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마리아, 그녀는 누구일까?

나사렛의 우물가에 있는 버드나무 아래에 지친 요셉이 앉아서 쉬고 있습니다.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나사렛으로 돌아오는 요셉의 발걸음은 오늘따라 유난히 무거웠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보냈지만, 어제저녁 옛 친구의 집을 방문한 뒤로 답답해진 마음이 하루 종일 그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이삼 년 전쯤 같은 현장에서 일하며 알게 된 사람이었다. 둘은 나이도 같고, 자라난 가정환경도 비슷했는데,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율법을 지키는 삶을 배우며 살았다는 것마저 똑같았다. 그래서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요셉도 그와는 금세 마음이 맞았고, 몇 개월 동안 같은 숙소에서 머물며 더욱더 친해질 수 있었다.

 당시 두 사람의 공통된 관심사는 결혼이었는데, 둘 다 결혼할 나이가 되어 있었지만, 경제적인 문제로 생각조차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유대인들은 보통 결혼 일 년 전쯤 결혼에 준하는 효력을 가진 약혼을 하게 되는데, 그때 두 집안이 만나서 케투바라 불리는 결혼 서약서를 쓰게 된다. 이 서약서에는 신랑신부가 지켜야 할 각종 의무와 아내의 지참금 목록, 남편이 아내의 집안에 지불해야 하는 납폐금이 적혀 있었고, 이혼을 하게 될 경우 남편이 주어야 할 엄청난 배상금 같은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내의 지참금에는 약간의 땅과 양이나 염소 같은 가축들까지 포함되곤 했는데, 남편 역시 이에 상응하거나 그 이상의 돈을 아내의 집안에 주는 것이 유대인의 일반적인 결혼 관습이었다.  

결혼 적령기의 젊은 남자가 이 정도의 금액을 가지고 있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서 보통은 신랑의 부모가 이것을 대신 내주곤 했다. 하지만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도 많아서, 어떤 랍비는 그 금액을 서약서에 적어만 놓았다가, 이혼을 하게 되면 아내에게 훨씬 더 많은 금액을 주도록 가르쳐서, 결혼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이혼을 막는 효과를 노리기도 했다. 이렇게 하면 좀 더 쉽게 결혼을 할 수 있었지만, 어떤 방식을 사용할지는 신부의 부모가 선택하는 문제였기 때문에 결혼을 준비하는 남자들은 이 돈을 낼 방도를 어떻게든 마련해 놓아야 했다.

 요셉과 친구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매일 녹초가 되도록 열심히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그러나 쉬어야 하는 날이 많은 유대인의 특성상 벌 수 있는 돈은 한계가 있었고, 생활비와 각종 세금으로 나가는 돈, 그리고 가끔씩 다칠 때마다 드는 치료비까지 생각하면 결혼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까지의 과정이 너무나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문제로 고민하던 어느 날, 친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이방인이 운영하지만, 임금을 많이 주는 곳으로 일터를 옮기게 되었다. 그는 요셉에게 함께 가자고 거듭 권유했지만, 그곳에 가면 유대인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을 못 지키게 될 수도 있어서, 요셉은 그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며 반대로 그 친구를 설득하려 했었다. 하지만 친구는 끝내 이방인의 일터로 떠나갔고, 두 사람의 사이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런데 며칠 전 우연히 그 친구를 다시 만나면서 그동안의 일을 듣게 되었다. 이 년여가 흐르는 동안 자신의 삶은 거의 변화가 없었는데, 친구는 그사이 결혼을 하고 귀여운 아이까지 낳아서 보란 듯이 잘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친구는 아내와 아이를 꼭 보여주고 싶다며 저녁 식사에 초대했는데, 그 초대 날짜가 바로 어제였다. 

 어제저녁, 요셉은 선물을 들고 친구 집을 찾았고, 풍성한 음식을 대접받으며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을 보냈다. 요셉은 진심으로 친구를 축하하며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복을 주신 것에 감사를 드렸고, 친구 역시 그런 요셉의 말에 고마워했다. 그때까지는 모든 것이 좋았었다. 그러나 식사 후에 친구가 또다시 이방인의 일터로 옮길 것을 권유하면서, 요셉의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친구는 모든 율법을 다 지키며 사는 것만이 잘 사는 게 아니라며, 자신처럼 살아도 하나님을 충분히 믿을 수 있다고 강한 어조로 설득했다. 율법에 충실한 바리새인들이 들으면 큰일 날 말이었지만, 이미 이방인들과 어울려 사는 수많은 유대인들 역시 이런저런 타협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조언이기도 했다.

 요셉이 만약 자신의 거룩한 삶을 지키면서 인생마저 잘 풀렸다면, 그 말을 듣는 즉시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사는 것은 잘못이니, 다시 하나님을 바르게 믿으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그의 입장에서는 친구의 말에 반박할 어떠한 명분도 없었다. 그는 그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이 결국엔 더 좋은 길로 인도받는 것이라고 되풀이하며 자신의 삶을 지탱해 온 신념을 방어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의 집을 떠나와서야 스스로도 납득시키지 못하는 이 대답을 멈출 수 있었지만, 한번 그의 마음에 드리운 의심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오랜 고민까지 건드리며 그의 신념을 계속 흔들어 놓고 있었다.

 옛날 시편 기자가 그러했듯 그 역시 어릴 적에는, 자신의 탐욕을 위해 다른 사람들을 억압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두시는 하나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갈릴리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일터를 찾아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그의 부모님은, 이방인은 물론이고 같은 유대인에게도 무시와 조롱을 많이 당했었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은 아니었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요셉의 마음에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그들을 미워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잘못과 허물을 보라고 가르치셨고, 율법을 잘 지키며 의롭게 사는 것이 가장 사람답게 사는 것임을 삶으로 보여주셨다. 요셉도 이런 부모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려 노력하다 보니, 처음에는 걸려 넘어지던 이런 문제들도 이제는 그냥 넘어갈 수 있을 정도는 되어 있었다. 

 그런데 힘든 현실 속에서 함께 고민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던 친구가 세상과 타협한 뒤에 잘 풀리는 모습을 보니, 자신이 그동안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정말 옳은지에 대한 깊은 회의가 밀려들었다. 그리고 인생의 중요한 시기마다 있었던 사건들에서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삶이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근거 없는 후회가 그의 괴로움을 가중시켰다. 이 괴로움은 하루를 보내는 동안 더욱더 세력을 키워서 지금껏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부모님에 대한 원망의 마음까지 이르게 되었다.

 요셉은 생각했다.

 ‘만약 자신의 뒤에 든든한 부모님이 계셨다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부모님은 왜 고향 베들레헴을 떠나 이 먼 갈릴리까지 오셨을까? 또 갈릴리로 왔다면 확실하게 정착할 것이지, 왜 아직도 본적을 베들레헴에 남겨 두어서 자신이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으로 살게 만들었을까?

 왜 부모님은 자신에게 거룩한 삶을 강요하셨을까? 남들처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도 된다고 가르쳤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 텐데….’

 생각이 깊어 갈수록 요셉이 느끼는 답답함은 그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갔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은 그의 부모님이 그를 고생시키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헤롯왕 13년에 유대와 그 주변 전역에 극심한 기근이 발생했는데, 이와 동시에 전염병까지 창궐해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기근은 2년 동안 이어졌는데, 첫해가 지나기 전에 비축해 놓은 식량이 다 떨어졌고, 둘째 해에는 땅에 심은 씨앗까지 메말라 버렸다.

 헤롯왕은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왕궁에 있던 금과 은으로 된 가구와 식기들을 처분했고, 로마의 이집트 총독에게 양식을 사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또 양과 염소가 거의 초토화될 정도로 죽었기 때문에 헤롯은 추위에 떠는 사람들을 위해 의복을 사서 나눠주기도 했고, 이웃 나라에는 종자를 지원하기도 했다.

 이러한 헤롯의 노력으로 사람들은 다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기근의 여파는 그 이후로도 주민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고, 이 와중에 요셉의 부모님은 먹고 살기 위해 아직 어렸던 요셉을 데리고 고향을 떠나는 선택을 한 것이었다. 그렇게 떠나온 베들레헴이었지만, 갈릴리에서의 삶은 그들을 더욱더 힘들게 만들었다. 애초에 가난했던 데다가, 땅을 팔고 구한 얼마 되지 않는 이주 자금마저 갈릴리로 오는 동안 강도에게 빼앗겨서 그들은 갈릴리에서 제대로 된 출발을 할 수가 없었다. 살기 위해 빌린 돈은 더 큰 이자가 되어 되돌아왔고, 요셉의 아버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며, 아들을 잘 키워낸 것이 요셉의 부모님이기에 그들은 칭찬을 들어야 하지, 원망을 들어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이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던 요셉은 나사렛으로 오르는 동안 갑자기 닥친 이 독한 원망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나서 더 잘되는 것처럼 보이는 친구의 모습은 그의 믿음을 계속 시험했다. 단 한 번만 타협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텐데 왜 고집을 부리냐는 마음은 그의 가치관과 과거 전부를 흔드는 커다란 유혹이었다. 요셉은 점점 더 깊은 괴로움에 빠져들어 갔다.


*  *  *


 나사렛의 어귀에는 우물이 하나 있었다. 주민들은 날씨가 시원해지는 아침이나 저녁때 우물에 와서 물을 길어가곤 했는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어디나 그렇듯 두세 사람만 모여도 이야기꽃이 피어나 마을의 소식을 가장 빨리 들을 수 있는 장소로 변해갔다. 마을 사람들은 이곳에서 각자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이야기하며 공감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보냈는데, 이런 평범하고 사소한 일상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요셉에게는 그 모습이 너무나 부럽고 보기 좋은 것이었다. 그래서 요셉은 나사렛에 머문 이후로 시간이 날 때마다 우물가에 나와 있곤 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지 못해, 그저 그들 근처에 홀로 앉아 있을 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는 자신의 삶을 가득 채우고 있는 깊은 외로움을 잠시나마 잊고 지낼 수 있었다. 

 바로 그런 장소를 요셉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하루 종일 고민에 시달렸던 그는 도저히 집으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우물가 근처 버드나무에 몸을 기대고 앉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도 편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답답한 마음이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마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낯선 외부인인 자신에게 먼저 다가오는 사람이 없을 것이란 사실 또한 그간의 삶을 통해 알고 있었다. 

 단 한 사람만, 단 한 사람만 있다면….

 기도하듯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사람들은 각자에게 익숙한 대상을 찾았고, 서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셉은 갑자기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 보여 울고 싶어졌다. 역시 자신은 이 세상에서 혼자다. 아무도 자신의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 살아오면서 수없이 경험했던 그 실망을 지금, 이 순간 다시 경험하는 요셉은 외톨이로 남겨져 있는 이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금세 눈물이 흐를 것 같은 눈을 꼭 감고서, 이 힘든 시간이 지나가길 간절히 바랐다. 

 얼마나 지났을까? 답답한 현실을 잠으로 회피했던 요셉은 시원한 바람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 눈물이 말라서 꼭 달라붙은 눈꺼풀이 떠지지 않아 잠시 그를 당황시켰지만, 보이지 않으니 그를 둘러싼 세상이 오히려 선명하게 들려왔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치는 바람에 잎사귀들이 우수수하고 흔들리는 소리, 근처 수풀에서 들려오는 낮은 풀벌레 소리, 나무 위에서 한가로이 지저귀는 새들의 노랫소리, 사소한 일상을 나누는 사람들의 목소리.

 이 소리들은 요셉의 마음에 알 수 없는 위로를 가져다주었고, 그의 마음속에서 아름다운 그림이 되어 한 조각, 한 조각 맞춰져 갔다. 이제 이 그림의 마지막 한 조각은 요셉에게 달려있었다. 이 평화로운 세상에 참여하기 위해서 그는 선택을 해야 했다. 수많은 욕심과 불만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채울 것인지, 아니면 일상 속의 평범하지만, 작은 행복들에 감사하며 하루를 살아갈 것인지. 

 남들처럼 결혼하고 가정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생을 지켜온 거룩한 삶 역시 중요했다. 지금 당장 타협을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작은 일부터 하나님을 외면하기 시작한다면 다음엔 더 큰 문제에서 하나님을 외면할 것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하나님과 관계없는 일상을 살면서도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은 정말 그런 삶을 살고 싶은 것일까?

 요셉은 마음속으로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지금의 답 없는 현실이 얼마나 더 이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이내 숨이 막힐 듯 답답해졌다. 어느 쪽으로 가든 잃을 것만 보이니, 그는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더 이상 고난을 당하기 싫은 것이 무슨 욕심이냐며 마음속으로 소리쳤지만,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지만, 요셉은 아직도 고난을 기꺼이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그가 또다시 깊은 시름에 빠져들려 할 때, 생기 넘치는 밝은 목소리가 그의 혼란한 마음을 뚫고 들어왔다.

 “안녕, 일찍 나와 있었네.”

 “마리아, 왜 이렇게 늦었어?”

 “오늘은 엄청 일이 많았어.”

 “힘들지 않아? 요즘 너 볼 때마다 걱정돼 죽겠어.”

 “힘들어! 근데 괜찮아.”

 “진짜 너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고생은 무슨. 나만 일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러니까 문제지. 아주머니는 몰라도 어린 네 동생들까지 일한다는 게 말이 돼? 걔들이 뭘 잘못했다고….”

 “잘못한 거 없어. 그냥 상황이 그런 것뿐이야.”

 “아저씨가 그렇게 심하게 다치지 않으셨다면 너희 땅도 지킬 수 있었을 거고, 그랬으면 이렇게 고생 안 해도 됐을 텐데.”

 “이미 일어난 일은 어쩔 수 없잖아.”

 “어쨌든 치료비 때문에 돈을 빌렸다가 일이 이렇게까지 된 거잖아. 넌 원망 안 돼?”

 “사고 난 게 아빠 잘못은 아니잖아. 지금은 살아계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어.” 

 “아주 효녀 났네, 효녀 났어.”

 “그걸 이제 알았어? 헤헤.”

 “말이라도 못하면 밉지는 않지! 그나저나 아저씨는 언제쯤 나으실 것 같아?”

 “모르겠어. 아직도 거동을 잘 못하시니….”

 “어휴, 너희 집이 부자였다면 이런 고생 안 해도 됐을 텐데…. 마리아! 너는 진짜 나중에 돈 많은 사람이랑 결혼해. 그게 네가 살 길이야.”

 “뭐 부자든 아니든 부모님이 보시기에 좋은 사람과 결혼하게 되겠지.”

 “바로 그게 문제라니까. 너희 부모님은 믿음을 너무 많이 따지시잖아.”

 “그게 뭐 어때서 그래?”

 “아니 세상에 진짜 믿음이 좋은 사람이 누가 있겠어. 율법을 엄청나게 잘 지키는 사람? 아니면 성경 지식이 풍부한 사람? 성전에서 열심히 섬기는 사람? 그들이라고 다 믿음이 좋을 것 같아?”

 “물론 그렇진 않겠지. 사람은 누구나 문제가 있으니까.”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누구나 문제가 있을 바엔, 돈이라도 많아서 편하게 살 수 있는 게 좋지 않겠냐는 거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돈 때문에 믿음을 포기할 순 없어.”

 “왜?”

 “나는 믿음을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 일상적으로는 그것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나타나는 거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무언가를 선택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대로 따르는 것을 말하는 걸 거야.”

 “계속해 봐.”

 “그런데 만약 어떤 일에서 하나님을 선택하면 돈을 잃고, 돈을 선택하면 하나님과 멀어진다고 생각해 봐. 그럴 때 적당히 하나님과 멀어짐으로써 적당히 돈을 벌 기회를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진짜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흠….”

 “물론 극단적인 비유라는 걸 알아. 실제 생활에서는 그사이 어딘가를 선택하며 살아가겠지. 하지만 최소한 믿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할 수 있는데, 그것조차 안 하는 사람을 돈이 많다고 만날 수는 없잖아.”

 “그러니까 네가 말하는 요지는 돈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믿음이 있고 없고가 중요하다는 말인 거지? 돈이 없어도 믿음은 포기할 수 없다는 거.”

 “그래, 내가 함께 사는 건 돈이 아니라, 사람이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너무 의롭게 살지도 말고, 너무 악하게 살지도 말라는 말이 나오잖아. 그 말처럼 적당히 타협하고 살면 안 될까?”

 “그 ‘적당히’가 되면 참 좋을 텐데, 난 그게 안 되더라고. 욕심이란 건 끝이 없어서, 한 번 시작되면 죄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엔 사망으로 인도한다고 우리 아버지가 말씀하셨어.”

 “진짜 너희 아버지다운 말이네.”

 “그러니 난 부자든 가난하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진짜 믿음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게 될 거야.”

 “근데, 만약에 그 믿음 있는 사람이 가난한 것뿐만 아니라, 다른 조건까지 안 좋으면 어떻게 할 거야? 예를 들어서 부모님이 안 계신다거나, 배운 게 없다거나 하는 거 말이야. 결혼은 현실이라는 말도 있잖아.”

 “그래, 그 말도 일리가 있어. 하지만 그 사람이 정말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짝이라면, 내가 어떻게 하겠어? 그럴 땐, 그 모든 문제를 뛰어넘을 수 있는 사랑을 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겠지.”

 “어휴, 고집은 진짜…. 그래, 넌 꼭 그런 사람과 만나라. 난 믿음도 있고 돈도 많고,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큰 사람과 결혼할 거니까.”

 “어째 몇 개가 더 늘어난 것 같다.”

 “기분 탓이야, 기분 탓. 하하.”

 “뭐 그렇다고 해줄게. 암튼 내일 보자. 난 이제 들어가서 저녁 준비해야 해.”

 “그래, 조심히 들어가.”

 “응, 안녕.”

 힘든 상황에서도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밝게 웃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요셉은 갑자기 스스로가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결혼 좀 못하고 있다고 부모님을 원망하고, 세상과 타협할 생각을 하던 자신에 비해, 그녀는 아무런 불만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고 있었다.

 욕심 때문에 사망으로 향하던 자신과 달리, 그녀는 고난 속에서도 진정한 생명이신 하나님을 향해 나아갔다. 그녀가 말하던 믿음 좋은 사람이 세상에 있다면, 바로 그녀 자신일 거라고 요셉은 생각했다.

 요셉은 눈을 떠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굳게 붙어 있는 눈꺼풀은 도저히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힘을 줘도 변하지 않는 상황에 또 한 번 좌절하려는 찰나,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는 작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

Post a Comment

Next Post Previous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