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교리적인 내용을 몇 번 다룰 예정입니다. 그냥 지나갈 수 없는 중요한 몇 가지 교리에 대해서,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쉽게 설명하겠지만, 이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제 설명에 대해 이것이 정답이라고 받아들이실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 안의 근거만을 사용해 상식선에서 설명하는 것이 저의 목적이라 설명이 부족할 수도 있고, 해당 교리에 대한 제 이해가 미흡한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설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첫 번째는 바로 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죄는 과연 무엇일까요? 각자가 살아가는 사회에 따라 다양한 기준이 제시될 수 있겠지만,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죄는 율법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은 기본적으로 토라(모세오경)에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 대해 설명할 때 말했듯이 그들이 지키고자 한 율법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다만 그 해석 원칙에 있어서 바리새인들은 장로들의 전승을 중요시했고, 사두개인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제사장의 권위를 중요시했기 때문에 서로 강조하는 부분이 매우 달랐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율법을 어긴 죄는 희생 제사를 통해 죄 사함을 받는 것이 성전이 존재하던 시대의 정석적인 속죄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안식일에 관한 내용같이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과는 판단 기준이 다른 부분이 존재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율법에 따라 행동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죄의 기준인 율법에 대해 말씀하신 세 가지 내용이 있는데, 그 첫 번째는 많이들 아시는 것처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 개역한글) 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우선 알고 가셔야 할 내용은 여기에서 말하는 일점일획이란 히브리어로 쓰인 성경 원문, 그것도 율법이라는 특정 대상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라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어는 문자의 구조가 점과 획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점과 획이 바뀌면 그 내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래서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라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주신 원래 그대로의 율법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조금의 변화도 없이 다 이루어질 것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옳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마태복음도 유대인을 대상으로 쓰인 책이고, 예수님도 저 상황 안에서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으니, 이것을 읽고 들을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들으며 당연히 토라의 율법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에 대해 말씀하신 두 번째 내용은 순서상으로는 첫 번째이지만, 설명의 편의를 위해 뒤쪽에 배치하게 되었습니다. 위의 말씀 바로 앞에서 하신 내용인데,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 5:17, 개역한글)입니다.
이 내용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설명한 내용으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 3:10-14, 개역한글)
바울은 그리스도가 율법의 저주, 즉, 율법의 한 계명이라도 어기면 죄인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스스로 율법의 저주를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셔서 우리를 속량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처럼 율법 자체가 폐해지지 않은 채,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지게 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에 이르러, 율법을 완전히 지킨 것과 같은 의로운 상태에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가 실제로는 의로운 삶을 살지 못할지라도, 예수님을 통해 언젠가 이렇게 될 것이니, 결론적으로 말하면 믿음으로 의인이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서는 율법을 폐한 것과 같은 결과를 만드는데,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게 되면 더 이상 과거의 율법에 연연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율법의 완성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위의 말씀과 이어진 말씀에 세 번째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19-20, 개역한글)
이것을 보고 지금의 우리도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말씀의 핵심은 마지막 부분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 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그 대단하게 율법을 지키는 율법 학자와 바리새파보다 더 나아야 하늘나라에 올라갈 수 있다고 하시는 것인데, 이것을 반어법이라 가정한다면, 율법으로는 아무도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바울의 설명과 완전히 동일한 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죄의 기준이 맞고, 지켜야 하는 내용도 맞지만, 인간의 노력으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을 예수님이 강조하고자 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궁금하시죠? 예수님은 다 지켜 행하여 가르치라고 하시는 것 같은데, 또 율법으론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하니 헷갈리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것은 위의 말씀을 언제, 누구에게 하신 것인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부활하시기 전,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인데, 유대인인 그들에게는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습니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롬 2:12-13, 개역한글)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한 대로 유대인이라면,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불신에 대한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구원을 위해 노력할 방법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율법을 잘 실천하는 것.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은 여전히 구약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방법으론 구원에 이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것처럼 율법 학자와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갈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우리들은 구약의 율법이 아닌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 맞습니다. 새 계명은 구약의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미리 말씀하셨고,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선포하신 내용입니다. 이것은 에베소서와 요한일서에도 반복되어 나오는 내용인데, 하나씩 차례대로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예레미야서를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것이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31:31-34, 개역한글)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그때가 오면 출애굽 시기에 모세를 통해 주신 언약과는 다른 언약을 주실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새로운 언약은 돌 판에 기록된 처음 언약과는 다르게 마음 판에 기록되어, 모두가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고 하시는데, 이 새 언약,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된다고 하신 바로 그 새 언약을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선포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요 13:34-35, 개역한글)
이것은 이전 언약과 달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동일한 것입니다. 다음에서 보듯이 원래 언약도 크게 나누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눠지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에서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막 12:29-31, 개역한글)
다만 새 언약에서는 세세한 조문들이 다 사라졌습니다. 오직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그것이 우리에게 주신, 우리가 지켜야 할 새 계명인 것입니다. 죄의 기준을 알기 위해 참고삼아 예전 율법을 보는 것은 괜찮지만, 그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처럼 설명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말 성경에 대해서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입니다. 예전 율법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예수님께서 새롭게 주신 계명입니다.
이것이 제가 혼자 지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에베소서에도 동일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 가지 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습니다. 그분은 이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만들어서 평화를 이루시고,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이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서, 하나님과 화해시키셨습니다.(엡 2:14-16, 새번역)”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폐하셨다는 단어에 집착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 부분 외에도 율법이 폐해졌다는 구절이 신약 여기저기에서 나오는데, 예수님 안에서는 폐한 것이 곧 완성한 것입니다. 완성한 것과 폐한 것이 동일한 결론으로 이어지기에 저 두 단어는 서로 바꾸어 써도 의미상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새 계명에 관한 내용은 요한일서에도 계속 나오는데, 그 부분은 직접 찾아서 읽어보시길 추천해 드립니다. 참고로 요한일서에서 말하는 새 계명 역시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렇게 새 계명에 관해 설명해 드렸는데, 이때 새 계명을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당연히 믿음으로 받습니다. 다만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믿음이 있는 사람은 사랑의 실천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있다고 다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행해야 합니다.
저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행하라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완벽한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또다시 율법이 믿음을 대신하려 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단한 것을 행하려 하지 말고,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 됩니다. 열 달란트 받은 사람은 열 달란트만큼 실천하면 되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만큼 실천하면 됩니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며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문제이지, 조금의 실천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했다 칭찬하실 것입니다. 무엇을 실천할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사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직접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완벽하게 따라 하지는 못하더라도, ‘하나님과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이웃을 사랑한다면 이렇게 해도 될 것인가?’라는 판단 기준으로 말하고 행동하신다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새 계명을 무리 없이 지키실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죄에 대해 말하다가 율법에 대한 설명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많은 도움이 되셨죠?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죄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하겠습니다. 율법을 어기는 것이 죄이지만, 그 율법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결국 죄를 판단하는 기준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면 그것은 죄이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가 아니면 그것은 죄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준으로 무언가를 죄로 판단하든 말든 이것이 진실입니다. 이 내용과 하나님께서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죄와 악도 허용하시고, 때로는 쓰시기까지 한다는 것을 이해하신다면, 여러분이 가지고 계셨던 세상의 악과 죄의 존재에 대한 여러 가지 고민들에서 해방되는 길을 발견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