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드로, 야고보, 요한

저자의 글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께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따로 데리고 다니신 제자들입니다.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에도, 다볼산 혹은 헤르몬산으로 추정되는 변화산에 오르실 때도, 그리고 붙잡히시기 전 마지막 기도를 하실 때에도 예수님은 이 세 명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님께서 이 세 명을 편애하신 것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은 조금 방향을 다르게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받은 사명과 역할로 보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베드로는 제자들의 지도자 역할을 하면서 교회를 세워나가고, 서신서까지 기록한 사람입니다. 또한 요한은 열두 제자 중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서 복음서와 서신서, 예언서를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둘에게 주신 역할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었기에 예수님이 그만큼 더 많은 것을 보여주시고 확신을 심어주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야고보는 이 둘과 다르게 별다른 일을 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그의 역할이 아무것도 없었을까요? 사도행전에는 야고보에 관해 한 가지 눈여겨 볼 내용이 나옵니다.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행 12:1-2, 개역한글)

 여기에서 말하는 헤롯왕은 유아 학살을 지시한 헤롯 대왕의 손자로서, 헤로디아와 친남매 간인 헤롯 아그립바 1세를 말합니다. 그는 야고보를 죽인 후, 베드로를 사로잡아서 옥에 가두고 경비를 세우는데, 이때 많은 분이 알고 계시는 천사가 나타나 옥문을 열고 베드로를 구해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에서 베드로가 살아난 사건과 그 이전에 벌어진 집사 스데반의 순교 때문에 상대적으로 묻히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야고보는 사도 중에서 첫 번째로 순교를 당한 사람입니다. 스데반의 죽음도 사도들에게 슬픔이었겠지만, 오랜 세월 동고동락했던 야고보의 죽음은 더욱더 큰 슬픔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고보가 자신이 직접 보고, 겪은 경험 속에서 예수님을 꼭 붙잡고 죽음 앞에서도 의연함을 보일 수 있었다면, 다른 사도들에게 얼마나 큰 힘을 줄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이런 이유로 예수님은 그에게 베드로와 요한과 같은 많은 것들을 보여주시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이런 예수님의 행동들을 편애라기보다는, 큰 고난을 감당할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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