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님의 탄생 시기

저자의 글

 기원전과 기원후를 나누는 기준이 예수님의 탄생이라고 다들 알고 계실 것입니다. BC(before Christ)라는 단어 자체가 ‘그리스도 이전’이라는 말이고, AD(Anno Domini)는 라틴어로 ‘그리스도의 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서기 525년 신학자인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교황의 명을 받아 저술한 ‘부활제의 서’에서 추정한 예수님의 탄생년을 기준으로 한 연대표기인데, 이러한 이유로 예수님이 이때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 역사와는 좀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가 연대 계산을 할 때 실수를 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 실수는 예수님이 태어났다고 생각되는 기원 원년 없이 BC 1년 다음에 바로 AD 1년이 오도록 해서 1년의 차이가 발생한 것입니다. 두 번째 실수는 그가 사용한 자료의 문제로 인해 옥타비아누스 황제의 통치 기간 중 4년이 누락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사용하는 연대표기와 실제 예수님의 탄생이 5년 가까이 차이가 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것에 이런 오류가 있기 때문에 실제 역사를 보면서 예수님의 탄생시기를 추정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첫 번째 내용은 헤롯왕의 죽음입니다. 요세푸스가 쓴 ‘유대 고대사’에는 헤롯왕이 죽던 해의 사건이 나옵니다. 헤롯이 성전 입구에 금독수리 상을 세웠는데, 이를 40명의 유대인들이 무너뜨린 것입니다. 이 사건이 일어난 날 밤에 월식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 월식은 기원전 4년 3월 13일의 일로 생각되고 있습니다. 이 사건과 베들레헴의 2살 이하의 아기들을 죽이라는 명령과 여타 천문학적 자료들을 토대로 학자들이 추정한 예수님의 탄생일은 기원전 7년에서 기원전 4년 사이의 어느 날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기원전 5년이라 가정하고 이야기를 진행시키고 있는데, 물론 기원전 7년 일수도 있고, 기원전 6년 혹은 4년 일수도 있는데, 확실히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대답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두 번째 내용은 인구조사의 시기입니다. 성경에는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 되었을 때에 첫번 한것이라’(눅 2:1-2)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구레뇨(퀴레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이 된 시기에 관한 가장 확실한 자료는 요세푸스의 유대 고대사에 나오는 기록입니다. 여기에서 구레뇨는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가 왕위를 잃고 유배당한, AD 6년에 시리아의 총독으로 부임해 인구조사를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자료를 근거로 많은 분들은 역사적으로 예수님은 AD 6년에 태어난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하기도 하는데, 사실 이것은 누가복음 자체 자료로도 반박이 되는 내용입니다.

 누가복음에는 세례 요한이 사역을 시작하는 시기에 관한 기록이 나옵니다.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눅 3:1-2)

 디베료(티베리우스) 황제는 AD 14-37년 동안 제위에 머물렀는데, 열다섯째 해는 AD 28년이 됩니다. 세례 요한이 이때부터 사역을 시작했는데, 그 이후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이야기 말미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눅 3:23)

 세례 요한이 얼마나 사역을 한 이후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지 알 수는 없지만, 이 내용은 예수님이 최소한 AD 6년에 태어난 것은 아님을 보여줍니다. 만약 AD 6년에 태어났다면 세례를 받으신 것은 AD 36년쯤이 됩니다. AD 36년은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를 통치한 마지막 해입니다. 이렇게 되면 공생에 사역이 시작되자마자 멈추는 것이 되는데, 예수님은 최소한 세 번의 유월절을 보내신 것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이 인구조사는 AD 6년을 의미하는 게 아님을 누가 스스로가 이미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인구조사는 대체 언제 한 것일까요? 구레뇨는 기원전에 군사령관으로 있으면서, 지금의 터키 남부에 위치한 갈라티아와 길리기아의 호모나덴스인들을 무찔렀습니다. 이후 길리기아는 시리아에 합병되었는데, 학자들은 이때 그가 이 지방에 특사 형식으로 머물며 시리아 총독인 사르트니우스(BC 9-6년) 혹은 바루스(BC 6-4년)와 함께 인구조사를 명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눅 2:2)라고 말하며, 구레뇨의 첫 번째 호적 등록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면 또 한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AD 28-29년에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시고 사역을 시작하셨다면, 예수님은 BC 3-2년에 태어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헤롯왕의 죽음 이후에 태어나신 것으로 계산이 되니 성경 기록들 간에 모순이 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서른 살쯤’이라는 단어로서 풀 수 있는데, 서른 살쯤이라는 말은 정확하게 서른 살이란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생애 기간 역시 유월절을 지낸 기준으로 삼년 반이라 추정하는 것이지, 성경에 정확히 삼년 반 사역하셨다고 나오지는 않습니다. 이 또한 학자들에 따라 다섯 번 이상의 유월절을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사람들이 성탄절로 생각하는 12월 25일 역시 정확하게 그날 태어나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로마 시대 때, 예수님의 탄생일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는데, 12월 25일이라고 처음 주장한 사람은 로마의 역사가 히폴리투스였습니다. 그는 춘분인 3월 25일에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았으리라 생각해서 동지인 12월 25일에 예수님이 탄생했다고 말했지만, 당시에는 별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서기 373년에 12월 25일을 공식 휴일로 지정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과 별개로 요한복음의 성전 건축과 관련된 내용으로 예수님의 탄생 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데, 여기에도 기록들 간에 약간의 모순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 역시 해결할 방법은 있습니다. 이 내용은 해당 본문이 나오는 부분에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오늘 말한 여러 가지 내용으로 인해 혼란에 빠지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사실이라고 굳게 믿어오던 것들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때문에 은연중에 기독교에 대한 불신이 생기실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불신은 훨훨 날려버리시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하더라도, 성경과는 관련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언제 태어나셨든 성경 내용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습니다. 이런 성경 외적인 것이 틀렸다고 해서 기독교가 틀렸거나, 성경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냥 오래전에 누군가가 사용하기 시작한 것을 너무 오랫동안 사용하다 보니 이제는 사회적 비용 문제로 어쩔 수 없이 그냥 쓰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그냥 그것이 전부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필요 이상의 의미부여를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2천 년 전, 맑고 아름다웠을 그날 밤을 떠올리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여러분의 하루에 주님의 평화가 임하길 소원합니다. 이 이야기를 언제 읽으시게 되더라도, 이 말은 꼭 하고 싶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 하루 주 안에서 행복하세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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