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최후의 만찬이 목요일 저녁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사항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유월절 식사(출 12장)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견들이 존재합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이 이 식사를 조금 다르게 기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웠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마 26:17-19, 개역한글)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을 잡수시게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예수께서 제자 중에 둘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어디든지 그의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자리를 베풀고 예비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의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막 14:12-16, 개역한글)
“유월절 양을 잡을 무교절일이 이른지라.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가서 우리를 위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여 우리로 먹게 하라.’ 여짜오되,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저가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예비하라 하신대,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눅 22:7-13, 개역한글)
이렇게 공관복음만 보았을 때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하신 식사가 유월절 식사인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요한복음까지 놓고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요 13:1-5, 개역한글)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요 18:28, 개역한글)
“이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요 19:14, 개역한글)
이와 같이 요한복음과 공관복음을 함께 놓고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식사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이 유월절인지 유월절 준비일인지까지 헷갈리게 됩니다. 한쪽에서는 유월절이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유월절 준비일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성경의 원본에 오류가 있다는 증거가 될까요? 물론 이렇게 말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의견들이 이미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 의견들을 나열해 보면,
1) 예수님은 니산월 14일. 즉, 유월절 바로 전 유월절 양을 잡는 날에 처형되셨다.
2) 예수님은 니산월 14일 저녁에 유월절 식사를 하고, 15일에 돌아가셨다.
3) 예수님과 제자들은 에세네파의 달력(태양력, 유대종교력과 이틀이 차이가 나는 수요일에 유월절이 시작됨)을 사용하셔서, 유월절 식사를 하셨다.
4) 준비일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안식일 전날을 의미했다. 따라서 ‘요 19:14’의 기록은 유월절 기간에 포함된 안식일 준비일을 일컫는 말이다.
5)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전승이 달라서 내용의 차이가 생긴 것이다.
이밖에 다른 의견들도 있는데, 어느 것 하나 이 부분을 확실하게 설명해 주지는 못하기 때문에 무엇이 옳다고 결론 내려진 것은 아닙니다. 여기에는 근거가 있는 것도 있고, 또 근거가 부족한 것들도 있는데, 이 모든 내용을 설명하려면 너무나 많은 지면을 할애해야 하므로 이 소설에서 선택한 관점만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복잡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선행 지식이 필요합니다.
1) 유대인의 하루는 해가 지는 저녁(6시경)부터 다음날 해가 지는 때까지를 말합니다. 반면 로마인의 하루는 자정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현대의 날짜 기준과 동일합니다. 성경에서는 공관복음이 유대인의 시간과 날짜 기준을 사용했고, 요한복음이 로마의 시간과 날짜 기준을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요 19:14).
2) 유월절의 경우 신약시대에는 무교절과 동일시되기도 했습니다(눅 22:1, 유대고대사의 기록).
3) 유월절은 니산월 14일 저녁 어린 양을 잡는 것으로 시작되는데, 이는 유대인의 날짜 개념으로는 14일과 15일(무교절)에 걸쳐있습니다. 이렇게 잡은 양의 피는 좌우 문설주와 위쪽 인방에 바르고, 고기는 쓴 나물과 함께 유월절 식사로 먹게 되는데, 이 식사는 자정 전, 혹은 새벽 2시경까지 계속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유월절 기간이 되면 밤에도 성전의 문이 열리는데, 유대인들은 식사를 마친 후 성전에 가서 기도와 찬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세 가지 지식을 기반으로 이 소설에서 최후의 만찬으로 설정한 날짜는 우리가 사용하는 로마력을 기준으로 유월절 양을 잡는 날의 전날 저녁입니다. 동시에 이 저녁은 유대력으로는 니산월 14일의 시작이 되므로 유월절 혹은 무교절의 첫째 날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무교절 첫째 날에, 곧 유월절 양을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라는 공관복음의 내용은, 6시 이후가 되어 날짜가 변한 상태에서 예수님께 질문을 한 것으로 보면 약간의 무리수는 있더라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 됩니다. 이날은 로마력으로는 유월절의 전날이지만, 유대력으로는 무교절의 첫째 날, 곧 유월절 양을 잡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식사는 어린 숫양을 잡아서 먹는 유월절 식사는 아니지만, 유월절의 식사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유월절의 날이 시작되었다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해의 아침 식사도 새해 식사이고, 새해의 저녁 식사도 따지고 보면 새해 식사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이 최후의 만찬 밤이 지나도 여전히 유대력으로는 니산월 14일 유월절 양을 잡는 날인데, 이날은 동시에 유월절 준비일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유월절은 정확히 말하면 14일 저녁에 양을 잡고 식사를 하는 것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굳이 따지자면 날짜로는 유월절에 들어온 것이 맞지만, 아직 정식 유월절의 시작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 날, 유월절 어린 양의 도살이 시작되었고, 예수님을 고발한 대제사장 일당들이 몸을 더럽히지 않고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해 관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는 내용 또한 들어맞게 되는 것입니다(요 18:28). 그리고 이렇게 되면 예수님이 재판받는 이날이 유월절의 예비일(준비일)이라는 말(요 19:14) 역시 틀린 말은 아니게 됩니다. 유월절은 로마력으로 보면 이틀 사이에 걸쳐 있기 때문에 다음 날 새벽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여전히 이날을 유월절 준비일이라고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이런 관점은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성경 본문을 통해 추리해 볼 수 있는 몇 가지 내용이 더 있습니다.
“정월 십사일 저녁은 여호와의 유월절이요, 이달 십오일은 여호와의 무교절이니 칠일 동안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그 첫날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며, 너희는 칠일 동안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제 칠일에도 성회로 모이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라.”(레 23:5-8, 개역한글)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 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의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요 13:29-30, 개역한글)
“이날은 예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요 19:31, 개역한글)
이와 같이 유월절이 시작된 이후의 첫날은 거룩한 모임이 열리는 안식의 날이었습니다. 안식의 날은 생업을 돕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되는 날이기에 상행위 역시 금지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 식사였다고 한다면 가룟 유다가 나갔을 때 다른 제자들이 그가 일행이 쓸 물건을 사러 나갔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날은 이미 안식의 날이 시작되어 아무것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요한복음에 나온 ‘그 안식일은 큰 날’이라는 표현은 기존의 토요일 안식일과 유월절 첫 번째 날의 안식일이 겹치기 때문에 쓰인 표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증거로 유추해 본다면, 요세푸스는 유월절이라 부르는 무교절에 제사장들이 밤 12시(로마 시간대)가 지나면 바로 성전 문을 여는 것이 관습이라고 했습니다(유대고대사 18. 2). 성전 문이 열리면 순례를 온 사람들이 들어가게 되는데, 예수님께서 하신 식사가 양을 먹는 유월절 식사였다면, 순례를 온 많은 유대인들이 식사 후 그곳에 들어갔을 것입니다. 유월절이 되기 전에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잡지 못한 이유가 사람들이 민란을 일으킬까 봐 두려워했던 것인데, 만약 이때 예수님을 잡기 위해 성전 경비병들을 동원했다면 그들이 우려하던 사건이 일어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식사 후에 가셨던 곳이 성전의 동쪽 문을 나가 기드론 골짜기를 건너면 바로 있었던 감람산(올리브산)의 겟세마네 동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적은 인원으로 은밀하게 행동했을 수도 있었겠지만, 예수님이 잡힌 소식이 성전의 백성들에게 들어간다면 문제가 커질 위험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들이 이런 위기를 자초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들이 괜히 이른 새벽에 예수님을 떠넘기듯이 빌라도에게 고발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일반적인 관습으로는 유월절 식사를 한 이후에 예루살렘에 머물게 되어있다고 하는데,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셨으니, 이런 부분에서도 생각해 볼 여지가 조금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이 어쩌면 끼워 맞추기 위한 설명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증거들이 있었을지라도,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 양을 먹는 정식 유월절 식사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공관복음에 기록된 최후의 만찬 식탁에는 유월절 식사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어린 양의 고기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기 때문에 반드시 유월절 식사였다고 단정하는 것 또한 바른 태도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양의 고기는 유월절 식사에서 무교병만큼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에서는 이와 같은 이유로 최후의 만찬은 유월절을 시작하는 날의 식사이긴 하지만, 어린 양을 먹는 유월절 식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표현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 소설 상의 설정일 뿐이라는 것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