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진리가 무엇이오?

십자가를 진 예수님이 골고다 언덕으로 향합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걸어오는 남자가 있다. 자색 옷을 입고, 가시로 만든 면류관을 머리에 쓰고, 얼굴은 맞아서 온통 피멍이 들어 엉망이 된 남자. 그리스도, 유대인의 왕이라 불린 사나이. 이 세상에 속한 왕은 아니지만,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말한 사람.

 그의 모습을 보며 빌라도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넘겨주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채찍질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정말로 아무런 죄가 없는 사람인데, 왜 저런 참혹한 모습으로 만든 것인가?

 사실 빌라도는 죄인에 대해서 관대하거나, 호의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뇌물을 좋아했고, 공평하지 않은 재판과 근거 없는 중형을 내리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더군다나 유대교를 무시하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해왔던 터라 많은 유대인들이 그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어떤 불만에도 그가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로마에 있던 든든한 줄 세야누스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 줄은 얼마 전 썩은 동아줄이 되어 사라져 버렸고, 그는 모든 것을 잃을 두려움에 몸을 사리고 있었다. 이런 자신의 현실이, 인기를 얻었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예수의 모습과 닮아 보여서 유난히 신경이 쓰이는 빌라도였다. 빌라도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그를 구해보기로 했다.


* * *

 

 대제사장을 비롯한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그를 묶어서 끌고 온 것은 막 잠에서 깬 새벽의 일이었다. 유월절이 시작되는 날이었기 때문에 아침부터 좀 서둘렀었는데, 이들은 그 새벽부터 죄인이랍시고 한 남자를 끌고 왔던 것이다. 고발하러 온 주제에 총독 관저 안에는 들어오려 하지 않던 이중적인 태도의 그들 때문에 할 수 없이 자신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괜히 이 땅의 백성들을 자극하는 행동을 할 순 없었으니 말이다.

 사실 처음에는 그에 대해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었다. 반란을 모의하는 녀석들은 이미 다 잡아들여 십자가 처형을 준비 중이었고, 대제사장이 끌고 온 사람이니 그들 내부의 문제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법대로 재판하라고 말했는데, 그들은 이 사람을 사형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백성을 오도하고, 황제에게 바치는 세금을 반대하면서 자칭 그리스도, 곧 왕이라고 했다는 고발. 그가 왕을 사칭했다면 이건 확실히 반란에 준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에 거기에서 그에게 물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지극히 형식적인 질문. 그런데 그의 대답은 전혀 일반적이지 않았다. 보통 왕을 사칭하는 자들은 이런 상황이 되면, 고발을 피하기 위해 아니라고 잡아떼거나, 도리어 큰소리를 치면서 로마에 대해 폭언하곤 했다. 하지만 그는 조용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소.”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는 그의 말은 둘째치고서라도, 그의 태도가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그만 따로 데리고 관저 안으로 들어가 다시 물어보았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것은 당신이 스스로 하는 말이오?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해준 것이요?”

 “내가 유대인이란 말이냐? 네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는데, 너는 무슨 일을 했느냐?”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요.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내가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을 것이오. 그러나 내 나라는 지금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요.”

 “그러면 네가 왕이냐?”

 “당신이 내가 왕이라고 말하고 있소. 나는 바로 이 일을 위해 태어났고, 이 일을 위해 세상에 왔으니, 곧 진리에 대해 증언하기 위함이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 음성을 듣소.”

 왕이지만, 이 세상에 속한 나라의 왕은 아니라는 말. 이 말을 듣자, 자신이 굳게 의지하고 있던 세야누스가 생각났다. 그는 자신과 같은 기사 계급 출신이었는데, 황제의 근위대장으로 시작해 집정관까지 오르는 등 권력의 절정에 앉았던 사람이었다. 그의 생일이 공식적으로 경축 되고, 그의 동상이 황제의 동상과 함께 놓일 정도로 그는 큰 권력을 가졌었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었다. 자신 역시 그의 추천으로 유대의 총독이 된 것이었으니, 그가 잘 되면 자신도 잘 되고, 그가 망하면 자신도 망할 수 있는 운명 공동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황제 자리까지 노리면서 여러 가지 악행을 저질렀고, 결국 황제에게 속셈이 들켜 얼마 전에 처형을 당했다. 아마 황제가 처형하지 않았으면 오래지 않아 그가 황제를 먼저 제거했을 것이다. 그는 황제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음모를 꾸며 황제의 친아들을 암살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런 그가 생각하던 진리란 힘과 권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 남자에게 있어서 진리란 무엇일까? 이 남자는 무슨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에게 질문했다.

 “진리가 무엇이오?”

 그러나 그는 그때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번 더 물어보았지만, 요지부동이었던 그.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시 그를 밖으로 데려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는 죄가 없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으니,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주는 관례대로,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유대인의 왕이란 말은 그냥 해본 말이었다. 아침부터 귀찮게 한 그들에 대한 약간의 복수가 될 수도 있었고, 별문제 없는 이런 사람을 데리고 와서 고발하려 한 그들에 대한 비판의 의미도 담겨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들은 갑자기 뜬금없는 이야기를 했다.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요.”

 바라바가 누구인가? 이번에 십자가에 매달기로 한 사람이 아니었는가? 그는 성안에서 폭동을 벌여 살인을 한 사람이었다. 여기저기 소문이 날 정도로 악행을 저질렀던 사람. 그런 사람을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풀어달라는 것이었다. 이들이 로마에 항거하는 입장이었다면 바라바를 풀어달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만, 이들은 반대가 아니었던가? 폭동이 일어나면 그들의 자리도 보존하기 힘든 상황인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다니. 도대체 이 남자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 이후로 그들은 여러 가지 죄목을 나열하며 예수라는 남자를 고발했는데, 정말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은 그가 이 모든 불리한 증언을 들으면서도 아무런 대답이나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자신이 답답해서 그에게 재촉해 물었지만, 그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때 마침 대제사장의 무리들이 그가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었고, 자신은 그를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와 있는 헤롯 안티파스에게 보내어 이 상황을 모면하려 했다. 그가 갈릴리 사람이면 헤롯왕의 손에서 재판받는 것이 절차상 맞다는 핑계였다. 물론 원래는 이런 배려 따윈 안 하고, 폭동을 일으킨 사람이라면 유대인이든, 사마리아인이든, 갈릴리인이든 가리지 않고 처형하지만, 이상하게 이 사건에서는 손을 떼고 싶었다. 그렇게 그는 대제사장과 무리들에 이끌려 헤롯에게 갔다. 그 사이 자신은 예수에 대해 더 알아보았고, 그가 많은 백성들의 환영을 받으며 예루살렘 동쪽 성문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그가 적대하는 것이 결코 로마가 아니라는 사실과 그는 어떠한 죄도 짓지 않았다는 것까지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그저 저 권력자들의 눈에 밉보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을 깨달으며 그를 헤롯에게 보내길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그가 돌아왔다. 그것도 화려한 자색 옷까지 입고서 말이다. 함께 갔었던 백부장의 말로는 헤롯이 매우 기뻐하며, 이런저런 말로 물어보고 기적을 보여 달라고 하다가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하자, 모욕하고 조롱하더니 이 옷을 입혀서 보냈다고 했다. 그곳에서도 예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격렬한 고발만 이어졌다고 하니 그가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가 기적을 보일 수 있다면 기적을 보이고 살아나는 것이 좋지 않은가? 잘못한 게 없다면 당당하게 자신의 무죄를 증언하면 되지 않는가? 그런데 그는 아무런 행동도, 변명도 하지 않는다. 도무지 그의 마음을 알 수가 없다. 그나마 확인한 것은 헤롯 역시 그를 해칠 마음이 전혀 없다는 사실. 항상 반목하는 자신과 헤롯이지만, 적어도 이 사건에서는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다. 그가 다시 돌아오고 나서, 자신은 대제사장의 무리와 다른 지도자들, 백성들까지 불러서 다시 확실히 말했다.

 “너희가 이 사람을,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고 왔으나, 보아라, 내가 너희 앞에서 직접 조사하였으되, 너희가 고발하는 죄목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 헤롯 또한 그것을 찾지 못하고 그를 우리에게 도로 보내었노라. 그가 행한 것은 사형 받을만한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매질하여 놓아주겠노라.”

 그때 몇몇 사람이 올라와서 관례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주라 청했다. 자신은 예루살렘에 군기를 들어오려다 큰 곤욕을 치른 뒤에, 유대인들에게 강경책과 유화책을 동시에 사용했는데, 명절에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것이 바로 이 유화책의 하나였다. 비록 대제사장의 무리에게 제안했다가 실패했지만, 백성들까지 모인 자리니 뭔가 다를까 싶어, 바라바를 불러서 직접 보여주며 그들 모두에게 다시 물었다.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백성들의 답을 기다리는 사이,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이렇게 전했다.

 “그 의로운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십시오. 오늘 꿈에 그 사람을 인하여 내가 많이 괴로웠습니다.”

 아내 역시 그를 죽이는 걸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시 물었다.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둘 중에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로소이다. 이 사람을 없애고, 바라바를 우리에게 놓아 주소서!”

 당연히 예수를 놓아달라 대답할 줄 알고 물어본 질문이었지만, 답은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완전한 판단 착오. 아마도 재판장에 들어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제사장 쪽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가 예루살렘에 들어올 때 환영을 해주었다고 하는 그 많은 사람은 가난하고 힘이 없으니, 다 밖에서 입장을 저지당했겠지.

 “그러면 너희가 그리스도,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라는 것이냐?”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점점 심해지는 소요.

 “도대체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에게서 사형에 처할 죄를 찾지 못하였으니, 매질이나 한 후 놓아주겠다.”

 이 정도까지 말했으면 자신의 뜻을 알아들었으려니 했지만, 그들은 완전히 막무가내였다.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미쳐가는 그들을 보며, 자신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음을 깨달았다. 세야누스가 처형되고, 자신의 지위가 위태한 이때에 민란이라도 일어나게 된다면, 자신은 로마로 소환되어 죽을 것이 뻔하다. 예전 같으면 강경책이라도 썼겠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으니, 아내의 말처럼 이 사건에서 발을 빼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물을 가져오게 해서, 사람들 앞에서 손을 씻고 말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책임이 없으니, 너희가 알아서 당하여라.”

손을 씻는다는 것에 중요한 의미를 두고 있는 그들이니, 그것이 무슨 의미였는지는 그들이 가장 잘 알았을 것이다.

 “그의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이게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대답이란 말인가? 역시 미친 녀석들이었다. 권력을 가진 자와 권력의 힘에 조종된 자.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짓이 무슨 짓인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의 요구대로 하기로 결정하고, 바라바는 풀어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게 넘겨주었다.

이것이 오늘 새벽부터 아침 사이에 일어난 일의 전모였다. 그런데 그가 채찍에 맞아 엉망이 된 모습을 보자 다시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왜 그가 저런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그가 무슨 잘못을 지었다고 저런 수모를 당해야 하는 것인가? 화가 나서 견딜 수 없다.

빌라도가 다시 바깥으로 나와 말했다.

 “보라, 내가 그를 너희에게 데리고 나오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한 것을 너희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들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참혹하게 변해버린 예수님의 모습이었다. 자색 옷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고, 갈대로 맞은 자국이 선명한 머리에는 가시로 된 관이 쓰여 있었다. 가시에 찔려 상처 난 피부와 채찍 끝에 달린 납덩이에 맞아 살이 파인 자리에서는 시뻘건 피가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그를 고발했던 일당들마저 헛구역질할 정도로 처참한 모습.

 빌라도가 외쳤다.

 “보아라, 이 사람이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그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답답한 현실이 느껴져, 온 울분을 담아 외친 소리였지만, 대제사장과 그 일당들은 그들의 입으로 스스로의 악함을 계속해서 증명했다.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너희가 그를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아라.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민란이 일어나더라도,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고 말하는 빌라도에게 사람들이 다시 말했다.

 “우리에게 율법이 있는데, 그 율법대로 하면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이는 그가 자기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죽어야만 하는 진짜 이유. 신성모독. 하지만 신의 아들이라는 말은 로마인인 빌라도에게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신의 아들은 모름지기 헤라클레스나 페르세우스, 테세우스 같은 영웅이 아닌가? 더군다나 신의 아들을 죽인다면 어떤 노여움을 살지 알 수 없었다. 빌라도는 더욱더 두려워져서 관저 안으로 그를 데리고 들어가 물었다.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대답도 없는 예수님.

 “내게 말하지 않느냐? 내가 너를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못 박을 권한도 있는 줄 알지 못하느냐?”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다면, 당신이 나를 해할 아무 권한도 없었을 것이요. 그러므로 나를 당신에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오.”

 이 일이 하나님의 뜻이라 말하는 예수님. 이런 역할을 맡은 빌라도에게도 죄가 없지 않고, 죽도록 넘겨준 사람의 죄는 더 크다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죄를 용서할 능력을 예수님이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이었다. 죄를 지으면 회개를 하면 된다. 이웃에게 잘못한 일이 있다면 그에게 용서를 빌고 화해를 하면 된다. 간단한 문제였다. 그러니 악한 역할을 맡았다 하더라도 뉘우치고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오면 되는데, 악한 자들은 그것조차 깨닫지 못해 자신들의 악을 계속해서 확장할 뿐이었다. 빌라도는 하나님의 뜻을 듣고도, 예수님을 놓아주려 애썼다. 그러나 하나님은 대제사장들이라는 더 큰 악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막으려는 빌라도의 악을 멈추게 하셨다.

 “이 사람을 놓아주면, 당신은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나이다. 누구든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에게 반역하는 자이나이다.”

 이 말은 빌라도의 폐부를 찔렀다. 세야누스가 황제를 반역하고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시점에 그의 줄을 잡고 있던 자신에게까지 저런 의혹이 생긴다면, 자신의 죽음은 예정되어 있었다. 빌라도는 한숨을 쉬면서 재판석에 앉았다. 새벽 여섯 시부터 시작된 재판이 이제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빌라도가 마지막으로 유대 사람들에게 말했다.

 “보아라, 너희들의 왕이로다.”

 그러나 들려오는 것은 여전한 악들.

 “없애시오! 없애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내가 너희의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이제 힘이 거의 다 빠진 빌라도의 목소리에 대제사장의 무리가 대답했다.

 “우리에게는 가이사 외에는 왕이 없나이다.”

 빌라도는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있다가,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몸을 돌려 공관으로 들어가는 빌라도. 그의 뒤에 남은 것은 예수님과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들의 환호 속에서 피로 물든 예수님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셨다. 오전 아홉 시를 향해 가고 있는 아침 시간. 티 없이 맑고 푸른 하늘이 예수님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마지막으로 보는 세상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살아간 사람들을 더 좋은 천국으로 보내야지, 지옥으로 보낼 순 없었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이 땅에 왔으니, 그 일을 이룰 것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하고 말했던 지난밤의 기도를 이루기 위해, 마지막 잔을 기꺼이 마시고 계신 예수님이셨다.

 병사들은 예수님의 자색 옷을 벗기고, 원래의 옷을 도로 입히고는,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 밖으로 끌고 나갔다. 골고다를 오르는 예수님의 어깨에는 커다란 십자가가 짊어져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마 27:11, 17-25, 막 15:2, 9-14, 눅 23:3-4, 14-22, 요 17:4, 18:33-19:15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성경 원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평행 구절의 경우, 모든 내용이 다 포함되도록 하나로 합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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