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라.”
외치면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아 물러가라.”
말하면 귀신 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이 쫓겨난다. 또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주면 병이 낫는다. 그들이 고마워하는 얼굴을 볼 때마다 새삼 느껴지는 사실은 드디어 자신이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었구나 하는 것이다. 예전에 가버나움에서 일할 때에는 모두가 자신을 적대하고,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비난을 듣는 것은 흔한 일상이었고, 가끔은 열심당 같은 사람들에게 생명의 위협을 당하기도 했으니, 하루하루의 삶이 고단했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의 직업이 세리라는 것 때문이었다. 물론 사람들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온갖 명목하에 많은 세금을 거둬들였는데, 그걸 수행하는 세리들이 헤롯왕, 나아가 로마의 앞잡이로 느껴져 얼마나 싫었겠는가?
하지만 자신에게도 억울한 점이 있었다. 다른 세리들은 스스로를 위해 사람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뜯어내기도 했지만, 자신은 그저 세관에 앉아서 통관세를 받는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 누구에게 더 많은 돈을 받거나 한 적 없이, 딱 정해진 금액만 받았다. 자신이 레위라는 이름을 가진 이상, 레위 지파처럼 하나님의 일에 연합하여 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세상의 악한 일과 연합하여 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못된 세리들과 싸잡혀서 욕을 먹으니, 어찌 기분이 좋을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사람들의 비난을 참고, 인내하면서 계속 그 일을 하는 것뿐이었다.물론 그 모든 문제는 세리를 그만두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이기도 했다. 그러나 직업을 바꾼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갈릴리가 아무리 살기 좋은 땅이라지만, 어떤 일도 쉬운 일은 없었다. 농부는 농작물을 잘 키우기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땀을 흘려야 하고, 어부도 물고기를 잡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상인들도 가버나움이나 고라신에서 생산된 올리브유나 곡물을 유다와 사마리아, 외국의 여러 도시로 실어 나른다. 그런 일도 나쁜 건 아니지만, 자신 같이 책상에 앉아 글 쓰는 것이 체질인 사람에겐 세리라는 직업이 적성에 딱 맞는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 같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야, 그만큼 사람들이 덜 피해를 입지 않겠는가?
정부를 위해 일하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면, 외국에서 총리로 일했던 요셉이나 다니엘, 또 페르시아에서 술 맡은 관원이었던 느헤미야 같은 사람들도 나쁜 것인가? 지금의 유대인들 입장이라면 그들 또한 나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하신 일들을 생각해 보아라. 요셉을 통해서는 이스라엘이 하나의 민족으로 성장할 발판이 닦였고, 다니엘은 선지자로서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의 섭리를 예언했다. 또 느헤미야는 포로 귀환과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이끌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을 통해서 큰일을 하셨으니, 그들이 옳았다. 그러니 비슷하게 나랏일을 하는 세리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 역시 옳지 않은 것이라고 그 당시엔 생각했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때의 생각들은 그저 혼란한 세상에서 새로운 일을 찾고, 그곳에서 적응하기 두려워했던 자신의 핑계였을 뿐이었다. 자신은 잘못 살고 있으면서도, 현실을 회피하며 잘 산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자신은 지금도 그때와 똑같이 살고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에 분을 내면서도 어찌할 수 없어 버티고 버티던 그 삶을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르심이 자신을 새사람으로 바꾸어 주었다.
자신이 세관에 앉아 있을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나를 따르라.”
한창 이름을 떨치고 있는 유명한 분이 자신을 불러주시니, 그것이 너무 감사해서 집으로 모시고 와 큰 잔치를 벌였는데, 자신과 친분이 있는 다른 세리들과 그분을 따라온 여러 사람도 함께 한자리에서 먹고 마셨다. 그런 자신들을 보며 오지랖 넓은 바리새인들이 또다시 빈정거렸는데,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것이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는 그 말씀으로 인해 자신이 그동안 죄인으로 살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고, 예수님은 바리새인이나 다른 유대인들처럼 죄인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 아닌, 그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되니, 자신의 안에 있던 어떤 부분이 갑자기 변했고, 자신은 세리라는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게 되었다.
그날로부터 지금까지 날마다 새로운 경험뿐이었다. 그분의 가르침의 깊이는 탁월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했고, 귀신을 내쫓고, 사람들의 병을 고치시는 모습을 보면, 예수님은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보내주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명절에 예루살렘에서는 어떠했는가?
예수님은 예루살렘 양의 문 근처에 있는 베데스다 연못에서 서른여덟 해 된 병자 한 사람을 고쳐주셨는데,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분노한 일이 있었다. 그 일로 예수님은 박해를 받았는데, 예수님은 잘못했다는 말 대신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하셔서 그들의 분노에 불을 지피셨다. 그것만으로도 통쾌했는데, 예수님은 더한 말씀까지 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 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였느니라. 그러나 나는 사람에게서 증거를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로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 너희가 잠시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거하셨느니라. 너희는 아무 때에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였고 그 모습을 보지 못하였으며, 그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의 보내신 자를 믿지 아니함이니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으매 너희가 영접지 아니하나, 만일 다른 사람이 자기 이름으로 오면 영접하리라.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겠느냐?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할까 생각지 말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의 바라는 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셨던 예수님. 바리새인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기절초풍할 내용들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바리새인들뿐 아니라 제자들 대부분도 이 말씀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찌 되었든 남들을 비난하기 바쁜 바리새인들에게 한 방 먹이신 사건이라,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이후로도 예수님은 여러 도시와 마을을 두루 돌아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고, 온갖 질병과 아픔을 고쳐주셨다. 그러나 목자 없는 양 같이 고생하고, 지쳐서 기운이 빠진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자신과 다른 열한 명의 제자를 둘씩 짝지어 여러 마을로 파송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와 회개를 전하라 하셨는데, 보내주시기 전에 악한 귀신을 억누르는 권능과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고, 지금은 그 능력을 힘입어 수많은 사람을 고치고, 복음을 전하는 중이다. 그렇게 지금 자신은 다른 제자 한 명과 여행을 하고 있다.
예수님은 자신들을 보내신 후, 열둘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제자들을 데리고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고 계신다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총 일곱 군데에서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선포와 치유 사역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제자들을 통한 여섯 곳과 예수님께서 직접 움직이고 계신 일곱 번째 장소.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 자신들에게는 이방인의 도시와 사마리아에는 가지 말고 오직 유대인 고을에만 가라고 하셨는데, 예수님도 그곳들에 가지 않으실까?
자신들을 보내기 전에 예수님은 열두 명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병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가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 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아지고, 종이 그 상전 같아지면 족하도다. 그들이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불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에게랴?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밝은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귀에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들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세리로 일하면서 많은 외국인을 접한 자신은 그들 중에는 유대인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의 도시와 사마리아에는 가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아무 이유 없이 그런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자신을 포함한 열두 제자들에게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라는 의미이고, 이방인이나 사마리아를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를 보내시겠다는 의미일 것으로 생각된다. 예수님께 제자들이 한두 명 있는 것도 아니고, 사마리아 같은 곳은 예전부터 종종 다니셨으니 말이다.
그다음의 말씀들은 솔직히 아직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제자들이 예수님으로 인해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고, 사람들에게 핍박당한다니. 또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가 된다니, 이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가? 하지만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그 말씀을 믿고 지금은 두려움을 떨쳐버려야겠다. 자신은 하나님께서 머리털까지 세어 놓으실 정도로 귀한 존재이니 말이다. 아무튼 이제 곧 있으면 다음 도시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곳에선 또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제는 하나님의 은사라는 뜻의 마태라 불리는 레위는 다음 도시에 가면,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을지 궁금해졌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복음을 전하다가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최소한 예전처럼 모두에게 비난받던 현실보단 훨씬 나았다. 예수님께서 견디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으니, 마태는 이제 더 이상 복음을 전하는 일이 두렵지 않았다. 사람들의 미움을 견디는 것. 그건 세리로 일하며 그동안 수없이 해온 일이니 말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새롭게 복음을 받아들일 사람들에 대한 기대와 흥분이 생겼다. 이전에는 상상조차 못 하던 기쁨을, 예수님을 따르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기쁨 말이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마태복음 9:12-13, 10:5-42, 요한복음 5:17-47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성경 원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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