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익’
멀어져가는 요셉의 발걸음을 붙잡는 선명한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쪽을 바라보았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작고 귀여운 어린아이의 동그란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문이 조금 더 열리자, 마리아의 가족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 어머니, 어린 동생들. 그들은 하나같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품고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마리아야. 고마운 분한테, 왜 그렇게 말하니?”
“엄마!”
“그래, 좀 너무했다.”
“아빠!”
장난치듯 말하는 가족들을 보며,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것은 요셉과 마리아 둘뿐이었다.
“젊은이, 잠깐 들어왔다 가겠나?”
“네? 아니 저는….”
“괜찮네. 사양하지 말고 어서 들어오게.”
어느새 다가온 마리아의 아버지가 요셉의 등을 밀어 집 안으로 이끌었다. 거절할 이유를 생각하기도 전에 떠밀리듯 들어온 마리아의 집안 분위기는 그가 상상하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식탁 위에서 일렁이는 등불은 온 집안을 포근하게 비춰주었고, 부엌의 화로 위에는 그의 허기를 자극했던 음식이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사람의 온기가 요셉의 마음 깊은 곳까지 전달되었다. 자신을 보며 미소 짓는 가족들의 모습에 요셉은 갑자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자네가 누구인지 알려줄 수 있겠나?”
“저는 요셉 벤 야곱이라고 합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이라. 그것참 의미 있는 이름이구먼.”
“네, 저희 아버지께서 어떤 상황에서도 믿음 잃지 않고, 잘 견뎌내라는 의미로 지어주셨습니다.”
“그럼, 자네는 어디 출신인가?”
“유다 지파 베들레헴 출신입니다.”
“베들레헴이라면 다윗왕의 고향인 그곳?”
“네, 맞습니다. 계보로 따지면 제 위에 다윗왕께서 계십니다.”
“오, 다윗왕의 후손이라니.”
“네, 일단은 그렇지만, 저는 이렇게 살고 있어서….”
“이렇게 사는 게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건 별로 좋은 태도가 아니네.”
“아…. 네.”
이 집 사람들의 성격은 하나같이 이렇게 단호한 것 같았다. 아닌 걸 아니라고 돌려 말하지 않는 태도는 도대체 어떻게 배울 수 있는 걸까? 평생 남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살던 요셉은 이런 태도가 쉽사리 적응되지 않았지만, 동시에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좀 없이 살면 어떤가? 자네처럼 선한 마음으로 살면 그걸로 충분한 걸세. 그리고 혹시 아나, 자네의 후손으로 메시야께서 오실 수도 있지 않은가. 메시야께서 다윗왕의 후손으로 온다고 하셨으니 말일세.”
“아닙니다. 당치도 않습니다. 그럴 일은 없을 것입니다.”
“자네도 참 고집이 세군. 우리 딸도 고집쟁이인데.”
“아빠!”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으로 묵묵히 저녁을 준비하던 마리아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뭐 틀린 말은 아니잖아. 허허”
“그래, 마리아야.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너 고집 세단다.”
옆에서 같이 저녁을 준비하던 어머니까지 가세하자, 마리아는 억울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입을 다물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비록 그 얼굴만은 절대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표정 그대로였지만 말이다.
“참, 그런데 말일세. 왜 몰래 도와준 건가? 차라리 드러내고 도와줬으면 우리도 마음 편했을 텐데.”
“그냥…. 별것도 아닌데, 괜히 부담드리기 싫었습니다.”
“별것 아니긴. 얼마나 고마웠는데. 자네가 아니었으면, 정말 견디기 힘들었을 거야.”
“아닙니다. 정말 별일 아니었습니다.”
“어허, 또 그런다.”
“네…. 죄송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항상 겸손하라고 교육받은 요셉은 자신을 칭찬하는 말들이 어색해, 어떻게 할지를 몰랐다.
“자네는 정말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는군.”
“네?”
“어떤 사람들은 조금 도와주면서 생색이란 생색은 있는 대로 다 내고, 자기가 마치 거룩한 사람의 표본인 양 거드름을 피우기도 하거든.”
“저도 다를 게 없습니다.”
요셉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없긴 뭐가 없어. 자네가 그들과 똑같은 부류였다면, 우리가 자네에게 이렇게 대하겠는가?”
마리아의 아버지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당황하는 요셉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의 등을 세게 두드리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요셉은 마리아의 가족들과 함께 식사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리아의 가족들은 정이 많고 따스한 사람들이었다. 또 그것만으로 부족한지 흥도 넘쳐서, 가족들 간에 거침없는 대화가 떠들썩하게 이어지기도 했다. 마리아도 처음에는 요셉이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해했지만, 이내 대화에 끼어들어 자신의 생각을 마음껏 표현했다. 마리아의 풍부한 성량은 대화의 활기를 배가시키며 식사 분위기를 더욱더 밝게 만들었다.
어릴 때부터 율법을 어기지 않게 교육받으며 죄책감에 억눌리고, 또 가난한 삶 가운데에서 스스로의 탓을 하며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밖에 없었던 요셉에게 지금의 상황은 낯선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하고, 타인의 말에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는 그들의 모습은 요셉이 꿈에서도 닮고 싶어 했던 모습이었다.
“이제부터는 곡식은 놓고 가지 않아도 괜찮네. 나도 이제 다 나아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아. 아, 혹시 자네가 일하는 곳에 일자리 하나 없는가?”
“일자리야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제가 일하는 곳의 급료가 조금 적어서….”
“지금 상황에서 그게 뭐가 중요하겠나?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일단 한번 물어봐 주겠나?”
“네, 알겠습니다.”
“그래, 대신 지금까지 우리가 받은 것도 있고, 이제 일자리까지 소개해 준다고 하니, 그 은혜를 갚을 기회는 주게나. 내일부터 매주 세 번씩 우리 집에 와서 저녁을 먹고 가게.”
“네?”
“아빠!”
놀란 요셉과 마리아는 각자 다른 의미의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한번 결정한 것은 어떻게든 이루고야 마는, 가족 중 최고 고집쟁이 아버지의 말은 반드시 일어날 미래의 현실이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물어보고 내일 저녁때 알려드리겠습니다.”
“알겠네. 오랫동안 쉬어서 그런지 일하고 싶어 좀이 쑤시는구먼.”
“아마 모레부터라도 바로 일을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래, 기대하고 있겠네.”
요셉은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멀어지는 요셉 뒤로 남겨진 문틈에서 마리아와 부모님의 대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빠, 아무리 그래도 매주 세 번은 너무 많잖아요.”
“두 번이면 정 없으니, 세 번은 불러야지.”
“그래, 지금까지 도움받은 걸 생각하면, 세 번이 대수니? 그리고 이 엄마는 아까 밖에서 네가 한 말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 도움을 받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넌 남들 도와주는 건 좋아하면서, 도움받는 건 왜 이렇게 싫어하니. 그것도 괜한 자존심이 아닐까?”
“아빠, 그런 거 아니에요. 저도 진짜 고맙게 생각한다고요. 다만 아무 이유 없이 갑자기, 잘 모르는 누군가에게 과도한 도움을 받는 게 부담스러운 것뿐이에요. 그리고 그런 이유 없는 호의는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그거야 예쁜 우리 딸한테 남자 조심하라는 의미에서 한 말이었고, 저 친구는 꽤 괜찮은 친구 같은데.”
“그래,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하시려고 저 청년을 보내주신 거라면 어떻게 하겠니? 이런 도움을 당연히 받겠다는 게 아니라,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거야.”
“그렇지만 이건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잖아요.”
“마리아야.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 속에서 우린 최선을 다하고 있어. 더 많이, 더 힘들게 직면하는 것만이 반드시 더 좋은 것은 아니란다. 우리 힘만으로 버티면서 힘든 현실을 이겨내려 하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교만이지 않겠니?”
“그래, 옛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떠돌 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신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뭘 잘해서였겠니? 하나님이 주신 것을 잘 받아 누리면서 온전한 감사를 돌리면 되었던 그때처럼, 우리가 그 친구에게 감사한 마음만큼 돌려주면 되는 거야. 그게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
* * *
조장으로 일하며 쌓은 신뢰가 도움이 되었는지, 감독관은 별말 없이 마리아의 아버지를 일하게 해주었다. 요셉은 다음 날부터 매일 아침 마리아의 집에 가서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일터로 향했다. 둘은 일을 할 때에도,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도 함께 했는데, 그사이 그들은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두 사람은 생각보다 말이 잘 통했다. 요셉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태도가 달라지곤 했는데, 마리아의 아버지가 격의 없이 대하자 금세 마음을 열고 속마음을 터놓게 되었다.
마리아 아버지의 눈에 비친 요셉의 첫인상은 자신이 없고, 너무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 안에 숨어있는 선함을 보았기에, 그런 당당하지 못한 모습도 과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게 만족스러운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를 조금 더 알게 되자, 그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수정하게 되었다. 요셉은 어떤 일을 할 때, 처음부터 자신감 있는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항상 자신이 한 행동을 돌이켜보며, 잘못한 부분은 없는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만약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 즉시 인정하고 바로 잡으려 노력했고, 깊이 생각한 뒤에도 잘못한 게 없다고 느낄 때는 자신의 선택을 믿고 움직이는 뚝심이 있기도 했다. 비록 그 자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요셉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 훨씬 더 괜찮은 모습을 내면에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요셉에 대한 평가가 좋아질수록, 요셉과 가족들이 함께하는 저녁 식사는 그 날짜를 늘려, 이제는 거의 매일 함께 식사하게 되었다. 마리아는 이런 상황이 조금 마음에 안 들었지만, 별다른 거부의 말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고집이 세지만, 그 고집이 결코 가족을 생각하지 않는 자기만의 아집이 아님을 알기에, 마리아는 그런 아버지의 선택을 신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요셉과 마리아의 관계도 나아졌다. 처음의 서먹했던 관계도 자연스레 편해졌고, 마리아도 요셉도 서로에게 있는 좋은 모습들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마리아의 아버지는 요셉과 함께 일하며,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율법을 잘 지키려 노력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정말로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가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든 말든 그것이 진실이었다. 그의 가난은 이 시대의 문제였지, 그 자신의 문제는 아니었다. 원래부터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 남들을 핍박해서 자신의 이익을 얻는 세리나 군인 같은 사람들이나 부할 뿐, 정작 자신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하는 서민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었으니 말이다.
비록 가난할지라도, 자신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고, 선을 베풀기 위해 노력하는 요셉의 진실함을 보고, 마리아의 아버지는 두 사람을 결혼시키기로 마음먹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사람들 앞에서 한 잔의 포도주를 나눠 마시고, 결혼 서약서를 만들어 정혼을 약속했다. 이제 1년간의 약혼 기간이 끝나면, 두 사람은 결혼하여 하나님 앞에서 둘이 아니라 한 몸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을 수 없으리라.
Listen to the audiobook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