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밝아온 예루살렘에서 가장 어둡고 더러운 골목길. 그곳에 몸을 숨긴 가룟 유다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갑자기 엄습한 죄책감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그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정당화 해보았지만, 그 어떤 생각도 밀려오는 고통을 막을 순 없었다.
일이 왜 이렇게 꼬여버렸을까…. 자신은 정말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동한 것뿐이었다. 대제사장에게 받은 돈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었고, 실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장 먼저 지켜서,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정말 그래서 그랬다. 만약 자신이 예수님을 진짜 팔아서 죽게 만들고 싶었다면, 뭐 한다고 오늘 새벽에 팔았겠는가? 이것도 다 계획의 일부였던 것이다. 예수님이 죽지 않으면서도, 그 말씀이 이뤄지게 하는 완벽한 계획. 그것을 위해 일부러 오늘 새벽에 움직인 것이었다. 그런데 대제사장 녀석들의 비열한 술수가 모든 계획을 어그러뜨렸다.
원래 자신의 계획은 이랬다. 산헤드린 공의회는 보통 낮에 열리고, 그 판결은 하루 지난 다음 날에 검토된 이후에야 집행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오늘 재판한다고 할지라도, 그 집행은 유월절이 지난 다음에야 가능한 것이었다. 예수님을 잡은 오늘이 유월절과 안식일의 준비일이니, 만약 오늘 재판을 하고, 안식일이 지난 다음 날에 그 판결이 확정되면, 그날이 딱 사흘째가 된다. 백성들을 두려워하는 대제사장들이니, 이 소식이 전해지면 예수님을 풀어주지 않곤 못 배겼을 것이기에, 이대로만 된다면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리란 그 말씀이 현실이 되는 것이다. 물고기 배 속 같은 성전 권력에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 이 얼마나 완벽한 계획인가?
그런데 대제사장과 그 일당들은 예수님을 잡아간 새벽에 모든 판결을 다 해치워 버리고, 닭이 울자마자 공회를 소집해 그 판결을 확정해 버렸다. 밤에 재판하는 것도 불법인데, 검토 과정까지 생략해 버린 그들. 그들은 백성들이 알게 될까 두려워서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겨버리기까지 했다. 이 나쁜 놈들이 예수님을 진짜 죽이려 작정한 것이다.
새벽에 예수님을 모욕하고, 때리고, 침까지 뱉는 걸 보면서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나섰어야 했다. 예수님이 잘못하신 것이 무엇인가? 그분은 지금까지 항상 남들을 돕기만 했지, 그들에게 무언가 대단한 것을 받은 적은 없으시다. 기껏해야 식사 정도가 전부인 것이다. 비싼 것이 있다면 여인들이 뿌린 향유 정도인데, 그건 예수님께서 먼저 달라고 한 것이 아니니, 논외로 쳐야 할 것이다. 자기들이 주고 싶은 것을 준 게 뭐가 잘못인가? 아무튼 예수님은 그 정도로 선하고, 깨끗하신 분이시다. 사람을 살리고 돈을 요구한 적도 없고, 수천 명을 먹이셔도 그들에게 대가를 바라지 않으셨다. 오히려 왕으로 삼으려는 그들에게서 도망치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그런데 저들은 왜 저렇게까지 예수님을 죽이려 하는가? 예수님은 정말 아무런 죄가 없으신 분이란 말이다!
가룟 유다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이 한 행동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였기에 이런 상황이 죽을 만큼 힘들게 느껴졌다.
자신은 정말로 예수님을 죽이라고 내어 준 것이 아니다. 이러려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것이 아니란 말이다. 왜…, 왜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것인가? 예수님은 곧 십자가에 달리실 것이다. 빌라도가 그렇게 하라고 병사들에게 넘겨줘 채찍질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 모습을…, 십자가에 달리신 그 모습을 도대체 어떻게 볼 수 있겠는가? 도저히 자신이 없다. 예수님은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셨지만, 그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다시 살아나실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예수님조차 돌아가신 마당에 누가 그분을 살려준단 말인가? 다른 선지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는가?
가룟 유다의 죄책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몇 번이나 강조해서 말씀하신 것조차 믿지 못하는 그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나려 했다. 그러나 그는 억지로 눈물을 참았다.
아니다. 이래선 안 된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법정에 계신 동안 어떻게든 이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분을 고발한 대제사장이 고발을 철회한다면 모든 일이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예수님은 유죄 판결을 받고, 채찍질을 당하고 계시니 지금이 마지막 기회이다. 받았던 돈을 다시 돌려주고, 예수님을 풀어달라고 이야기해야 한다.
가룟 유다는 급하게 성전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예수님이 채찍질을 당하는 동안 성전에 와 있던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있었다. 가룟 유다는 그들에게 은 서른 닢을 돌려주며 말했다.
“내가 죄 없는 사람의 피를 넘겨주어 죄를 지었소.”
그리고 예수님을 풀어 달라는 말을 하려는 찰나, 비웃음 소리가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알아서 해라.”
가룟 유다는 고개를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예수가 죄가 없다는 걸 누가 모르느냐는 눈빛이 가득했다. 아무도 가룟 유다를 비난하지 않았지만, 그들에게서 이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멍청한 놈아. 그러게, 왜 속아 넘어가냐? 우리가 예수가 죄가 있어서 죽인 줄 아느냐? 그가 우리를 공격하고 방해하니, 죽여 버린 것이다.’
그들의 눈빛, 움직임, 숨소리 하나까지도 모두 다 자신을 비난하는 것처럼 느껴지자, 가룟 유다의 가슴은 터질 듯 아파졌다. 그는 그 자리에 돈주머니를 내던지고, 도망치듯 사라졌다. 바닥에 떨어진 돈주머니에서 성전에서 사용하는 세겔이 굴러 나왔다. 두로의 신인 멜카르트와 독수리상이 한 면씩 그려진 두로의 세겔. 그렇다. 이들은 어떠한 형상도 새기지 말라는 십계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순수한 은으로 만든 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두로의 세겔을 성전세로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위한다는 그 어떤 말도 다 핑계일 뿐이었다. 그들의 안에는 썩어 없어질 세상 욕심만이 가득했다. 어차피 영혼도 없고, 부활도 없는데, 이 세상을 힘들게 살아서 뭐 하냐는 사두개인들. 그들의 악이 온 성전을 덮고 있었다.
한 사람이 가룟 유다가 던지고 간, 돈주머니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이것은 피 값이니, 성전 금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소.”
그들은 의논한 끝에,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들의 묘지로 사용하기로 했다. 이렇게 예언자 스가랴와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내가 이 잡혀 죽을 양 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들이라. 내가 이에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고, 하나는 ‘연합’이라 하여, 양 떼를 먹였노라. 한 달 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제거했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니라. 내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리라. 죽는 자는 죽고, 망할 자는 망하고, 그 나머지는 서로의 살을 먹어라.’ 하고, 그런 다음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가져다 꺾었으니, 이는 모든 민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그날에 그 언약이 폐하니, 나를 지켜보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을 알았노라.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어라.’ 그러자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품삯으로 주었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내 값을 매긴,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져 주어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 있는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내가 또 ‘연합’이라 하는 두 번째 막대기를 꺾었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사이에 형제의 의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토기장이의 질그릇 병 하나를 사고, 백성의 장로들과 제사장의 원로 몇 사람을 데리고, 하시드문 어귀 곁에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로 가라. 거기서 내가 네게 일러준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너희 유다 왕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니, 무릇 그 소식을 듣는 자마다 귀가 울릴 것이라.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이곳을 더럽히며, 이곳에서 자기와 자기 조상들과 유다 왕들도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고, 무죄한 자의 피로 이곳을 가득 채웠음이니라. 또 그들이 바알을 위하여 산당을 건축하고, 자기 아들들을 바알에게 번제로 불살라 드렸나니, 이는 내가 명령한 적도 없고, 말한 적도 없으며, 내 마음에 생각한 적도 없는 일이니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다시는 이곳을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부르지 아니하고, 살육의 골짜기라 부르는 날이 이를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계획을 좌절시켜, 그들을 그 대적 앞과 그들의 생명을 노리는 자들의 손에 칼로 엎드러지게 하고, 그 시체를 공중의 새들과 땅의 짐승들의 밥이 되게 하리라. 이 성읍을 폐허로 만들어, 조롱거리가 되게 하리니, 그 모든 재앙을 인하여, 곁을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조롱할 것이다. 그들이 그 대적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에게 둘러싸여 곤경에 처할 때, 내가 그들로 하여금 그 아들들의 살과 딸들의 살을 먹게 하고, 또 각기 친구의 살을 먹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너는 함께 가는 자들이 보는 앞에서 그 옹기를 깨뜨리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사람이 토기장이의 그릇을 한번 깨뜨리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 없노라. 이와 같이 내가 이 백성과 이 성을 부수리니, 그들이 무덤을 만들 곳이 없어, 도벳에 매장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곳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같이 행하여, 이 성이 도벳과 같게 할 것이라. 예루살렘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 곧 그 집들의 지붕에서 하늘의 천체에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어 바쳐 더러워졌은즉, 이곳 도벳의 터처럼 되리라.’ 하셨다 하라.”
* * *
차라리 죽어버리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리게 한 자신이 살아서 뭐 하겠는가? 예수님도 인자를 넘겨주는 사람에게 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거라고 하셨으니, 자신 같은 놈은 죽어야 한다.
사탄이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죽음이라는 단어를 불어넣고 있었다. 이제 예수님에 대한 예언이 거의 다 이루어졌으니, 멸망의 자식인 가룟 유다를 죽여서, 자신에게 이딴 역할을 맡긴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사탄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지옥으로 가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치졸한 복수. 사탄은 그의 마음에 슬픔과 절망, 죄책감을 계속 불어넣었다. 그는 이 말들이 자신의 마음속에서 나온 생각으로 여기겠지만, 사실 이것은 사탄이 준 악한 마음이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는 슬픔들. 이런 그에게 필요한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에 매몰되어,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아무 표적도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된 것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니,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그들을 정죄하리라.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끝에서 왔기 때문이다. 보라, 솔로몬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노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다. 보라, 요나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느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요나의 표적은 단순히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백성을 괴롭히고, 죽였던 아시리아와 같은 악한 사람들조차 뉘우치면 구원해 주신다는 의미 역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키우지도 아니하였고, 하룻밤 사이에 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없어진 이 박 넝쿨을 네가 아꼈거늘,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 여명이요, 또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요나 선지자에게 하신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자기가 가던 나쁜 길에서 뉘우쳐 돌이키는 사람에게, 내리시기로 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실 수 있는 분이셨다.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내가 내 친구인 너희에게 말하노니, 육신은 죽여도 그 후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누구를 두려워할지를 보여 주리니, 곧 죽인 후에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를 가진 분을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분을 두려워하라. 참새 다섯이 두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그중 하나라도 잊혀지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가룟 유다는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팔려 할 때 예수님께서 하셨던 ‘친구여’라는 단어 속에서, 이 말씀을 기억해야 했다. 예수님은 자신을 파는 가룟 유다에게조차 친구라 말씀하시며, 그 또한 귀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길 원하셨던 것이다.
물론 가룟 유다는 악마에게 이용당한 멸망의 자식이었다. 그리고 그를 잃은 것은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었다.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호하고 지켰나이다. 그중에 아무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이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나이다.”
그러나 이 또한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예수님이 하셨던 말씀 속에 생명의 길이 있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을 때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또 그것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친구와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기뻐하자. 내가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을 때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또 찾아내면, 친구와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기뻐하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기쁨이 되느니라.”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그 작은아들이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제게 돌아올 몫을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재산을 두 아들에게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작은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먼 나라로 떠났더라. 거기에서 방탕하게 살며 그 재산을 허비하였더니, 다 써버린 후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하여진지라. 그가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어 사니, 그 사람이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그가 아직도 먼 거리에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찾았노라.’ 하니, 저희가 잔치를 벌였더라.
그런데 맏아들이 밭에 있다가 돌아와 집에 가까왔을 때에 음악과 춤추는 소리를 들었노라. 그가 종 하나를 불러 이 일이 무슨 일인가 물은즉 대답하되,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고, 당신의 아버지께서 그를 건강한 몸으로 다시 맞아들이게 됨을 인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았나이다.’ 하니, 그가 화를 내며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아니하였노라. 아비가 나와서 권하니, 그가 아버지께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기며, 명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친구들을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재산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그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아비가 이르되, ‘얘야, 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으니, 내 것이 다 네 것이로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찾았으니,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이와 같이 잃은 것은 끝이 아니었다. 잃은 것은 되찾으면 되는 문제이지, 삶을 포기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을 의인 아흔아홉보다 더 기뻐한다고 하셨으니, 죽음 말고도 그에게 길은 있었다. 가룟 유다가 회개하고 죽지 않는다고 해서, 그를 두고 예언된 말씀들이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그들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그들의 장막에 거하는 자가 아무도 없게 하소서.”
“그의 날들을 짧게 하시고, 그 직분을 다른 사람이 취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파는 자에 대한 이 예언들은 그가 자살하지 않고 살아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고, 그다음에 죗값을 치르기로 작정하면 되는 것들이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하고 생각할 정도로 큰 화를 당해 피투성이가 되어도, 살아있기만 하면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예레미야 선지자 또한 한때 ‘저주를 받을지어다, 내가 태어난 날이여. 내 어머니가 나를 낳은 그날이 복이 없을지어다.’하고 생각했었다. 또한 사울의 공격으로 거처가 폐허가 되고, 장막에서조차 살지 못해 동굴을 전전하고, 적국인 블레셋으로까지 피했던 다윗의 삶을 왜 기억하지 못하는가? 아벨과 요나단이 이른 나이에 죽었다고 한들, 그들이 의미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들은 살아간 날이 짧았을지언정,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이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버둥거리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라.’ 하였다.”
그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피투성이라도 제발 살기만 한다면, 하나님께서 용서해 주실 수 있는 것을 왜 모르는가?
목이 곧아 반역하고, 모든 죄악이 가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데리고 온 이방 민족이 있었다. 그들이 맡은 것도 가룟 유다처럼 악한 역할이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보라. 내가 한 나라를 먼 곳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곧 강하고 오래전부터 있는 나라이다. 그 언어를 네가 알지 못하며, 그 말을 네가 깨닫지 못하리라. 그들의 화살통은 열린 무덤과 같고, 그들은 다 용사라. 그들이 네가 수확한 것과 양식을 먹으며, 네 아들들과 딸들을 먹으며, 네 양 떼와 소 떼를 먹으며,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며, 네가 의지하는 견고한 성들을 칼로 무너뜨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때에도 내가 너희를 완전히 멸망시키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너희 땅에서 이방 신들을 섬겼은즉, 이와 같이 너희 것이 아닌 땅에서, 이방인들을 섬기리라.' 하여라.’”
하나님은 이런 그들에게 심판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말씀에는 심판뿐 아니라 구원의 길도 함께 있었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유업으로 준 그 땅을 침범하는 내 모든 악한 이웃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을 그 땅에서 뽑아버리겠고, 유다 집도 그들 가운데에서 뽑아내리라. 내가 그들을 뽑아낸 후에, 내가 돌이켜 그들을 불쌍히 여겨서, 각 사람을 그 기업으로, 각 사람을 자기 땅으로 다시 인도하리라. 그들이 만약 내 백성의 도를 부지런히 배우고, 내 이름으로 '여호와께서 살아계시다.'라고 맹세하는 것을, 그들이 내 백성을 가르쳐 바알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한 것 같이 하면, 그들이 내 백성 가운데에서 세움을 받게 될 것이라. 그러나 그들이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반드시 그 나라를 뽑으리라. 뽑아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아무리 큰 악한 역할을 맡았을지라도, 그들이 완전히 돌이켜 회개하기만 하면 되었다. 죽음은 결코 답이 아니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하리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하면 죄악이 너희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이 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죽는 자가 죽는 것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주신 이 말씀에 하나님의 진심이 담겨있는데, 왜 그걸 알지 못하는가?
가룟 유다는 이 모든 말씀을 기억하고, 자신의 안에서 속삭이는 사탄의 시험을 이겨내야 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고, 그는 결국 나무에 목을 매달아 죽어버렸다. 이렇게 사탄의 악한 계획이 또 하나 이루어졌다. 가룟 유다의 시체는 거꾸러져서, 배가 터지고, 창자가 쏟아졌다. 그가 떨어진 그 땅은 이후로 ‘아겔다마’, 즉, 피의 땅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시 69:25, 시 109:8, 렘 5:15-19, 12:14-17, 19:1-13, 20:14, 겔 16:6, 18:30-32, 욘 4:10-11, 슥 11:7-14, 마 26:24, 27:4-6, 막 14:21, 눅 11:29-32, 12:4-7, 15:4-32, 요 6:70, 17:12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성경 원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평행 구절의 경우, 모든 내용이 다 포함되도록 하나로 합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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