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부활의 증인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줄까요?”

 안식 후 첫날, 동이 트는 이른 새벽에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무덤으로 가고 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이 상황에 자신이 하는 고민은 겨우 누가 돌을 굴려 줄 것인지를 걱정하는 것뿐이다. 조금 더 오래 아파하고 힘들어도 되는데, 자신은 벌써 그 억울한 죽음에 적응해 버렸나 보다. 돌아가신 예수님께 죄송할 정도로 너무나도 빨리….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후, 자신은 다른 여인들과 함께 돈을 모아 향료를 준비하고, 안식일이 지난 뒤 무덤에 가서 예수님의 시신에 향료를 바르기로 약속했다. 다른 제자들에게도 말했지만, 그들은 사람들이 두려워서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았다. 베드로는 물론이고, 살로메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 지금 함께 가는 마리아의 아들인 작은 야고보조차 도와주러 오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그들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들을 탓할 수만도 없다. 자신에게 붙은 일곱 귀신을 쫓아내 주시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신 그분을 자신 역시 이렇게 쉽게 보내드리려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조금 위로가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나시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그분이시니 하나님이 분명 책임져 주실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아직도 예수님께서 하신 사흘 만에 살아날 것이란 말씀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 말씀을 믿는 제자는 아무도 없었으니, 이건 꼭 그녀만의 문제라고 할 수도 없었다. 지금 함께 가는 다른 마리아와 무덤가에서 만나기로 한 살로메, 요안나 같은 여인들 역시 갈릴리에서부터 예수님을 섬겨 왔지만,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향료를 바르러 가는 것이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들이었으니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 온 예루살렘을 진동시켰던 지진이 다시 한번 세상을 흔들어도 이것이 주님께서 부활하신 징조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유난히 강했던 지난 지진의 여진이라 여기며,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어떠한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그녀들. 그렇기에 무덤가에 도착한 두 여인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무덤 입구를 막고 있던 엄청나게 큰 돌은 이미 굴려져 있었고, 봉인하는 데 쓰였던 밧줄은 터져서 이리저리 내팽개쳐져 있었다. 두 여인은 급히 무덤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지고 없었다.


*  *  *


 “당신은 살로메와 요안나를 기다리고 계세요. 저는 제자들에게 다녀올게요.”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들은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제자들에게 가면 좋겠지만, 자신보다 젊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소식을 전하는 것이 훨씬 더 빠를 것이니,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급히 달려간 이후, 남은 마리아는 다른 두 여인이 오기까지 두려움 속에 떨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살로메와 요안나도 도착했지만, 상황을 전해 들은 그녀들 역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해할 뿐 아무런 방도도 취하지 못했다. 제자들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자신들도 제자들에게 가는 것이 좋을지 판단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하얗게 되었다. 그러다가 그녀들은 다시 한번 무덤에 들어가 확인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들어간 무덤 안, 그 안에는 아까는 보지 못한 낯선 남자가 한 명 있었다. 흰옷을 입고 바닥에 앉아 있는 남자. 그 남자가 여인들에게 말했다. 

 “놀라지 말아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님을 찾는구나. 그분은 살아나셨고, 여기에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분을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리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보게 될 것이다.’ 하여라.”

 부드러운 말투였지만, 어딘가 두렵게 느껴지는 목소리이기도 했다. 여인들이 왠지 모를 두려움에 고개를 숙였을 때,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목소리는 첫 번째의 목소리와 다르게 조금 강한 어조를 띠고 있었다.

 “어찌하여 살아계신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느냐?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여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들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두 번째 사람의 등장은 여인들을 정말로 두려움에 빠져들게 했다. 다시 보니 그들은 흰옷을 입었지만,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고, 그 목소리는 온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울렸다. 이들이 하나님의 천사라는 것을 깨달은 여인들은 두려움으로 벌벌 떨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두 번째 천사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이전보다는 조금 작아진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분은 여기에 계시지 않고, 그분이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분이 누우셨던 곳을 보아라. 그리고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리니, 거기서 너희가 뵙게 될 것이라’고 하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말했느니라.”

 첫 번째 천사가 한 것과 같은 내용을 다시 한번 말한 두 번째 천사. 그러나 그의 목소리가 작아졌다고 하나, 여인들을 벌벌 떨게 만든 처음의 느낌은 여전히 남아 있어서, 여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망치듯 무덤 밖으로 달려 나갔다. 떠나가는 여인들 뒤로 처음 천사가 두 번째 천사의 등을 치면서 웃으며 위로하는 모습이 살짝 비춰 보였다.


*  *  *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그분을 어디에 두었는지, 우리가 모르겠습니다.”

 문을 열고 나온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의 말을 듣고 급히 무덤으로 달려갔다. 자신도 어떻게든 그들을 따라잡고 싶었지만, 이미 여기까지 오느라 지쳐서 더 이상 달릴 수가 없었다. 가쁜 숨을 고르면서 천천히 무덤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저 멀리에서 먼저 달려갔던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무덤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빨리 돌아오십니까? 예수님의 시신을 찾았습니까?”

 그러나 두 사람은 근심 어린 얼굴로 고개를 저을 뿐, 더 이상의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에게 함께 돌아가자고 했지만, 자신은 다른 여인들을 만나야 하기에 나중에 가겠다고 대답했다. 

 예수님의 시신은 도대체 누가 가지고 간 것일까? 베드로와 요한마저 모른다면, 범인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누군가일 것이다. 어쩌면 예수님을 무덤에 장사 지냈던 두 바리새인의 소행일 수도 있고, 누군가가 다른 무덤으로 시신을 옮기게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도대체 누가, 왜 그런 짓을 했다는 말인가? 어쩌면 무덤가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리아와 살로메, 요안나가 어떤 정보를 들었을지도 모른다. 빨리 가서 물어봐야겠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미 많이 지쳐 있었지만, 마지막 힘을 짜내어 여인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리 높여 불러도 대답 없는 이들. 그들의 모습이 더 이상 볼 수 없는 예수님과 겹쳐지자, 설움이 북받쳐 오른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통곡하며 서럽게 울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울음을 겨우 그친 마리아는 무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그녀는 이 상황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은 길고 긴 악몽을 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꿈에서 깨어나면 예수님은 예전의 다정했던 모습 그대로 자신과 제자들 곁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실 것이다. 그리고 일곱 귀신을 쫓아주셨던 그날의 자신과 같이 소외받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죄인이라도 믿기만 하면 구원될 것이라 하시며 그들의 상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실 것이다. 그래, 맞다. 이 모든 것은 한낱 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의 소원과는 달리 무덤은 그녀의 앞에 그대로 있었고, 아침의 차가운 공기는 그녀의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마리아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못하고 몸을 굽혀 들여다본 무덤 안, 그곳에는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있었다. 예수님의 시신이 있던 곳 머리맡과 발치에 각각 앉아 있는 그들. 그들의 주위가 환하게 빛났지만, 눈물이 가득 맺힌 마리아에게는 모든 것이 뿌옇게 보일 뿐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물었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고 있느냐?”

 아까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한층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는 두 번째 천사였다. 그 노력이 통했는지, 아니면 슬픔 때문에 두려움마저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막달라 마리아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누가 내 주님을 옮겼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내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그들을 천사가 아닌, 동산에서 일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서도 이어졌다. 그녀가 눈물을 닦기 위해 뒤로 돌아섰을 때, 뒤에 서 있던 예수님을 동산지기라고 착각한 것이다.

 “여자여, 어찌하여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선생님. 당신이 그분을 옮겼거든, 어디에 그분을 두었는지 내게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그분을 데려가겠나이다.”

 다시 통곡하여 우는 마리아. 예수님은 그녀를 부드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마리아야.”

 “랍오니!”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부활하시리라 말씀하셨지만, 예수님을 따르던 어느 누구도 그것이 진짜 일어날 일이라곤 생각지 못했다. 예수님과 같은 기적을 보이는 분은 아무도 없었으니, 예수님이 돌아가신 다음에 다시 살려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여긴 것이었다. 그 옛날의 선지자들도 다 똑같았다. 유대인들이 가장 우러러보는 모세도 죽은 이후에는 다시 살아나지 못했고, 다른 대단한 기적을 보인 선지자들도 똑같았다. 죽음에서 돌아와 사람들 앞에 다시 선 선지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겠다는 약속을 지키셨다. 다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스스로 부활하신 것이었다. 어찌 그런 분을 깊은 존경을 담아 나의 스승, 나의 선생님이라는 뜻의 ‘랍오니’라 부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마리아는 너무 기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예수님을 붙잡으려 했다. 바로 그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나를 붙잡지 말아라. 나는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나의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여라.”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무덤에서 나온 두 천사와 함께 그녀의 눈앞에서 사라지셨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급하게 달려갔다. 이제는 슬픔이 아닌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다.

 이렇게 예수님은 안식일이 지난 첫날 새벽에 부활하신 뒤에, 맨 처음으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여인들을 찾아가, ‘평안하냐?’ 하고 물으셨다. 깜짝 놀란 여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발을 붙잡고 경배를 했는데, 그 사이 어디를 다녀오셨는지 이번엔 그녀들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그녀들을 일으켜 주시며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이 거기에서 나를 볼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 그리고 여인들은 각자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  *  *


 “나는 아직도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소이다.”

 여인들은 부활의 소식을 전했지만, 저녁이 되도록 제자들 중 어느 누구도 그녀들의 말을 믿지 않고 있었다. 다른 제자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야고보와 요한, 작은 야고보는 그들의 어머니가 직접 증언하는 사실이니 믿음을 가져도 좋았지만, 십자가 앞에서 그들이 느꼈던 절망감과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어떠한 희망도 거부하게 만들고 있었다. 또한 그들이 이렇게 생각한 데에는 새벽에 무덤에 가보았던 베드로와 요한의 증언도 한몫했는데, 심지어 베드로는 한 번 더 무덤으로 달려가 확인해 보았지만, 여전히 삼베와 수건만 볼 수 있을 뿐, 여인들이 말한 흰옷 입은 두 사람이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증언해 주었다. 

 이렇듯 제자들이라도 아무런 증거 없이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믿을 사람은 없었다. 오랜 시간 함께 예수님을 섬겼던 여인들의 증언조차 어처구니없이 여기는 그들이었으니, 대제사장의 일당이 경비병들을 매수하면서까지 거짓말을 하게 할 이유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을 위해 예수님이 홀연히 나타나셨다. 문으로 들어오신 것이 아니었다. 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여인들이 떠난 이후로 열린 적도 없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환상처럼 그 자리에 서신 예수님. 그 목소리마저 예전 그대로여서 제자들은 너무 놀라 유령을 보는 줄로 착각했다. 예수님이 그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가 두려워하느냐? 어찌하여 너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아라. 또 나를 만져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예수님은 못이 박혔던 두 손과 발, 그리고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시면서, 부활을 알려주셨다. 제자 중 일부는 그것만으로도 믿음을 가지게 되었지만, 너무 기쁘고 놀란 나머지 오히려 믿지 못하는 제자들도 있었다. 그들을 보며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여기에 먹을 것이 있느냐?”

 그 말에 제자들 중 한 명이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드렸고, 예수님은 그것을 모두의 앞에서 드시기 시작했다. 한 조각, 한 조각, 예수님의 입으로 들어가 사라지는 물고기를 보자, 그 자리에 있던 제자들은 이제야 예수님께서 진정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들이 기뻐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셋째 날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제자들을 부활의 증인으로 삼겠다고 말씀하신 예수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은 제자들의 눈을 하나씩 마주하시다가, 그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제자들을 보며, 잠시 미소를 지으신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보라,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입을 때까지, 이 성에 머물러 있어라.”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갑자기 사라지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르며 찾고 있을 때, 도마가 문을 두드렸다. 그가 집 안으로 들어오자, 사람들이 주님의 부활을 증언했다.

 “우리가 주님을 보았네.”

 그러나 도마는 그들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내가 그분 손의 못 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어 보고,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서는, 나는 결코 믿지 못하겠네.”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를 설득해 보려 했지만, 그는 고집을 부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엠마오로 떠났던 제자들이었다. 

 집에 있던 제자들은 뒤늦게 나타난 그들에게 ‘주께서 살아나셨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강력하게 주장하니, 엠마오로 떠났던 제자들도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일과 빵을 떼실 때 비로소 예수님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했다. 이후 다른 제자들까지 속속 도착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도마처럼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신들 역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믿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여인들이 아무리 간곡하게 부활을 전해도 믿지 못한 게 바로 조금 전 상황인데 누가 누구를 탓하겠는가? 그러니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도마와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살아계심을 증명해 주시길 바라는 것밖에는 없었다.


*  *  *


 예수님이 나타나신 이후로 여드레가 지났다. 자신을 비롯한 제자들은 처음에는 예수님께서 하루빨리 다시 오셔서 사람들에게 부활을 증명해 주시기만을 바랐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떤 이유에선지 나타나지 않으셨다. 어쩌면 여인들을 통해 하신 말씀처럼 갈릴리에 먼저 가 계신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냥 이대로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이 성에 머물러 있으라 하신 것은 지금 당장을 가리켜 하신 말씀은 아닐 것이다. 맨 처음 하신 말씀은 갈릴리로 가라는 것이었으니, 갈릴리로 가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머물라고 하신 것일 수도 있다. 그래, 어쩌면 그것이 맞을 수도 있다. 내일 아침이 되면 다른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로 떠나야겠다.

 “이봐, 도마. 자네도 함께 갈 텐가?”

 “내가 거기 가서 뭐 하겠는가. 자네들처럼 물고기를 잡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도 이제 내 살길을 찾아가야지.”

 “그곳에서 예수님이 기다리고 계시네.”

 베드로의 말에 도마의 얼굴이 다시금 찌푸려졌다. 

 “자네들은 계속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주장하지만, 그 예수님은 지금까지도 아무런 소식이 없으시네. 부활하셨다면 예전처럼 우리와 함께 계셔야 옳지 않겠는가? 하지만 예수님은 그러지 않으시네. 이것이야말로 예수님께서 살아나시지 않았다는 증거가 될 것이네. 자네들은 분명 뭘 잘못 먹어서 단체로 환상을 본 것이 분명하네.”

 “예수님께서 따로 하실 일이 있으시겠지….”

 그러나 도마는 더 인상을 쓰면서 절대로 믿지 않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때 모두의 귀에 선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지난번처럼 무리 가운데 갑자기 나타나신 예수님. 도마는 예수님을 보고 너무 놀라 입을 벙긋거렸고, 예수님은 그런 그를 보시며 미소 지으셨다.

 “네 손가락을 이리로 가져와서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부드럽지만 단호한 음성. 그렇다. 이것이 바로 도마가 그토록 거부하던 살아계신 예수님의 목소리였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도마는 무릎을 꿇으며 눈물을 터뜨렸다.

 “네가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는구나. 보지 않고도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통곡하듯 이어지는 도마의 눈물. 예수님은 그런 도마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 주시며, 다른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 들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결코 해를 입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으면 나으리라.”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신 후, 갈릴리의 산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시고 그들 곁을 떠나가셨다. 제자들은 모두 아침 일찍 일어나 갈릴리로 떠나갔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마 28:5-10, 막 16:3, 6-7, 15-18, 눅 24:5-7, 34-49, 요 20:2, 13-29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성경 원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평행 구절의 경우, 모든 내용이 다 포함되도록 하나로 합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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