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자 청년

저자의 글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라는 말씀이 워낙 충격적이어서, 이 부자 청년의 일화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 너무나 잘 알고 계신 내용이기에 더 이상 부연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만, 저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다시 한번 이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처음 이 말씀을 보면 부자는 천국에 가기 어렵다는 내용만 눈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는 자신의 부를 포기하지 못해 천국으로의 부르심을 거절한 부자 청년의 모습이 보이고, 그의 모습 속에서 똑같이 세상의 부를 내려놓지 못하는 우리의 모습까지 보이게 됩니다. 말씀에 반응하는 분들은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다짐하기도 하지만, 이것을 실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떻게 모든 재산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겠습니까? 저 역시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때문에 많은 분들이 이 말씀에 찔려하며, 나는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인가 하고 두려워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여, 성도들을 공격하면서 자신들의 유익을 구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이 과연 그런 것을 말하기 위한 말씀일까요? 물론 어느 정도는 그런 의미를 담고 있겠지만, 이것을 모든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그리 성경적이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자신의 재물을 가난한 사람에게 모두 나눠주지 않고도 예수님의 제자라 불리던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아리마대 요셉 역시 마태복음에 예수님의 제자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가 가진 재물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다는 말은 없습니다. 삭개오 역시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주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예수님은 그것으로는 부족하니 모든 것을 다 주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또 예수님을 후원하던 여인들도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을 다 내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것을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원하시는 것은 그 정도의 헌신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달란트나 데나리온 비유,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온 청지기의 비유처럼 예수님은 더 많은 일을 할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지 수준 이상의 것을 바라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 사건 역시, 그들이 소유를 판 돈의 일부를 따로 떼어 놓고도, 모든 것을 바쳤다고 거짓말하고 속이려 했던 것(행 5:8)이 문제의 핵심이지, 그들이 모든 것을 내놓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부자 청년에게 하신 말씀도 우리 모두에게 하신 말씀은 맞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그만큼 큰 사명을 맡기실 사람에게 하신 말씀이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부자 청년의 돌아선 모습 때문에 간과하고 넘어가기 쉽지만, 이 내용에는 눈여겨봐야 할 구절이 두 군데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막 10:21)입니다. 예수님은 그를 부자라서 안 좋게 보신 것이 아니라, 그의 살아온 삶을 보고 사랑스럽게 여기셨습니다.

 두 번째는 공관복음 모두에 나오는 ‘나를 따라라(좇으라)’라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찾아보면 아시겠지만, 예수님께서 직접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마태(레위), 그리고 이미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거라사 지방, 가다라의 군대 귀신 들렸던 사람은 그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해도, 허락하지 않으실 정도로 따르라는 이 말은 결코 가볍게 사용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따르라’는 말을 예수님은 이 부자 청년에게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근거를 가지고 다시 이 상황을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그 부자 청년에게 무언가 큰 사명을 주시기 위해 그를 제자로 부르시려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스럽게 여기실 정도로 괜찮은 사람이었고, 예수님께서 직접 나를 따르라고 말할 정도로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사명으로의 초대를 거절하고 떠나갑니다. 잔치에 초대받은 것을 거절하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그렇다고 그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까요? 사실 이 말씀의 진짜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막 10:27)

 사람의 행위와 무관하게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 구원이라고 우리가 믿고 있는 이상, 이 말씀을 행위적인 측면에서 이해하려 하는 것은 그렇게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가진 모든 것을 다 내놓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대단할 믿음일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폄훼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하나님이 더 큰 사랑과 사명을 주시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이 아닌, 여러분의 재물을 탐하는 누군가에게 이 말씀으로 속아 넘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구구절절한 부연 설명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아’라고 생각하실 분은 없겠지만,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바치고,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라고 하신 것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이니, 여러분의 믿음이 허락하는 한 헌금과 구제와 봉사에 힘을 쏟으신다면, 하나님께서 결코 그것을 잊지 않으실 것이라 믿습니다. 작은 사명의 부르심부터 받아들이고 실천한다면, 나중에 우리의 믿음이 더 커졌을 때, 하나님께서 더 큰 사명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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