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언약의 후손이 되기까지

사람들이 아기 예수에게 언약의 증표인 할례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목자의 집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아기가 태어난 지 팔 일째가 되는 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할례를 하고, 정식으로 아기의 이름을 지을 때가 된 것이다. 아기가 할례를 할 정도로 건강하지 않아 미루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어떤 날도 할례보다 우선될 수 없었다. 유대인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노력하는 안식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대속죄일이라 할지라도 할례는 반드시 해야만 했다. 

 옛날, 모든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이 광야를 떠돌 때, 하나님은 그와 언약을 맺으셨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날 그는 존귀한 아버지란 뜻의 아브람에서, 많은 사람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그의 아내 역시 나의 공주라는 의미의 사래에서, 공주라는 의미의 사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와 같이 언약의 증표를 몸에 새기는 날 새로운 이름을 받은 것처럼, 태어난 아기들도 할례의 날에 이름을 받음으로 언약의 후손에 포함된다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었다. 

 할례라는 관습은 유대인들뿐 아니라, 이집트인이나 주변 일부 민족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성인식으로 할례를 한 것과 달리 유대인들에게 할례는 육체에 새겨진 하나님과의 언약의 증표였다.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할례는 유대인뿐 아니라, 그들 공동체에서 함께 살 다른 사람들까지도 반드시 해야만 했는데, 하나님을 믿게 된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고, 온몸을 물에 담그는 정결례를 함으로써 유대인의 하나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물론 하나님은 믿지만 할례는 거부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다른 이방인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취급을 받았다. 그들은 할례를 받지 않았으니, 언약의 후손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모세로부터,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수많은 선지자가 마음의 할례를 강조한 이유를 유대인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은 언약의 후손인 유대인이 되기 위해서는 육신의 할례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을 보내어 새로운 언약을 맺으려 하고 있다. 그 언약은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육신의 할례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스스로의 기준으로 선악을 판단하기 전의 모습과 같이, 자신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을 따르는 마음의 할례, 오직 그것이 필요했다.

 아기의 할례를 축하해주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보통은 가까운 친척들이 함께 하지만, 멀리 갈릴리 지방에 있는 가족들이 참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나마 가까이 있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요즘 어디서 어떻게 지내는지 소식을 알 수 없다. 아들 요한이 태어난 이후 광야로 이주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그 정확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 기쁜 자리에 친척들을 대신해, 메시야의 탄생을 함께 축하하던 모든 목자가 참석했다. 각자 혈통은 다르지만, 천사를 통해 같은 말씀을 받은 그들이었으니 어쩌면 마음으로 맺어진 친척이나 다름없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그들에게 있어서 앞으로 왕이 되실 것이 분명한, 메시야의 할례는 큰 기쁨이었다. 목자들뿐 아니라, 소년과 소년의 아버지까지 참석했다. 소년의 아버지는 많은 음식들을 챙겨와 부족할 뻔했던 음식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대부 역할은 집주인인 목자가 하게 되었다. 천사의 기쁜 소식을 듣고, 자신의 집까지 내어준 그야말로 할례가 진행되는 동안 아이를 안고 있을 중요한 임무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다. 

 요셉은 불로 깨끗하게 소독한 작은 칼과 통증을 잊게 할 포도주를 챙겼다. 아내 마리아를 비롯한 다른 여성들은 모두 집 밖으로 나갔고, 집 안에는 남자들만 남아있다. 깨끗한 옷을 입고 주위를 둘러선 이들. 요셉은 그들 모두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이 중요한 의식을 어떻게 혼자서 치를 수 있었겠는가? 요셉에게 그들은 또 하나의 가족과도 같았다. 그들 하나하나에게 아기를 안겨준 요셉은 마지막으로 아기를 받아 들었다.

 “찬송 받기에 합당하신 창조주께서 저에게 명하신 대로 제 아들을 할례 할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 한마디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던가? 지금 주변을 둘러선 사람들처럼 자신과 아이가 피로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마음으로 이어져 있다. 이 아기는 분명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아들이다.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메시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 내 사랑하는 아들.

 요셉은 감정이 북받쳐 올랐지만, 꾹 참았다. 이제 할례를 하고, 이 아이가 언약의 후손이 되게 해야 한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생긴 아이이니, 이런 할례가 없어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겠지만, 다윗의 후손으로 온 이상 이 아이 역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에 해당되는 사람일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아기를 통해 무엇을 계획하고 계시든 이 과정 또한 이유가 있으리라.

 요셉은 목자에게 아이를 안겨주고, 준비된 작은 칼을 들었다. 이제 때가 되었다.

 

*  *  *


 “마리아, 괜찮아요?”

 “네…. 그런데 기분이 좀 이상하네요.”

 “걱정하지 말아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그렇겠죠?”

 “그럼요. 저 아이가 누군데요. 앞으로 우리의 왕이 되실 메시야시잖아요.”

 “그렇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이기도 하잖아요. 똑같이 피 흘리고 아파할….”

 목자의 아내는 몸을 바르르 떠는 마리아의 손을 잡아 주었다. 따스한 온기가 마리아에게 전해졌다.

 “전 딸을 두 명 낳았어요. 제 눈엔 다 예쁘기만 한데, 사람들은 첫째를 레아, 둘째를 라헬이라고 별명처럼 부르더라고요. 아무래도 둘째가 더 예뻐서 그런 것 같아요.”

 마리아는 고개를 돌려 목자의 아내를 바라보았다.

 “첫째는 몇 년 전에 결혼해서 떠났고, 둘째는 여기 근처에 살아요. 둘째는 자기를 똑 닮은 아들을 낳았는데, 얼마나 예쁜지 제 모든 걸 다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아이죠. 재작년 그 아이의 할례 때 저도 얼마나 떨리는지, 지금의 마리아와 같았어요. 온갖 걱정이 들고, 혹시나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하지 하고 말이에요.”

 목자 아내의 얼굴에 그리운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제가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하나님이 지켜주실 아이는 어떻게 해도 지켜주시더라고요. 마리아는 잘 모르죠? 예전 유대 상황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네.”

 “제가 어릴 때는 유대 온 땅이 전쟁 때문에 난리였어요. 다들 살아남기에도 벅찬 시절이었죠. 아마 그 당시 제 나이가 지금의 마리아 정도 됐을 거예요. 그때 아버지가 조금만 선택을 잘못했더라도, 저는 이 자리에 없을 거예요. 아무튼 그 시절을 겪으며 확실히 느꼈어요. 하나님이 지켜주시는 사람들은 반드시 산다.”

 “그럼 죽는 사람들은요? 하나님이 지켜주시지 않는 사람들인가요?”

 “그렇진 않을 거예요. 남편과 제가 결혼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목자 할아버지의 죽음이었거든요. 그 죽음이 없었다면, 제가 남편을 얼마나 좋아하고 있었는지 깨닫지 못했을 거예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우린 서로를 돌아보게 되었어요. 그저 주인의 딸과 종이었던 사람으로 기억 속에 잊혀갈 우리가 할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있었어요. 이런 할아버지의 죽음이 하나님이 지켜주지 않으셔서 죽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도 아직 모든 걸 이해하진 못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아요.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낸다면, 의미 없는 죽음은 없다.”

 마리아는 잠시 생각에 빠진 듯, 먼 산을 바라보았다. 마리아에게서 보이던 떨림은 이내 사라지고, 평온한 미소만이 남아있었다. 목자의 아내도 고개를 돌려 먼 산을 바라보았다. 바로 그때, 집 안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응애. 응애.”

 목자의 아내가 몸을 일으켰다.

 “자, 이제부터는 우리가 바빠질 시간이네요. 아, 마리아는 좀 쉬어요. 음식은 이미 다 준비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저도 도울게요.”

 “그래 주면, 나야 고맙죠.”

 집 안엔 축복기도 소리가 가득했다. 기쁨으로 서로를 축복하고 안아주는 그들의 모습 속에 주님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 아브라함을 자신의 언약 백성으로 삼고, 그 후손까지도 축복하신 하나님의 마음. 그 육신의 언약을 마음의 언약으로 넓혀, 자신을 믿는 모든 사람을 축복할 하나님의 계획은 이렇게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누군가가 외쳤다.

 “우리의 메시야로 오신, 예수를 축하하는 잔치를 벌입시다.”

 “와!”

 기쁨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에도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창세기 17:1-14절은 개역 한글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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