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세례 요한의 죽음

살로메가 연회장에서 춤을 추고 있습니다.

 남편의 생일 잔치를 위해 마케루스의 여름 궁전으로 가는 길. 자신과 딸은 남편인 안티파스와 함께 가고 있고, 연회에 초대한 고관들과 갈릴리의 요인들은 며칠 뒤에 도착할 예정이다. 티베리아스의 왕궁을 두고 멀리 남쪽에 있는 마케루스까지 가서 잔치를 하는 것은 그들에게 왕권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남편의 전 부인이 고국인 나바테아로 도망간 이후 양국의 긴장감이 높아졌는데, 이 문제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걱정스러운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었다. 이에 남편은 국경 요새인 마케루스에 병력을 집중시켜서 사람들에게 남쪽의 방비가 얼마나 탄탄한지 확인시켜 주려는 것이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지만, 남편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 크면서도 문제를 일으킬 만한 행동은 피하고 보는 우유부단한 성격 역시 가지고 있어서 이런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세례 요한의 문제도 이것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세례 요한은 자신과 결혼한 남편에 대해 몇 번이나 심한 비난을 퍼부었는데, 남편은 그를 죽이고 싶어 하면서도 그의 영향력과 그의 성품 때문에 죽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가 의롭고 성스러운 사람이라나? 웃기지도 않는다. 그가 그렇게 의로운 사람이라면 어떻게 자신들을 향해 그런 비난을 퍼부을 수 있단 말인가? 

 헤로디아는 마케루스에 갇혀 있는 세례 요한을 생각하자,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져 오기 시작했다. 얼굴의 주름살이 늘어나게 한 장본인. 그녀는 세례 요한의 비난을 떠올릴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 비난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 남편인 안티파스에게 향해있지만, 결국 그것은 자신에 대한 비난이고, 공격이었다.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는 무능한 남편을 버리고 능력 있는 안티파스 같은 사람에게 가는 게 뭐가 나쁘다는 것인가? 여자인 자신이 먼저 이혼을 결정한 것이라서? 그게 아니면 자식이 있는 상태에서 남편의 형제와 재혼했기 때문에? 그래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다. 율법에 그렇게 되어있다고 하니 그들의 입장에선 그딴 소리를 지껄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정말 화가 나는 사실은 자신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닌데, 자신만 욕을 먹는다는 것이다. 예전에 이미 자신의 외할머니가 이혼증서를 써주고 이혼한 적이 있고, 백모인 글리피나도 남편의 사후이긴 했지만, 자식이 있는 상태에서 남편의 형제인 아켈라오와 재혼했다. 또 자신의 어머니 역시 아버지가 죽은 후 친척과 다시 결혼했다. 그들에겐 이렇게까지 비난을 하지 않아놓고는 왜 자신에게만 이런단 말인가?

 진짜 너무 억울하다. 억울해서 미칠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되는 일이 없어 늘 힘들다가, 안티파스를 만나 이제야 인생이 좀 풀리나 했더니, 세례 요한이라는 암초를 만난 것이다. 세례 요한이 자신에 대해서 알면 얼마나 안다고 그딴 소리를 지껄이는 것인가? 그가 자신과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면 감히 그런 비난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는 헤롯왕과 하스모니안의 공주 미리암네 1세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인데, 형인 알렉산더와 더불어 유대인들에게 큰 기대를 받고 있었다. 이전 왕조의 혈통을 물려받은 좋은 신분에다가 외모까지 출중했으니, 사람들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인 미리암네 1세를 시기한 헤롯왕의 동생 살로메, 그러니까 자신에겐 외할머니이기도 한 그분으로 인해 결국 할머니가 처형당하게 되었다. 이건 아버지가 결혼하시기도 전의 일인데, 이 사건으로 아버지와 백부님은 큰 상처를 받게 되었다. 두 분은 어머니의 죽음으로 아버지와의 관계가 극도로 나빠졌는데, 그분들은 이 사건의 원흉이 고모인 살로메란 것도 알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었으니 서로 간에 비방과 적대가 끊이지 않았는데, 헤롯왕은 가족 간의 싸움이 줄어들도록 아들 아리스토불러스와 동생 살로메의 딸을 결혼시켰다. 이들이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이다.

 하지만 이미 갈 데까지 간 상황에서 결혼 따위로 사이가 어떻게 좋아질 수 있었겠는가? 외할머니인 살로메는 사위인 아리스토불러스를 경계해, 딸, 그러니까 자신에겐 어머니가 되는 베르니케와 남편의 관계가 좋아지지 않도록 끝없이 이간질했다. 이로 인해 어머니는 남편과 형인 알렉산더가 만나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조차 다 할머니에게 전달했고, 할머니는 그것을 오빠인 헤롯왕에게 또다시 전했다. 이렇게 부자간의 관계가 점점 나빠지는 동안 자신을 비롯한 다섯 남매가 태어났는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원수 안티파테르가 등장하면서 아버지 아리스토불러스와 백부 알렉산더가 억울하게 처형되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아버지가 처형당할 당시 자신은 어린아이였는데, 나이가 들어 결혼할 시기가 되자 할아버지인 헤롯왕이 혼처를 정해주었다. 그런데 다섯 남매 중에 다른 네 명은 나이가 비슷한 좋은 짝을 만나 결혼했는데, 자신은 삼촌뻘인, 아버지의 또 다른 이복형제, 그러니까 미리암네 2세의 아들 빌립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다. 물론 그것은 자신에 대한 할아버지의 배려였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때엔 자신의 남편 빌립에게도 왕위 계승권이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남편이 왕이 된다면 자신의 힘든 어린 시절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자신 역시 그 결혼을 승낙했다. 헤롯왕이 자신에게 할아버지이자, 외할머니의 오빠이자, 시아버지가 되는 복잡한 관계로 변하긴 했지만, 왕비가 될 수만 있다면 어떤 문제가 생기든 상관없었다. 하지만 남편마저도 원수 안티파테르와 엮여 몰락하면서 자신의 기구한 인생은 더욱더 꼬여갔다.

 헤롯왕의 장남인 안티파테르는 그 자신의 음모로 이복동생들을 죽이게 하고도 짐짓 슬퍼하는 척하며 왕국의 2인자 자리에 계속 앉아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인 헤롯왕이 늙어서까지 죽지 않자, 왕위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것 같다는 두려움에 독살을 준비했고, 이것이 밝혀지면서 감옥에서 처형당하게 되었다. 이때 시어머니인 미리암네 2세가 이 사실을 미리 알고도 모른 척하는 바람에 자신의 남편까지 연좌제로 쫓겨나게 된 것이다. 이후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딸 하나만 바라보며 무능한 남편을 참아왔는데, 안티파스를 만나면서 이제야 진정한 사랑을 하고 삶의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이 얼마나 힘든 과거였냐 말이다. 자신은 아버지의 처형과 어머니의 재혼을 경험하고, 가족 간의 끝없는 분쟁을 지켜보았다. 누명을 쓰고 처형당하는 사람을 셀 수 없이 봤고, 헤롯왕 이후의 수많은 반란과 혼란한 시대를 있는 그대로 겪어왔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이런 과거를 알기나 하고 비난하는 것인가? 그가 의로운 사람이라고? 다 헛소리이다. 그는 이제야 잘 풀리려 하는 자신의 인생을 또다시 몰락시키려는 원수일 뿐이다. 그가 안티파테르랑 다를 것이 무엇인가? 안티파테르처럼 감옥에서 처형당해 마땅한 인간. 두고 보아라, 어떻게든 그를 죽이고 말 것이다.


*  *  *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다 가져다 놓은 듯한 화려한 연회장에서 헤롯 안티파스와 초대된 사람들이 잔치를 즐기고 있다. 왕국의 고관과 갈릴리의 중요 인사들, 그리고 요새에 배치된 천부장 몇 명. 산 중턱 감옥에 갇혀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자유를 누리고 있는 세례 요한과 다르게 그들은 술에 취해 세상의 노예가 되어있었다.

 한창 연회가 무르익어갈 때쯤 시종 한 명이 헤롯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따님께서 전하를 위해 춤을 추겠다고 합니다.”

 “뭐? 살로메가?”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건 법도에 안 맞는 것 아닌가?”

 “따님께서 자란 지방에선 정말 축하할 일이 있으면 그러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래?”

 안티파스는 이제는 딸이 된,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다. 이 많은 남성 사이에서 춤을 춘다는 것이 유대에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지만, 살로메가 자청한다면 굳이 막을 필요도 없지 않을까 싶었다. 자신 역시 로마에서 성장했고 로마의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니, 각 지역의 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배웠기에 딸의 제안에 별다른 거리낌이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을 위해 딸이 직접 춤을 춰준다는 말이 고맙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살로메가 처음 왔을 땐 표정이 좋지 않더니, 이제야 자신을 진정으로 아버지로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그래, 원하는 대로 하게 하거라.”

 “알겠습니다.”

 시종이 떠나고 얼마 뒤, 수금을 든 악공과 함께 살로메가 들어와 자리를 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연회에 모인 사람들을 모두 빠져들게 하는 아름답고도 뇌쇄적인 춤사위. 그것은 그녀의 미모와 더불어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는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안티파스는 딸에게 빠져드는 사람들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졌다. ‘저 아이가 바로 자신의 딸이다. 내가 저 아이의 아버지이다’ 하고 자랑스럽게 외치고 싶었다. 정말 어디 내놓아도 절대 빠지지 않을 미모를 가진 딸. 하긴 그녀의 할머니이자 자신에게는 새어머니 중 한 분인 미리암네 2세는 절세의 미모를 가졌었고, 어머니 헤로디아 역시 출중한 외모를 타고났으니, 살로메가 예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말이 안 된다. 

 헤롯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영원히 이어졌으면 하는 순간. 하지만 그 꿈같은 시간은 언제나처럼 오래지 않아 끝이 났다. 춤이 끝나고, 음악도 끝나자, 잠시 멍해 있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궁궐 안을 온통 채운 환호 소리. 안티파스의 기분은 최고조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 정도라면 자신의 생일 잔치의 목적이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다. 헤로디아와 결혼한 것을 은연중에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사람도 이 자리에 있었겠지만, 저 춤을 보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질 게 분명했다. 살로메는 자신에게 있어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보물이다. 저 아이에게 큰 선물을 내려야겠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게 구하여라. 내가 주리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겠다.”

 정말 나라의 절반이라도 줄 수 있다고 생각한 안티파스. 어차피 그녀가 자신의 딸이 되었으니, 그녀에게 아까워할 것이 무엇일까? 

 “어머니께 여쭤보고 오겠습니다.”

 살로메는 고개를 숙여 대답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상황을 보아하니 춤도 헤로디아가 추라고 한 것이 분명하다. 확실히 자신이 결혼을 잘한 것 같다. 전 부인이었으면 생각지도 못했을 놀라운 계획. 역시 헤로디아를 보고 첫눈에 반한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 그때 다시 들어오는 살로메의 얼굴에 묘한 미소가 걸려있다.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세례 요한의 머리를 접시에 담아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순간 온 연회장이 조용해졌다. 아름다운 소녀에게서 나온 섬뜩한 소원. 한 사람의 머리를 큰 접시에 담아 가져달라는 것. 사람들이 그녀의 아무렇지 않은 태도를 보며 놀라는 동안, 안티파스는 아내 헤로디아의 속셈이 뻔히 보였다.

 전부터 세례 요한을 죽이라고 그렇게 말하더니, 이제는 이런 방법까지 사용해 그를 죽이려 하는구나. 하지만 세례 요한이 누구인가? 비록 이 자리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지만, 그래도 한때는 메시야가 아닐까, 의심을 받던 사람이었다. 그는 의로운 사람이고, 하나님의 선지자이다. 그런 그의 머리를 접시에 담아 오라고 하다니. 해도 해도 너무한 소원이 아닌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안티파스의 마음이 괴로워졌다. 하지만 자신은 맹세를 했다. 유대인에게 맹세가 무엇인가? 반드시 지켜야 할 무거운 것이다. 만약 이 자리에서 자신이 한 맹세를 어기게 된다면,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던 이 잔치의 목표가 완전히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럴 순 없다. 어떻게 만든 자리이고, 어떻게 얻은 지지인데….

 “그렇게… 하여라.”

 안티파스는 결국 세례 요한을 죽이도록 병사를 보냈다. 자신의 말을 듣고 떠나가는 호위병의 뒷모습을 보며, 안티파스는 다시 소리쳐 멈추게 하고 싶었다. 그는 죽여선 안 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 안티파스는 아무런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마음 깊은 곳까지 씁쓸해지는 헤롯. 앞으로는 세례 요한 일당의 반란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자신을 구석으로 몰아넣은 헤로디아와 살로메에 대한 약간의 분노도 일었다. 다음에도 헤로디아의 말에 휘둘리게 된다면 어쩌면 더 큰 것을 잃게 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과 함께, 살로메를 하루빨리 시집보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앞으로 저 얼굴을 보면 계속 세례 요한의 죽음이 생각날 것 아닌가? 그런 건 싫다. 마침 분봉왕 빌립에게 자식이 없으니, 그에게 시집을 보내야겠다. 그와 살로메의 나이 차이는 자신과 헤로디아 이상이니, 이것은 이런 짓을 한 살로메에게 내리는 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세례 요한은 감옥에서 목이 베어졌고, 그 머리는 큰 접시에 담겨 살로메에게 전해졌다. 살로메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이로써 세례 요한은 어떻게 해도 절대 닿을 수 없었던 하나님 나라의 가장 낮은 자리에 첫걸음을 떼게 되었다. 이제 그는 하늘나라의 백성이 되어 예수님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 훤히 알게 될 것이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마케루스를 찾아와 장사를 지냈고, 예수님에게 가서 그의 죽음을 전해주었다. 예수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 헤롯 안티파스의 영토를 떠나 헤롯 빌립의 분봉국에 속한 벳새다 근처 외딴곳으로 물러가셨다. 이 소문이 퍼지자, 많은 무리가 여러 동네에서 몰려와, 걸어서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마태복음 14:7-9, 마가복음 6:22-25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성경 원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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