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잠든 깊은 밤. 박사들이 자고 있던 곳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약속이나 한 듯 한꺼번에 몸을 뒤척이는 세 사람. 놀란 표정에 찡그리는 표정, 두려워하는 표정까지 세 사람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그리고 잠시 후.
“헉!”
세 개의 입에서 흘러나온 하나의 소리. 몸을 일으켜 숨을 몰아쉬는 박사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혹시 자네들도 들었는가?”
“그럼, 자네도?”
“이…이게 도대체 무슨 꿈이죠?”
“모르겠어….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니.”
“오, 하나님.”
여전히 진정되지 않는지, 세 사람의 가쁜 숨은 계속되었다.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헤롯에게 소식을 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것 같네.”
박사의 말에 나머지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체하지 말고 지금 바로 움직이세.”
“그래.”
“네.”
웬만하면 아침이 되어서야 움직일 만도 하지만 꿈속에서 느껴졌던 긴장감은 그들에게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 당장 떠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불안감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작별 인사라도 하고 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 야밤에 깨워서 뭐라고 말하게? 헤롯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꿈을 꿔서 우리는 떠날 거라고?”
“그래도 뭔가 큰일이 생길 것 같은 느낌인데….”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다면, 우리에게만 알려주셨겠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자자, 진정하게. 자네 말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만 알려주신 이유가 있을 거야. 만약 저분들이 들어야 할 말이었다면, 저분들의 꿈에도 똑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셨겠지. 하지만 우리만 깨어난 것을 보니, 이 말씀은 우리가 듣고, 따라야 하는 이야기라 생각하네. 그러니 지체치 말고 그냥 떠나세. 다만 우리가 갑자기 떠난 이유를 저분들도 알아야 하니, 쪽지라도 써 놓고 가세.”
나머지 두 사람도 박사의 의견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한밤중에 갑자기 떠나는 이유를 적은 간단한 쪽지. 이 쪽지를 읽고 자신들이 떠난 이유를 이해해 주길 바라며, 박사는 신중하게 쪽지를 남겼다. 그리고 그들은 그대로 원래 왔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고향을 향해 떠나갔다.
그들이 문을 나서고, 점점 멀어져 갈 때에 요셉도 꿈을 꾸었다.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이집트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너무나 생생한 목소리와 울림. 예전에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하라고 했던 목소리와 같은 느낌이었다. 요셉은 눈을 뜨고, 급히 일어나 마리아를 깨웠다.
“마리아.”
“네? 무슨 일이에요?”
마리아는 졸린 눈을 비비며 요셉에게 물었다.
“자세한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 빨리 옷 입고 떠날 준비해.”
“네?”
“꿈에서 천사를 만났어. 그러니 우선 내 말대로 해줘. 급해.”
당황한 듯, 사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요셉이었다. 마리아는 그의 표정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직감하고, 즉시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했다. 그 사이 요셉도 옷을 다 입고, 주변을 돌아보았다. 한쪽에서 피곤한 듯 자는 목자 부부. 그런데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요셉은 그들이 자던 곳을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쪽지가 하나 있었다.
[저희는 헤롯왕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꿈을 꾸고 급하게 떠납니다. 비록 몸은 이렇게 떠나가지만, 저희의 마음은 언제나 하나님과 메시야를 향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아무 일 없기를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에 임하는 것을 직접 목격할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두 분의 앞길과 저희의 여정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길….]
창밖 저 멀리에 멀어져 가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보였다. 요셉은 그들의 안전한 귀향을 위해 마음속으로 기도를 드렸다.
“요셉, 준비 다 했어요.”
요셉이 뒤를 돌아보자, 마리아가 작은 짐 보따리를 등에 메고, 아기를 품에 안고 있었다.
“그럼 떠나자.”
“잠시만요. 목자 내외분들께는 사정을 설명하고 가야죠.”
“아, 맞다.”
언제나 당장 해결해야 하는 문제에만 온 신경이 집중되는 요셉이었다. 그 덕분에 실수를 많이 했는데, 이번에도 마리아가 아니었다면 큰 실수를 할 뻔했다.
“목자님, 목자님.”
목자를 흔들어 깨우는 요셉. 옆에선 마리아가 목자의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얼굴을 찌푸리며 잠에서 깨어난 두 사람에게 요셉과 마리아는 사정을 설명했다. 처음엔 무슨 소리인가 하던 두 사람도 점점 그 말의 심각성을 깨닫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니 저희는 지금 당장 이집트로 떠나겠습니다. 지금까지 잘 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찾아뵙겠습니다.”
요셉은 목자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목자는 일어나 요셉을 껴안아 주었다.
“괜찮네. 우리야말로 그동안 감사했어. 더 나은 상황에서 이별했다면 좋았겠지만. 어쩌겠는가. 이 또한 하나님의 뜻인 것을…. 몸조심하게.”
바로 옆에서는 마리아와 목자 아내가 손을 잡고 이별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짧은 작별 인사를 하고 짐을 챙겨 집을 떠난 요셉과 마리아. 이들은 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대로 이집트로 향하는 길을 따라 속도를 높여 걸어갔다. 아직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의 일이었다.
* * *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한 듯. 헤롯의 충혈 된 눈이 더욱더 붉게 번뜩였다.
어제 박사들이 메시야라는 아기를 찾아냈을까? 아니면 아직 찾지 못했을까? 만약 찾았다면, 지금쯤 박사들이 일어났겠지? 그러면 이것들이 언제 돌아와서 자신에게 보고할까?
헤롯은 어제 박사들을 그냥 보낸 것을 뒤늦게 후회하고 있었다. 정탐꾼을 그들 뒤에 붙였더라면 지금처럼 이렇게 가슴 졸일 필요도 없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헤롯을 분노하게 했다.
자신은 지금까지 로마의 지배자들과 권력자들, 또 이방의 백성들과 유대인들에게까지도 최선을 다해왔다. 하지만 그 결과가 무엇인가? 아들놈들의 배신과 유대인들의 반항. 그런데 이젠 하다 하다 갓 태어난 메시야까지 등장했다. 안 된다. 이렇게 허무하게 자신이 평생을 바친 왕국을 빼앗길 순 없다. 아들놈은 로마의 유력자들과 친분이 있기에 마음대로 죽일 수 없지만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는 아기는 죽여도 아무도 뭐라 하지 못할 것이다. 반발이 있다면 적당한 죄목을 만들어주면 된다. 마음만 먹는다면 역사에 기록되지 않을 사건 하나쯤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여봐라. 베들레헴에 사람을 보내어 박사들의 행방을 찾아서 보고하거라.”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헤롯왕이 보낸 사람이 베들레헴을 돌며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박사들을 보았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사들은 주요 도로가 아닌, 동쪽 산 아래에서 올라왔고, 별의 인도를 받아 늦은 밤에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더군다나 목자의 집은 마을과 좀 떨어져 있어서, 목자 부부가 와서 말하지 않는 한 어제의 사건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헤롯왕이 보낸 사람은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가, 아무도 그들을 보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헤롯은 보고를 듣고,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다.
“뭐라고? 녀석들이 거기에 없단 말이냐?”
“네, 거기에 있지도 않고, 그들을 본 사람도 없습니다.”
“이놈들이 감히 나를 속이다니. 두고 보자. 내 눈앞에 띄기만 하면 다 죽여 버릴 것이다!”
“전하, 메시야는 어떻게 합니까?”
헤롯이 크게 소리 질렀다.
“메시야? 누가 메시야라는 말이냐. 이 땅의 왕은 오직 나밖에 없다. 내 눈앞에서, 아니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메시야에 대한 말은 꺼내지도 말아라. 내 귀에 그런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들리면,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
헤롯의 신하들은 그의 분노 앞에서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헤롯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박사라는 자들이 별을 언제 처음 발견했다고 했지?”
“2년 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이건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만약에 그때를 기준으로 베들레헴과 그 주변 마을의 두 살 이하의 모든 아이를 죽인다면 어떻게 될까?”
“아, 좋으신 생각입니다. 그러면 굳이 그 아이가 누군지 알 필요도 없겠습니다.”
“그래. 누구의 아이가 그 아이인지 파악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고, 자칫 잘못하면 그놈들이 겁먹고 도망칠 수도 있다. 그러면 귀찮아 지니, 두 살 이하로 보이는 아이들은 모조리 죽여 버려라. 그래봤자 작은 마을들이니, 두 살 이하의 아이는 몇 안 될 것이다. 어차피 나중에 자라서 폭동이나 일으킬 놈들이니, 지금 죽이나 그때 죽이나 똑같다.”
“그러면 사마리아와 외국 출신 용병들을 보내겠습니다.”
헤롯이 처음으로 미소를 보였다.
“역시, 내가 신하 하나는 잘 두었군. 지금 즉시 처리하거라.”
“네, 알겠습니다.”
이번 일을 위해 특별히 선발된 병사들. 유대인 병사였다면, 아무 죄도 없는 동족 아기를 죽이는 데 죄책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평생을 전쟁터에서 자란 용병들에게 이런 일은 일도 아니었다. 기분이 안 좋다는 이유로, 적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한 마을을 모두 죽이고, 불태워 지도에서 없애 버린 적도 있는 그들이었다. 이번처럼 아기만 골라 죽이는 것은 사소한 유희에 불과했다. 반항하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죽여도 되니,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병사들은 베들레헴과 그 주변 마을을 돌아다니며 두 살 이하로 보이는 모든 아기를 죽였다. 그중에는 목자의 둘째 딸에게서 태어난 손자도 포함되어 있었다. 목자, 목자의 아내. 그리고 백성들이 울부짖었다. 목자의 딸과 아이들의 어머니는 슬픔에 목 놓아 울었다. 그녀들은 사람들의 위로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예언이 이루어졌다.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마태복음 2:13, 17-18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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