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 이야기 (산상수훈, 열심당의 관심)

저자의 글

1. 산상수훈

 오늘 이야기에 나온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5장~7장, 누가복음 6장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이 두 내용은 비슷하지만, 또 약간은 다른 내용들이 들어있는데, 말하고자 하는 바는 거의 동일하며 다른 부분에 나온 가르침들과 겹치는 부분도 있어서 일단은 마태복음에 나온 내용들로만 본문을 구성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을 읽다 보면, 이곳에서 한 말씀을 저곳에서도 하는 것 같아서, 가르침의 선후관계가 헷갈리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부분은 좀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가 중요한 내용에 대해서 여러 번 반복해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도 이 상황, 저 상황에서 몇 번 반복하여 말씀하셨는데, 복음서의 편집자가 어느 부분에 사용할 것인지를 취사선택한 것으로 말입니다. 


2. 열심당의 관심

 열심당의 ‘열심’은 하나님과 율법에 대한 종교적인 열심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들은 셀레우코스 왕조로부터 독립전쟁을 벌였던 하시딤들과 비슷하게 무력 투쟁을 통해 신정국가를 이루고자 하는 집단이었습니다. 

 열심당의 시작은 AD 6년경, 헤롯 아켈라오가 쫓겨나고,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이 로마의 시리아 속주에 포함되면서 인구조사가 시행될 때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때 갈릴리의 유다가 사둑이라는 바리새인과 함께, 세금을 부과받는 것은 노예가 되는 것과 같다고 말하며 사람들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때 로마에 협력하는 많은 유대인이 공격(집을 불태우고, 가축을 빼앗는 등)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반란이 진압된 이후의 어느 시점에 열심당은 갈릴리 유다의 아들인 야곱과 시몬에게로 이어지는데, 이들 역시 나중에 반란을 일으키고 AD 46년경 처형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로도 열심당의 명맥은 이어졌고,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되고,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는 1차 유대 반란(AD 66-70)과 마사다 요새에서 싸우던 마지막 열심당원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AD 73년경까지 투쟁이 계속되었습니다. 

 이후 2차(AD 115-117)와 3차(AD 132-135)에 걸쳐서 디아스포라 유대인까지 포함된 대대적인 반란이 더 있었고,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통해 많은 유대인이 죽고, 예루살렘에서 완전히 쫓겨나 발도 붙이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유대교의 종파 중 사두개인, 에세네파, 열심당 등은 1차 반란(AD 66–70) 때 완전히 몰락했고, 2차와 3차 반란을 거치면서, 바리새인 중에서 샴마이파는 쇠퇴하고, 힐렐파의 영향력이 상승하면서, 이후 힐렐파를 중심으로 희생 제사가 있는 성전 중심의 종교가 아닌, 토라 중심의 종교 체제로 유대교를 바꾸게 됩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유대교가 지금 존재하는 유대교의 시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열심당의 신학적인 입장은 바리새인과 같았습니다. 이들은 무력 투쟁이라는 방법을 선택하긴 했지만, 하나님만이 그들의 지배자요 주인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주’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고문을 당해도 이런 입장을 절대 굽히지 않을 정도로 종교적인 부분에서는 강력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열심당의 극단적인 분파 혹은 그들과 협력하는 집단도 있었는데, 이들은 단검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시카리(라틴어에서 기원한 이름)라 불렸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단검을 옷 속에 숨기고 사람들을 암살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요세푸스는 열심당과 시카리를 구분했는데, 열심당은 폭력적인 저항을 하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인 집단으로, 시카리는 암살을 하는 극단적인 세력으로 묘사했습니다. 다만, 때로는 이 두 집단을 유사하게 묘사하기도 해서, 시카리를 열심당의 한 분파로 보는 견해도 많습니다. 

 로마 당국은 열심당과 시카리 모두를 강도라 부르곤 했는데, 때문에 신약 성경에서 강도라고 지칭하는 경우, 진짜 강도인 경우도 있고, 열심당이나 시카리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 당시 갈릴리는 이런 열심당들의 활동으로 인해 반역의 땅으로 인식되고 있었는데, 이들의 활동 지역이 예수님의 주요 사역지인 가버나움, 고라신, 벳새다와 겹치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이들의 관심 또한 분명히 존재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이상하게도 이들과 연관되는 모습이 거의 없이, 예수님의 제자 중에 셀롯(열심당) 혹은 가나나인(열심당원) 시몬이라는 이름으로만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반란이 진압된 후, 세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행 5:37)였기 때문으로 여겨지지만, 그때 당시의 이들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 수 있는 정확한 자료는 없기에, 저는 이 소설에서 AD 6년의 반란 이후에 갈릴리 유다의 아들들이 열심당의 지도자가 되었고,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어찌되었든 이러한 열심당의 성격과 시카리라는 극단적인 분파(혹은 협력 관계의 집단)를 보여드리고 싶어서, 오늘의 열심당에서 온 남자를 등장시켜 보았습니다. 물론 이 모든 내용은 완전한 창작이니, 믿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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