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쉬었다 가시죠?”
쉬지 않고 바쁜 걸음을 옮기던 일행은 누군가 꺼낸 말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숨을 몰아쉬는 사람도 있고, 길가에 퍼질러져 누운 사람도 있다. 나다나엘 역시 이 여정에 갑자기 합류하느라 별 준비 없이 왔기에 고향 가나로 가는 길이 평소보다 더 힘들게 느껴졌다.
“후우우.”
길게 숨을 내쉰 나다나엘은 손을 들어 얼굴에 흐른 땀을 닦아 내었다. 벌써 이틀째의 강행군.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단강 동편의 베다니는 사해에서 멀지 않은 곳인데, 가나는 갈릴리에 있으니, 원래라면 며칠 더 걸리는 여정이다. 하지만 예수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사흘 안에, 그곳에 도착해야 한다 하시며 발걸음을 재촉하시니 다른 사람들도 그 속도에 맞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틀 전 아침까지만 해도 이렇게 먼 길을 떠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나다나엘은 쉬고 있는 그의 모습을 눈으로 살펴보았다. 아무리 봐도 보통 사람과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어떻게 자신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고민했던 것을 알고 계실까? 나다나엘은 이틀 전 아침 무화과나무 밑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 * *
나다나엘은 고향을 떠난 이후로 계속 고민에 빠져 있었다. 세상을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떠나온 고향이지만, 그가 실제로 목격한 세상은 그가 꿈꾸던 세상과 너무나도 달랐다.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군인들이 도리어 억압하고 빼앗았으며, 거기에 동조한 세리들도 백성들을 착취하느라 바빴다. 상인들은 조금이라도 이익을 남기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속였고,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할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은 모두에게 기피 대상이 되었다.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어야 할 지도자들은 어떤가? 제사장들은 성전을 자기 잇속을 챙기는 도구로 만들었고,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족쇄로 만들어 다른 사람들을 옭매고 있었다. 서기관들과 율법 학자들은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며 옳고 그름만 따졌다.
그나마 에세네파가 가장 괜찮아 보여 사해 근처로 오기는 했지만, 이번엔 그들의 폐쇄성이 발목을 잡았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터인데, 이들은 오히려 가만히 있으면서 세상이 자신들에게 오길 바라고 있었다. 자신이 원하던 세상은 결코 이런 세상이 아니었다. 이런 세상에서 과연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겨우 이런 세상을 위해서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율법을 지키며 거짓 없이 살아온 것인가?
나다나엘은 긴 한숨을 내쉬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았다. 그의 앞에는 나무에서 떨어진 무화과 열매 하나가 있었다. 마치 현재의 이스라엘 상황처럼 뭉개지고 썩어가는 열매. 그 열매를 보고 있자니 문득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보여주신 무화과 광주리 두 개가 생각났다.
신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에게 남왕국 유다의 왕 여고냐와 고관들, 기술자들, 대장장이들이 포로로 잡혀간 이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광주리 두 개를 보여주셨다. 한 광주리에는 맏물 무화과처럼 아주 좋은 무화과가 담겨 있었고, 다른 한 광주리에는 너무 나빠서 먹을 수도 없는 아주 나쁜 무화과가 담겨 있었다. 그때 주님께서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고 물으셨는데, 예레미야는 ‘무화과 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극히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주님께서 한 말이 이것이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고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내가 여호와인 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이집트 땅에 거하는 자들을, 이 나빠서 먹을 수 없는 나쁜 무화과 같이 버리되, 세상 모든 나라 중에 흩어서 그들로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다. 또 그들로 내가 쫓아 보낼 모든 곳에서 치욕을 당하게 하며, 말 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로 내가 그들과 그 열조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남은 사람들이 잘된 것이라 여기는 게 보통 사람의 생각이지만, 하나님은 반대로 말씀하셨다. 포로가 된 것이 살길이고, 포로가 되지 않은 것이 죽는 길이라고.
요시야왕의 넷째 아들인 맛다니야는 이전 왕인 조카 여고냐가 잡혀간 이후, 느부갓네살에 의해 왕이 되었는데, 그때 시드기야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그는 처음엔 율법에 충실하면서 예레미야의 충고를 잘 따랐는데, 삼 년 후에 이집트의 파라오와 손을 잡고 느부갓네살에게 대항하게 되었다.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18개월 만에 함락시켰는데, 결국 그로 인해 다윗 왕국이 완전히 멸망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포로가 되지 않은 자는 세계 만국으로 흩어져 수치와 조롱, 비웃음과 저주를 받게 되었고, 포로로 끌려간 자는 하나님께서 지키고 돌보셔서 온전히 돌아오게 하셨다. 나중에 여고냐 왕의 손자 스룹바벨이 돌아와 성전과 성곽을 재건하게 되었으니 정말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생각으로 판단할 수가 없는 것 같다.
무화과 두 광주리의 말씀을 이 시대에 비추어 생각해 본다면, 좋은 무화과가 무엇이고, 나쁜 무화과는 무엇일까? 어느 쪽이 하나님이 세우고 헐지 않으실 쪽이고, 어느 쪽이 멸절하도록 전쟁과 기근을 보낼 쪽일까?
지금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을 믿고 따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엔 이 길이 멸절될 쪽인 것 같다. 포로로 끌려가지 않은 것처럼 예전 상황에 안주하여 살면서 하나님을 이용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그들이기 때문이다. 저들을 따라 사는 것은 나쁜 무화과 광주리에 들어있는 무화과처럼 아주 나빠서 먹을 수가 없는 존재가 되는 길이리라. 그렇다면 포로로 끌려가는 것과 같은 길은 무엇일까? 어떤 길을 따라야 하나님을 주로 알아볼 수 있고, 온전한 마음으로 주께 돌아가 그분의 백성이 되고, 그분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
정말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스룹바벨과 같은 지도자를 보내주셨으면 좋겠다. 하나님은 학개 선지자를 시켜 스룹바벨과 백성들에게 희망과 위로, 때로는 질책의 말씀을 전하셨는데, 거기엔 이런 내용들이 있었다.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자, 곧 이 성전의 이전 영광을 본 자가 누구냐? 이제 이것이 너희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이것이 너희 눈에 보잘것이 없지 아니하냐. 그러나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에 내가 너희와 언약한 말과 나의 신이 오히려 너희 중에 머물러 있나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조금 있으면 내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육지를 진동시킬 것이요,
또한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성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백성이 그러하고, 이 나라가 그러하고, 그 손의 모든 일도 그러하고, 그들이 거기서 드리는 것도 부정하니라. 이제 청컨대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 곧 여호와의 전에 돌이 돌 위에 놓이지 않았던 때를 추억하라. 그때에는 이십 석 곡식더미에 이른즉 십 석뿐이었고, 포도즙 틀에 오십 그릇을 길으려 이른즉, 이십 그릇뿐이었었느니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 손으로 지은 모든 일에 폭풍과 곰팡이와 우박으로 쳤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이키지 아니하였었느니라. 너희는 오늘부터 이전을 추억하여 보라. 구 월 이십사 일, 곧 여호와의 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추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오히려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었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이것이었다.
“너는 유다 총독 스룹바벨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킬 것이요,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열방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 동무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너를 취하고, 너로 인을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정말 지금의 이 시대는 스룹바벨이 오만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귀환한 때와 비슷한 것 같다. 외세의 지배 속에서 고통받고 살면서도 성전을 바라보는 사람들. 그때와 같이 지금도 여전히 지어지고 있는 예루살렘 성전이지만,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으면서도 스스로 더러운 줄 모르고 산다. 하나님께서 그 시대에 스룹바벨을 높이셔서 성전을 완성하신 것처럼, 지금, 이 시대에도 또 다른 누군가를 세우셔서 성전을 완성하지 않으실까? 세상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하늘과 땅을 뒤흔들겠다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이 시대에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스룹바벨을 세우신 것처럼 지금, 이 시대에 구원자 메시야를 세우셨으면 좋겠다.
나다나엘은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저에게 응답을 주시길 원합니다. 저는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 시대의 지도자들 또한 주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이겠지만, 그들의 삶과 행동을 보니 도무지 진실이 없고, 거짓만이 가득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포로가 되지 않고 남은 자들처럼 느껴집니다. 그들을 따라서는 거짓 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주님, 만약 지금 이때에 좋은 무화과 광주리가 있다면, 저에게 그 길을 보여주시길 원합니다. 스룹바벨과 함께 한 백성들처럼 성전을 굳건히 세우는 제가 될 수 있도록, 저의 길을 인도해 주세요.”
그 기도를 마친 얼마 뒤에 빌립이 자신에게 찾아왔고, 자신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자신이 아는 지식으로 나사렛에서는 선한 것, 그러니까 선지자와 같은 분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며 따라가지 않으려 했지만, 빌립의 말을 듣고 따라온 것이 인생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예수께서 하신 자신이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 보았다는 말.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나님께 드린 기도가 생각났고, 이것이 바로 응답이라 여겨졌다. 이 사람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좋은 광주리이다. 이분이야말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를 수 있는 사람이다. 이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세상의 압제에서 구원하실 메시야이시고,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실 분이다. 이분이야말로 진정한 성전을 세울 분이시다. 이분에게 길이 있다. 자신은 그렇게 확신하게 되었다.
그날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이제 내일 점심때쯤엔 가나에 도착할 것 같다. 오랜만에 돌아가는 고향. 예수님은 어머니 친구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가는 것이라고 하시는데, 예수님 역시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라고 했다. 하긴 나사렛과 가나가 그리 멀리 떨어진 게 아니니, 언제라도 오가며 친분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나다나엘은 쉬고 계신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친 기색 없이 조용히 자리에 앉아계신 예수님. 저분과 길을 걸으며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나다나엘은 다시 한번 전율에 휩싸였다.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지? 저분은 왜 지금까지 조용히 지내오셨지? 어떻게 저런 분의 소문을 그동안 듣지 못했지? 나다나엘은 그렇게 가까이 살면서도 그의 이름조차 듣지 못한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 옆에 앉아 있던 안드레가 말을 걸어왔다.
“이봐 나다나엘. 자네 아버지의 이름은 어떻게 되나?”
“돌로매이네.”
“아, 그러면 자네를 바돌로매라고 불러도 되겠네. 돌로매의 아들.”
“그래 그것도 내 이름이지. 자네들 편한 데로 부르게.”
“저는 그래도 형님을 나다나엘이라고 부를게요. 형님.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가장 나이 어린 요한이 웃으며 말했다.
돌로매의 아들 나다나엘이 한껏 미소를 지었다.
“자, 이제 출발합시다.”
빌립의 말에 모두가 일어났다. 같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이들과 함께 가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할까? 나다나엘은 차오르는 기쁨을 멈출 수 없었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예레미야 24:3, 5-10, 학개 2:3-9, 14-19, 21-23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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