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동방 박사들의 방문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마리아, 이 마을에서 계속 살아보는 건 어때요?”

 다음 날 아침 일찍 떠나기 위해 챙겨놓은 두 사람의 짐을 손으로 만져보던 목자의 아내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베들레헴에서요?”

 “네, 요셉의 고향도 원래 베들레헴이라면서요? 그러면 앞으로 이곳에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이번엔 요셉을 바라보며 말하는 목자의 아내. 

 “이젠 정이 많이 들어서, 보내고 나면 마음이 허전할 것 같아요.”

 요셉은 짙은 아쉬움이 담긴 그녀의 표정을 보며, 만약 베들레헴에서 계속 살면 어떨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사실 베들레헴에서의 처음 시작은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쉴 곳조차 없어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아야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부터는 감사한 일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하나님은 마치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해 주신 것처럼, 나그네였던 자신들을 위해 베들레헴의 목자들과 그 가족들을 보내주셨다. 그들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자신들을 위해 소중한 것을 나눠주었고,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이들이 있었기에 자신들은 갈릴리에서 멀리 떨어진 이 베들레헴에서도 외롭지 않을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규례를 잘 지킬 수 있었다. 이런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그들과 함께 사는 것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요셉의 마음을 스쳐 지나갔다. 이곳에서 머물게 된다면 아마 목자로 일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목자라….

 사람들은 목자라는 직업을 그렇게 좋게 보지 않는다. 예전엔 시선이 좀 달랐을지 모르지만, 요즘은 무시하는 눈빛이 섞여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세상의 힘인 돈과 권력, 인맥에서 가장 먼 것이 목자이니 그런 반응도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광야에서 자연을 벗 삼아, 외롭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돈, 권력, 인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목자는 그저 볼품없는 직업에 불과했다. 유대 땅에서 왕가를 제외하고, 정치적으로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고위제사장들이나 귀족이었고,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사람들은 성경을 잘 아는 바리새인이나 율법 학자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떠받들어지는 세상이니 목자라는 노동자가 저절로 무시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이런 시선과는 다르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목자에게 계속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셨다. 하나님께 피 흘리는 제사를 처음 드린 사람도 목자인 아벨이었고,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받은 야곱도 목자로 일하며 두 아내를 얻었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의 12지파가 시작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온 모세도 미디안 광야에서 목자로 일할 때, 떨기나무 사이에 임하신 하나님을 만나 사명을 받았다. 다윗왕도 왕이 되기 전에 목자였었다. 이렇게 이스라엘이 있기까지, 메시야가 오시기까지 때마다 목자는 매우 중요한 역할로 쓰임 받았다. 

 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양으로, 정치나 종교 지도자들을 목자로 비유하시곤 했는데,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목자들에 대해 강한 심판의 말씀을 전하기도 하셨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목자들이 양의 무리를 먹이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냐?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그 털을 입되 양의 무리는 먹이지 아니하는도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어 주지 아니하며, 쫓긴 자를 돌아오게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강압과 폭력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며,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의 무리가 모든 산과 높은 언덕에서 유리되었고, 내 양의 무리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었도다. 

 그러므로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내 양의 무리가 노략거리가 되고,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된 것은 목자가 없음이라. 내 목자들이 내 양을 찾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이고 내 양의 무리를 먹이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너희 목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목자들을 대적하여 내 양의 무리를 그들의 손에서 찾으리니, 목자들이 양을 먹이지 못할 뿐 아니라, 그들이 다시는 자기를 먹이지 못할지라. 내가 내 양을 그들의 입에서 건져내어서, 다시는 그들의 밥이 되지 않게 하리라.”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주신, 이 말씀의 마지막에서 하나님은 스스로를 목자로 비유하시기도 했다. 

 “내 양, 곧 내 목장의 양인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람들의 시선이야 어떻든 간에 하나님은 이렇게 목자라는 직분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그러니 그 일을 해보는 것도 정말 좋을 것 같다. 아내와 아기를 데리고, 오순도순 살면서 다른 목자들과 어울려 양을 치는 자신의 모습. 그 모습을 상상하자 이상하게 행복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났다. 바로 이어서 들려온 목자의 커다란 목소리.

 “모두 빨리 나와 보게.”

 방 안에 있던 목자의 아내와 요셉, 그리고 아기를 안은 마리아가 밖으로 나왔다. 그곳에는 기쁜 표정의 목자와 함께 낯선 세 명의 사람이 와 있었다. 화려한 옷을 입은 채 상기된 얼굴을 한 그들. 그들의 시선은 마리아에게 안긴 아기에게 가 있었다. 

 “이…이분이 메시야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이분이 우리의 메시야이십니다.”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목자.

 “박사님들 보세요. 그리스도께서 정말 태어나셨습니다.”

 가장 젊어 보이는 박사가 기뻐하며 말했다.

 “아…. 정말이었어, 정말. 정말 태어나셨구나. 정말….”

 어딘가 심술궂게 보이는 박사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혼잣말을 계속했다. 그러나 그의 표정도 이내 벅찬 감동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 박사.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붉게 충혈된 눈과 깊은 주름을 타고 흐르는 눈물은 그가 느끼는 감정을 세상의 어떤 단어보다 더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목자님, 이분들은 누구시죠?”

 “멀리 동방에서 메시야를 만나시기 위해 오신 분들이라고 하네. 요기 집 앞에서 만났어.”

 베들레헴 동쪽에서부터 산을 오른 박사들은 왕의 별이 자신들의 머리 바로 위쪽에 멈춘 듯 보이는 지점에서 목자의 집을 발견했다. 다른 집들과 조금 떨어져 홀로 서있는 목자의 집. 이 집이 아닐 수도 있지만, 왠지 맞을 것 같다는 예감에 목자들은 집 앞에서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바로 그때, 그들은 집으로 돌아오던 목자를 만났다. 목자는 아침이 되면 떠나기로 한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아기 예수와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 양들을 믿을만한 다른 목자에게 맡기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딘가 부유해 보이는 박사들에게 무슨 일로 오신 건지 물은 목자는 그들이 동방에서 메시야를 만나러 왔다는 사실을 듣고 깜짝 놀라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이었다. 

 “정말요? 아니, 그럼 이럴 때가 아니죠. 어서 앉으세요. 배고프시지 않으세요? 뭐라도 준비해야겠네.”

 목자의 아내가 급하게 음식 준비를 하려고 하자,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박사가 손을 들어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저희는 우선, 유대인의 왕으로 태어나신 메시야께 경배부터 드리겠습니다.”

 그들은 마리아에게 안긴 아기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헤롯왕 앞에서도 하지 않은 최고의 경배를 드린 세 사람. 고개를 든 그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이 모든 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이 순간만을 기다려온 박사의 얼굴은 더욱더 환해 보였다.

 그는 처음 유대인의 예언을 접한 후, 성경을 읽다가 세상의 어떤 신과도 다른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인간을 생각하는 인간중심의 하나님과 그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고난 받을 메시야. 그에 대한 예언의 성취를 기다리며 별을 관찰한 지가 수년이었고, 다른 박사들과 함께 유대 땅으로 오기까지도 수개월이었다. 그사이에 얼마나 많은 고비가 있었던가? 말 하지는 못했지만, 그의 내면에 있었던 의심, 가족과 친지들의 반대, 같은 말씀을 보고도 쓸데없는 소리 말라던 친구의 말. 그리고 오랜 여정 중의 고난까지도 정말 쉽지 않은 일투성이였다.

 만약 자신이 틀린 것 아니냐고 말하는 친구가 없었더라면, 어쩌면 자신은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친구의 말에 반발해서 반쯤은 오기로 버틴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실제로 메시야를 만나게 되니, 그 모든 고난은 다 지나간 옛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아니, 그런 시간이 없었더라면 지금, 이 순간이 자신에게 찾아왔을까? 만약 말씀을 보고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은 채 파르티아 땅에서 편안히 살려고만 했다면 결코 메시야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박사는 지금, 포기하지 않은 자신이 너무나 고맙고 대견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친구를 따라 유대에 온 박사의 마음도 예전과는 달랐다. 그동안 남들과 비교하며, 이기기 위해, 더 잘되기 위해서 평생을 살아왔다. 그 와중에 절대로 자신에게 지려 하지 않는 반대파를 만나, 수없이 싸우다 오히려 친구가 되었다. 대부분은 자신의 성격에 질려, 한두 번 싸운 뒤엔 자신을 만나기를 꺼렸지만, 이 친구만은 달랐다. 여행 중에도 말다툼을 계속하긴 했지만, 그건 정말로 친구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어쨌든 억지로 따라나선 것이기에 그런 감정을 표현하려고 메시야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투정을 부린 것이었다. 그리고 메시야가 태어난 이후의 일을 생각하면 차라리 메시야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서 친구가 틀렸기만을 바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틀린 것은 친구가 아니라, 자신이었다. 유대인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하신 예언을 그대로 이루셨다. 자신이 틀리고, 하나님이 옳으신 것이다.

 마지막 젊은 박사는 어떠한 노력도 없이 두 박사의 여행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가 한 행동은 그저 길을 떠나는 두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어디에 무슨 일 때문에 가는지 물어본 것뿐이었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나선 여행길. 만약 그가 자신의 생각의 옳음만 따지며 박사들의 여정을 판단했다면 그는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보았던 것은 자신의 지식이 아니라, 그가 알고 있던 두 늙은 박사의 과거였다. 저들이 결코 아무 이유 없이 움직일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믿었던, 그의 단순한 선택이 어쩌면 역사상 가장 기쁜 이 자리에 초대된 계기가 될 수 있었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면 자신도 성경을 읽고, 박사들이 말한 유대인의 하나님을 믿어보기로 작정했다.

 “이 예물을 메시야께 바칩니다.”

 세 박사는 각자의 마음을 담은 예물을 꺼내었다. 왕을 상징하는 황금, 값비싼 향품인 유향, 향수와 약품으로 쓰이고 시체에도 바르는 귀한 몰약. 그들은 자신이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것을 준비했지만, 이 모든 것은 또한 성전과 제사를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성전과 제단, 성전 기물을 만드는 데 쓰이는 빛나는 황금. 성전에서 소제와 화제의 예물을 드릴 때 더하는 향기로운 유향. 계수나무 껍질, 향초 줄기, 계피, 올리브유와 섞어 성전과 성소의 모든 기구, 제사장에게 발라 거룩하게 구별하게 만드는 성별하는 기름의 주재료, 몰약.

 하나님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태어난 메시야가 새로운 시대의 성전임을 고백하게 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할 예수. 허물어진 다음,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게 될 거룩한 성전. 그 성전을 위한 모든 예물이 오늘 이방인인 동방의 박사들에 의해 바쳐졌다.


*  *  *


 “그러면 별을 보고 메시야의 탄생을 미리 아셨다고요?”

 “그렇죠. 별을 보는 덴 제가 전문가이니, 이 친구에게 그 방법을 알려줬죠. 제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이 자리에서 만나는 일도 없었을 겁니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친구를 보고 어이가 없어지는 박사였다. 잠시 감동한 것처럼 보인 것은 금세 사라지고, 자기 자랑을 하는 친구였다. 역시 원래 성격은 어디 안 가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그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오게 해주신 것도 맞으니, 자랑을 좀 한다 한들 뭐가 어떠냐 싶은 박사였다. 역시 하나님은 각자의 성격대로 사용하시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여기 오기 전에 헤롯왕도 만났는데요. 그가 우리에게 얼마나 잘해주던지.”

 “헤롯왕이요?”

 “네, 헤롯왕요. 왜 놀라세요?”

 “그 헤롯왕이 잘해주셨다고요?”

 “네, 저희를 위해 잔치도 베풀어 주시고, 직접 만나주시기도 했습니다.”

 “설마….”

 “그분도 메시야를 기다리고 계셨다던데요. 나중에 태어나신 메시야를 보고 직접 경배를 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목자와 목자의 아내는 박사들의 말에서 왠지 모를 한기를 느꼈다. 그 헤롯왕이 메시야를 기다리고, 경배를 하고 싶어 할 사람인가? 자신들이 아는 한 헤롯왕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일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가 이두매인이긴 하지만, 유대교로 개종하여 유대인이 된 사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만약 경배하고 싶다는 그의 말이 진심이라면, 어쩌면 태어나신 메시야가 다음 왕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메시야에게 잘 대해준 자신들에게도 뭔가 좋은 일이 생기게 되지 않을까? 다음 왕이 안 되더라도, 나중에 커서 왕위를 물려받게 될 수도 있다. 그때쯤이면 두 딸에게서 태어난 손주들도 컸을 테니, 그 아이들이 왕국에서 높은 자리를 얻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분명 순수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요셉과 마리아를 도와준 두 사람이었다. 그들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다. 그러나 부유해 보이는 박사들의 방문과 비싼 예물들을 보고, 자신들의 자손이 성공하고, 세상에서 높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욕심이 들어왔다. 헤롯왕은 그들이 알고 있는 대로, 메시야에게 경배하고, 왕위를 물려줄 사람이 아니었다. 평생을 보고, 듣고, 경험한 대로 헤롯은 절대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욕심이 두 사람의 눈과 마음을 가렸고, 곧 다가올 위기조차 깨닫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후에 박사들과 이야기하는 긴 시간 동안, 그리고 잠자리에 들어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온통 앞날에 대한 희망과 설렘만이 가득했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두 사람처럼 멀리 북쪽 예루살렘에도 한 사람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한때는 영웅과도 같았던, 인간 승리의 상징 헤롯왕. 메시야가 실제로 태어났다는 소식을 박사들이 가지고 온다면, 아기를 비롯하여, 그 사실을 아는 사람들을 모두 다 죽여 버리고 말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태어난 아기에 대한 질투만이 가득했다.

 하늘에 떠 있던 빛나는 왕의 별이 점점 서쪽 하늘로 지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에스겔 34:1-10, 30-31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

Post a Comment

Next Post Previous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