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남편이 될 사람, 요셉

마리아가 마을 근처의 숲을 걷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요즘 들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플 때부터 시작한 부업은 그 양이 줄긴 했지만, 지금까지도 하고 있었고, 원래 하던 집안일에 더해, 어머니가 신부 수업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쳐주는 것까지 배워야 했으니,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나마 안식일에는 쉴 수 있었지만, 안식일이 끝나면 다시 정신없는 일과의 반복이었기 때문에 마리아는 하루가 다르게 지쳐갔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말했지만, 그것도 이내 한계를 맞이했고,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된 마리아는 어머니께 말해 하루의 휴식을 얻었다.

 오랜만에 쉬기로 한 날, 마리아는 마을 근처의 숲으로 향했다. 온갖 나무와 수풀이 무성하게 우거진 숲은 그녀의 오랜 추억이 담긴 곳이었다. 마리아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와 함께 숲 구석구석을 누비며 뛰어다녔고, 배가 고파질 때면 무화과며 석류, 대추야자 열매를 따 먹으며 배를 채우곤 했었다. 숲에서 과일을 많이 먹은 날에는 저녁을 안 먹겠다고 떼를 쓰다 엄마한테 혼난 적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반성했지만, 다음번에도, 그다음 번에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릴 때의 자신은 참 말괄량이였던 것 같다. 물론 부모님은 여전히 변한 게 하나도 없다고 놀리듯 말씀하시는데, 늘 그 말에 반박을 하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동의하기도 한다. 자신은 정말 그때에 비해서 어른이 되었을까? 결혼을 앞두고는 있지만, 막상 누군가가 결혼하고 싶은지 묻는다면 그건 아직 자신 있게 대답을 못하겠다. 다른 일에는 막힘이 없는데 유독 결혼에 대해서만 그렇다. 혹시 자신은 아직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게 아닐까?

 마리아는 답답한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몇 번 반복하자 서늘한 숲의 향기가 가슴 깊숙이 들어왔다. 마음을 진정시킨 마리아는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주변을 둘러보았다. 머리 위에선 하얀 구름이 떠다니고 있었고, 녹음이 우거진 나무들은 그동안 열심히 키워온 결실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녀는 가지 끝에 매달린 대추야자 열매를 하나 따서 입에 물었다. 달달한 대추야자 맛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기분이 조금 나아진 그녀는 일어나 석류도 먹어보았다. 새콤달콤한 석류의 맛이 그녀의 기분을 한층 좋게 만들었다. 

 마리아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이 눈가에 다가왔다. 햇살을 피해 눈을 감자, 이번엔 스쳐 가는 바람이 느껴졌다. 숲을 휘돌아 불던 바람이 그녀에게 오랜만이라고 반갑게 인사하는 듯했다.

 그래, 행복이란 건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렇게 사소한 일상 속에서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에 따라, 아니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하는 것이겠지.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의 자신의 삶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이사야 선지자가 이런 말을 했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이니라.”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 그날에 온 세상이 누릴 평안들을 예언한 이사야 선지자의 말처럼, 앞으로의 삶이 아무리 힘들 지라도 주님을 믿고 의지한다면 언젠가는 자신도 그런 평안에 동참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느끼는 평안처럼 말이다.

 마리아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숲을 거닐었다. 숲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그녀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에덴동산을 떠올렸다. 아담과 하와가 그 안에서 누렸을 평안을 생각하며 그들을 부러워하려던 찰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를 지은 사실이 떠올랐다. 

 뱀의 말에 속아 하나님의 명령을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여 벌어진 일들. 그 사건 이후에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그들의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가인과 아벨 사건 말고도 기록되지 못한 고통스러운 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살다가, 갑자기 차가운 현실 속에 던져졌으니, 그 어려움은 말도 못 할 정도였으리라. 그런 힘겨운 삶을 사는 동안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했던 기억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녀인 가인과 아벨에게 하나님을 알려주었는지도 모른다. 

 과거를 떠올리며 자녀들에게 죄를 짓지 말라고 가르치는 두 사람을 상상하자, 문득 요셉이 떠올랐다. 요셉도 율법을 어기는 것을 너무나 싫어하는데, 유대인으로서는 칭찬할 만한 자세가 맞다. 하지만 그에게도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별것 아닌 일에도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실수도 할 수 있고, 남들에게 약간의 피해를 줄 수도 있는데, 그는 그런 별것 아닌 일에도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며 죄책감에 시달렸다. 그는 그런 면이 있다고 인정을 하면서도, 그것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다. 사는 게 힘이 들면 삶의 태도를 바꾸면 될 텐데 왜 그렇게 고집을 부리는지 정말 모르겠다. 그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이 결혼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요셉이 자신을 사랑해 준다는 것은 알지만, 그 사랑이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것처럼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발견되면 그는 바로 이혼증서를 쓰려고 할 수도 있다. 그는 율법을 과하게 잘 지키는 사람이니 말이다. 남자들 입장에서는 그것이 율법 안에서 당연한 권리겠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어떤 느낌이 들까? 스스로 잘못한 것이 없다 느낄지라도 율법 앞에서 죄인으로 지적된다면 피할 구석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결국 최근에 많아진 자신의 고민은 남편이 될 사람, 요셉 때문인 것 같다. 아담은 하와에게 단 하나의 유일한 짝이었는데, 요셉은 과연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정해주신 짝이 맞을까? 사고방식이 너무 다른 자신과 요셉이 한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요셉의 인간적인 약점들을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지도, 자신이 진정으로 요셉을 사랑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어떤 신호를 보여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셉에게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요셉은 분명 그녀가 바랐던 것처럼 믿음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믿음의 모습이 그녀가 상상하던 믿음 있는 사람과 조금 다르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것을 믿음이 있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없다고 해야 할지 확신할 수 없는 것이 그녀의 고민의 원인이었다.

 그런 그와 함께하는 삶이 과연 행복할까? 자신은 결혼해서 떠난 친구처럼 돈과 외모, 능력까지 있는 사람을 바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게 없더라도 마음은 맞아야 할 텐데, 지금의 요셉을 보면 답답함만 느껴진다. 그와 함께하면 자신도 그런 답답한 삶을 살게 되겠지? 자신의 가족들은 자기주장이 확실하고, 옳고 그름에 대해 쉽게 판단한다. 하지만 그 판단이 틀려도 오래 생각하거나 상처를 품지 않는다. 하지만 요셉은 정반대의 성격이다. 그는 상처도 잘 받고, 그 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힘들어한다. 그는 매사에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다. 더군다나 거의 항상 혼자 생각하고, 혼자 결론을 내리니 잘못되고 과도한 결론에 이를 때도 많다. 대화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그것을 피하는지 모르겠다. 

 요셉이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도 마음에 안 들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는 그것을 배려라고 말하지만, 그런 모습이 때로는 비굴하게 보인다는 것을 왜 모를까? 자신에게만 그런다면 또 그러려니 하겠지만, 거의 모든 사람에게 다 그러니 진짜 너무 싫어 보인다. 좀 당당하게 살면 어디가 덧나나?

 또, 가끔 자신이 어떤 일 때문에 화를 내게 되면, 그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미안해하는데, 그럴 때마다 화딱지가 날 지경이다. 친한 언니들이 남자들은 왜 여자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데에만 신경을 쓰는지 모르겠다며 짜증을 낸 적이 있는데, 이제는 그 말에 자신도 완전히 동의한다. 그냥 들어주고 공감해 주면 풀릴 문제를 해결해 주려다가 기분을 더 상하게 만든다. 남자들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 사람과 결혼하는 게 정말 잘하는 것일까? 결혼 대상을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혼 서약서까지 쓴 마당에 이제 와서 뭘 어쩌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몇 개월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알겠는가? 정말로 자신에게 율법적인 결격사유가 발생한다면, 그는 평소처럼 혼자 생각하고 판단해서 이 결혼을 무른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긴 그렇게 되면 결혼을 무르는 게 문제가 아니라,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게 될 테니, 그걸 걱정해야 하는 것이 옳겠지만 말이다.


본문에서 인용된 이사야서 11장 6절에서 9절까지의 구절은 개역 한글을 사용했습니다.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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