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임마누엘 그리고 주의 길을 예비할 자

요셉과 마리아,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서로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요셉은 온몸을 씻고, 얼굴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안식일에 회당에 갈 때만 꺼내 입는 깨끗한 옷을 입고 우물가로 갔다. 물을 길어 마리아가 준 나무 그릇에 담은 요셉은 그릇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릇을 들어 물을 마시자 시원한 생수가 그의 내면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는 다시 태어난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어제의 자신과 오늘의 자신은 다른 사람이다. 하나님을 만난 인생과 만나지 못한 인생이 같을 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예전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그는 마리아의 집으로 향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어있는 이른 시간, 마을을 감싸는 새벽 공기가 그의 기분을 차분히 가라앉혀 주었지만, 희망에 부푼 그의 마음까지 잠잠히 만들지는 못했다. 그의 얼굴에 활짝 피어난 미소는 지금 심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진정한 사랑을 찾고 싶다던 꿈이 이루어져서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와 마리아의 앞날을 인도하실 것이 확실히 믿어지니 두려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저 멀리 마리아의 집이 보인다. 사랑하는 마리아가 있는 곳. 힘들었던 시간, 고달팠던 순간. 아무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느꼈던 그 시간을 지나 지금 여기에 서 있다. 그토록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싶었는데, 자신의 마음을 이해받는 것은 결국, 타인의 마음에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그동안 사람들에게 미움받지 않으려고, 잘 보이기 위한 노력만 했지, 정작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의 반응 하나하나에 집착하며 과도한 의미 부여를 했다. 사람들이 자신을 나쁘게 보지 않을까 하는 문제에만 집중하니 사람들에게 받을 것은 상처밖에 없었다.

 마리아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할 때는, 세상에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거절당하고 버림받은 기분, 그것 때문에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던가? 그러다 임신한 마리아의 모습까지 보게 되니,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진실은 자신이 생각한 것 보다, 훨씬 더 단순했다. 그녀의 잘못도 아니고, 그녀가 자신을 무시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요셉은 스스로 만들어낸 환상 속에 갇혀 자신에게 상처 주고 있었다. 그를 힘들게 했던 것은 남들의 시선이 아니라 자신의 시선이었다. 그렇게 흘려보낸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지만, 또 그 시간이 있었으니, 자신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타인의 시선에 메여 살지 않겠다. 이제 한순간, 한순간 감사하며 살 것이다. 이제는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표현하리라. 요셉의 마음에는 앞날에 대한 기대가 넘쳐 흐르고 있었다.

 요셉은 마리아의 집 문을 조용히 두드렸다. 너무 작게 두드렸나 싶을 찰나, 문 쪽으로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열린 문 안에는 사랑하는 마리아의 모습이 있었다. 밤새 잠을 뒤척였는지, 수척한 모습의 마리아. 걱정스러워 보이지만, 또 어딘가 당당해 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보며 요셉은 미소를 지었다. 

 “잠시 걸을까?”

 두 사람은 마을을 벗어나 푸른 새벽의 숲으로 들어섰다. 숲길을 걷는 두 사람 주위로 아침을 반기는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들꽃들은 녹색의 잡목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노란 꽃, 붉은 꽃, 파란 꽃, 하얀 꽃, 분홍 꽃…. 그곳에 아름답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마리아, 난 이 마을이 좋아.”

 마리아는 고개를 돌려 요셉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당신도 참 좋아. 그런데…. 그동안 내가 너무 일방적으로 당신을 좋아했던 것 같아. 당신이 나를 싫어할까 봐, 어떻게든 잘 보이려 하면서도, 당신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어.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동들이 당신을 숨 막히게 했을 것 같아. 마리아, 그동안 미안했어.”

 마리아는 계속해서 요셉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친척에게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난 정말 실망했었어. 당신에게 무시당한 것 같고, 내가 당신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사람인 것 같아, 마음이 너무 아팠지. 그러다 어제 당신을 보게 되었어. 임신한 당신을….”

 마리아는 팔로 배를 감싸며 말했다. 

 “당신을 무시한 게 아니에요. 다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요셉은 발걸음을 멈추고, 마리아의 눈을 바라보았다.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어떻게 그걸….”

 요셉은 미소를 지었다.

 “어젯밤 꿈속에서 들었어.”

 요셉의 눈에 맑은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한가득 차오른 눈물이 그의 미소를 타고 흘러내리자, 마리아가 손을 들어 그 눈물을 닦아 주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 말이 당신을 통해 이루어지다니. 이게 꿈은 아니겠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야가 바로 당신, 아니 우리의 아이가 되다니.”

 마리아도 미소를 지었다. 아침 햇살을 가득 품은 그녀의 눈망울에 투명한 눈물이 고였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거예요.”

 요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을 흘리는 마리아를 품에 안아 토닥여주는 요셉. 그의 따스한 손길을 느끼며, 마리아는 눈을 감았다.


*  *  *


 숲길을 걷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 손을 마주잡은 요셉과 마리아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마리아,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어.”

 “뭔데요?”

 “혹시 내가 안 받아주면 어떻게 하려고 했어? 어쩌면 내가 당신을 고발할 수도 있었잖아.”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결백하지만, 당신이 그걸 믿지 않으면 저로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으니까요. 당신에겐 당신의 선택이 있는 거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 어떤 길을 가게 하실지라도 저를 지켜주실 것이란 확신이 있었어요. 힘든 길일 수도 있지만, 믿고 가야죠. 어? 혹시 실망했어요?”

 요셉은 황급히 표정을 바꾸었다.

 “전혀 아니야.”

 “에이, 강조하는 거 보니. 제대로 실망했네요.”

 “아니라니까.”

 억울해하는 요셉의 표정을 보며, 마리아는 더 크게 웃었다.

 “삐쳤네, 삐쳤어.”

 “아니라니까. 칫.”

 토라진 듯, 입가를 삐죽거리는 요셉을 보며 마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당신이야말로 괜찮아요? 아직은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으니, 사람들이 당신을 오해하고 뒤에서 많이 수군거릴 거예요. 당신이 이 아이의 아버지라 믿고, 당신을 욕할 텐데 그래도 괜찮아요?”

 “이제는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을 거야. 내게 소중한 사람은 당신이지, 그들이 아니거든. 그들의 눈치를 보느라, 당신에게 상처 주는 일 따위는 없을 거야. 당신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단 하나의 유일한 사랑이니까.”

 “고마워요.”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요셉을 보며 마리아가 다시 말했다.

 “우리 잘 해낼 수 있겠죠?”

 이것은 요셉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하는 질문이었다.

 “그래. 우린 잘할 수 있을 거야.”

 밝게 빛나는 아침 햇살 속에서 두 사람의 입술이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삶 역시 이제부터 하나님 안에서 하나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처럼 그들은 절대 깨지지 않는 굳건한 믿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아껴주게 될 것이다. 두 사람은 마리아의 배가 더 부르기 전에 급히 결혼식을 거행했고 요셉은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아내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


*  *  *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엔 케렘에 숨어 사는 동안 예루살렘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 변화는 대제사장의 교체였다. 헤롯의 장자 안티파테르가 헤롯을 독살하려다 실패하고 감옥에 갇히게 된 일이 있었는데, 대제사장의 딸이었던 마리암네 2세가 이 음모를 알면서도 숨긴 정황이 발견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왕후 마리암네 2세와 어부지리로 왕위 계승자가 될 뻔한 빌립 왕자가 함께 폐위되었고, 대제사장 시몬 역시 맛다디야 벤 테오빌로로 교체되었다.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대제사장의 권력이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자,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권력을 가졌던 자와 새롭게 권력을 가지려는 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해야 할 성전이 세상의 권력을 가지기 위한 더러운 투쟁의 장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모든 제사장의 관심이 어느 편이 이길까 하는 것에 쏠려 있을 때, 성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가랴는 여전히 자신의 사명을 말없이 감당하고 있었다. 삶으로 가르치는 인생, 그것을 잘 배워가고 있는 사가랴였다.

 해산할 때가 되자, 출산을 돕기 위해 친척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마리아는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고향으로 떠나갔는데, 이대로 두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더 안전하다며 여러 번 설득했지만, 마리아는 돌아가겠다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면, 자신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이 있다는 말에 결국 그녀를 보내줄 수밖에 없었는데,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건강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친척들과 이웃들이 함께 기뻐해 주었지만, 가장 기쁜 건 진실을 알고 있는 사가랴와 엘리사벳 두 사람이었다. 그리고 여드레째가 되는 날, 아이에게 할례를 행하기 위해 더 많은 친척이 찾아왔다. 

 “엘리사벳, 아이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사가랴라고 지으면 어떨까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해야 해요.”

 “하지만 우리 친척 가운데 아무도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가문에 이어져 오는 이름 중에 하나를 사용하는 게 맞아요.”

 “아니요. 이 아이의 이름은 요한입니다.”

 “허허…. 이것 참. 여호와의 사랑하는 자라는 뜻은 좋지만, 그래도 이건 아닌데….”

 엘리사벳의 고집에 친척들은 무척이나 당혹해했다. 그들의 상식선에서는 친족이나, 조상을 통해 이어져 온 이름 중에 하나를 사용하는 것이 맞았다. 그들이 아는 한 그들의 가문에 요한이라는 이름이 나올 이유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도저히 꺾을 수 없는 엘리사벳의 강경한 태도에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사가랴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사가랴에게 간 사람들은, 그라면 제대로 된 판단을 하리라 기대하며 아이의 이름을 무엇으로 하려 하는지 손짓으로 알려 달라고 했다. 그는 서판을 달라고 해서 거기에 [요한]이라 썼다. 사람들은 모두 이상하게 생각했다. 엘리사벳에 이어 사가랴도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왜 이들은 당연히 지켜야 할 관습을 어기려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여전히 유대인으로서 지켜야 할 관습에 얽매여 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를 통해 이어져 온 장로들의 유전이었다. 하지만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사람의 말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선택했다. 하나님의 뜻과 장로들의 전승 중에 무엇이 옳은지 선택하라고 하면,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그렇게 사가랴가 하나님의 뜻을 선택한 순간, 사라졌던 그의 목소리가 다시 돌아왔다.

 사가랴는 깊은 감동에 휩싸여, 크게 외쳤다.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는 자기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사가랴는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말로는 표현 못할 애정이 담겨 있었다.

 “아가야.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님보다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다정한 목소리로 말하는 사가랴와 그 말을 듣고 방긋 웃음을 짓는 아기. 두 사람을 보는 엘리사벳의 얼굴에 따스한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사가랴의 말을 들은 친척들 사이에서는 웅성거림이 퍼져갔다. 주님의 길을 예비할 아이,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을 얻는 지식을 가르쳐 줄 아이.

 “이 아이가 대체 어떤 사람이 될까?” 

 친척들 사이에 전해지던 이 소문은 점점 퍼져, 온 유대 산골에 화제가 되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엔 케렘을 떠나 광야로 숨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기 시작했다.


본문에서 인용된 마태복음 1장 20-21, 이사야서 7:14, 누가복음 1:68-79의 구절은 개역 한글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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