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의 동쪽, 아르논 강 유역을 제외하면 황무지에 가까운 산지에 마케루스 요새가 있다. 마케루스는 주변이 깊은 골짜기로 되어 있는 산의 정상에 세워진 요새인데, 마사다, 헤로디움과 더불어 유대의 3대 요새라 불릴 만큼 철옹성 같은 견고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곳은 하스모니안 왕조의 알렉산더 야나이가 나바테아 왕국과의 국경 분쟁을 대비해 처음 세웠고, 로마의 폼페이우스에게 파괴된 이후 헤롯왕에 의해 재건축되었는데, 헤롯은 이곳에 여름 궁전을 만들어 종종 머무르곤 했다.
사실 이 주변은 척박한 지역이었기에 궁궐로서의 입지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산 주변에서 흘러나오는 온천수들로 인해, 피부병으로 고생한 헤롯왕에게는 세상 어느 곳보다 좋은 휴식처가 되어주었다. 헤롯왕이 죽은 후, 이 여름 왕궁은 그의 아들 헤롯 안티파스가 물려받아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었다.
사해와 사해 너머의 유대 광야까지 잘 보이는 산 정상에는 성곽과 왕궁, 물 저장탱크, 목욕탕 같은 시설이 있고, 가파른 산 중턱에는 감옥으로 쓰이는 작은 동굴 여러 개가 있는데, 그 동굴 중 하나에 세례 요한이 갇혀있었다.
병사들에게 잡혀 온 후, 세례 요한은 줄곧 이곳에 갇혀있었는데, 헤롯 안티파스의 애매한 태도로 인해 처지가 좋다면 좋고, 나쁘다면 나쁜 상황에 처해있었다. 의심이 많은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의 영향력이 커져 반역을 일으킬까 봐 두려워하고 있었는데, 막상 처형하려고 하니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걱정되어 차마 처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세례 요한이 의롭고 성스러운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요한의 말을 듣는 것을 괴로워하면서도 달게 여기는 면도 있었다. 가만히 두자니 자신을 비판하는 말 때문에 문제가 커질 것 같고, 그렇다고 죽이자니 이런저런 이유로 죽일 수도 없어서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을 유대와 갈릴리에서 멀리 떨어진 국경 요새 마케루스에 그저 가둬두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제자들과 종종 만나는 등 자유를 잃은 것 외엔 생활에 큰 불편이 없었다.
세례 요한은 이곳에 갇힌 후, 다시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생겼다. 이곳에서 살아 나갈지, 아니면 죽어 나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제대로 이루었는지, 아니면 이루지 못했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 자신은 예수님이라는 메시야를 만났는데, 그분의 제자들이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을 보고 확신을 잃어, 에세네파에서 말하는 또 다른 대제사장 메시야가 오실 것을 기다리기로 작정했었다. 그 이후에 헤롯을 비판하다가 이곳으로 잡혀 온 것인데, 만약 자신이 이곳에서 죽게 된다면 자신이 만난 그분이 진짜 메시야가 맞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왕이신 메시야뿐 아니라, 대제사장인 메시야로서도 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어떤 사명을 주신 후, 그것을 이루기까지 결코 죽지 않게 하시는데,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다른 관점으로 보면, 결국 자신의 사명이 다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얼마 전에 제자들을 그분께로 보내었다. 제자들은 그분께 대놓고 물어볼 것이다.
“당신이 오실 그분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이것은 결국 그분에 대한 자신의 질문인데, 그분의 대답에 따라서 자신의 생각도 정리될 것이다.
세례 요한은 제자들을 통해 전해 들은 소식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았다. 그분은 워낙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시기에 정보의 정확성이 조금 떨어지지만, 어찌 되었든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가르침을 전하시는 것은 분명했다. 또한 그분에겐 열두 명의 주요 제자가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이 갈릴리 출신이고, 한 명만 유대 출신의 사람이었다. 그중에 아는 사람은 자신의 제자였던 안드레와 요한인데, 그들의 형제인 베드로와 야고보도 열두 명에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이야 자신도 직접 알고, 또 전해 들은 것이 있으니 그럴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세리나, 열심당원 출신 같은 죄인들도 그분이 제자로 받아들이셨다는 사실은 정말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특히 세리 같은 경우는 상대가 찾아와 회개한 것도 아닌데, 직접 가셔서 제자로 삼으셨다고 하니 그분의 제자 선정 방식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자신은 자신에게 찾아와 회개하고 돌이킨 사람만을 제자로 삼았었는데, 그분은 회개를 하든 말든 자신이 먼저 찾아가셔서 제자로 삼으시는 것이니 방향이 완전히 다른 것이다. 부르심이 먼저이고, 제자로서의 사명이 나중인 특이한 방식. 아무튼 정말 생소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그 안에서 다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이런 제자 구성 때문인지, 금식이나 안식일을 대하는 그분의 태도도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거룩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자신은 먹고 마시는 것을 즐겨하지 않았고, 종종 금식했었기 때문에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는데, 그분의 제자들은 금식도 안 하고 먹고 마시는 것을 즐겼다. 자신의 제자들은 이 부분이 이해되지 않아 그분을 찾아가 질문을 했었다.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합니까?”
이 말을 하자 다른 사람들도 기다렸다는 듯 비슷한 질문을 했는데, 모두가 예전부터 이 문제가 마음에 걸려 담고 있었던 것이리라. 이에 대해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새 옷에서 생베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고, 새 옷을 찢을 뿐이니라.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과 어울리지도 아니하리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 다 보전되느니라. 또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나서,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
그분의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분 자신과 제자들은 이전의 어떤 방식과도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에세네파, 바리새인, 사두개인, 열심당 각자가 이루고자 하는 나라와 그분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선생님, 들어가겠습니다.”
감옥 밖에서 들려온 제자의 목소리. 드디어 그분께 보냈던 제자들이 돌아왔다.
* * *
“그러니까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건가?”
“네, 그렇습니다. 저희가 가고 나서 또 무슨 이야기를 하셨을 수도 있지만, 저희가 들은 것은 여기까지입니다.”
“흠…. 알겠네. 잠시만 밖에 나가 있겠나? 혼자 생각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네.”
“알겠습니다. 끝나시면 언제라도 부르십시오.”
밖으로 나가는 제자들을 보며, 세례 요한은 제자로부터 전해 들은 그분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았다. 자신의 질문에 대해서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다고 한다.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고하라. 눈먼 자가 보며, 다리 저는 자가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인하여 걸려 넘어지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분은 또다시 확실한 정체를 공개하지 않으셨다. 대신 자신이 한 일을 전해 듣고 직접 판단하라는 듯, 제자들을 통해 수많은 기적 이야기를 듣게 하셨다. 그분에게 가면 눈먼 사람이 보고, 다리 저는 사람이 걷고, 귀먹은 사람이 듣는다.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그분은 왜 이런 이야기를 자신에게 전하라 하셨을까? 이런 내용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그분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야이시니, 이런 기적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궁금한 것은 그분이 대제사장의 역할도 하냐는 것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중재하고, 화해를 하게 하는 역할. 죄 사함을 받게 하는 대제사장으로서의 메시야 말이다.
휴…. 확실히 그분의 말씀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분이 말씀하시는 하늘나라의 백성이라면 저런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지만, 자신은 그 나라의 가장 낮은 사람도 이해할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러니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도 그분을 좋게 판단하지 못하는 것이겠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을 하시니 말이다. 하지만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그들이 그분을 판단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판단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그분이 하시는 것이다.
세례 요한은 이사야 선지자가 한 예언을 떠올렸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을 것이다.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능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그 위에 머무르실 것이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치 아니하고, 귀에 들리는 대로만 판단치 아니한다.”
이새의 줄기에서 오신 예수님. 그분은 정말 예언처럼 지혜와 총명, 모략과 능력, 지식과 주님을 경외하는 모든 것을 가지신 분이시다.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시는 분….
아, 잠시만. 혹시 그분이 말씀하신 것이 바로 그분이 이루어갈 하나님 나라에 관한 것이 아닐까? 불완전한 육체가 완전해지고, 부정한 사람이 정해지고, 죽은 사람이 생명을 얻는 나라. 가난한 사람까지도 복음을 듣게 되는 나라.
예레미야 선지자는 다가올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하니,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고,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것처럼, 이전 언약이 아닌 새 언약으로 이루어지는 나라. 작은 사람부터 큰 사람까지 모두가 주님에 대해 아는 나라. 그리고 모든 죄와 허물이 하나님에 의해 용서되고, 그 죄가 다시는 기억되지 않는 나라.
기적뿐 아니라, 그분의 행동을 생각해 보자. 그분은 사람들이 무시하고 피하는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고, 수많은 여인의 아픔을 이해하고 치유해 주셨다. 이것은 시편의 말씀과 같지 않은가?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가난한 자를 먼지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올리셔서, 방백들 곧 그 백성의 방백들과 함께 세우시며, 또 잉태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거하게 하사, 자녀의 즐거운 어미가 되게 하시는 도다. 할렐루야.”
그리고 그분이 주로 사역하시는 지역 갈릴리. 그곳에 관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도 있다.
“전에 고통받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받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또한 수많은 가르침과 기적을 베푸시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알려지는 것을 조심스러워하시는 그분의 모습. 그럼에도 그분의 가르침은 유대, 갈릴리, 이방까지 전해져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야의 모습 그대로가 아닌가?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다.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그분은 메시야로 오셨음에도 스스로 낮아지셔서, 백성들의 목자가 되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해 주신다. 지금 이 땅의 지도자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그분은 하고 계신다. 이것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주신 예언의 성취이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내가 그것들을 만민 중에서 끌어내며, 열방 중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로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 위에 두리니, 그것들이 거기서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 위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로 누워 있게 할지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긴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어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찐 자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양 떼, 너희여. 내가 양과 양의 사이와 숫양과 숫염소의 사이에서 심판하노라. 너희가 좋은 꼴 먹은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꼴을 발로 밟았느냐? 너희가 맑은 물 마신 것을 작은 일로 여기느냐? 어찌하여 남은 물을 발로 더럽혔느냐? 나의 양은 너희 발로 밟은 것을 먹으며, 너희 발로 더럽힌 것을 마시는도다.
나, 곧 내가 살찐 양과 여윈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너희가 옆구리와 어깨로 밀어뜨리고 모든 병든 자를 뿔로 받아 무리로 밖으로 흩어지게 하는도다. 그러므로 내가 내 양 떼를 구원하여 그들로 다시는 노략거리가 되지 않게 하고, 양과 양 사이에 심판하리라.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하리니, 그는 내 종 다윗이라. 그가 그들을 먹이고 그들의 목자가 될지라. 나 여호와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내 종 다윗은 그들 중에 왕이 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또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우고, 악한 짐승을 그 땅에서 그치게 하리니, 그들이 빈 들에 평안히 거하며 수풀 가운데서 자리라. 내가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내 산 사면 모든 곳도 복되게 하여 때를 따라 비를 내리되, 복된 장맛비를 내리리라. 그리한즉 밭에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그 소산을 내리니, 그들이 그 땅에서 평안할지라. 내가 그들 멍에의 막대를 꺾고, 그들로 종을 삼은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낸 때에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그들이 다시는 이방의 노략거리가 되지 아니하며, 땅의 짐승이 그들을 먹지 아니하고 평안히 거하리니, 놀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그들을 위하여 이름난 농지를 세워줄 것이니, 그들이 다시는 그 땅에서 기근으로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시는 열국의 수치를 받지 아니할지라. 그들이 나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있는 줄을 알며, 그들 곧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라.
내 양, 곧 내 초장의 양, 너희는 사람이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 하나님…. 어떻게 이런 일을….
세례 요한은 갑자기 깨달은 사실들에 놀라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분은 정말로 성경에 오시리라 기록된 바로 그분이다. 그동안 왕이신 메시야이니, 대제사장이신 메시야이니 하는 문제로 씨름한 것이 얼마나 의미 없는 행동이었는가? 그분은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이 예언의 성취임을 보여주고 계셨다. 그것을 보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다. 스스로 지도자의 한 사람이라 여기면서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니…. 자신이야말로 심판당해 마땅한 목자이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전심으로 회개하는 그의 모습. 그는 진정으로 이 땅에서 주님이 오시는 길을 닦은 사람이었고, 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였다.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북왕국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과 왕비 이세벨에 정면으로 대적하며 회개를 촉구한 예언자 엘리야. 그 엘리야처럼 악한 세상에 맞서 회개를 외쳤던 세례 요한. 그는 정말 여자가 낳은 사람 가운데서 가장 큰 인물이었다. 그의 사명은 이제 완전히 성취되었지만, 아직 그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남아 있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도 아는 사실. 그것은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불릴 이름들이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놀라우신 조언자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통치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부터 영원까지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시편 113:5-9, 이사야 9:2, 6-7 ,11:1-3, 42:1-4, 예레미야 31:31-34, 에스겔 34:11-31, 말라기 4:5, 마태보음 9:14-17, 11:3-6, 마가복음 2:19-22, 누가복음 5:34-39, 7:19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성경 원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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