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첫 아이는 모두 주님의 것이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목자의 집에서의 편안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목자의 아내는 두 명의 아이를 낳고, 딸의 산후조리까지 해보았기에 마리아는 그녀의 보살핌으로 몸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었다. 요셉은 시간 날 때마다 목자를 찾아가 그의 일을 도와주었다. 그동안 목수로 일한 경력밖에 없기에 양을 치는 일 자체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그가 사용하는 움막을 손질하고, 지팡이와 각종 도구를 만들어주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

 가끔가다 소년도 요셉을 찾아왔다. 아버지를 따라 곡물을 팔러 가지 않는 날마다 오는 것이었는데, 알고 보니 그 역시 다윗왕의 후손이었기에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또 가까운 관계였다. 소년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는 아직 아기 예수를 메시야라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기에 자기를 보내 친분을 쌓는 것이라고 하는데, 소년의 아버지와 직접 대화를 해보기 전까지는 이에 대해 미리 판단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삼십삼 일이 지나갔다. 

 율법에는 아이를 낳은 여인이 정결하게 되는 기간이 정해져 있다. 남자아이를 낳은 여인은 칠 일 동안 부정하고, 그 이후로 삼십삼 일이 더 지나야 흘린 피로부터 정결해질 수 있었다. 여자아이를 낳았으면 십사 일 동안 부정하고, 그 후로 육십육 일이 지나야 정결해질 수 있었는데, 이 기간 동안 여인은 공식적으로 모든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집에서 쉴 수 있었다. 이날이 끝나면 성전에 가서 번제와 속죄제로 드릴 제물을 드리는데, 보통은 일 년생 어린 양과 집비둘기 새끼 혹은 산비둘기 한 마리가 필요했다. 양을 드릴 형편이 안 될 때는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로 대체할 수 있었는데, 요셉과 마리아는 형편에 맞춰 비둘기 두 마리를 드리기로 했다. 목자가 일 년 된 어린 양을 한 마리 주겠다고 했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는 요셉도, 마리아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하는 것이 옳다며 받지 않았다. 

 이와 더불어 첫아들을 위한 속전 역시 드려야 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모세의 형인 아론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생물의 처음 나는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네 것이로되, 사람의 처음 난 것은 반드시 대속할 것이요. 부정한 짐승의 처음 난 것도 대속할 것이며, 그 사람을 속할 때에는 난지 일 개월 이후에 네가 정한 대로 성소의 세겔을 따라 은 다섯 세겔로 속하라. 한 세겔은 이십 게라니라.”

 이 속전을 위한 은 다섯 세겔까지 준비한 요셉과 마리아는 미크바에 몸을 담가 정결하게 한 후,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지만, 산 위쪽 길로 가면 성 서쪽에 난 문으로 들어간다. 문을 들어서면 헤롯의 궁전과 하스모니안 왕조의 궁전이 좌우로 보이고, 화려한 상부 도시의 건물들이 즐비하게 나타나는데, 그 어떤 건물도 성전의 아름다움에 비할 바는 못 되었다. 성전을 둘러싼 성벽을 통과하자, 지붕에 금박을 씌운 거대한 회랑들이 보였다. 아침 햇살을 받아 번쩍거리는 회랑을 지나, 요셉과 마리아는 이방인의 뜰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보시오.”

 “네?”

 한 노인이었다. 하얀 머리에 부드러운 미소를 띤 그의 모습은 천사의 모습처럼 평안해 보였다.

 “저는 시므온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제게 메시야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을 주신 적이 있는데, 그 말을 믿고 저는 평생을 메시야를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령께서 저를 성전으로 인도하시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왔더니, 여러분과 아기를 보았습니다. 이분이 메시야이시지요?”

 요셉과 마리아는 노인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하나님이 계속해서 자신들에게 기쁨을 주고 계심이 느껴져, 그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큰 감동으로 차올랐다.

 “제가 잠시 안아 봐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세요.”

 아기를 품에 꼭 안은 시므온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했다.

 “주님.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이 종을 평안히 놓아주십니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입니다.”

 시므온은 아기를 다시 마리아에게 안겨 주며 말했다.

 “보십시오.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에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고 일어서게도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습니다. 또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르듯 할 것이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입니다.” 시므온이 한 말은 너무나 의미심장했지만, 그는 더 이상의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성전 밖으로 나갔다.

 “지금 저분이, 이 아이로 인해 내 마음이 칼로 찌르듯 아파질 거라고 하신 거죠?”

 “나도 그렇게 이해하긴 했는데….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고 일어서게도 하고,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게 하려고 세우셨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두 사람의 얼굴은 조금 굳어졌다.

 “아무래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알려주신 것 이상의 무언가를 계획하고 계시는가 봐.”

 “처음부터 다 알려주시면 좋을 텐데….”

 요셉은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얼굴을 폈다.

 “마리아. 우리 고민하지 말자.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도 다 주님의 은혜 아니면 불가능했잖아. 우리가 결혼한 것도, 베들레헴에 와서 좋은 분들을 알게 된 것도, 우리 힘으로 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신 거니, 앞으로도 하나님을 믿고 가면 되지 않을까?”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어떤 길로 인도하시든, 다 은혜의 길로 이어지겠죠. 자, 이러지 말고, 빨리 가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요.”

 “그래.”

 두 사람은 가져온 돈으로 비둘기 두 마리를 사서 제사장에게 갔다. 율법에서 규정한 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번제와 죄를 깨끗게 하는 속죄제를 하기 위해서였다. 이 일을 마치면 첫아들을 위한 속전을 드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처럼, 첫 아이는 모두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나님이 주신 이 소중한 아들 역시, 주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물론 원래부터 거룩한 분으로 오신 메시야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 모든 과정 역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할례를 통해 아브라함의 후손인 유대인이 되고, 속전을 통해 유대인 중에서도 하나님께 바쳐진 거룩한 장자가 되므로, 진정한 하나님의 것이 되기 위한 과정이니 말이다. 그를 통해 하나님이 무엇을 계획하시든, 그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아래서 벌어지는 일일 것이다.

 그들이 이 일을 하는 동안, 멀리서 지켜보는 여인이 하나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안나였다. 그녀는 아셀 지파에 속하는 바누엘의 딸이었는데, 결혼 후 칠 년이 지난 다음 남편이 죽고 과부가 되어, 여든네 살이 될 때까지 성전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겨오던 그녀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보세요. 저 아이가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이십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한창 정결례를 행하고 있는 부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이 보기에 부부의 행색은 너무나 초라할 뿐이었다. 깨끗하긴 하지만, 목자들이나 가지고 있을 법한 복장의 남자에 여기저기 기운 흔적이 보이는 옷을 입은 여자. 누가 봐도 가난한 사람들이다. 저런 사람들에게서 메시야가 태어난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오랫동안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바라던 메시야는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와 가장 비슷한 모습을 가진 사람들은 헤롯과 미리암네 1세의 아들인 알렉산더와 아리스토불러스였다. 어느 한 군데 나무랄 데 없는 외모와 좋은 집안을 가진 그들. 그들이 헤롯왕에게 처형되지만 않았더라면, 모두가 나서서 왕으로 밀어주려던 사람들이었으니, 이들에게 가장 낮은 자리에서 태어난 메시야를 알아볼 눈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생각과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그들은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메시야에 대해 가지고 있던 환상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성경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것을 자기들 마음대로 잘못 해석하고 그 해석만이 옳다고 하는 것은 더 큰 문제였다. 아무리 구원을 바라고, 구원을 위해 헌신한다 한들, 잘못된 생각에 빠진 그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보일 수 있겠는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메시야를 알려주신 사람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그들이 아니라, 평생을 낮은 자리에서 섬기던 늙은 노인과 과부였다. 

 요셉과 마리아가 모든 의식을 마치고 성전을 나갈 때, 성전 동편 겟세마네 동산 쪽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리고와 베다니를 거쳐 드디어 예루살렘 앞까지 도착한 동방박사 일행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드나드는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온몸을 물에 담가 깨끗하게 한 후, 가장 좋은 옷을 입고 성의 동쪽 출입문인 수사 문을 지나 성전에 들어섰다. 이방인의 뜰에 있는 솔로몬 행각에 다다른 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에 계십니까?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누가 봐도 지위가 높을 것이 분명한 그들의 질문에 사람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메시야가 태어났다고? 도대체 어디에서? 동요는 점점 퍼져갔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출애굽기 13:1-2, 민수기 18:15-16, 마태복음 2:2, 누가복음 2:29-32, 34-35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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