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야. 넌 우리 중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이라 생각하냐?”
“그야, 우리 형제 아니면 베드로 형님이겠죠.”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당연하죠. 예수님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 세 사람을 데리고 가셨잖아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도 그렇고, 이번에 산에 오르실 때도 그렇고요.”
“근데 왜 다른 제자들은 그걸 인정하지 않는 거냐고. 아,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예수님께서 우리 세 사람을 특별 대우하신다는 걸 뻔히 보면서도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 봐, 자기들은 귀신 하나 내쫓지 못해서 난리였잖아.”
자신의 형인 야고보는 얼마 전에 있었던 제자들 사이의 다툼 때문에 기분이 상한 것 같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갈릴리로 돌아오는 길에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를 두고 다툼을 벌였다. 예수님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상식적으로 베드로와 자신 형제, 이 세 사람 중의 하나가 가장 높은 사람임이 분명함에도 그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은 제자도 있었다. 예를 들면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돈주머니를 맡기셨고, 그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니, 그가 가장 높다고 말했다. 그가 그렇게 말하니, 다른 제자들도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면서 그들 자신이 가장 높다고 말했는데, 베드로를 가장 높다고 말하는 제자들도 몇몇 있었다. 안드레를 비롯한 초기 제자들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었는데, 지난번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한 것이었다. 뭐 그런 이유라면 어느 정도 수긍은 할 수 있지만, 조금 짜증이 났던 것은 자신들 형제가 가장 높다고 편들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어리다고 무시하는 건가?
“진짜 이런 식이면 나중에 어머니를 모시고 예수님을 한번 찾아뵙든지 해야겠어. 어머니가 예수님을 위해 많은 것으로 섬기셨으니, 어머니 말은 들어주실 거야.”
“예수님은 가족들도 안 만나주실 때가 있는데, 우리 어머니를 모시고 간다고 통할까요?”
“일단 뭐라도 해봐야지. 이대로라면 나중에 그분의 나라가 세워질 때, 아무것도 얻지 못할 수도 있어.”
형님의 말이 맞다. 요즘 예수님께서 인자가 사람들 손에 넘겨져서 죽었다가, 사흗날에 다시 살아야 한다는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을 두 번이나 하셔서 제자들 사이에 분위기가 뒤숭숭해졌지만, 어쨌든 예수님께서 자신의 나라를 세울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다가는 나중에 본전도 찾지 못할 수 있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초기 제자였다면, 자신 역시 초기 제자이다. 또 자신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직업도, 가족도 두고 왔고, 어머니는 예수님을 위해 재물을 비롯하여 정말 많은 것으로 섬기셨다. 이렇게까지 희생했는데, 높은 자리를 얻지 못한다면,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 것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산에서의 일만 말할 수 있어도 다른 제자들이 다 납득할 텐데, 예수님은 왜 그 말을 못 하게 하시는 거지?”
요한은 형 야고보의 말을 듣고 얼마 전 산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예수님께서 본인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밝히신 엿새 뒤에, 베드로와 자신 형제 두 사람, 이렇게 세 명만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 예수님은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를 시작하셨는데, 자신들은 예수님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도록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처음엔 예수님을 따라 기도도 해보았지만, 시간이 길어지자 점점 할 말이 없어졌고, 몸도 뻐근해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것조차 지루해지자, 이번엔 졸음이 몰려왔는데, 다들 피곤했던지 해가 지고 날이 바뀌는 것도 모르고 잠이 들어버렸다. 그러다 잠결에 예수님이 계신 곳이 갑자기 빛난다는 느낌을 받았고, 또 예수님이 누군가와 대화하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데 형 야고보가 자신을 흔들어 깨웠고, 그제야 꿈에서 보았다고 생각한 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의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있었고, 입고 계신 옷은 세상의 어떤 빨래꾼이라도 그렇게 만들 수 없을 정도로 눈부시게 희고 빛났다. 그리고 예수님의 곁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두 사람이 있었다. 세 분은 영광에 싸여 대화를 나누고 계셨는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에 관한 내용인 것 같았다. 그러나 무슨 말인지 이해는 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직접 이야기 하실 때에도 이해 못 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신들인데 같은 내용을 듣는다 한들 알아들을 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아무튼 자신들은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모두가 그 두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했지만, 그분들 사이에 가서 질문을 할 용기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생각해 보아라. 우리가 있는 곳은 어두운 데, 세 분이 계신 곳은 빛나고 있었다. 이곳은 어둠이요, 그곳은 빛이다. 그곳에 가면 우리 안의 모든 죄가 다 드러날 것 같은 기분이 드는데, 무슨 용기가 있어서 그곳으로 갈 수 있었겠는가? 그리고 그곳은 영광에 싸인 곳이었다. 유대인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나님은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시니, 우리는 감히 그 영광에 접근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만 가능할 뿐 다른 누구도 그것만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니 그 두 사람 역시 일반적인 보통 사람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우리 셋이 그렇게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는데, 대화가 끝나고 그들이 떠나가려는 찰나 예수님의 입에서 그들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모세 그리고 엘리야. 아니, 모세가 누구인가? 모든 유대인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요, 선지자가 아닌가? 그를 통해서 우리 유대인들이 이집트의 압제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하나의 민족으로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죽하면 토라에 그 후에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다시는 나지 않았다고 확실하게 적혀 있겠는가? 또 그가 전해준 율법은 유대인들에게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귀중한 것이었다. 바로 그런 사람이 모세였던 것이다.
엘리야 역시 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난 사람이었다. 그는 우상으로 물들어 있던 북이스라엘에서 회개를 촉구한 유일무이한 선지자였고, 갈멜산에서 수백 명의 바알 선지자와 아세라 선지자들과 홀로 대결해 승리한 사람이었다. 그는 삼 년 반의 기근 때에 두로와 시돈의 중간 지점에 있는 사르밧 과부 집에 거하며, 그 집의 음식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보였고, 과부의 아들이 죽자, 하나님께 기도하여 다시 살리는 기적까지 보였다. 또 엘리사라는 대단한 선지자를 후계자로 세운 후, 불 병거를 타고 죽지 않고 하늘에 올랐다. 성경을 통해 말로만 듣던 그분들이 바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광경을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어떻게 모세와 엘리야라고 확신할 수 있냐고 말하겠지만, 우리는 그 광경을 보았으니 확신할 수 있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빛과 영광을 목격했는데, 무엇을 의심할 수 있었겠는가?
아무튼 그렇게 두 사람이 떠나가려 할 때, 베드로 형님이 느닷없이 소리를 질렀다.
“주여,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만일 원하시면 우리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나중에 산에서 내려와 물어보니, 그 말을 했던 형님도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고 한 말이었다고 하는데, 우리 형제라도 그 이상 가는 말을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들 겁에 질려 있기는 했지만, 성경을 통해 듣던 엄청난 분들을 실제로 목격하니 그들을 그냥 떠나가게 둘 수도 없고, 참 복잡한 심경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형님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주변을 온통 뒤덮었고, 그들은 구름 속으로 들어가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는 자신들이 있는 어둠까지 밝히는 빛. 그리고 구름 속에서 들려온 목소리.
“이는 내 택함을 받은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예전에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세례 요한이 하늘로부터 들려온 음성이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때 그분이 들었던 음성이 이렇게 엄청난 소리였던가 묻고 싶을 정도로 온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게 만들 정도의 음성이었다. 그 구름 속의 빛은 분명 하나님의 영광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접하고 멀쩡할 사람은 없으니, 우리 역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두려워 떨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두려워했던 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들려온 예수님의 부드러운 음성.
“일어나라. 두려워 말아라.”
그것은 세상의 어떤 두려움과도 맞바꿀 수 있는 엄청난 용기를 주는 소리였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도 예수님만 의지하면 죽지 않고 살 수 있다는 희망. 예수님은 두려움에 떠는 우리를 따뜻하게 어루만져주시며, 그런 엄청난 희망을 우리에게 들려주신 것이다. 그 말씀에 힘입어 우리가 고개를 들었을 때, 그곳에는 빛나던 구름도 사라지고 예수님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산에서 내려올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아라.”
우리는 예수님이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몰라 서로 물었지만, 딱히 답은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예수님께 물으면 뭔가 듣고 싶지 않거나, 더 이해되지 않는 말을 들을까 봐 차마 물을 수도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리라. 그런데 어찌하여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느니라.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그제야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을 두고 엘리야라 말씀하셨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이 우리 두 형제와 베드로, 이렇게 세 명만이 직접 보고 듣고 겪었던 사건이다. 이것을 다른 제자들에게도 말할 수 있다면, 그들은 분명 우리 중 누군가를 가장 크다고 인정할 것이 분명하다. 베드로와의 경쟁은 형의 말처럼 어머니를 통해서 어떻게든 할 수 있으니, 우선은 자신들이 가장 높다고 말하는 다른 제자들부터 해결하고 싶은데, 딱히 설득할 방법이 없어 길에서의 다툼이 커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 *
“너희가 길에서 서로 무엇을 토론하였느냐?”
갑작스러운 예수님의 질문. 그리고 당황하는 제자들. 예수님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 제자는 한 명도 없었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 다투었던 것을 들키면, 또 불호령이 떨어질 게 분명하다고 그들은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입을 꼭 다문 채 잠잠했지만, 계속되는 예수님의 눈빛에 제자 중 한 명이 다가가 물었다.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큽니까?”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모두 돌아보시며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끝이 되고,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제자들도 사람인지라, 그들은 모두 각자가 드린 헌신이 높은 평가를 받길 원했다. 세상의 어느 누가 하나님께 인정받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들이 이 인정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높아짐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아져야지만 만족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그렇게 그들은 가장 높은 자리를 원했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의 생각이 옳지 않음을 말씀하고 싶으셨다. 그래서 어린아이 하나를 곁으로 불러 부드럽게 껴안아 주시고, 그들 가운데 세우고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자가 큰 자니라.”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마 17:4-12, 18:1-5, 막 9:5-13, 33-37, 눅 9:33-35, 48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성경 원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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