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이 뭔가를 눈치채신 것이 틀림없다. 식사 시작부터 고난을 당하기 전에 유월절 식사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하시더니, 다시 한번 넘겨질 것을 암시하셨기 때문이다. 거기에 인자를 파는 사람에게 화가 있다는 사족까지 붙이셔서 조금 걱정이 되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이란 말씀도 하셨으니, 이걸 좋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나쁘다고 해야 할까?
비록 선생님을 판다는 것이 좋게 보이진 않을지라도, 자신은 예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움직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거기에다 예수님이 잡혀가셔서 일이 잘못되더라도, 절대로 죽으실 위험이 없는 최고의 날짜까지 생각해 놓고 움직이는 것이니 아무런 걱정이 없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누가 이 정도로 일을 처리하겠는가?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베드로는 누구나 아는 고백을 먼저 함으로 큰 축복을 받았다. 그에게 말씀하셨던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와 같은 큰 복을 자신도 받고 싶다. 이번에 누구보다 먼저 예수님의 의도를 깨닫고, 움직이는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이다. 어쩌면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주실 것은 부의 열쇠일 지도 모른다. 원래부터 자신에게 돈주머니를 맡겨 주시기도 했고, 이번에 받은 은 삼십 세겔도 대제사장이 알아서 챙겨준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따랐더니 돈이 생긴다. 참 좋은 징조이지 않은가?
사탄에 의해, 오늘 밤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이 들어온 가룟 유다는 그동안의 예수님의 가르침은 다 잊은 채, 자기 편한 데로 합리화를 했다. 며칠 전에 성전에서 부자가 헌금궤에 넣은 많은 금액보다, 가난한 과부가 넣은 두 렙돈이 더 많은 것이라고 하신 말씀을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금액의 절대량보다, 그녀가 가진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는 사실보다, 예수님은 그녀가 그만큼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다는 부분을 칭찬하신 것이었다. 모든 것을 다 드려도 하나님께서 살게 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그녀가 삶으로 증명했으니, 어찌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베다니의 마리아의 경우도 그녀가 예수님께 부은 향유가 비싸서가 아니라, 그녀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역할을 했기에 칭찬을 받은 것이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니 복을 받으리라 착각했지만, 실상 그가 맡은 역할은 악한 쪽이었다. 그가 말씀을 기억했더라면 이것을 깨달아야 했지만, 사탄이 그러지 못하도록 계속 그의 마음에 거짓된 말들을 속삭이고 있었다.
사탄의 입장에서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지 않는 것이 더 좋았다. 그래야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게 되면, 그 이후엔 자신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으니 가룟 유다를 부추기는 이런 행동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하나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하시겠는가? 당장 심판에 던지시지 않겠는가? 그렇게 되기보다는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돕는 한이 있더라도 좀 천천히 심판받도록 행동하는 것이 차악의 선택이었다. 나중 일은 어떻게든 생각해 내면 된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서,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어야 끝이 올 것이라고 했으니, 그 부분을 이용할 수도 있다. 혹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싶은 마음을 역이용해 그 구원을 최대한 방해하는 방법도 있다.
이와 같이 심판 날을 미루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뭐 한다고 위험을 자초하겠는가? 다 부질없는 행동이니, 지금은 그냥 닥치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움직이면 된다. 하지만 기분은 썩 좋지 않으니, 첫 번째 복수로 이 가룟 유다 녀석을 죽게 만들 것이다. ‘자신에게 이딴 역할을 하게 했으니, 곱게 보내줄 수는 없지.’ 사탄은 그렇게 생각했다.
사탄의 또 다른 악한 계획이 준비되는 동안, 제자들 사이에서는 누구를 가장 큰 사람으로 할 것인가에 대한 지겨운 말다툼이 다시 벌어졌다. 야고보와 요한이 어머니를 데리고 예수님을 찾은 사건을 누군가 꺼낸 것이 도화선이 된 것이다. 그들을 보면서 예수님이 한 번 더 말씀하셨다.
“이방인의 임금들은 백성들을 다스리고,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가장 어린 자와 같이 되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이 되어야 하리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가운데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이니,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가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하려 하노라.”
제자들의 발을 씻겨준 것처럼 자신은 섬기는 사람으로 그들 가운데 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 제자들은 예전과 같이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지만, 희망적인 마지막 말이 다른 모든 말보다 더 달콤하게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가룟 유다 역시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들었다.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한다는 것을 예수님을 팔 자신 또한 왕권을 가지게 될 것이란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정당화와 합리화의 미로에 갇혀버린 가룟 유다. 그는 기분이 좋아져서 추가로 나온 음식까지 맛있게 먹었다. 예수님은 그런 그와 다른 제자들을 보며 마음이 괴로워지셨다. 그리고 드디어 모든 것을 환히 드러내기로 작정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예수님의 진심이 담긴 목소리가 제자들에게 들리자, 그들은 아까와는 다르게 서로를 바라보며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이 말을 벌써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었는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부터 예수님은 자신이 대제사장과 서기관, 백성의 장로들에게 배척받아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오늘 식사에서도 예수님은 똑같은 말씀을 하시고 계신 것이다. 이제야 제자들의 마음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생겨났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예수님을 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혹시나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을 팔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에 제자들이 저마다 묻기 시작했다.
“주여, 혹시 저입니까?”
“열둘 중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가룟 유다도 예수님께 슬쩍 다가가 질문했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 사람에게 화가 있다’라는 예수님의 말씀보다, 아까 들었던 왕권에 대한 이야기만이 생생히 남아 있었고, 예수님이 죽으실 것이란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어떠한 거리낌도 없었다. 다만 그는 자신이 예수님을 팔 것을 알고 계시는지 아닌지가 궁금했다.
“랍비여, 저입니까?”
“네가 말하였도다.”
가까이 있었던 몇몇 제자들도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었지만,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가룟 유다가 말하는 동안 ‘혹시 그 사람이 저입니까?’라고 묻는 다른 제자들의 음성 또한 동시에 들렸고, ‘네가 말하였도다.’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기쁜 얼굴로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가룟 유다까지 보게 되니, 설마 그가 질문한 것이 예수님을 팔 것에 대한 내용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예수님을 팔 사람이 웃고 있다니.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제자들은 모두 궁금했지만, 예수님께서 더 이상 말씀이 없으시니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다시 시작되었다. 불안한 표정의 제자들 사이에서 홀로 기분이 좋은 가룟 유다. 그리고 예수님께 다가가 품에 기대는 요한. 예수님은 요한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셨다. 먼 훗날 그의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을지라도, 자신만은 항상 그와 함께 있어 주겠다는 것을 미리 알려주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그렇게 요한을 사랑해 주셨다. 그 모습을 보던 베드로가 요한에게 고갯짓으로 신호를 주었다.
“주여, 그가 누구입니까?”
요한의 단도직입적인 질문.
“내가 떡 한 조각을 찍어다가 주는 자가, 그이니라.”
예수님은 떡 조각을 적셔서 가룟 유다에게 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여라.”
가룟 유다는 뭐가 좋은지 웃으면서 떡 한 조각을 들고 어둠 속으로 떠나갔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요한마저 그런 그의 태도에 의심을 품을 수가 없었다. 설마 자신을 팔려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네가 할 일을 속히 하라’고 하실까 하는 생각과 그 떡 조각을 받은 가룟 유다의 태도가 너무나 태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한을 비롯한 사람들은 그가 명절에 일행이 쓸 물건을 사러 가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기 위해 나간 것으로 착각했다.
예수님은 그가 떠나간 후, 떡을 들어 축복하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받아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모두에게 돌아간 떡.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신 식사 시작 때의 말씀이 다시 제자들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예수님은 잔을 들어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말씀하셨다.
“너희가 다 이것을 마셔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러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다시는 마시지 아니하리라.”
떡에 대한 말씀과 같이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하신 말씀이 다시 한번 제자들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유월절이 오는 이 시점에 ‘내 피’라고 말씀하신 것은 결코 가벼운 의도가 아니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그들을 둘러보신 후 다시 말씀하셨다.
“이제 인자가 영광을 얻었고,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만일 하나님이 저로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저를 영광스럽게 하시리라. 자녀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터이나, 그러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베드로가 물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주여, 제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까지 버리겠나이다.”
여전히 자기 생각이 강한 베드로. 그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시몬아, 시몬아, 보아라. 사탄이 밀 체질하듯 하려고 너희를 요구하였노라.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으니, 네가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세게 하여라.”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음에도 함께 갈 준비를 하였나이다.”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베드로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베드로는 갑작스러운 예수님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무언가 대답하려 했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계속 이어졌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아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말하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이번엔 도마가 질문했다. 어떤 사건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있을 때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그.
“주여, 우리가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그 길을 어찌 알겠나이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분을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다음엔 빌립이 그동안 소원하던 일을 주님께 부탁드렸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우리가 족하겠나이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며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니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어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내가 행하는 그 일들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나를 본 사람이 아버지를 보았다는 말은 제자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말이었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말은 또 무슨 뜻이란 말인가? 질문을 한 빌립조차 예수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계속되고 있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분이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있겠음이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님에 대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이라 고백한 세례 요한의 말처럼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약속해 주셨다. 아버지께서 보내주셔서 영원히 성도들과 함께 거하게 하실 분. 성도들의 곁에서 돕고, 위로하고, 중보하고, 대신 탄원해 주실 그 성령님을, 예수님이 구하여 보내주시겠다 약속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랑이라는 새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겠다고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은 이 말씀 역시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다대오라 불리는 유다가 물었다.
“주여, 어찌하여 우리에게는 자신을 나타내시고, 세상에는 아니 하려 하시나이까?”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
아들을 사랑하면,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시리라는 약속. 그리고 우리, 즉 아버지와 아들이 그 사람에게 가서 그 사람과 함께 살 것이라는 이 말은 앞선 말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보혜사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임하실 때, 이 모든 말씀들을 하나씩 가르쳐 주시고, 또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말을 생각나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으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남기리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내가 떠나갔다가 너희에게로 다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이는 아버지께서 나보다 크심이니라. 이제 내가 그 일이 이루어지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루어질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이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통치자가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나와 아무것도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에 알게 하려 함이로다. 일어나거라. 여기에서 떠나자.”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그대로 행하실 것이라 말씀하셨다.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은 고난의 때.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예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그 고난이 끝나고, 아버지의 계획이 실현되면, 제자들은 세상과 다른 평화를 만나게 될 것이다. 누구도 줄 수 없었던 진정한 평화를 말이다.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준비를 할 때, 예수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와 자루와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무엇이든 부족한 것이 있더냐?”
“없었나이다.”
“이제는 돈주머니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자루도 그리하고, 칼이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바, ‘저는 범죄자 중 하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참으로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주여, 보소서. 여기 칼 두 자루가 있나이다.”
“충분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데리고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을 떠나, 감람산 방향으로 나가는 성문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마 26:21-29, 막 14:18-25, 눅 22:19-38, 요 13:21-14:31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성경 원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평행 구절의 경우, 모든 내용이 다 포함되도록 하나로 합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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