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라
성경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 중에는 이 구절과 수로보니게(시로페니키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마 15:24, 막 7:27)을 들어 예수님께서 유대인만을 위해 오셨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예수님에 대해서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 어떤 가르침을 강조하려고 일부러 특정한 말씀과 행동을 하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어 다른 날에 치유할 수 있지만 일부러 안식일에 병자를 치유하시거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걸어가라’고 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하시는 것들입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해,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반대되거나 사람들이 싫어할 만한 말씀을 하시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마 15:24, 개역한글)
시로페니키아 여인에게 하신 이 말씀도 그들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이방인이라도 믿기만 하면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해 미리 복선을 깔아두신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님께서 여인의 대답을 들으신 후, 하신 말씀의 의도가 확실히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마 15:28, 개역한글)
오늘 본문에 나온 유대인의 고을에만 가라는 말씀은 더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데, 열두 제자에게 맡겨진 사명이 아직까지는 유대인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이방인의 선교의 문이 열린 것은 사도행전 10장에서 베드로에게 보여주신 환상 이후이고, 사마리아를 위해서는 일곱 집사에 포함되는 빌립을 택하셨고, 이방인을 위해서는 바울을 택하셨으니, 오늘 이 말씀은 결코 유대인들만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2.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비둘기는 양이나 소 대신 제물로 바치는 동물이니 순결하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만, 뱀과 같이 지혜롭고라는 말은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보통 이것을 뱀이 고대사회에서 지혜와 신중함, 상황 판단력의 상징이었기에 예수님이 그렇게 말하신 것으로 설명하지만, 솔직히 저는 이 설명이 그렇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광야에서 불 뱀에게 물린 이후에 구리로 만든 뱀을 보고 살아나는 장면(민 21장) 외에는 성경에서 뱀은 긍정적인 이미지로 나타나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조차 다른 부분(마 7:10, 23:33, 막 16:18, 눅 10:19, 11:11)에서는 뱀을 부정적으로 말씀하시니, 이 부분에서만 특별히 긍정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다고 보기도 어렵지 않을까요? 창세기의 하나님이 만드신 짐승 중에서 가장 간교하다는 표현(창 3:1)에도 부정적인 이미지가 들어있기 때문에, 전도 여행을 떠나려는 제자들에게 하신 이 말씀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때문에 저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이 말씀을 설명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분명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니, 그 의도를 알게 되면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우선 제자들이 떠나가는 환경을 생각해 봅시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권능을 위임받아서 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그들이 가는 곳에는 제자들을 좋게 봐주고, 복음을 받아들일 사람들도 있겠지만,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릴 만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제자들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세상 가치관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가치관을 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창세기에 나온 뱀과 같은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원죄에 관해 설명할 때, 저는 하나님의 기준으로 판단하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게 된 것은 뱀의 기준을 따라 판단하고 행동했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전까지는 하나님 앞에서 숨을 이유가 없었다는 것을 반대로 말하면, 이전에는 죄를 지은 적이 없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아담과 하와에게 뱀은 자신의 가치관을 전했습니다. 사실은 이것이 옳다고 말하면서요. 그 말은 거짓이었지만, 하와는 그 말을 듣고 욕심이 생겨 하나님의 가치관을 버리고, 사탄의 가치관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이런 행동이 바로 오늘 말씀하신 슬기로운, 지혜로운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때 뱀이 쓴 전략을 이번엔 제자들이 사용하여, 세상의 가치관에 물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기준을 알려주면서 ‘이것이 옳다’고 말하라는 것이죠. 그렇게 말을 하면 누군가는 ‘하나님의 기준과 가치관이 옳은 건가?’ 하고 생각하고, 회개를 비롯한 하나님의 가치관대로 행동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상황은 완전히 반대이지만, 제자들이 처한 상황이 창세기와 상황과 거의 비슷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생각한다면, 뱀 같이 지혜로우란 말이 별 무리 없이 이해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해석이 무조건 옳지는 않겠지만, 어려워서 이해하기를 포기할 바엔 이런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