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름다운 나의 아내

음식 바구니를 든 엘리사벳이, 예루살렘의 거리에서 환하게 웃고 있습니다.

 눈앞에 젊은 시절의 아내가 보인다. 성전에서 여성이 들어올 수 있는 가장 안쪽, 여인의 뜰까지 자신을 배웅하겠다며 따라 들어온 그녀는 손에 바구니 하나를 들고 생글생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그래, 이날이 기억난다. 아내가 좋은 일이 있다며 아침부터 들떠있던 날이었다. 아무리 물어도 그 이유를 대답해 주지 않았지만, 아내의 밝은 모습에 자신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었다.

 아내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뜰로 들어간 다음, 미문을 통해 성전을 나갔다. 집이 있는 상부 도시 방향으로 걸어가는 아내에게 평소 친분이 있던 많은 사람이 인사를 건넸고, 아내는 세상 누구보다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화답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그들은 겉으로 드러난 그녀의 모습만을 보고 친절한 사람이라 평가하지만, 그들이 아는 것은 아내가 가진 매력의 십분의 일도 안 된다.

 화려하고 깨끗한 건물들이 즐비한 상부 도시를 기분 좋게 걸어가는 아내. 두건에 가려진 탐스러운 머릿결은 그 본연의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었지만, 그 숨겨진 진실을 아는 자신에겐 찰랑이는 움직임만으로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아내는 정말 너무 예쁜 사람이다.

 집으로 가는가 싶던 아내는 갈림길에서 몸을 돌려, 하부 도시 방향으로 내려갔다. 왕과 귀족, 부자들이 모인 상부 도시와는 달리 하부 도시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역이다. 골짜기를 따라 줄줄이 세워져 있는 낡은 건물들 사이로 좁은 골목길들이 이리저리 미로처럼 퍼져있었고, 작은 공터에는 노점 상인들이 자리를 깔고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았다. 상인들 사이에 자리싸움이라도 나는 날엔 주변이 떠나갈 듯, 시끄러운 소리가 터져 나오곤 했다.

 아내는 큰길에서 벗어나, 예루살렘 남쪽 힌놈 골짜기 방향으로 굽이쳐 흐르듯 내려가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큰길에서 멀어질수록 도시를 비추던 햇살은 사라지고, 어두운 그늘이 도시를 감쌌다.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오물들이 골목 여기저기에서 흘러내렸고, 퀴퀴한 냄새가 공기를 사로잡았다. 이런 곳에서 지내며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이런 골목의 한편에 벽이 허물어진 낡은 건물이 보인다. 제대로 보수되지 않은 흙집 주변에 여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인사를 한다. 몇몇은 아내에게 인사를 하지만, 또 다른 몇몇은 노골적으로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아내를 무시한다. 아내는 이런 반응에 익숙한 듯 아무렇지 않게 그들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는 한 명의 젊은 여인이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침상에 누워있다. 

 “좀 괜찮아졌어요?”

 “네, 이젠 좀 살만해요. 매번 이렇게 오셔서 챙겨주시니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감사할 게 뭐가 있나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인데.”

 “그래도요. 이런 곳까지 오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실 텐데….”

 젊은 여인의 말에 아내는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괜찮으니까, 부담가지지 말아요. 그리고 정 감사하고 싶으시면 제가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드리세요.”

 “네….”

 아내는 손에 들고 온 바구니에서 싱싱한 식재료들과 얼마간의 돈을 꺼내어 부엌의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 돈으로 비둘기 두 마리를 살 수 있을 거예요. 정결하게 되는 날이 끝나면 바로 성전에 가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야 해요. 알겠죠? 그리고 먹을 것도 가져왔으니. 잘 챙겨 먹어요. 산모가 건강해야 아이도 건강하잖아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에이, 또 운다. 울지 마요.”

 “네….”

 아내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여인의 품에서 까르르하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내를 보며 함박웃음을 짓는 순수한 영혼. 아기는 작고 귀여운 손가락을 펼치며 아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내는 검지를 뻗어 아기의 손을 만져주려 했다. 바로 그 순간, 젊은 여인은 멈칫하며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아직 정결하게 되는 기간이 남아서….”

 어색한 표정으로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 아내의 얼굴에 아주 잠깐 슬픈 표정이 스쳐 지나갔지만, 아내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몸 건강히 잘 있어요. 아기도 잘 챙겨주고요” 

 “네, 엘리사벳 님도 건강하세요.”

 “그래요. 갈게요.”

 아내는 집을 나섰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내에게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줄이지 않고 커다랗게 떠드는 여인네들의 목소리였다.

 “저 여자가 그 여자지?”

 “응. 아이 낳은 가난한 여자 집만 골라 다니며 도와준다고 하던데.”

 “그걸 도와주는 거라고 말할 수 있나? 자기가 부자인 거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아니지, 혹시 아이를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거 아니야? 아이 엄마가 잘못되면, 몰래 데리고 가려 한다거나.”

 “제사장 부인이라던데, 설마 그런 건 아닐 거야. 아, 그래, 자기가 아기를 못 낳으니 저런 식으로라도 아이와 가까이하고 싶은 거 아닐까?”

 “듣자 하니 결혼한 지 10년이 넘도록 아이가 없다더라. 쯧쯧. 도대체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기에 하나님이 저렇게 두실까?”

 “그러게 말이야. 진짜 하나님이 저주 하신 게 틀림없어.”

 대를 잇는 것이 중요한 이스라엘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자신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아니다. 이런 경우는 아내가 돕는 수많은 사람 중에 한두 명뿐인데, 그 몇 안 되는 경우를 마치 전체인 것, 마냥 부풀려 말하다니. 자기들이 뭐라고 아내에 대해 근거 없는 중상모략을 하는 것인가.

 잠시 멈칫한 아내는 이내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모퉁이를 돌아 사라진 아내의 뒷모습. 사가랴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여인들에게 화가 나 견딜 수 없었다. 당신들이 내 아내에 대해 얼마나 아냐고, 이 사람이 얼마나 주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 애쓰는지 당신들이 아냐고.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내 아내에게 그렇게 잔인하게 말하냐고. 아내가 당한 이상으로 그들을 비난하고, 열변을 토하며 아내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사가랴를 보지도, 그 목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모퉁이를 돌아선 그곳에 엘리사벳이 벽을 등지고 앉아 있다. 차마 크게 소리 질러 울지는 못하지만, 입을 틀어막은 손 틈 사이로 서러운 울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  *  *


 “여보.”

 “일어나요.”

 온몸이 흔들리는 걸 느끼며 사가랴는 눈을 떴다. 그의 눈앞에 머리가 하얗게 센 엘리사벳의 얼굴이 보인다. 꿈속에서처럼 따스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아내.

 “여보, 빨리 일어나요. 오랜만에 성전에 출근하려면 준비할 게 얼마나 많은데요.”

 “내가 어련히 알아서 일어날 텐데, 아침 댓바람부터 뭘 그리 호들갑이야.”

 무뚝뚝한 사가랴의 말투를 들으면서도 엘리사벳은 미소를 지우지 않는다. 세월은 많은 것들을 변하게 만들었다. 사가랴는 여전히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았지만, 그의 얼굴에선 점점 미소가 사라져갔다. 하나님께 자식을 달라고 수많은 날을 눈물로 간구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기도에 응답해 주지 않으셨다. 성전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섬겼지만,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다. 아무리 소원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가 무슨 희망을 가질 수 있었겠는가?

 “네네, 어련히 일어나실 테지만, 일어났을 때, 제 얼굴이 보이는 게 더 기분 좋지 않겠어요?”

 “쯧. 실없는 소리 하고는.”

 마음과는 반대로 아내에게 괜한 짜증을 부리는 사가랴였다.

 “어서 씻고 식사하러 오세요.”

 원래도 그랬지만, 세월이 갈수록 점점 딱딱해져가는 자신과는 반대로, 아내는 날이 갈수록 부드러워졌다. 세월의 흔적이 아내의 얼굴에 하나둘 새겨졌지만, 그 흔적조차 아내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듯했다.

 “어허, 내가 알아서 한대도”

 사갸랴는 또다시 마음과는 다른 말을 내뱉으며, 물 항아리에서 물을 떠 얼굴과 손을 깨끗하게 씻었다.

 내일부터 자신이 속한 아비야 조가 성전에서 봉사한다. 낮에 성전에 들어가면 먼저 숙소를 배정받을 것이다. 성전 본부에서 잠을 자고 새벽녘 각자 정결례를 행한 뒤, 제사장의 뜰에 모여 제비를 뽑는데, 거기에서 그날의 분향 순서가 정해진다. 순서에 따라 아침과 오후에 분향하게 되는데, 이것은 당번 기간이 끝나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러면 또 얼마간 아내를 못 보겠지? 수십 년간 제사장의 직무를 해오고 있지만, 여전히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시간은 적응이 안 된다. 또 어디 가서 이상한 소리나 듣고 오지 않을지 걱정이 된다. 아내가 자신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그렇다고 사람들의 말에 아내가 상처를 안 받는 것은 아니다. 그저 표현하지 않을 뿐, 아내도 똑같이 아파한다. 아침 식사를 하는 아내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오늘따라 아내의 혈색이 왠지 나빠 보인다.

 “얼굴이 왜 그 모양이야?”

 “이상하게 조금 피곤하네요. 몸살 기운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내가 봉사 같은 건 적당히 하라고 했잖아. 당신이 도와주지 않아도 도와줄 사람 많다니까. 남들 돕다가 아프기라도 해봐 그 치료비가 더 들 텐데. 에이, 쯧.”

 “하루 이틀 쉬면 괜찮을 거예요. 이제 당신 얼굴 안 봐도 되니 어쩌면 몇 시간 안에 나을 지도 모르죠.”

 장난치듯 웃는 아내.

 “도와주는 건 제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라서 건강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안 되지는 않아요. 그리고 이번 주엔 가야 할 곳도 있고요.”

 “하여간 남편 말은 죽어도 안 들어. 또 어딜 가려고?”

 “저기 아래 동네에 미혼모 한 명이 아이를 낳았다지 뭐에요. 남편이 임신한 거 알고 도망쳤대요. 진짜 말세가 되긴 했나 봐요. 예전엔 상상도 못 하던 일이 벌어지니. 아무튼 주변에 친척도 없다고 하니 저라도 도와야죠.”

 “아니, 당신은 예전에 그런 소리를 듣고도 또 가려는 거야? 내가 아기 낳은 집에는 가지 말라고 벌써 몇 번이나 말했잖아.”

 “뭐 그런 소리 듣는 게 하루 이틀인가요.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리고 갓 태어난 아이들을 보면,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용하시려고 아이를 주지 않으셨을까 싶기도 해요. 내 아이는 아니지만, 그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내게 ‘잘하고 있다’ 하고 칭찬해 주시는 것 같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아내의 얼굴은 아픈 가운데에서도 환하게 빛이 나는 듯했다. 다 늙은 여편네가 왜 이렇게 예뻐 보이는지,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건 아내가 아니라 자신 같기도 하다.

 “아무튼 오늘은 절대 어디 나가지 말고 집에서 쉬어. 나 없을 때 아프면 어디 도와달라고 할 데도 없으면서.”

 “없긴 왜 없어요. 저기 갈릴리에 마리아 가족들도 있고.”

 “그 촌구석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며칠은 걸리는데. 그사이에 어떻게 되면 어쩌려고?”

 “그러면 중간에서 만나면 되죠.”

 “또, 또, 쓸데없는 소리를.”

 “당신이 밖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반만큼만 나한테 잘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가랴의 얼굴이 시뻘게진다.

 “밖에서도 난 이렇게 해.”

 “아닐걸요.”

 “맞아.”

 “네, 그럼 맞는 걸로 해요.”

 순순히 인정하는 아내를 보며, 사가랴는 뭔가 이기고도 진 것 같은 기분에 괜한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럼 거긴 안 가는 거지?”

 아내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본다. 그 솔직한 눈을 보고 있자니 약간 겁이 난다.

 “그럼 내가 안 갔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이 제가 그러길 바라실까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봐요. 당신도 동의하잖아요.”

 “아무튼 일단 몸이 나을 때까지는 나가지 마.”

 “그래요, 알겠어요.” 

 아내는 저래 놓고 다 낫기 전에 밖으로 나갈 것이다. 정말 남편 알기를 우습게 아는 여편네다. 젊을 때는 강하게 말하면 좀 먹히더니, 이제는 씨알도 안 먹힌다. 나이가 들면 남자는 약해지고, 여자는 더 강해진다더니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진짜 마음에 안 든다.

 “나 다녀올 테니, 문단속 잘하고 있어.”

 “이 늙은 할머니를 누가 어떻게 하겠어요? 그런 걱정일랑 말고 잘 섬기고 오세요.”

 “에이, 한 마디도 안 져.”

 여전히 속마음과 다르게, 무뚝뚝하게 말하는 사가랴였다. 비록 표현을 하지 못해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그녀라는 것을 아내는 알까?


Listen to the audiobook now.

Post a Comment

Next Post Previous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