, 옥타비아누스와 가장 친했던 아그리파와도 허물없는 친구가 됩니다. 그는 이런 친분을 통해 유대 왕국의 힘을 키워갔고,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뿐 아니라 로마와 관계가 안 좋은 여러 도시에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감사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유대 최후의 격전지 마사다 요새처럼, 여러 지역에 대대적인 건축과 증축을 한 것도 그의 업적이었습니다.
이렇듯 그는 한 편으론 시대의 영웅이지만, 또한 한 여자의 사랑을 갈구한 평범한 남자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가장 사랑한 사람은 하스모니안 왕조의 왕녀였던 미리암네 1세였습니다.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첫 아내인 도리스와 이혼까지 했지만, 그녀와의 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끝나게 됩니다. 유대고대사에는 이때의 미움과 사랑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이 절절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이후에도 그는 가정 문제 때문에 바람 잘 날 없는 시절을 보내게 되고, 죽기 직전에는 정신 상태가 무너진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죽으면 유대의 유력자들까지 함께 죽이라는 명령을 하고 죽으니까요.
이와 같이 그는 원래부터 악한 것은 아니었으나, 그의 인생사를 거치며 점점 이상한 사람이 되어 갑니다. 어쩌면 그는 그저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어서 평생을 노력했던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가 이룬 업적들은 자신만 잘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가족과 유대인들에게서는 자기가 원하는 사랑과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가족은 치열한 암투 속에 무너져갔고, 유대인들은 율법과 의를 부르짖으며 헤롯의 잘못을 지적했습니다.
다윗이었다면 하나님에게서 돌파구를 찾았겠지만, 헤롯은 하나님이 아닌 로마와 세상을 의지했습니다. 비슷한 인생사를 살아온 두 사람이 여기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과 세상의 사람. 한 사람은 메시야의 조상이 되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메시야를 죽이려는 악한 역할로 쓰임 받게 되었습니다. 똑같이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왜 쓰셨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아시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