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도시의 하늘에 보름에 가까운 달이 휘영청 떠 있다. 밝은 달빛은 온 도시를 비추었고, 도시는 수많은 등불로 그 빛에 화답했다. 곧 있을 유월절 저녁 식사를 위해 마지막까지 누룩을 없애려고 집집마다 켜놓은 등불들이었다.
도시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자, 제자들은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들은 시간이 갈수록 예수님의 말씀이 어려워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입 밖으로 꺼내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 말씀들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여쭤보고 싶은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이 오시면 이 모든 것을 기억나게 하고, 가르쳐주실 거라는 말씀으로 이 질문을 막으시니 그들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예수님은 도시를 벗어나 기드론 골짜기에 이르기까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기드론 골짜기는 우기인 겨울에 검고 탁한 물이 흐른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계곡이다. 건기에는 물 없이 마른 골짜기를 이루는데, 이곳에 있는 기혼 샘만큼은 일 년 내내 마르지 않고, 생수를 공급해 주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실로암 못의 물이 바로 여기에서 나온 것이었다. 히스기야 왕은 성벽 밖에 있는 기혼 샘에서부터 성안의 실로암 못으로 연결되는 지하수로를 만들어, 전쟁에 대비했는데, 실제로 적군이 쳐들어와 예루살렘이 포위되면 빗물을 제외하고, 남은 거의 유일한 생수가 이 기혼 샘의 물이었다.
이런 이유로 기혼 샘은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있어서 여러모로 중요한 의미를 지녔고, 이것은 다윗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기혼 샘으로부터 이어지는 물 긷는 통로가 없었다면, 다윗은 여부스 족속이 차지하고 있던 이 땅을 점령하기 어려웠을 것이고, 그랬다면 이후에 거룩한 도성이라 불리는 예루살렘 성과 성전의 기틀조차 마련하기 힘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다윗왕은 아들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는 대관식을 기혼 샘에서 하도록 명령했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생명을 주는 곳이 기드론 골짜기였기에, 이곳에는 예로부터 왕의 골짜기와 왕의 동산 같은 아름다운 장소들이 주변에 많이 만들어져 있었다. 예수님은 이곳을 지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시니라. 무릇 내 안에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이를 깨끗게 하시느니라. 너희는 내가 일러준 그 말로 이미 깨끗게 되었으니,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누구든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있으면, 그 사람은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태우느니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으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하니, 너희로 서로 사랑하라.”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자연스럽게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 골짜기를 떠올렸다. 생명이 넘치는 기드론 골짜기와 불로 태워지는 쓰레기가 가득한 죽음의 골짜기, 힌놈. 이렇게 생각하면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자신들을 가지라고 말씀하신 그 의미가 조금은 쉽게 와 닿는 것 같았다. 예수님은 지금 자신의 안에 있어야만 생명을 지키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님의 안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새 계명 ‘사랑’이었다. 수많은 율법 조항처럼 죄인을 양성하는 계명이 아니라, 오직 사랑. 서로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는 것. 또한 그 사랑의 대상에는 사람뿐 아니라 예수님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예수님을 목숨조차 아끼지 않고 사랑한다면, 이미 그 사람은 종이 아니라 친구였다. 예수님께서 친구에게 아까워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이니,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니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행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를 보내신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라. 내가 와서 저희에게 말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그 죄를 핑계할 수 없느니라. 나를 미워하는 자는, 또 내 아버지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아무도 못 한 일을 저희 중에서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저희의 죄가 없었으려니와, 지금은 저희가 나와 내 아버지를 보았고, 또 미워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저희 율법에 기록된바, ‘저희가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였다.’ 한 말을 응하게 하려 함이니라.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
예수님은 다시 한번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오시는 진리의 영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 말씀이 제자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의 어떠한 미움과 박해 속에서도 너희의 편은 있다고 용기를 주시는 것처럼 들렸다. 예수님께서 ‘내가 먼저 미움받고, 박해받았으니, 그런 미움과 박해를 받는다고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마라. 죄인은 너희들이 아니고, 그들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만 같아서 제자들은 왠지 슬퍼졌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가 실족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회당에서 쫓아낼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다.’ 하리라. 저희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니라.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그들의 때가 올 때에 내가 너희에게 이 말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니, 처음부터 너희에게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이제 나는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였으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니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내가 가면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고,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통치자가 심판을 받았기 때문이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기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그가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기 때문이라.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느니라.”
그리고 이어지는 한마디.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또 조금 있으면 다시 나를 보리라.”
이 말을 듣고 제자 중 몇몇이 작게 속삭였다.
“우리에게 말씀하신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또 조금 있으면 다시 나를 보리라.’ 하신 것과,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신 것이 무슨 뜻일까?”
“‘조금 있으면’이라고 하신 말씀은 무슨 뜻일까? 무엇을 말씀 하시는 건지 모르겠다.”
여전히 말씀을 이해하지도, 감당하지도 못하는 제자들을 보시며,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또 조금 있으면 다시 나를 보리라.’ 한 것에 대해 너희가 서로 묻고 있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할 것이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가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리라.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한 사람이 태어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는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볼 것이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날에는 너희가 아무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을 것이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슬픔과 근심, 진통을 지나야 기쁨이 올 것이라 말씀하시는 예수님.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말하였으나,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말하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분명히 알리리라. 그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을 믿은 고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니라.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라.”
제자들이 대답했다.
“보십시오. 이제 분명히 말씀하시고, 아무 비유도 하지 아니하시니, 우리가 이제야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고, 누가 당신께 물을 필요가 없음을 알겠나이다. 이로써 우리가 주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셨음을 믿나이다.”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보아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예수님은 이 말씀을 마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셨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도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으니,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나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그 영화로,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으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알았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나이다.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나니, 내가 비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옵나이다.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데,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나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아니하오나, 저희는 세상에 있나이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지켜주사, 우리가 하나인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내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에,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호하고 지켰나이다. 그중에 아무도 멸망치 않고, 오직 멸망의 자식뿐이오니, 이는 성경이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나이다.
지금 내가 아버지께로 가오니,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는 것은 저희로 하여금, 내 기쁨이 저희 안에 충만하게 하려 함이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고,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이나이다. 내가 아버지께 비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 주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호해 주시기를 위함이나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으니,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이나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나이다.”
제자들은 모두 각자의 자리에 서서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있었다.
“내가 비는 것은 이 사람들만을 위함이 아니요, 저희의 말을 통해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나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나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셔서 내게 주신 내 영광을, 저희가 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고, 저희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을 알았나이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저희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저희 안에 있고, 나도 저희 안에 있게 하려 함이나이다.”
모든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감람산에 들어서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
베드로가 대답했다.
“비록 모두가 넘어질지라도, 나는 아니나이다.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나는 절대로 버리지 않겠나이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그러나 베드로는 힘주어서 말했다. 아까 집에서 이 말씀을 들었을 때는 당황해서 아무런 대답도 못 했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순 없다는 생각이 그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결코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하자. 다른 제자들도 모두 똑같이 말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결코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팔고, 버리고, 모른다고 부인하는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반드시 일어나야 할 일이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만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 장담했다. 물론 제자들은 언젠가 주님과 복음을 위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의 일.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모든 계획, 그들의 사명이 모두 끝나는 때에 일어날 일이었다. 지금은 오직 예수님만이,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죽어야 하는 유월절 어린양만이 자신의 생명을 버릴 때였다.
지금 그들의 장담이 실패로 돌아가게 될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실패가 아니었다. 이 실패는 오히려 제자들의 생명을 악인들로부터 지켜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었다. 제자들은 이러한 실패를 통해 자신의 죄를 본 뒤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회개하게 될 것이고, 그들의 모든 죄를 다 용서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있기 전에 예수님께서 반드시 짊어지셔야 할 고난이 있었다. 피 흘림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십자가. 그 마지막 순간을 위해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올리브 나무가 가득한 감람산의 겟세마네 동산에 들어가셨다.
달빛만이 가득한 어둡고 적막한 동산. 그곳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여라.” 예수님은 나머지 제자들을 그곳에 두고,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따로 데리고 조금 더 걸어가셨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을수록 예수님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예수님을 싫어하는 사람이 보았다면,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뭐가 대수냐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는 사람이 그딴 것으로 뭘 힘들어하냐고 비꼬며 비난할 수도 있었다. 지금껏 수만 명, 아니 수십만 명 이상 받은 형벌이 십자가형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매를 맞고, 십자가에 달리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죽음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은 창세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셨다. 그분은 역할로서는 아들이지만, 본질로서는 하나님과 동등하신 삼위 하나님의 한 분이셨다. 죽음이 감히 근접할 수조차 없는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영원토록 죽음이 임할 수 없었던 그분에게 죽음이 다가오고 있었다. 영원을 하나님과 함께하셨던 그분이 십자가에서 절절한 고독을 느끼시고, 버림받으셔야 했다. 죽을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을 맞아야 했다. 그러니 어찌 괴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고개를 돌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보고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심히 근심하여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구름에 가려진 희미한 달빛 속에서 드러난 예수님의 얼굴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제자들은 그 얼굴을 보고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 돌을 던져서 닿을 만한 거리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작하셨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마 26:31-38, 막 14:27-34, 눅 22:40, 요 15:1-17:26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성경 원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평행 구절의 경우, 모든 내용이 다 포함되도록 하나로 합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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