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 시대의 유대에는 많은 당파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집단이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 열심당입니다. 로마에서 활동한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당시 바리새인 숫자를 6천 명, 에세네파를 4천 명, 사두개인을 극히 일부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의 자치정부 격인 산헤드린 공회의 요직을 잡고 있던 것은 귀족층에 해당하는 사두개인이었고, 평민층이던 바리새인은 산헤드린에서 비주류에 가깝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집권 여당과 야당의 차이 정도라고 이해하면 쉽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은 그중에서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바리새인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바리새인은 ‘분리된 자, 거룩한 자’라는 뜻을 가진 사람들로서, 마카비 전쟁 때, 독립을 위해 싸웠던 하시딤의 후예입니다. 하시딤은 히브리어로 ‘경건한 자, 자비로운 자, 충성된 자’를 뜻하는 하시드의 복수형인데,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의 유대교 박해 때 광야로 숨어 엄격한 율법주의적 생활을 하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마카비 전쟁에 협력하여 하스모니안 왕조의 독립을 이끌고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이 원했던 것은 종교의 자유였는데, 하스모니안 왕조는 이들의 바람과는 달리, 헬라화된 통치 방식을 사용했고, 왕과 대제사장을 겸직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두 직분 모두를 왕이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어쩔 수 없는 시대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율법에 어긋나는 이런 행동을 계속 보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요한 힐카누스 1세에게 대제사장직을 내려놓고, 정통성 있는 사독 가문 출신의 제사장에게 넘겨주라고 말하는데, 이 과정에서 적국에 포로로 간 적이 있는 그의 어머니를 모욕하는 발언을 하게 됩니다. 이에 화가 난 요한 힐카누스 1세는 사두개인과 손을 잡고, 바리새인을 권력에서 몰아내게 됩니다.
요한 힐카누스 1세가 죽고, 그의 첫째 아들에 이어, 둘째 아들인 알렉산더 야나이가 왕이 되었을 때, 또다시 대제사장직을 내려놓으라는 바리새인들의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내란으로 이어져 6천 명의 바리새인들이 살해당하고, 8천 명의 바리새인들이 광야로 도망치게 되는데, 이렇게 도망친 일부와 전임 대제사장을 따르는 무리가 에세네파가 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알렉산더 야나이에 이어, 그의 아내 살로메 알렉산드라가 유대의 여왕이 되었을 때, 바리새인들은 다시 권력에 복귀했는데, 이들은 사두개인들과 정쟁을 벌이며 또 하나의 정치 집단으로 자라났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는데, 율법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시대에 맞는 해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에 해당하는 모세오경(토라)뿐 아니라, 선지서, 역사서, 시가서 등과 이것을 해석한 장로들의 전승까지 모두 허용하면서, 운명론, 천사, 영혼 불멸, 부활 등의 내용을 그들의 신학에 포함시키게 되었습니다. 이런 신학적 관점 때문에 모세오경만 하나님이 주신 율법으로 인정하고, 제사장의 입장으로 율법을 해석하는 사두개인들과는 근본적으로 하나가 될 수 없었습니다. 지키고자 한 율법은 같았지만, 그 해석적 차이가 너무나 컸던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제사장 중에서도 고위 제사장에 해당하는 사람들과 귀족층으로 구성되어 있었기에 일반 주민들은 그들의 가르침과 동떨어져 있었던 반면, 바리새인들은 처음부터 평민층에서 자생된 것이어서 가르침의 내용이 일반 주민들에게 더 친화적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은 도시 서민이나, 지방에서 인기가 많았고, 사두개인 중에는 지방으로 파견을 나갈 때에 바리새인인척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기본적으로 운명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운명, 즉,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행동에 관여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선과 악을 행할 수 있는 의지는 사람에게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영혼을 불멸하는 것으로 여겼고, 이 세상에서 선하게 살았는지, 악하게 살았는지에 따라 죽음 이후에 심판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데 온 힘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이들은 율법에서 지켜야 할 계명과 규례들을 613개의 조문으로 정리했고, 이것은 365개의 ‘하지 말라’는 조문과 248개의 ‘하라’는 조문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다 지켜야 한다는 것이 바리새인의 가르침이었는데, 똑같은 조문을 보면서도 사람마다 어떤 것이 더 중요한가에 대한 의견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 전승 및 율법 학자의 해석까지 더해지면서 ‘모든 것을 다 지킨다’라는 개념은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바리새인 안에서도 성격이 다른 학파들이 존재했고, 그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두 개의 학파가 유대 출신의 샴마이로부터 시작된 샴마이 학파와 바빌로니아에서 태어난 디아스포라 유대인 힐렐로부터 시작된 힐렐 학파입니다.
샴마이 학파는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던 학파였습니다. 이들은 같은 평민층 중에서도 부유한 사람들과 제사장 계층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었기에 변화보다는 기존의 상황을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방인들을 배척했고, 율법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데 있어서 매우 엄격한 해석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이혼의 경우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신 24:1)에서 ‘수치스러운 일’을 어떤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이혼을 할 수 있거나 없었는데, 이 문제에 대한 샴마이 학파의 입장은 매우 보수적이어서, 간음의 이유 말고는 이혼을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힐렐 학파는 샴마이 학파에 비해서는 비주류에 속했는데, 이들은 더 개방적이고, 대중적이었습니다. 학파의 창시자인 힐렐의 출신 자체가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이방인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다른 율법들의 해석 역시 온건하거나 관대한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너무 관대한 면도 있어서 위에서 말한 이혼에 관한 율법 규정에서 ‘수치스러운 일’을 다양하게 해석함으로, 별일 아닌 것에도 이혼 증서를 써주고, 쉽게 이혼할 수 있게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랍비 가말리엘이 힐렐의 손자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의 발언을 통해 힐렐 학파의 성향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에게로서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서 났으면 너희가 저희를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행 5:38-39)
그가 배워온 힐렐 학파의 가르침 안에서 저런 사고방식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온건한 태도가 그를 모든 백성이 존경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을 것이고, 하나님은 그런 그의 성향을 통해 사도들을 죽이지 못하게 인도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이 가말리엘의 문하인데(행 22:3), 그는 스승과 다르게 과격한 면이 많았습니다. 그는 당파로서는 바리새인의 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두개인 대제사장의 허락을 받아서까지 그리스도인들을 잔혹하게 핍박하는 데 앞장섭니다. 그러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후, 완전히 다른 열심을 보이게 됩니다. 우리가 익히 아는 데로 이방인에게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로서의 열심입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루려고 하는 그의 성격과 디아스포라 유대인으로서 로마 시민권까지 가지고 있는 특수성, 더불어 힐렐 학파 출신 바리새인이라는 가치관의 배경은 그가 사도로 쓰임 받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어떠한 방해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이 만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는 열심과 이방인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진 그라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사도로 쓰시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많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과 대적하는 위치로 나오는데, 이러한 이유로 그들이 무조건 잘못된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 다르게,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행하고 지키라고 가르치십니다(마 23:3). 사실 예수님께서 계속 지적하시는 부분은 그들의 겉과 속이 다른 외식하는 모습, 말로만 하고 행하지 않는 부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때에 따라 샴마이 학파보다 더 엄격하게 율법을 해석하시고, 힐렐 학파보다 더 관대하게 율법을 적용하시는데, 성경에서 이런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하거나, 반대하는 바리새인들이 동시에 존재한 이유도 이들이 하나의 가치관을 가진 집단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바리새인이니까 모두 한통속이고 나쁜 사람들이라는 생각은 너무나 성급한 일반화일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 바리새인들은 검소한 생활 방식과 노인들을 대하는 태도, 삶의 모습과 가르침에 있어서 덕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 장사한 사람도 바리새인인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라는 사실 역시 잊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들 역시 성경의 예언을 이루기 위해 사용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다 사용하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