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내가 눈이 멀었다가, 지금은 보게 되었다 (1)

예수님이 땅에 무언가를 쓰고 있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채 몇 년이 되지 않는다. 그는 서른쯤을 전후하여 세상에 나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성전에서 돈을 바꾸어주는 사람과 제물에 쓰일 동물들을 파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때 그가 한 말이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다하는 사람의 행동처럼 보였고, 성전 권력을 장악한 제사장들에 대한 도전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자신의 친구이자, 같은 공회원인 니고데모가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여러 가지 가르침과 표징을 보이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명절이 끝나자, 그는 제자들을 데리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주었는데, 세례 요한보다 더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고, 세례를 준다는 소문까지 들릴 정도였다. 세례 요한이 잡힌 이후에는 이런 소문은 사라졌고, 대신 갈릴리에서 여러 가지 가르침을 주고 병자들을 치유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가 세례 요한처럼 잡힐 것을 두려워해서 갈릴리로 도망친 것이라고 비꼬았지만, 그가 머물던 가버나움은 갈릴리의 수도 티베리아스와 지척인 도시이니 오히려 적의 심장으로 간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바리새인들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이것은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났는데, 그가 우리 바리새인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가 우리에게 실제로 공격적인 행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중요시하는 문제들을 자꾸 걸고넘어지는 한 적대적이라는 말 외에는 적당한 다른 표현이 없다.

 특히 그는 안식일 문제와 각종 정결례에 대한 문제로 우리와 많이 다투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도저히 합의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안식일이라도 사람을 구하는 것이 옳다는 쪽이었고, 우리는 다른 날에 해도 될 일을 왜 굳이 안식일에 해서 안식일을 어기느냐는 쪽이었으니, 둘이 하나가 될 방법은 전혀 없었다. 그 이후에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자, 바리새파 안에는 그를 죽이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고야 말았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사두개인들은 우리처럼 그를 증오하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었다. 워낙 소문이 무성하니 그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우리와 함께 사람을 보내어 하늘로부터 내리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한 적은 있지만, 그때 그는 요나의 표적 밖에 아무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 말하고는 그냥 떠나가 버렸다. 그 사건 이후에 사두개인들은 그를 말만 무성한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관심을 꺼버렸었다.

 그의 가르침과 사두개인의 가르침은 교리적인 부분에서 많은 차이가 나지만, 사두개인은 우리 바리새인과 백년 넘게 교리 문제로 다퉈왔기 때문에 교리가 다르다고 한들 그렇게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그들은 부활이나 천사가 없다고 말하고, 하나님의 예정 또한 믿지 않아 사람의 선택과 행동을 굉장히 중요시 하는데, 하나님이 하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사안들도 인간적인 생각으로 판단해 버리기 때문에 그냥 우연의 일치, 혹은 인과관계로 설명하곤 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교리를 흔들 중대한 증거가 실존하지 않는 한, 적어도 교리 문제에서는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넘어가려 할 것이다. 이미 권력이 있는데, 뭐 하러 긁어 부스럼을 만들겠는가? 대신 사두개인들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성전과 정치에 관한 내용들이다. 누군가가 성전의 신성함을 위협하거나, 명절 같은 때에 백성들을 소요시켜 로마를 자극할 수 있는 행동을 하게 된다면 그들은 반드시 그 사람을 응징하려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을 그대로 두면 그들이 가진 권력이 위태로워지니 말이다. 

 이런 이유가 복잡하게 엮여서, 이번 초막절 기간에 레위 지파에 속한 성전 경비병들이 그를 잡으러 갔었다. 그 사람이 말하는 내용에 놀라 경비병들이 그냥 돌아오면서 이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지만, 이 일을 계기로 사두개인들이 그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가질 것이 분명했다. 아직 그 수위는 바리새인처럼 높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 사건을 주도했던 몇몇 바리새인이 성전 경비병들에게 너희도 미혹된 것이냐며 몰아붙였는데, 그때 자신의 친구 니고데모가 그의 편을 들어주려 했었다. ‘우리의 율법으로는, 먼저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거나, 또 그가 하는 일을 알아보거나, 하지 않고서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 것이 아니오?’ 하면서 말이다. 자신은 그와 니고데모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그를 증오하는 사람들은 기분이 상했는지 이렇게 대답했다.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 성경을 조사해 보아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그 사람 편을 들어주려다, 졸지에 험한 소리를 들은 니고데모였다.


*  *  *


 “이보게, 요셉, 요셉!”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리마대 요셉은 아침 식사를 하다 말고 밖으로 나갔다. 거기에는 사색이 된 얼굴을 하고 서 있는 니고데모가 있었다. 

 “큰일났네. 몇몇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데리고 성전으로 갔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금 그분이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신 데, 그 여자를 빌미 삼아 그분을 고발할 구실을 만들려고 한단 말일세.”

 니고데모는 예전에 그 사람을 만난 이후로 그의 사상과 가르침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다. 공회에서 대놓고 표현하면 지난번과같이 비난을 면치 못하기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지만, 그가 예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예수를 고발할 구실을 만들려는 것에 대해 그가 이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친구는 왜 이 정도로까지 집착하는 것일까?

 “빨리 가세나. 한시가 급하네.”

 “알겠네.”

 지금 니고데모를 설득하려 해 봤자, 의미 없다는 것을 아는 아리마대 요셉은 겉옷을 챙겨 입고 그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가 이렇게까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친구를 위해 그를 구해낼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율법에는 간음을 한 남녀는 반드시 사형시키라고 되어 있는데, 요즘은 이혼 서약서를 써주고 이혼하는 방법이 종종 사용되고 있다. 물론 여전히 그 율법을 있는 그대로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지방에 따라 실제로 돌로 치는 경우도 있지만, 문제는 유대인들에게 공적으로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할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로마의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야 가담한 사람들이 모르쇠로 일관하면 증명할 방법이 없지만, 이곳은 로마의 부대가 항시 주둔 중인 예루살렘이요, 모두의 시선이 주목된 성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아무도 모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그녀를 죽이라 할 수 있을까?

 또한 그가 늘 용서를 가르친다고 하는데, 율법대로 간음한 여인을 죽이라 하면 자신의 가르침을 자신이 반박하는 꼴이 되고, 용서하고 죽이지 말라 하면 율법을 어기는 것이니 그를 고발할 명분이 생기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도대체 무슨 대답을 할 수 있겠는가?

 아리마대 요셉은 만약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했다면,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었으리라 생각하며 성전에 들어갔다. 저 멀리 헌금 궤가 있는 근처에 시끌벅적한 무리가 보였는데, 좀 더 가까이 다가가자, 그와 한 여인 그리고 이들을 중심으로 둘러선 사람들이 보였다. 우려대로 분위기는 상당히 과열되어 있었다. 간음한 여인을 잡아 온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그 주위를 둘러싸고 계속 어떻게 하겠냐고 다그치고 있었고, 가운데에 있는 여인은 간음하던 현장에서 그대로 잡혀 왔다는 말처럼 겉옷만 겨우 걸친 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그 곁에서 여인을 지키듯 서 있던 그는 갑자기 몸을 구부려 땅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그 내용이 궁금해 고개를 이리저리 옮겨 보았지만, 사람들에 가려서 잘 보이지는 않았다. 잠시 후 몸을 일으킨 그는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외쳤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러고는 다시 몸을 굽혀 땅에 무언가를 계속 썼는데, 고발하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으로 보아, 그들의 양심을 찔리게 하는 내용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가 쓰는 글이 길어질수록 고개를 숙이고 떠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자리를 떠나, 어느새 여인을 고발하기 위해 왔던 사람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남은 것은 주변에서 그 일이 어떻게 될지 지켜보던 구경꾼들뿐. 그는 몸을 일으켜 두려움에 떨던 여인에게 말했다. 

 “여자여, 그들이 어디에 있느냐? 너를 정죄하던 자가 아무도 없느냐?”

 “주여, 아무도 없나이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라. 가라,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다시 죄를 짓지 말라는 그의 말에 아리마대 요셉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이 난관을 극복할 방법과 그가 어떻게 할지에 대한 궁금증이 머리를 가득 채우는 동안, 자신은 단 한 번도 여인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지금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울지와 같은 그녀의 감정은 물론이거니와 그녀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당연히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생각했고, 또 그녀의 이후까지 생각했다. 

 그는 사형에 처할 죄를 지었다고 그녀를 그대로 죽게 놔두지 않았고, 또 그런 죄를 계속 지어도 된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그는 오늘 한 생명을 살렸고, 그 미래까지 변화시켰다. 우리 바리새인들은 기껏해야 ‘죄를 지은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하지만, 로마의 시선이 두려워 죽일 수 없으니, 이 기회에 예수라는 사람을 시험이나 하자’ 이런 생각밖에 못 했는데, 그가 보는 세상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바리새인이 뭐고, 서기관들이 뭔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서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사람들을 바른길로 이끌기 위해 존재하는 선생들이 아닌가? 그런데 바른길은커녕 죽음의 길로 인도하려 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이 진심으로 간음을 심판하고 싶었다면, 저 여인이 간음하는 현장에서 잡혔을 때, 여인과 함께 간음을 저지른 남자도 데리고 와 똑같이 저 자리에 세우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여인만 데리고 왔다. 그러니 처음부터 그들은 간음에 대한 심판은 할 생각조차 없었던 것이다. 오직 저분을 시험하기 위한 용도로만 사용하고 이용하려 했던 가여운 여인과 하나님의 율법. 선을 가르친다고 하는 그들의 마음속에 오히려 악만 가득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은 어떠한가? 자신은 정말로 사람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는 것일까?

 “남을 미워하는 자는 입술로는 꾸미고 마음에는 속임이 있나니, 그가 친절한 말을 할지라도 믿지 말 것은, 그 마음에 일곱 가지 가증한 것이 있음이라. 그의 미움이 속임으로 가려질지라도, 그 악이 회중 앞에 드러나리라. 함정을 파는 자는 그것에 빠질 것이요, 돌을 굴리는 자는 도리어 그것에 치이리라. 거짓 혀는 자기가 해한 자를 미워하고, 아첨하는 입은 멸망을 일으키느니라.”

 아리마대 요셉은 솔로몬의 잠언에 나오는 이 말씀이 여인을 고발하기 위해 온 바리새인과 서기관, 그리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이야기임을 뼈저리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다시 그분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결코 어둠 속을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어두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 시대의 악한 사람들을 밝히 비추는 빛. 그분은 스스로를 세상의 빛이라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허한 외침.

 “네가 네 자신에 대해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다.”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너희는 육신을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치 아니하노라.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하였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 도다. 만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잠시 사람들을 둘러보던 그분이 다시 입을 열어 말씀하셨다.

 “내가 떠나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그가 스스로 죽겠다는 것인가?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말이다.” 이제는 비웃기까지 하는 사람들. 아리마대 요셉 역시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하나의 말씀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기울이는 모습만큼은 완전히 달랐다.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임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순간 아리마대 요셉의 귀에 들려온 단어. ‘내가’.

 이것은 누구나 항상 사용하는 아주 평범한 단어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분이 그 단어를 말했을 때, 요셉의 머리에 떠오른 것은 출애굽기의 한 장면이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모세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갔을 때, 그들이 그 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해 주라고 하셨던 바로 그 말씀.

 하필이면 왜 그 말씀이 떠올랐을까? 이러한 생각은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있던, 아리마대 요셉을 다시 혼란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 혼자만의 생각이었을까? 그와 같이 성경 지식이 풍부한 몇몇 사람이 진지하게 되물었다.

 “너는 누구냐?”

 “처음부터 내가 말한 것이 그것이니라. 내가 너희에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니, 내가 그에게 들은 것을 세상에서 말하노라.”

 웅성거림이 점점 더 커졌다.

 “너희는 인자가 들려 올려질 때에, 내가 그라는 것을 알고, 또 내가 내 마음대로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오직 아버지께서 가르치신 대로 이 일들을 말하는 줄을 알리라.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는 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더욱더 혼란에 빠진 사람들도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선 믿음을 가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당신을 믿겠나이다.”

 그들을 보며 예수님이 말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진리를 깨닫기 위해 첫걸음을 뗀 사람들은 이 말씀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혼란에 빠진 반대편 사람들은 점점 분노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결코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너는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짓는 자는 모두 죄의 종이니라. 종은 영원히 집에 머물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 도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화가 난 듯, 큰 소리로 외치는 자들.

 “우리 아버지는 아브라함이다!”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면, 아브라함이 행한 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는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 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너희는 너희 아비가 한 일을 하고 있느니라.”

 분노의 외침이 더욱더 크게 번졌다.

 “우리는 간음으로 태어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오직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도다.”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에게서 나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너희가 내 말을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망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자기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그러나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 도다.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죄로 책잡겠느냐? 내가 진리를 말하는데, 어찌하여 나를 믿지 아니하느냐?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너희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하고, 귀신이 들렸다고 하는데, 그 말이 옳지 아니하냐?”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를 공경함이거늘, 너희가 나를 모욕하는 도다.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니,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이제야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알겠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고 하느냐? 네가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더 큰 자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스스로를 누구라 여기느냐?”

 “내가 만일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것도 아니니라.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분이시라.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그분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 나도 너희와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느니라. 그러나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내 날을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서 기뻐하였느니라.”

 “네가 아직 오십 살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단 말이냐?”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기다렸다는 듯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오는 질문들에 예수님은 더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 세상의 분노 속에 당당하게 선 그의 모습을 보며, 아리마대 요셉은 그가 말하는 빛의 길이 옳은 길인지, 아니면 잘못된 길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옆에 서 있는 니고데모 역시 혼란스러워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으니, 이것은 꼭 아리마대 요셉만이 넘어야 할 걸림돌은 아니었다.

 이처럼 예수님을 이미 믿던 사람도, 또 처음 믿게 된 사람도, 반대로 미워하게 된 사람도, 그리고 미움을 넘어 증오의 대열에 들어서게 된 사람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혼란에 빠져갔다. 이 틈을 타 몇몇 사람들이 돌을 들어서 치려 했고, 예수님은 그들을 피해 성전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출애굽기 3:14, 잠언 26:24-28, 요한복음 7:47-52, 8:7-58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성경 원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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