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영원히 기억될 두 가지 선택

베다니의 마리아가 예수님의 머리와 발에 귀한 향유를 붓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고 있습니다.

[도마의 이야기]

 예수님이 하시는 행동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지난번 부유한 젊은 지도자에게는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라고 하셔서 떠나가게 만드셨는데, 이곳 여리고에서는 부자인 세관장의 집에 묵으시겠다고 하시니 말이다. 그 사람처럼 젊고 선한 지도자는 백성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자신들의 편이 되어 준다면 말할 수 없이 큰 힘이 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자꾸 안 좋아져서 걱정인데, 그런 사람의 지지가 있다면 분위기 반전까지 노려볼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이 키 작은 세관장은 다르다. 열두 제자 중에도 세리 출신 마태가 있지만, 그는 국경에 앉아 통관세나 받던 사람이었을 뿐, 사리사욕을 챙기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반면 이 세관장은 자기 주도하에서 세금을 뜯어내는 사람이었으니 문제가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었다. 유대인들이 괜히 세리들을 싫어하고, 멸시하겠는가? 로마에 바치는 세금도 그리 달갑지 않지만, 세리들은 한술 더 떠서 정해진 것보다 더 많이 받아 자기들의 배를 채운다. 그러니 이런 세관장과 함께 머물면 사람들은 자신들을 더욱더 안 좋게 볼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께서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머물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수군거리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러 들어갔도다.’ 그들도 얼마나 놀랐으면 그런 말을 했겠는가? 예수님께서 계속 이런 식으로 행동하시면 사람들의 미움만 살 뿐이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이제 곧 왕이 되셔야 하는 분이 왜 자꾸 저러시는 것일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야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저 부자 세관장과 어울리시는 것은 무슨 의도이신지 알 수가 없다. 

 도마는 세관장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예수님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여리고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나온 이후, 요단강 서편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와 만난 첫 번째 도시였다. 당시에도 성벽이 굳건하게 세워져 있었으니, 그전에 얼마나 오랫동안 존재했는지 알 수조차 없는 유명한 도시가 여리고인데, 지금도 이스라엘 안에서 아름다움과 부유함으로는 손에 꼽히는 도시라 할 수 있었다. 로마가 다스리기 전부터 헤롯왕과 그의 아들 아켈라오는 겨울 궁전과 극장, 경기장, 정원 등을 지어 도시를 화려하게 꾸몄고, 종려나무라 불리는 대추야자나무와 비싼 향료의 원료인 발삼나무도 도시 주변에서 풍성하게 자라, 종려나무의 성읍, 향기의 성이라는 이름 뜻대로 여리고를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또한 사마리아를 피해 다니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이 지나는 길에 있는 큰 도시가 여리고였으니, 이곳에서는 엄청나게 많은 세금이 모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대단한 도시의 세리장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예수님을 보고 싶어서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키 작은 남자. 그의 얼굴에는 지금껏 인상을 구길 때마다 하나씩 생겼을 것 같은 미간의 주름이 선명하게 나 있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주름조차 기쁨으로 가득 차 보였다. 그런 표정을 보자 그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던 도마의 마음도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예수님을 저렇게 좋아하는 그를 자신은 미워하고 있다는 게 조금 말이 안 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불의한 청지기 비유가 떠올려졌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재산을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주인이 그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된 일이냐? 네 보던 일을 결산하라. 이제 더 이상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그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한 사람씩 불러다가, 처음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그가 대답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하니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음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그가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하니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주인이 이 불의한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삭개오라는 저 사람은 이 비유에 나오는 불의한 청지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재물을, 자신을 위해 악하게 축적하던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모은 불의한 재물을 오늘 예수님을 섬기는 데 사용했다. 비록 그가 이전엔 악했지만, 지금부터 악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를 무조건 비난할 수 있을까? 그가 지금까지 세상의 불의한 재물에 충실했으니, 이제는 참된 일을 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도마의 기대가 틀리지 않았는지, 자리에서 일어선 삭개오가 예수님께 말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서 빼앗은 일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나이다.”

 그를 보고 따뜻하게 미소 짓는 예수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그렇다, 예수님은 지금까지 불의했던 자라 할지라도, 회개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도마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어지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였느니라.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따라 보내어 가로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한 것을 알고자 하여 저희를 부르니, 첫째 종이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 종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또 다른 종이 와서 가로되, ‘주여 보소서, 주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니, 당신은 맡기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맡기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화를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까지 찾았으리라.’ 하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니, 저희가 가로되, ‘주여, 저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주인이 가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이제 곧 예루살렘이니, 당장에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 한 므나는 백 데나리온에 가까운 돈으로 노동자가 거의 백 일 동안 일해야 벌 수 있는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금액이었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기회와 명령. 더 많은 것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는 행동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가만히 있었다. 이들의 시작은 동일하나 그 행함에 따라 마지막은 완전히 다를 것이다. 


*  *  *


[가룟 유다의 이야기]

 “악!”

 가룟 유다의 입에서 작은 비명이 터져 나왔다. 조금 전에 예수님께 책망을 들은 그는 밖으로 나와 씩씩대다가, 분을 풀기 위해 길가의 돌을 걷어찼다 큰 곤욕을 치른 것이다. 밤의 어둠 속에서 돌멩이와 돌부리를 구분하지 못해 생긴 일. 그러나 가룟 유다는 자신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예수님께 한마디 들었다는 사실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어 있었다.

 아, 화가 나서 미치겠다. 이제는 하다 하다 이런 돌멩이 하나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다. 이게 다 그 여자 때문이다. 마리아는 뭐 한다고 그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부어서 이런 문제를 일으킨 것인가.

 가룟 유다는 조금 전에 있었던 사건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분노에 휩싸였다.

 여리고를 떠난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월절 엿새 전에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베다니에 도착했다. 그리고 나병 환자였다가 예수님께 고침 받은 시몬의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다른 베다니 사람들까지 와서 잔치가 벌어졌다. 마르다는 언제나처럼 시중을 들었고, 나사로는 식탁에 앉아 함께 음식을 먹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문제없이 다 괜찮았다. 분위기도 좋았고, 음식도 맛있었다. 그런데 그들 남매의 막내인 마리아가 들어와 문제를 일으켰다.

 그녀는 예수님이 식사하시는 뒤로 가더니, 가지고 온 향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붓고, 남은 것으로는 발까지 적셨다. 그리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은 그녀. 온 집안을 가득 채운 향은 분명 귀한 나드 향이였다. 나드가 무엇인가? 엄청나게 먼 동쪽에서 자란다는 나도 풀에서 추출된 매우 값비싼 향유가 아니었던가? 그녀가 가지고 온 양이면 거의 노동자의 일 년 품삯 정도 되어 보여서, 자신이 한 마디 해주었다.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아니, 이 말이 뭐가 문제인가? 예수님은 그렇게 많은 부자가 찾아와도 그들에게 한 푼도 요구하지 않으셨다. 오직 하시는 말씀은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는 것뿐. 그 덕분에 돈주머니를 맡은 자신은 항상 쪼들릴 수밖에 없었는데, 마리아가 그 귀한 걸 이렇게 허비할 바엔 자신에게 주어서 잘 사용하게 하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지 않은가? 그래야 자신도 그 돈을 잘 굴려서 좋은데 쓰지 않겠냐는 말이다.

 자신만 그렇게 생각한 건 아닌 듯, 다른 제자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예수님 혼자만 뜬금없는 말씀을 하셨다. 

 “가만히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이 여자를 괴롭히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그녀는 자기가 할 일을 하였으니,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게 되리라.”

 예수님은 그렇게 자신을 책망하셨다. 그 말을 듣고 또다시 분위기는 안 좋아졌고, 사람들은 예수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자신은 억울하고 분해서,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배가 아픈 척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짜증이 나는데, 발까지 아프니 더 화가 난다. 마리아는 왜 그런 짓을 해서 이런 문제를 일으켰나 모르겠다. 설마 그녀가 진심으로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시리라는 것을 믿는 것은 아니겠지? 그 말씀은 우리 열두 제자들도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평소와 같이 그냥 비유일 것이다. 어떤 것을 비유하는 것인지 말해주시진 않았지만, 분명히 그건 비유로 설명하는 어떤 내용일 수밖에 없다.

 “보아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기로 결안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고 채찍질하여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라. 그러나 그는 제 삼 일에 살아나리라.”

 이것이 비유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어?”

 이때 갑자기 가룟 유다는 제자들이 믿지 않는 그 말씀을 예수님께서 벌써 세 번이나 하셨다는 것이 떠올랐다. 가룟 유다는 어둠 속에서 계속 머리를 굴렸다.

 만약 예수님의 말씀이 어느 정도 진실을 담고 있고, 예수님께서 정말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질 것이라면 이것은 어쩌면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지금 제자들은 모두 그분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질 때에 높은 자리를 얻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망할 야고보와 요한 같은 경우는 비겁하게 어머니까지 데리고 와서 자기들을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구했고, 다른 제자들도 기회를 잡지 못했을 뿐 마음은 다 비슷하다. 지난번에 도마 녀석이 한 말도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나사로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을 때, 자신을 포함한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이 베다니로 가시는 것을 막으려 했었다. 얼마 전에 돌로 치려던 사람들이 그대로 있을 텐데, 그런 위험한 곳으로 왜 가시냐고 하면서 말이다. 처음에 예수님은 자신들의 말을 들어주시는 것처럼 가만히 계셨지만, 이틀 뒤에 갑자기 베다니로 가시겠다고 말씀하셨다.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그리고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를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바로 이때 도마 녀석이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면서 먼저 치고 나간 것이다. 그 녀석은 예수님과 함께 죽을 수 있다고 말하면 예수님이 감동하실 줄 알고 말했겠지. 다들 이렇게 권력을 잡기 위해 난리이니, 자신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 지난번에 베드로가 모두가 아는 내용을 먼저 말해서 큰 칭찬을 받았으니, 이번엔 자신 차례이다. 자신이 먼저 이 말씀을 깨닫고 행동한다면, 그분의 나라를 이루는 데 제대로 한몫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가 없다. 때를 보아서 대제사장에게 예수님을 넘겨 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가셔야 할 길이라면, 자신이 그 역할을 맡으면 된다. 그리고 설마 진짜로 죽기야 하시겠는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으니, 유월절 기간에 분명 예수님은 구출되실 것이다.

 예로부터 명절은 수많은 반란이 시작된 시기였으니, 사두개인들이나 바리새인들은 백성들에게 그럴 기미가 보이면, 예수님을 바로 풀어줄 것이다. 죽었다가 살아나신다는 말씀도 사흘간 죽은 듯이 갇혀 있다가 풀려나신다는 말일 지도 모른다. 요나도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었지, 죽은 적은 없지 않은가? 그리고 정말로 일이 잘 풀리면 이것이 진짜 반란으로 되어서, 예수님도 구하고, 독립 전쟁이 시작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맞다.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이라면,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이 다 현실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와, 이런 것을 자신 말고 누가 깨달을 수 있겠는가? 하하하. 그렇게 그분이 말씀하시는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된다면, 자신이 한 이 일에 대해 큰 칭찬과 인정을 받겠지?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 가야바와 같이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말하고, 행할지라도 악한 역할로 쓰임 받는 것은 또 다른 심판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마 20:18-19, 막 14:6-9, 눅 16:1-13, 19:7-27, 요 11:14-16, 12:5-8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성경 원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평행 구절의 경우, 모든 내용이 다 포함되도록 하나로 합쳤습니다.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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