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죄를 용서하는 권세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의 발 앞에 무릎 꿇고, 딸을 살려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해변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린 사람에게 몰렸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남성. 가버나움 주민들이 익히 아는 뒷모습. 갈릴리에서 가장 큰 회당의 회당장 중 한 명인 야이로이다.

 “어, 회당장님이다. 저분이 여기 왜 오셨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 속에서 야이로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금은 사람들의 시선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회당장의 자리를 지키려다 사랑하는 딸을 잃게 되었으니,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에 휘둘릴 수 없다. 수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던 자신에게 내린 벌처럼 갑자기 다가온 사건 앞에서 야이로는 피눈물을 삼키듯 지난날을 후회하고 있었다.


*  *  *

 

“아빠”

 침대에 누워있던 딸이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우리 예쁜 딸, 아빠한테 무슨 볼일이 있으실까?”

 “아빠, 예수님에 대한 소문 들어봤어요?”

 “예수? 그 나사렛 출신 말이냐?”

 야이로의 목소리가 탐탁지 않은 투로 바뀌었다.

 “네, 예수님이 사람들을 고쳐 주신대요. 저번엔 나병에 걸린 아저씨도 고쳐 주셨고, 얼마 전엔 백부장의 종도 고쳐 주셨대요.”

 “뭐 그렇다고 하더구나….”

 야이로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대한 소문이 온통 퍼져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또 그에게서 치유 받았다는 사람도 직접 보았거니와 아들이 나은 헤롯의 신하와 종을 위해 그에게 갔던 백부장 역시 친분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예수라는 사람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지만, 자신과 같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들은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의 가르침은 말할 수 없이 훌륭하지만, 가끔씩 하는 발언에 큰 문제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그가 가버나움의 집에 있을 때, 갈릴리와 유대,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찾아간 적이 있다. 그들은 집에 둘러앉아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자신 역시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그는 기적을 보이며 수많은 사람을 치유해 주었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이 몰려들다 보니 입구 쪽에는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래서 중풍 병자를 데리고 온 어떤 사람들이 그의 집 지붕을 뜯어내고, 환자가 누운 침상 채로 달아 내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뭐 그의 집이니, 화를 내도 그가 낼 일이었지만 문제는 그다음에 벌어졌다. 그가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한 것이다. 

 “아들아,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 말을 듣고 자신뿐 아니라, 다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역시 크게 놀랐다.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죄를 용서해 주실 분이 없으시거늘, 그는 환자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도저히 그냥 무시하고 넘길 수 없는 신성모독적인 발언. 이로 인해 표정이 안 좋게 변한 사람도 있었고, 들리지 않게 서로 작게 속삭이며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하면서 말이다. 

 그때 그가 갑자기 또 다른 말을 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 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 감히 상상도 못 할 말이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인 양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내용이지만, 그가 실제로 저렇게 믿고 있다 할지라도, 자신 같으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왔을 땐 꺼내지 않을 것이다. 그의 말처럼 ‘네 죄 사함을 받았다’라고 말하기보단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걸어가라’고 했을 터인데, 그는 굳이 일부러 그 말을 꺼낸 것이었다. 자신에게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음을 모두에게 알게 하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 환자는 치유 받은 후, 그가 누웠던 침상을 들고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돌아갔다.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은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오늘날 우리가 기이한 일을 보았다’라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놀라워했지만, 자신과 같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모두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그의 집을 떠나온 이후로 회당장들의 모임에서 그와 엮이는 것을 금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말이 나오는 중이다. 확실히 그의 발언은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 

 “아빠, 무슨 생각 해요?”

 “아, 아니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자신의 귀여운 딸. 몹쓸 병에만 걸리지 않았더라도 밖에 나가 친구들과 뛰어놀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예수님이라면 내 병도 낫게 해주시지 않을까요?”

 희망이 생긴 듯 희미하게 미소 짓는 딸의 얼굴. 그래, 예수라면 딸의 병을 고쳐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중풍 병자마저 고치는 그이니, 말이다. 하지만 예수를 딸에게 데리고 온다면 자신이 가진 회당장의 지위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자신이 어떻게 이 자리까지 올라왔는데, 바리새인들 사이에서 구설수에 오르게 되면 더 이상 회당장을 못 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럴 순 없다.

 “넌 이미 좋은 의사에게 치료받고 있지 않니. 그 사람 없이도 충분히 나을 수 있을 거다.”

 “그래도 예수님께 치료받고 싶은데….”

 실망한 딸의 표정.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갈릴리에서 가장 큰 회당의 회당장 자리를 포기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딸은 집 밖을 나가지도 못하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어디에서 듣는 것일까? 아내에게도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는데 말이다.

 “넌 그런 이야기를 어디에서 듣는 거니?”

 “회당 앞에 사시는 아주머니가 종종 놀러 와 주시고,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세요.”

 “회당 앞이라면…. 시몬의 장모를 말하는 거니?”

 “네.”

 회당 바로 앞 동네에 예수의 제자인 시몬의 장모가 살고 있다. 딸이 어릴 때부터 귀여워해 주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 아주머니가 아이를 버려놓았다. 잘못된 희망을 심어주다니. 앞으론 출입을 삼가도록 주의를 주어야겠다. 야이로는 다짐하며 딸의 방을 나섰다.

 그날 이후로 더 많은 의사들을 데리고 왔지만, 딸의 병세는 차도를 보이지 않았고, 더욱더 악화되기만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아내까지도 제발 그분을 모시고 오자고 사정했지만, 자신은 절대 그럴 수 없노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다 어젯밤부터 딸의 병세가 급격히 나빠졌다. 정신을 잃고, 숨소리마저 미약해지는 딸을 보며 그제야 부랴부랴 그를 찾아 나섰지만, 그는 갈릴리바다 건너편 거라사 지방의 가다라에 계시다는 말만 들을 수 있었다. 가슴을 치며 후회했지만,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급히 사람을 보내려고 해도, 늦은 밤이라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이 되자 그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곳에서도 엄청난 기적을 보이셨다는 소문이 퍼져,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로 찾아갔다는 말과 함께…. 그런 인파 속에 있는 그를 찾아가 딸을 살려달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지만, 자식의 생명 앞에서 가만히 있을 부모는 없다. 

 야이로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급히 그분이 계시는 해변으로 달려갔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흐느끼듯 들려오는 야이로의 음성. 후회와 절망 속에서 자신의 죄를 보게 된 야이로는 자신의 죄로 인해 벌어진 이 죽음의 위기 앞에서 간절히 죄 사함을 바라고 있었다. 딸의 죄가 아닌 자신의 죄. 야이로는 그 죄를 용서받고, 딸의 목숨을 구하고 싶었다.

 엎드려 울고 있는 야이로의 등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괜찮을 거라고 위로해 주는 부드러운 토닥임. 그분의 손길이었다. 야이로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자신의 집 방향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갔다. 제자들, 그리고 모인 사람들도 두 사람을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마태복음 9:2-6, 마가복음 2:5-12, 누가복음 5:22-26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성경 원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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