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탄생, 베들레헴의 목자들

베들레헴의 목자들이 천사로부터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하늘이 유난히도 맑고 투명한 밤이다. 양들마저 고요히 잠자는 시간. 이런 날에는 잊고 지냈던 오래전 기억이 떠오르곤 한다. 자신은 가난한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아주 흐릿하게 남아있지만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다. 형과 함께 뛰어놀다 넘어져서, 엄마에게 울며 달려갔을 때 느꼈던 엄마의 따뜻한 품처럼 단편적이지만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억들이 많다.

 하지만 그런 기억은 금세 끝나고, 열 살 이후의 기억은 모두 이곳 베들레헴에서 이어졌다. 가족을 떠나 홀로 베들레헴에 와서 처음 만난 사람은 목자 할아버지였다. 자신은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양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양들과 함께 다니는 것이 재미있어서 집 생각이 별로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할아버지에게 집에 데려다 달라고 떼를 쓰며 매달렸는데, 그때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칠 년째가 되면 볼 수도 있겠지….”

 칠 년이 되어야 자유를 얻을 수 있는 존재. 그렇다. 자신은 그 어린 나이에 종으로 팔려 온 것이었다. 처음엔 부모님께 버림받았다는 서러움에 몇 날 며칠을 울기만 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자신을 묵묵히 데리고 다니시다가 어느 날 한마디를 하셨는데, 돌이켜보면 그것만이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때로는 양이 맹수에게 물려간다. 또 산사태가 나서, 폭풍이 불어서, 웅덩이에 빠져서 양들이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 거룩한 제사를 위해 준비되는 하나님의 양들에게도 그런 일은 일어난다. 그럴 땐 어떻게든 양들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그 사이 양들이 죽으면 방법이 없다. 일어난 일은 그게 누구의 탓이든 돌이킬 수 없으니,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남은 양들이라도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

 할아버지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과거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앞날의 희망을 붙잡는 것임을 그렇게라도 알려주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 말을 해주었던 할아버지 역시 자신처럼 어린 시절에 종으로 팔려 왔다. 그리고 일곱 해가 되기 전에 주인이 마련해 준 아내와 결혼했는데, 두 분 사이엔 아들이 한 명 있었다고 한다. 유대인 종은 일곱 해가 되면 아무런 몸값 없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는데, 종의 신분일 때 결혼을 하면 아내와 자식은 주인의 소유이므로 남겨두고 가야만 했다. 가족을 사랑했던 할아버지는 차마 그럴 수 없었기에 영원히 주인의 종이 되기로 서약하고, 그 증거로 문설주에 귀를 대고 송곳으로 뚫었다. 그렇게 인생 전부와 바꾼 가족이었는데, 오래지 않아 역병이 돌았고, 할아버지는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고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후로 몇 번의 결혼 이야기가 나왔지만, 할아버지는 다시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주인이 죽고 그 아들이 모든 것을 물려받았을 때, 자신이 종으로 팔려 왔다.

 처음엔 말수가 적은 할아버지가 무섭게 느껴졌지만, 할아버지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서 묻어나는 진심을 느끼게 되면서 점점 마음을 열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겉으로는 무뚝뚝하지만, 마음만은 정말 따스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성격은 할아버지만의 문제가 아니라, 목자라는 직업이 주는 직업병 같은 것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광야에서 홀로 지내는 목자들이 사람들을 대해 봤으면 얼마나 해봤겠는가? 누구라도 많이 안 해본 건 잘 못하는 법이다.

 베들레헴의 양들은 대부분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물로 바쳐지기 때문에 베들레헴의 목자들은 조금 특별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할아버지는 그중에서도 남다른 사람이었다. 할아버지는 품삯을 받고 일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종의 신분이면서도, 마치 자기의 사명인 것처럼 최선을 다했다. 때마다 가장 좋은 풀이 나는 곳으로 양들을 인도하고, 행여나 위험에 빠질까 항상 양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때로는 돌팔매 하나로 맹수들에 맞서 싸우곤 했는데, 그런 할아버지에게 한 가지 꿈이 있다면, 온 정성을 다해 기른 양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제물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평소 할아버지는 종이라는 사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지만, 막상 자신의 결혼 이야기가 나오자 심하게 반대하셨다. 몇 년만 더 버티면 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하시며, 주인이 사람들을 보내 결혼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자신을 양 떼와 함께 멀리 보내곤 하셨다. 할아버지는 그 일로 핍박을 받긴 했지만 절대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주인에게도 할아버지는 최고의 양을 기르는 중요한 사람이었기에 그럴 때마다 결혼 이야기는 무사히 넘어가곤 했다. 그렇게 육 년째가 되었을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예전 주인은 안티고누스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의 편을 들었다가 함께 몰락했는데, 할아버지와 자신은 양 떼와 함께 새로운 주인에게 넘어갔다. 그 새로운 주인의 딸이 바로 아내이다. 아내는 주인어른과 함께 양 떼를 보러 왔었는데, 자신보다 세 살이나 적으면서도 처음 보는 순간부터 자신을 동생 취급했었다. 또래에 비해 왜소한 자신이었기에 만만해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할아버지와 주인어른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아내는 자신을 계속 따라다니며 질문을 퍼부었다. 이건 뭐야? 저건 뭐야? 그때마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 대답해 주었지만, 아내는 만족하지 못하는지 괜히 심술을 부렸다. 어린 아가씨의 변덕을 경험해 보지 않은 자신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아내는 그제야 만족했는지 자신의 등을 세게 두드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도 아내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살아왔을 것이다. 주인어른조차 절절매는 것이 훤히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아내는 종종 베들레헴에 나타나 자신을 괴롭히곤 했다. 음식을 가져다주는 종들을 따라오기도 하고, 때로는 불쑥 혼자서 나타나기도 했는데, 이런 아내 때문에 주인어른의 걱정이 멈출 날이 없었다. 그땐 아내가 자신을 좋아하는 건가 하는 착각에 빠졌었지만, 사실은 할아버지를 보고 싶어서 온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전쟁 통에 돌아가신 아내의 친할아버지와 많이 닮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새로운 주인 어르신도 할아버지를 굉장히 좋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는 평소처럼 갑자기 들이닥쳤고,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꼬투리를 잡다가 산을 내려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폭우가 쏟아지면서 아내는 다시 돌아왔고, 멈추지 않는 비로 인해 밤이 되도록 산을 내려가지 못했다. 마침 할아버지도 다른 곳에 계셨기에 어쩔 수 없이 둘이 밤을 지새우게 되었는데, 그날 밤의 일로 인해 우리 두 사람의 인생이 그렇게까지 바뀔 줄은 그땐 미처 알지 못했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말이다.

 사실 그날 밤엔 모닥불을 피워놓고 나란히 앉아 별을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냥 센 것 같던 아내의 약한 면을 보면서 호감이 생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 같은 건 상상조차 못 했다. 자신은 종이었고, 아내는 주인의 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오해한 사람들 때문에 문제가 커졌고, 이것은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집으로 돌아간 아내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했지만, 주인어른 내외는 믿지 않았다. 예루살렘으로부터 종들이 몰려와 자신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피웠는데, 할아버지는 자신을 숨기시고는 자초지종부터 물으셨다. 할아버지는 그럴 아이가 아니라고 두둔해 주었지만,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아이를 내놓으라고 소리 질렀다. 할아버지는 절대 내놓을 수 없다고 말하시고,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자신이 맞아야 할 매를 대신 맞고, 자신이 흘려야 할 피를 대신 흘리셨다. 그리고 그날 일로 인해 병을 얻어, 며칠 뒤에 돌아가셨다.

 아내는 나중에 할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 동안 울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주인어른은 어영부영 이 사건을 덮으셨고, 더 이상의 핍박은 없게 되었다. 사실 주인어른도 할아버지가 그렇게 되길 바라신 건 아니었으니, 어찌 보면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사건이었다.

 얼마 뒤, 자신은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었다. 그때 고향 엠마오에 잠시 들렀었는데, 칠 년 전에 헤어진 가족의 소식은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사람들에게 물으니 그 당시 엠마오의 모든 주민이 종으로 팔려 갔다고 했다. 카이사르를 암살하고, 시리아로 온 카시우스가 병사들을 모으는 과정에서 거액의 세금을 부담시켰는데, 돈을 마련하지 못한 몇몇 도시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때 엠마오와 같은 처지가 된 도시가 고프나, 룻다, 탐나였다고 한다. 

 다음 해에 카시우스가 몰락하고, 안토니우스가 권력을 잡으면서 노예로 팔려간 유대인들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허락했지만, 안티고누스의 추종자였던 주인으로 인해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자신처럼, 모든 주민들이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노예로 팔려 가서 무슨 일이 생겼던지, 아니면 2년 뒤에 있었던 안티고누스의 반란에 휩쓸려 사고를 당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사실 그때까지 아무리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던 원천은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었다. 어떻게 자식을 종으로 팔 수 있냐는 질문을 어릴 때부터 하고 또 했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부모를 미워하며,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르게 하리라 마음먹고 있었는데, 진실을 알게 되니 허무해졌다. 

 이것은 부모님의 탓이 아니었다. 다른 종들의 경우처럼 빚 때문도 아니었다. 권력의 힘에 의해 피해를 당한 가난한 백성. 힘이 없어 자식들과 생이별해야 했던 부모님의 마음은 얼마나 찢어지게 아팠을까? 그런 부모님을 생각하니 너무 슬퍼졌고, 마음은 점점 더 공허해져갔다. 결국 며칠을 고민하다가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와 품꾼 목자로 일하게 되었다. 

 아내는 자신이 돌아온 이후에 베들레헴에 와서 사과했다. 할아버지를 죽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는 아내의 그 말을 듣고서야,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할아버지는 자신에게 있어 하나뿐인 부모였고, 스승이었고, 친구였다. 할아버지가 있었기에 상처 많고 꼬인 자신이 무사히 성장할 수 있었다. 정말 소중한 것은 잃은 후에야 깨닫게 된다는 말처럼 할아버지야말로 항상 곁에 있어서 깨닫지 못한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아내는 이후에도 종종 베들레헴에 오곤 했는데, 어느 날 자신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다.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고 했지만, 한결같은 아내의 태도를 보고 자신 역시 숨겨왔던 진심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힘들 때마다 떠올린 사람이 아내였음을 말이다. 주인어른께 칠 년을 보수 없이 일할 테니 아내를 달라고 말했는데, 사람들은 모두 네가 야곱인 줄 아냐며 어이없는 비웃음을 보였다. 온갖 회유와 협박이 뒤따랐지만, 결국 우리 두 사람은 모든 싸움을 이겨내고 결혼하게 되었다. 진정한 사랑은 세상의 어떤 고난도 함께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우리는 두 명의 딸을 낳았다. 첫째 딸은 올해 스물세 살로, 결혼해서 예루살렘에 살고 있다. 첫째는 둘째보다 외모가 조금 부족하지만, 믿음은 훨씬 좋아서 앞날이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 둘째 딸은 삼 년 전에 결혼해서 근처 마을에 살고 있다. 첫째보다 예쁜 둘째는 그 애를 꼭 닮은 귀여운 아들을 낳았는데, 올해 두 살이 되었다. 정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이다. 

 손자를 볼 때마다, 할아버지가 어린 자신을 바라볼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희생을 치르고서라도 보호해 주고 싶은 연약한 생명. 그런데 할아버지는 단순한 보호를 넘어 희생을 통해 중요한 깨달음까지 주셨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한 자유임을 알게 해주신 것이다. 할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자신은 자유인이 되었어도, 종처럼 생각하고 행동했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며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애를 쓰는 종. 그러나 할아버지는 마지막 선택을 통해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가셨다. 주인의 명령에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종이 아니라, 옳은 일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도 바칠 수 있는 자유인. 자신을 살리기 위해 할아버지는 스스로의 생명을 바치는 선택을 하신 것이다. 

 “넌 종이 아니라, 자유인이다.”

 할아버지가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야말로, 할아버지의 인생 전체를 요약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리고 할아버지 역시 종이 아니라, 자유인으로서 생을 마감하셨다.


*  *  *


 계절에 맞지 않게 포근한 바람이 불어왔다. 초원에 엎드려 자던 양들이 눈을 뜨고, 메에 하고 울었다. 기분 좋을 때만 나는 음높이이다. 다리를 펴고 일어난 양들이 웅성이듯 몸을 움직인다. 무슨 일일까? 

 저 멀리에 사자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급하게 돌팔매를 챙겨 들고 일어났는데, 사자는 이쪽으로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양들도 모두 한 쪽을 바라보고 있다. 주변보다 높은 산의 꼭대기.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우우 하고 울부짖는 이리의 소리도 들린다. 그 소리에 반응하듯 동산 여기저기에서 하울링이 울려 퍼진다. 주변을 돌아보자 여러 무리의 이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돌팔매를 움켜쥔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이 정도 규모의 이리떼와 마주치는 것은 평생 처음이다. 하지만 사자와 이리는 여전히 어떠한 공격성도 보이지 않는다. 평소라면 놀라서 우왕좌왕할 양들도 이상할 정도로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다른 한편엔 사슴과 노루, 산염소, 들소들이 무리 지어 모습을 드러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지? 

 바로 그때 산 정상에서 밝은 빛이 터져 나왔다. 온 사방을 두루 비추는 영광스러운 빛. 눈을 가렸던 손을 내리니 주변이 대낮처럼 환해져 있었다. 저 멀리에는 다른 목자들과 양 떼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도 놀란 듯 산 위를 바라보고 있다. 고개를 돌려 빛을 보자, 그 안에 누군가 서 있는 듯했다. 누굴까? 아니, 사람은 맞는 것일까? 궁금증이 밀려올 때 그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온 하늘이 밝아졌다. 위를 올려다보니 새하얀 세마포를 입은 수많은 하늘 군대가 눈앞 가득 보였다. 그들이 크게 외쳤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온 땅에 가득하다. 주변에 모인 동물들도 그 찬양에 동참하듯 함께 노래 불렀다. 꿈에서조차 상상해 본 적 없는 모습. 지금, 이 상황을 그림으로 그려 보여준다 한들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직접 목격하는 자신조차 믿지 못하겠는데. 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여.

 한참을 기도하고 눈을 떴을 때, 밝은 빛도, 찬양하는 소리도 완전히 사라지고, 투명한 하늘만 그 자리에 남아있었다. 자신이 혹시 환상을 본 것은 아닐지 생각했지만, 주변에 둘러선 동물들과 저 멀리 있는 목자들이 그 일이 환상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떨고 있을 때, 동물들이 먼저 움직였다. 양들은 다시 잠이 들었고, 맹수들도 몸을 돌려 완전히 사라졌다. 사슴이나 노루 같은 다른 동물들도 각자 자기의 길을 갔다.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있던 것은 자신과 같은 목자들뿐. 그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여들었다.

 “봤어요?”

 “봤죠?”

 “나만 본 거 아니죠?”

 “이런 말도 안 되는….”

 “우리 이러지 말고, 베들레헴에 올라가 확인해 봅시다.”

 “그래요. 빨리 올라가서 우리의 왕을 만나 뵙시다.”

 목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머리가 멍하다. 도대체 왜 자신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하나님은 왜 이런 일을 보여주신 것일까? 답을 알 수 없는 질문만이 머릿속을 맴돈다. 그런데 가만…. 구유? 이건 또 무슨 말인가. 구유가 있는 곳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동굴 중의 하나이다. 깨끗하고 정결한 방이 아니라, 구유에 메시야가 계신다니. 이건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

 동굴 몇 군데를 돌아보던 목자들은 오래지 않아, 마을 외곽의 조그만 동굴에서 젊은 부부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한 갓난아기를 발견했다. 천사가 말한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부부는 목자들의 출현에 놀란 듯 보였지만, 목자들이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전해주자,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지었다. 잠시 후엔 소년 한 명이 음식을 들고 들어오다가, 젊은 부부보다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모두 한 자리에 둘러앉아,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야기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기쁨으로 찬양했다. 

 날이 밝았다. 그 사이 대부분의 목자는 자신들의 양 떼가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남은 한 명의 목자와 소년이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태어난 아기가 메시야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믿으려 하지 않았다. 목자들이 메시야라고 지목한 아기는 누가 봐도 가난하고 초라한 사람들의 아이였다. 그들은 이런 메시야를 기대한 적이 없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보아하니, 이 젊은 부부를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인다. 어젯밤에 만난 소년만이 자신과 함께 진실을 말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 종에서 해방된 남자와 외국에서 온 소년, 그리고 가난한 부부. 누가 자신들의 말을 믿어주려 하겠는가? 소년의 아버지마저 정색하며 화를 내니, 소년의 입조차 다물어질 뿐이다. 이들을 믿고 있을 순 없다. 왕으로 오신 메시야를 언제까지 동굴에서 지내시게 할 수 없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우리 집에 모셔야겠다. 아내는 분명 이들을 잘 보살펴 줄 것이다.

 목자는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갓 태어난 메시야를 데리고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자신의 집으로 인도했다. 양들을 가장 좋은 초장으로 인도한 것처럼,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내어주기로 결심한 목자. 가는 도중 그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주변을 살펴보고 또 살펴보는 목자는 진정 주님을 닮은 선한 목자였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본문에서 인용된 누가복음 2:10-12, 14절, 시편 23편은 개역 한글을 기반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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