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사람, 곧 남자와 여자를 에덴동산에 두어 그 땅을 돌보게 하셨는데, 그들은 그곳에서 하나님의 기준을 따르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복된 삶을 충만하게 살아갔다. 하나님은 날이 저물고 바람이 서늘할 때 동산을 거니시곤 했는데, 사람들은 그런 하나님과 함께하며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뱀의 유혹을 받은 그들은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고, 그것은 사람이 지은 첫 번째 죄가 되었다. 이 죄악은 하나님과 사람의 사이를 갈라놓았고, 죄를 가진 사람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더 이상 대면하며 살 수 없게 되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의 삶은 고된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그들은 동산을 떠난 뒤에 낳은 자녀들을 보며 힘겨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두 아들은 아담과 하와에게 있어서 밝은 미래를 향한 희망의 씨앗이었고,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서도 잘 살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하지만 첫째 아들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사건을 겪으면서, 그들이 믿고 의지하던 희망은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그들은 절망 속에서 다시 하나님을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셋째 아들인 셋을 주셔서, 사람에게 있어서 진정한 희망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이 셋이 자라서 아들을 낳았을 때, 비로소 사람들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분께 예배하기 시작했다.세상이 사람들로 번성하게 되자,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닌 그들 각자의 기준으로 판단하며 세상을 악으로 물들여갔다. 하나님은 세상이 썩고, 무법천지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참아주셨지만, 사람들의 죄는 멈출 줄 몰랐다. 결국 하나님은 세상을 물로 심판 하시고 의인 노아를 통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실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의 사람들 역시 홍수 이전의 사람들과 똑같이 악한 짓을 반복했고, 하나님은 인류를 심판이 아닌 구원으로 이끌기 위해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삼대를 통해 한 가정을 세상에서 구별하기 시작하셨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이 가정은 이스라엘 혹은 히브리라 불리는 민족으로 성장했다. 이집트에서 노예로 고통당하던 이들은 선지자 모세의 인도 아래 이집트를 탈출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을 마음 깊이 사랑한 다윗왕을 통해 그 이름을 널리 떨치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다윗에게 그의 혈통에서 태어날 영원한 구원자 메시야를 약속해 주심으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환히 드러내셨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각자의 판단으로 수많은 죄를 지어갔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고, 이스라엘을 최전성기로 만든 훌륭한 왕이었지만, 정치적 안정을 핑계 삼아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는 죄를 지었고, 이방 여인들이 가지고 온 우상들은 메시야가 올 민족으로 선택받은 이스라엘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때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열된 이스라엘 민족은 그 후로도 하나님을 향한 바른 신앙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다. 하나님은 수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려 하셨지만, 두 나라는 우상 숭배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결국 북왕국은 아시리아에게 남왕국은 신바빌로니아에게 차례로 멸망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두 나라는 멸망했지만, 나무가 잘려도 그루터기는 남듯이, 파괴된 이 땅에도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거룩한 씨는 남아 있었다.
북왕국의 후예인 사마리아인들은 이주해온 다른 민족들과 결혼함으로 하나님도 믿고, 우상도 섬기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이로 인해 남왕국의 후예인 유대인들로부터 심한 배척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럼에도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고, 모세오경과 그로부터 파생된 사마리아 오경을 보며 그들을 회복시켜줄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왕국의 유대인들은 멸망 이후 많은 수가 신바빌로니아에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지만,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약속하신 70년의 기한이 끝나자,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의 칙명으로 포로지에서 귀환하기 시작했다. 3차에 걸쳐서 돌아온 유대인들은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고, 총독 스룹바벨의 주도아래 성전을 세워 하나님을 향한 제사를 회복할 수 있었다.
이로서 언약의 백성들은 때가 될 때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메시야를 기다리며 살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게 하나님을 찾아가는 동안 세상은 빠르게 변해갔다.
강력했던 페르시아 제국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에 패배하여 멸망당했고, 광대한 영토를 자랑하던 알렉산드로스 제국 역시 그의 사후 일어난 내전으로 여러 나라로 분열되었다. 예루살렘과 사마리아가 있는 가나안 지역은 계속해서 지배자가 바뀌었는데, 셀레우코스 왕조가 차지했을 때, 유대인들에게 큰 위기가 찾아왔다.
셀레우코스의 안티오코스 4세는 스스로를 신의 현현인 에피파네스라 주장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율법 책을 불사른 후, 성전의 기물들을 약탈해 갔다. 그는 급진적인 헬라화 정책을 펼치며 종교의 자유를 박탈했는데, 이에 반발한 유대인들이 마카비의 독립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25년간의 투쟁 끝에 BC 142년, 하스모니안 왕조를 세우며 독립의 기쁨을 맞이했다.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한지 6세기, 남왕국 유다가 멸망한지 4세기가 지난 때의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독립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고, 왕조가 세워진지 79년 만에 형제간의 왕위 다툼 중에 끌어들인 로마의 폼페이우스에게 다시 멸망하게 되었다.
바로 이때 하스모니안 왕조의 이두매 총독 가문 출신인 안티파테르가 유대 속주의 행정관이 되면서, 그의 둘째 아들인 헤롯이 갈릴리의 행정장관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다.
헤롯은 아버지가 독살되고, 유대의 행정장관이던 형마저 이전 왕조의 왕손인 안티고누스가 파르티아의 힘을 빌려 일으킨 반란의 영향으로 죽게 되면서 큰 위기를 맞이했다. 그는 밤을 틈타 예루살렘을 탈출한 이후,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극심한 괴로움을 느꼈지만, 로마의 군사지원과 갈릴리 지방의 지지, 또 수많은 유대인들의 가세로 반전에 성공하여 반란을 진압하고 속주의 분봉왕 자리까지 앉게 되었다.
헤롯은 에서의 후예인 에돔, 헬라어로는 이두매라 부르는 지역 출신으로 유대교에 귀의한 반쪽짜리 유대인이었기에 왕이 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하스모니안의 왕녀와 결혼함으로 정통성을 확보했고, 뛰어난 정치력과 군사적 재능으로 많은 위기들을 넘겼다. 또한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로 이어지는 로마의 지도자들에게 신임까지 받아, 결국 속주의 분봉왕이 아닌 유대의 정식 왕으로 임명받게 되었다.
이후 헤롯 왕국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시기를 맞이하며 솔로몬 시대에 버금가는 영토로 확장되었는데, 이러한 화려한 외연과 달리 내부에서는 극심한 분열의 징조가 보이고 있었다.
제사장과 귀족 계층이지만 세속적이었던 사두개인, 일상에서의 거룩을 위해 율법과 장로들의 전승을 모두 엄격하게 지켰던 바리새인, 광야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했던 금욕적인 에세네파, 외세의 간섭에 반발하여 나중에 열심당으로 이어지는 과격한 급진주의자들, 헤롯왕과 로마법을 지지하는 헤롯당, 헬라화 된 유대인 등 수많은 집단들이 왕국 내부에서 난립하였고, 나이가 들면서 편집증적인 성격으로 변해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죽이는 헤롯의 행동까지 겹치면서 유대 사회는 점점 혼란에 빠져갔다.
이러한 시대였기에 사람들은 하나님이 약속해주신 메시야를 간절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이방인의 압제에서 유대인을 구원해 줄 왕으로서의 메시야였는데, 그런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루었다. 그러나 메시야로 불리던 자들은 오래지 않아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고, 이로서 그들은 메시야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게 되었다. 이런 가짜 메시야들의 죽음은 사람들의 원함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 수 있음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아직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이 때에 마땅히 주목해야 했지만, 각자가 원하는 메시야를 찾느라, 혹은 힘든 현실에 지쳐 잊고 지낸, 작은 산골마을 하나가 있었다. 예루살렘에서 조금 떨어진 남쪽, 유대 산지에 위치한 베들레헴이 그곳이었다.
옛날 하나님께서 미가 선지자를 통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하고 메시야의 탄생을 약속해준 마을.
그 약속의 장소로 오르는 산길에 한 쌍의 남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둑해진 주변을 조심스레 살피며 천천히 나귀를 끌고 있는 젊은 남자와 나귀 위에 앉아 크게 불러 있는 배를 보호하듯 가리고 있는 여자.
저녁 무렵 산 정상에서 골짜기를 향해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은 지친 그들의 몸을 더욱 더 움츠리게 만들었다. 두 사람은 오랜 여행으로 해어진 옷자락을 여미어보았지만, 구멍 나고 찢긴 틈새로 들어오는 광야의 차가운 공기까지 막을 순 없었다.
남자는 제대로 씻지 못해 지저분해 보였지만, 먼지투성이 얼굴 사이로 보이는 다부진 눈동자에는 세상 어떤 위험에서도 아내를 지켜내겠다는 굳은 다짐이 담겨 있었다. 나귀를 탄 여자의 얼굴은 두건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만삭의 배를 붙잡고 있는 여린 손과 팔목만으로도 그녀의 앳된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가녀린 손 위로 자신의 상처 많은 손을 겹쳐 쥐었다.
“힘들지 않아? 좀 쉬어갈까?”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
“그럼 최대한 빨리 갈 테니까, 조금만 더 견뎌줘.”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의 이름은 요셉이었다. 혼란한 시절에 고향을 떠나 갈릴리 지방에서 살던 그는 호적을 등록하라는 로마 황제의 명으로 인해 만삭의 아내를 데리고 자신이 속한 다윗 가문의 땅, 베들레헴으로 가고 있었다.
아내의 지친 모습이 그를 걱정스럽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도하셨으니, 앞으로도 책임져 주실 것이란 믿음 또한 있었다. 두 사람에게 지난 일 년 간 일어난 일을 떠올린다면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 * *
요셉이 아내 마리아를 처음 만난 것은 지금처럼 태양이 저물어 가는 저녁 무렵의 일이었다.
헤롯왕이 의심에 빠져 가족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을 거듭 숙청하기 전까지만 해도, 왕국 여기저기에서는 수많은 건축 공사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로마 황제를 기념하며 지은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 가이사랴, 옛 사마리아의 터 위에 건설한 세바스테와 같은 큰 도시들과 헤로디움처럼 강력한 요새들, 그리고 다른 여러 가지 건축물도 지어졌는데, 그 중에서 유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것은 스룹바벨 성전의 재건축이었다.
첫 번째 성전이었던 솔로몬 성전이 신바빌로니아 군에 의해 파괴되고, 포로 귀환 후 만들어진 것이 두 번째인 스룹바벨 성전이었는데, 헤롯왕은 재건축에 반대하는 유대인들을 설득하면서까지 이 성전을 대대적으로 증축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제단과 같은 주요 시설은 1년 6개월 정도 걸려서 완성되었지만, 세상의 어떠한 신전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만들기 위한 헤롯왕의 욕심 때문에 벌써 15년 넘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언제 완공될지 가늠조차 못하는 엄청난 공사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요셉처럼 가난한 사람이 목수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요셉은 갈릴리 지방에서 일을 하며 지냈는데, 경기가 예전처럼 좋지 않아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일거리를 찾곤 했다. 도시의 비싼 생활비와 이방 문화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요셉은 도시 주변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숙식을 해결하곤 했는데, 그가 이번에 머무는 마을은 갈릴리의 수도 세포리스와 중형 도시 가나 부근에 있는 나사렛이었다.
나사렛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높은 분지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기후가 온화하고 비도 많이 와서 밀이나 보리 같은 곡물은 물론이고, 올리브나무며 삼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포도나무와 같은 여러 식물들이 마을 주변에서 풍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마을의 인구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헬라화된 도시와 달리 유대 문화가 여전히 잘 보존되어 있어서 요셉과 같이 정결하게 살기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갈릴리의 농민들은 로마와 헤롯왕 양쪽에 내는 각종 세금들로 인해, 땅을 저당 잡혔다가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등 쉽지 않은 삶을 살고 있었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나사렛 사람들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고, 서로의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요셉의 마음에 작지만 큰 감동으로 다가왔고, 요셉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사렛이라는 마을에 점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다. 그의 마음 한 편에서 이 마을에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가고 있었지만, 주변 도시에서 일거리가 꾸준히 생기지 않는 한, 가난한 목수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그는 지난 삶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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