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헤롯왕

잔뜩 화가 난 헤롯왕이 노려보고 있습니다

 망할 안티파테르 놈은 하루빨리 죽여야만 한다. 짐승조차 자기를 낳아준 부모를 공경하거늘, 금수만도 못한 이놈은 감히 아비인 자신을 독살하려 했다. 이미 권세나, 위엄이나 자신에 비해 모자라지 않게 대우받고 있거늘, 기어이 자신을 죽이고 왕이 되려는 악랄한 계략을 세운 놈. 이놈을 그대로 놔두면 왕가뿐 아니라, 멀리 있는 황제께도 위험 요소가 될 것이다.

 자신은 그동안 장남인 안티파테르에게 철저히 속고 있었다. 둘째인 알렉산더와 셋째인 아리스토불러스가 로마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어미를 죽인 자신을 원망할 때, 장남을 불러들이면 정신을 좀 차릴까 싶었던 것이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것이다. 안티파테르는 철저하게 자신의 편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고 충성을 다하는 것처럼 행동했는데, 자신에게 불만을 표하는 둘째, 셋째 아들들도 옹호해 주곤 했다. 그러나 나중에 모든 계략을 알게 된 이후엔 그것조차 연기였음이 드러났다. 

 만약 장남에게 속아 무고한 두 아들을 죽인 것이라면…. 아니다. 그럴 리 없다. 그놈들 역시 죽을 만한 짓을 분명히 했다. 죽어 마땅한 놈들. 이놈들은 어릴 때부터 뭐하나 부족함 없이 주고, 로마에 가서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주고, 또 권세 있는 가문의 사람들과 친해지도록 재정까지 지원해 주었지만, 은혜도 모르고 아비를 해하려 했다. 그놈들의 편에 있는 자는 가족이든, 오랜 친구든 상관없이 모두 다 고문하고 죽여 버렸는데, 그건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한 행동이다. 이 왕조는 아버지와 형님, 동생 그리고 자신의 피로 쌓아 올린 것이다. 왕국을 위해 아무 노력도 안 한 것들이 감히 왕좌를 탐하다니.

 그래, 이 자리를 탐한 것은 아들들뿐만이 아니다. 하스모니안의 잔당들. 그놈들도 끝없이 이 자리를 노려왔다. 자신이 이렇게 오랫동안 살지 못했더라면 또다시 그놈들에게 왕국을 빼앗겼을지 모른다. 아버지와 친했던 힐카누스. 그가 자신을 아들처럼 대해준 건 사실이지만, 마음씨만 좋은 그 양반은 사람들 말에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렸다. 웬만하면 참아주려 했으나, 외국으로 도망치려 한 것은 정말 해선 안 될 행동이었다. 권력욕이 없다면 조용히 처박혀 살다 죽을 것이지, 다 늙어서 도망은 왜 치려 하는가 말이다. 그러니 그가 예전에 왕이었든, 대제사장이었든 상관없이 처형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안티고누스가 일천 달란트와 여자 오백 명을 바치기로 하고 파르티아군을 끌어들였을 때, 형인 파사엘루스와 함께 죽었으면 명예로운 죽음이라도 누렸을 것을. 쯧쯧쯧.

 그런데 그 안티고누스 덕분에 자신이 유대의 왕이 되었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하스모니안이 하스모니안에게 멸망한 꼴이니 말이다. 형님과 힐카누스가 파르티아 군에 잡히고, 자신은 안티고누스에게 쫓겨 이두매로 갔을 때, 동족들조차 자신을 돕지 않아 가족들을 마사다 요새에 데려다 놓고 로마로 향했다. 도중에 유대인들의 공격과 아무도 배를 태워주지 않으려는 상황, 억지로 배를 구한 뒤에도 폭풍을 겪는 등 수많은 위험이 있었지만, 자신은 모든 위기를 이겨내고 로마에 도착했다. 그때 자신은 안토니우스에게 처남을 왕으로 세워 달라 말할 참이었는데 그가 파르티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왕으로 세우는 것이 좋다면서 원로원에 이야기를 한 것이다. 

 그렇게 왕위를 얻었지만, 실제 왕좌를 얻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자신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형님에 이어 동생마저 전사했지만, 결국은 승리해 안티고누스를 처형해 버렸다. 그사이 약혼했던 미리암네와 결혼도 하면서, 이후에는 행복만이 있을 줄 알았다. 유대인들이 비협조적으로 군다 한들 자신은 이미 왕이 되었고, 그들의 마음을 충족시켜 줄 다양한 방법들도 생각해 놓았다. 그들을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고 설득할 자신도 있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한 아내 미리암네 사건만 아니었어도, 실제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하스모니안의 왕녀였던 미리암네는 스스로의 신분이 고귀하다는 생각에 남들을 무시하곤 했다. 장모인 알렉산드라가 항상 그딴 식으로 행동했으니, 아내가 뭘 보고 배웠겠는가. 어쨌든 아내는 자신의 어머니와 동생인 살로메를 무시했고, 서로 간에 비방이 쏟아졌다.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지만, 웬만하면 그냥 덮고 넘어가려 했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인 자신에게조차 막 대하기 시작했고, 나중엔 숙부와 간통까지 저질렀다. 나쁜 년 같으니라고. 아내는 하나님께 맹세하면서 결백을 주장했지만, 그 말을 어떻게 믿겠는가? 자신을 미워하는 아내가 무슨 거짓말을 못 하겠는가 말이다.

 그래, 전에 처남을 죽인 것 때문에 자신을 미워하는 것은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다 그놈을 떠받들려 하는데 내가 가만히 둘 수 있었겠는가? 그대로 두면 제2의 안티고누스가 나올 수도 있었다. 아내와 유대를 위해서도 그런 위험은 사전에 제거하는 것이 당연했다. 왜 그 마음을 몰라주고, 자신을 미워할 수 있냐는 말이다. 아내와 장모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는 명령도 아내를 지키기 위해서였고, 자신이 죽으면 아내와 장모를 함께 죽이란 명령을 내린 것도 다 아내를 사랑해서였다. 왜 자신의 지극한 이 사랑을 몰라주는가 말이다. 

 그러나 아내는 끝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았고, 자신은 어쩔 수 없이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힐카누스를 죽이고, 아내도 죽이고, 장모도 죽이고, 다 죽였다. 남들이 뭐라 지껄이던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때부터 모든 일이 이렇게 꼬여버렸는지도 모르겠다. 가족들 간의 미움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서로 혼인 관계까지 만들어두었으나 다 부질없었다. 아내와 남편이 분쟁하고, 형제들이 분쟁한다. 장모와 사위, 시아버지와 며느리, 고모와 조카가 분쟁한다. 집안이 다 미쳐 돌아간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마다 온갖 중상모략이 들려온다. 어떤 것이 진실인지 이젠 판별하기도 귀찮다. 그냥 깡그리 다 죽여 버리는 게 마음 편할지도…. 아니다. 그래도 가족인데 어떻게 쉽게 죽이겠는가.

 두 아들을 죽이기 전에도 자신은 최선을 다했다.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려 노력했고, 여러 번 화해하기도 했다. 진실이 밝혀진 후, 찢어지는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처형을 할 때에도 로마의 황제께 모든 사정을 설명했고, 허락을 받지 못한다면 죽이지 않으려 했었다. 보아라, 이번에도 대제사장의 딸인 셋째 부인 미리암네와 그를 통해 낳은 빌립도 죽이지 않고 쫓아내기만 했다. 그런데 어떻게 감히 자신을 두고 이런저런 소리가 나오느냐는 말이다. 아우구스투스께서 헤롯의 자녀가 되기보다는 그의 돼지가 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는 소문도 들었지만,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황제께서 자신을 얼마나 아껴주시는데…. 그리고 그동안 황제께 바친 엄청난 돈만 생각해도 황제께서 그럴 리 없다. 그래선 안 된단 말이다. 제기랄. 

 “거기 아무도 없느냐!”

 잘생긴 청년이 달려왔다. 경호도 하고, 가끔은 성적인 관계로도 이어지는 종.

 “네, 부르셨습니까.”

 “목이 탄다. 물을 가져오너라.”

 “알겠습니다.”

 그를 보니 안티파테르 때문에 죽은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러스가 떠오른다. 아들들은 저 종보다 훨씬 더 잘 생겼고, 품위까지 넘쳤었다. 아버지는 현재의 왕인 자신이고, 어머니는 하스모니안의 공주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유대인들도 그들만큼은 좋아했다. 그래서 자신은 서로 간의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동생인 살로메의 딸까지 아리스토불러스에게 아내로 주었지만 다 헛된 일이었다. 아들들의 죽음엔 안티파테르 뿐만이 아니라, 살로메도 한몫했으니 말이다. 자신이 바란 것은 그저 가정의 평안뿐이었다. 남들에겐 다 쉽다는 그것이 왜 자신에게만큼은 너무나 멀리 느껴진단 말인가. 

 이번에 안티파테르의 음모를 알게 된 데는 동생인 페로라스의 공이 크다. 동생이 병으로 죽은 후, 페로라스의 아내가 동생을 독살한 것 같다는 신하들의 고발이 있어 조사를 했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보니 안티파테르 놈이 동생에게 자신을 죽이라고 아라비아의 독을 주었지만, 착한 동생은 그 독을 쓰지 않고 아내에게 숨겨두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리고 병이 들어 죽어갈 때, 그 독을 눈앞에서 다 태워버리게 했는데, 동생의 아내가 일부를 남겨 두었다. 여러 명을 고문하는 과정에서 모든 진실이 밝혀졌고, 연관된 사람들은 모두 죽이거나 추방해 버렸다. 안티파테르의 어미인 도리스는 재물을 다 빼앗고 추방했고, 대제사장의 딸 미리암네도 사실을 알면서 묵인했기에 쫓아내었다. 그와 동시에 대제사장 시몬 벤 보에투스도 파면했고, 미리암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빌립도 함께 쫓아내면서 후계자 명단에서 지워버렸다. 

 그다음 안티파테르 놈을 로마에서 불러들였는데, 조금만 늦었다면 더 큰 일이 벌어질 뻔했다. 이놈은 로마의 유력자들을 구워삶았고, 배다른 동생들인 아켈라오와 빌립까지 죽이려 한 것이다. 온 유대인들이 아들 안티파테르를 미워한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것을 믿었어야 했다. 유대에 돌아온 안티파테르는 재판장에서 또 거짓말로 현혹하려 했지만, 다행히 진실을 밝혀내면서 감옥에 가둘 수 있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께 서한을 보내어 그의 극악무도함을 고발해 놓았으니, 허가가 떨어지면 바로 녀석을 처형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후계자가 누가 있는가? 첫째 부인 도리스에게서 태어난 안티파테르는 곧 처형할 것이고, 둘째 부인 미리암네에서 태어난 알렉산더, 아리스토불러스는 이미 죽여 버렸다. 셋째 부인 대제사장의 딸 미리암네에서 태어난 빌립은 후계자 명단에서 빼버렸다. 넷째와 다섯째 부인 사이에는 자식들이 없고, 여섯째인 사마리아의 말타케에게서는 안티파스와 아켈라오가 있다. 일곱째인 예루살렘의 클레오파트라에게서는 헤롯과 빌립이 있는데, 안티파스, 아켈라오, 빌립은 지금 로마에서 교육받고 있다. 여덟째인 팔라스와의 사이에선 파사엘러스가 있으며, 아홉째와 열째부인에게서는 딸들밖에 없다. 손자들까지 가면 아리스토불러스에게서 태어난 아그립바가 있는데, 사실 아그립바 보다 그 남매인 헤로디아가 더 눈에 들어오긴 한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속내를 보이지 않던 녀석. 그 모습이 대단해 보이긴 했지만, 이미 쫓아낸 빌립과 혼인을 시켜 두었으니, 그것이 그녀의 한계였겠지.

 이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안티파스이다. 하지만 그놈도 별것 없다 느껴지면 다른 놈에게 줄 수도 있다. 어쩌면 나라를 나누어서 물려줄 수도 있겠지. 자신의 여동생인 살로메에게도 한몫 떼어줄 것이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도, 동생 둘도 모두 다 죽고 남은 유일한 가족. 살로메는 친하게 지내다가도, 갑자기 원수처럼 변해 비난을 퍼붓는 못된 성격이 있어서 아내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누가 왕국을 물려받던 좋은 꼴은 못 당할 것이다. 그러니 몇 도시를 따로 떼어 물려줄 것이다. 다른 친척들에게도 먹고 살 수 있게 재산을 주고, 로마에 계신 황제와 그의 아내에게도 많은 돈을 드릴 것이다. 자신을 왕이 되게 해준 감사의 표시로 말이다. 그러면 이 나라가 안정되겠지?

 자신은 이렇게 유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 멍청한 유대 놈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로마에 잘 보이기 위해 엄청난 돈을 갖다 바치고, 친분을 맺는 것도 다 유대의 평화를 위한 것이란 것을 왜 모르느냔 말이다. 율법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우리의 생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성전에 독수리상을 바치고, 입구에 세운 이유를 왜 모르는가? 강대한 로마의 군단을 상징하는 독수리. 그 로마가 우리를 지켜줌으로써 나라와 성전이 유지된다는 것을 눈으로 보여주기 위함이다. 몇몇 놈들은 그것을 하나님이 금하신 형상이라 말하기도 하지만, 그리 말하는 놈들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섬길 의도가 없는 형상은 만들어도 된다고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어디서 감히 자신들만 옳다고 운운하는가. 이 시대의 옳음은 종교가 아니라 힘과 정치에 있다. 

 자신이 로마에서 얼마나 존경받는지 유대인들이 알기나 하는가? 유대라는 왕국을 지키기 위한 정치를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알기는 하냔 말이다. 가이사랴를 완공했을 때를 기억해 보아라. 자신이 뭐 한다고 많은 돈을 들여서 도시를 만들고 축제까지 벌였겠는가? 나체 경기와 일대일 결투, 짐승과의 사투, 경마, 쇼 그 모든 것을 기획하고 카이사르께 바친 것은 모두 다 정치이다. 자신이 정치를 잘하는 것은 유대인들만 빼고 모두가 인정해 주었다. 오죽하면 아우구스투스 황제와 아그리파가 자신에 대해 종종 수리아 전체와 이집트까지 다스려야 되는 인물이라고 말하시겠냔 말이다. 

 외국에 지원해 주는 것들도 다 왕국을 위한 것이었다. 자신은 로도스에 아폴로 신전을 세웠고, 악티움의 니코폴리스에는 수많은 공공건물을 지어주었다. 안디옥의 도로에는 양옆으로 회랑을 만들고 도로포장까지 해주었다. 올림픽 경기도 자신이 지원해 준 돈이 아니었다면, 개최되기 힘들었을 것이다. 부진을 면치 못하던 올림픽이 자신 덕분에 명성을 되찾은 것이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 말이다. 가이사랴의 축제 기간에 수많은 주변 나라에서 사절이 와 축하를 해준 것도 다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 정치이고, 왕국을 위한 것이다. 이런 자신의 마음도 모르고, 그깟 세율 좀 높다고 그렇게 비방을 하는 게 말이 되느냔 말이다. 내가 그들을 위해서 해준 것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 배신을 한다니. 

 자신은 많은 것을 바란 것이 아니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호의를 보인 만큼 자신을 대해주면 되는 것이다. 외국인들과는 이런 관계를 만들기가 쉽다. 보아라, 안토니우스도, 아우구스투스도 자신을 가장 친한 벗이라 부르지 않았는가. 그런데 유독 유대인들만 고집을 부린다. 이래서 안 된다, 저래서 안 된다. 그들 스스로는 세상의 영광보다 의를 중요시한다고 말하지만, 그 의라는 것이 자신들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것을 왜 모르는가 말이다. 

 자신들이 얼마나 특혜를 받고 있는지 유대인들만 모르고 있다. 외국에 사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지킨다고 하면서 주는 피해 때문에 많은 외국인들이 유대인을 미워하고 있는 것을 아는가? 오죽하면 예전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 지금의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께서 각 지방에 칙명을 보내어 유대인들을 핍박하지 말고, 그들이 율법을 지키게 해주라고 명령까지 내렸겠냐는 말이다. 안식일을 지켜야 하니 군대도 면제되는 특별대우를 받고 있는 것을 유대인들만 모른다. 아니, 그들은 이런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이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헛소리만 늘어놓을 것이다. 자신이 그런 결과로 이끌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전혀 모르면서 말이다.

 유대인들은 정말 은혜를 모르는 것들이다. 예전에 지진과 가뭄으로 온 땅이 굶을 때 누가 도움을 줬느냐? 그때도 다 자신이 했다. 곡식도 없고, 양이나 염소조차 전멸하다시피 해서, 자신이 왕궁에 있는 금과 은으로 된 가구와 그릇들을 팔아서 곡식을 사다주었다. 스스로 음식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곡식을 주었고, 그럴 힘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빵을 구워 주도록 했다. 겨울 추위에 떨지 않도록 의복도 지원해 주었다. 자신이 아니었으면 그때 다 죽었을 거란 말이다. 또 저 성전을 세상 어느 건축물보다 근사하게 만들고 있는 것도 바로 자신이다. 전쟁으로 일부가 파괴된 성전을 다시 세우자고 했을 때 반대한 것은 자신이 아니라 유대인들이었다. 성전을 세운다고 하고 기초를 제거한 뒤에 다시 세우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고 걱정이나 하던 녀석들. 결국 그 일로 마음에도 없는 연설까지 하게 되었다. 내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기 위해 성전을 건축하겠다는 내용으로 말이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말을 듣고 감동했었는데, 정말이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 말하면 다 통하는 단순한 것들이다. 물론 자신도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이 없었다면 자신이 어떻게 왕이 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동시에 세상에 다른 신들도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지금 세상의 중심은 로마이다. 로마가 없었다면 자신이 왕이 되는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로마를 무시하게 된다면 분명 언제고 큰일을 겪게 될 것이다.

 멍청한 유대인들은 이런 현실은 모르고 율법만 이야기한다. 자신이 이방의 신전을 세웠다고 한들, 그것은 다 유대 땅 밖에서 한 것이다. 그 지역의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신전을 지은 게 뭐가 잘못되었는가? 이것도 다 정치란 말이다. 그것도 모르고 율법에 이렇게 되어있네, 저렇게 되어 있네 하면서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놈들. 강도 방지법도 마찬가지이다. 강도질한 범인들을 왕국에서 쫓아내는 것이 얼마나 좋은 법인가. 그게 율법을 좀 어기는 것이라 해도,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평안을 얻게 되었는가 말이다. 

 이런저런 꼴이 보기 싫어서, 사람들이 모이지 못하게 한 적도 있고, 시끄럽게 구는 놈들을 처형해서 조용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또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는 게 유대인들이다. 율법엔 그렇게 순종하려 하면서, 왜 자신에게 순종하는 것은 안 된단 말인가? 분명 언젠가 그 율법이 그들 스스로를 망하게 할 것이다.

 사두개파 녀석들은 알아서 머리를 조아리지만, 바리새파 놈들은 악질 중의 악질이다. 오직 율법, 율법만 부르짖는 놈들. 자기들 해석만 옳다고 하는 그들의 말에 왜 백성들이 넘어가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자신이 그나마 존경하는 것은 에세네파 사람들이다. 옛날 자신이 왕이 되리라 생각지도 못한 소년 시절에 왕이 될 것을 예언해 준 에세네파의 마나헴. 자신은 그의 말대로 왕이 되었다. 그는 자신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람들에게 의를 베풀고, 부드럽게 대하라 조언했었는데, 자신은 충분히 그렇게 했다 생각하지만, 왜 이렇게 힘든 일만 생기는지 모르겠다. 그의 말처럼 자신의 죄악을 하나님이 기억하셨다가 심판하시는 것일까? 

  아니,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유대인들이 문제이다. 아들 녀석이나, 유대인들이나 마찬가지이다. 다 자신의 왕국을 노리는 것들. 그런 놈들은 뿌리까지 깡그리 뽑아 버려야 한다. 자신이 죽을 때 눈물 한 방울도 보이지 않을 것들. 그래, 때가 되면 반드시 보복해 주겠다. 절대 자신 혼자 죽지 않을 것이다. 온 유대에 애도의 눈물이 흐르게 해주마.

 “전하.”

 “무슨 일이냐.”

 “지금 성안에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고 합니다.”

 “소문이라니?”

 “메시야가 태어났는지 묻고 다니는 외국인들이 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동방의 파르티아에서 온 사람들 같습니다.”

 “뭐라고? 메시야? 파르티아?”

 형을 죽게 만든 파르티아인들이 유대인의 왕인 메시야를 찾는다고?

 “그들을 데리고 오라.”

 “네, 알겠습니다.”

 오냐, 메시야든 파르티아든 다 덤벼보아라. 이 왕국을 이 정도로 키운 것은 바로 자신이다. 감히 어디서 왕국을 가로채려 하는가.

 헤롯의 마음에 악몽 같던 기억이 떠올랐다. 형과 동생의 죽음, 그리고 그 이후의 가정의 분란들. 이 모든 사건이 다 그들 때문에 벌어진 일 같았다.

 자신은 전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는 헤롯. 마나헴의 예언처럼 그는 왕이 되었고, 큰 권력을 얻었지만, 이 또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그는 모르고 있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고, 백성들에게 과도한 짐을 지울 그를 왕으로 세우신 것은, 그를 통해 메시야가 오는 예언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악한 일을 위해 세워진 악한 종. 하나님은 언제나 그랬듯, 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기 위해 악한 자를 세우셨다. 그렇게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나면, 하나님은 헤롯이 지은 죄악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가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는 한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었다.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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