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랴는 집을 떠나 성전을 향해 걸어갔다. 길 좌우로 늘어선 상부 도시의 건물들은 예전보다 더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꽤 좋은 편에 속했던 그의 집이 이제는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그 화려한 건물들을 뒤덮은 침울한 분위기는 현재의 예루살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대숙청, 그것이 바로 지금의 예루살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현실이었다.
그의 머리에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는 동안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사가랴의 젊은 시절, 힐카누스 2세와 동생 아리스토불러스 2세의 대립으로 로마에게 주권을 빼앗기긴 했지만, 여전히 대제사장만큼은 힐카누스 2세가 맡고 있었다. 로마는 점령지의 종교에 관대한 편이었기에, 정치적으로 헤롯 가문이 부상했다 할지라도 제사장으로 일하는 사가랴에겐 피부로 느낄만한 큰 변화는 없었다.
그런데 아리스토불러스 2세의 아들인 안티고누스가 사두개인들과 로마의 적인 파르티아의 힘을 빌려 예루살렘과 그 근방을 장악하고 하스모니안 왕조를 다시 세우면서 문제가 커지기 시작했다. 안티고누스는 삼촌이자 전임 왕이기도 했던 힐카누스 2세의 귀를 자르고 대제사장직을 박탈한 다음 예전의 왕들이 했던 것처럼 자신이 왕과 대제사장직을 겸직했다.
몸에 영구적인 흠이 있는 사람은 대제사장이 될 수 없으니, 죽이지 않고 그 정도에서 끝낸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것은 대제사장이자, 자신의 백부인 힐카누스 2세에게 해서는 안 되는 비열한 짓이었다. 그 비열함을 심판이라도 하듯, 로마의 군단을 앞세운 헤롯이 3년간의 전쟁 끝에 다시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안티고누스를 처형하면서, 하스모니안 왕조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되었다.
그나마 존재하던 이전 왕조의 왕족들 역시, 반란 계획과 주변 사람들의 모함으로 헤롯에게 하나둘 처형당했는데, 거기에는 힐카누스 2세, 장모인 알렉산드라 뿐 아니라, 아내였던 미리암네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얼마 전에는 헤롯을 독살하려 했다는 소문 때문에 미리암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둘까지 처형당했으니, 하스모니안 왕조는 씨가 마른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그 당시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헤롯왕의 측근들이 죽어 나갔으니, 이 주변의 집 주인들도 계속 바뀌곤 했다.
대제사장들도 헤롯왕의 통치 아래 벌써 네 번째 바뀌었는데, 힐카누스 2세 때부터 시작하면 근 40여 년 동안 여섯 명이 바뀐 셈이다. 그 이전에 한 세기가 지나는 동안 일곱 명의 대제사장이 있었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자주 바뀐 것이다. 지금의 대제사장인 시몬은 17년 가까이 해오고 있으나, 그것은 딸이 왕후라는 특별한 상황 때문에 가능한 것이리라. 만약 안티고누스가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상황이 이렇게까지 되어버렸을까? 여전히 로마의 속국으로 있었겠지만, 그래도 유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종교적 전통만은 이어가고 있었을지 모른다.
조금 더 걸어가자, 왼편에 헤롯 왕궁이 보였다. 지금의 예루살렘 분위기를 어둡게 만들고 있는 주범 헤롯왕이 살고 있는 성. 겉모습이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할지라도, 그 안에 있는 존재가 저렇게 잔혹하다면 그 외면의 아름다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은 헤롯왕의 첫째 아들인 안티파테르가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들 하지만, 또 어떤 일이 벌어져서 바뀌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대제사장 시몬의 딸에게서 태어난 빌립이 후계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헤롯왕은 다윗왕의 인생과 겹치는 면이 많았다. 이전 왕조의 신하로 있다가, 그 공주와 결혼했고, 다음 왕조의 첫 왕이 되었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결코 포기 하지 않았고, 죽음의 위기 속에 타국으로 피신했지만, 결국 되돌아와 승리했다. 둘의 치하에서 유대 땅은 안정을 얻었고, 넓은 영토를 가지게 되었다.
헤롯왕과 다윗왕의 비슷한 점은 자녀들에게도 있다. 여러 명의 아내를 두어서 많은 자녀를 가졌고, 그 자녀들이 권력을 탐하면서 서로 간의 심각한 반목이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의 권력을 넘보기도 했는데, 다윗은 하나님께 자녀의 처분을 맡겼고, 헤롯은 하나님이 아닌 로마와 자신의 힘을 의지해 자녀들을 처형시켰다. 둘의 인생 여정이 비슷했을지언정, 그 대응 방식은 하나님의 사람이냐, 인간적인 사람이냐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헤롯 왕궁을 지나자, 하스모니안 왕조가 사용하던 왕궁이 보였고, 그 뒤로 성전을 둘러싼 성벽이 보인다. 그 성벽 위로 새하얀 자태를 드러낸 하나님의 성전. 아직도 건축이 진행되고 있는 저 아름다운 성전이 과연 언제쯤 완성이 될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은 무리겠지?
자신 역시 성전 건축에 헌신하던 시기가 있었다. 숙련공 만 명을 동원하여 성전 공사를 진행했지만, 성소와 같은 중요한 건물의 건축에는 제사장들이 직접 참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제사장의 일부는 석공 기술을 배웠고, 다른 일부는 목공 기술을 배운 다음 성전 공사에 투입되었는데, 옛 성전의 기초를 제거하고 다시 새로운 기초를 놓는 것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모든 건축 과정은 율법대로 진행되었는데, 성전 전체는 희고 강한 돌을 사용하여 건축되었고, 제단을 쌓을 때는 정으로 다듬은 돌을 쓰면 안 된다는 출애굽기의 내용대로 반듯한 자연석을 구해 견고하게 쌓아 올렸다. 자신이 건축에 참여한 성전 중앙의 본관은 건축하는데 1년 6개월이 걸렸다. 하지만 기초부터 시작하여 회랑과 성벽, 바닥공사 등 성전의 기본적인 모습을 완성하기까지는 총 10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성전은 예루살렘에서도 상당한 구역을 차지하고 있고, 남쪽과 동쪽은 깊은 골짜기와 연결되어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동쪽의 경우 골짜기 아래에서부터 성벽을 쌓고, 그 사이 공간을 흙으로 메꾸어 정상과 같은 높이로 채웠으니 그 공사가 실로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물론 그사이 무너진 부분도 있고, 외부 치장 등의 공사는 현재진행형이기에 완공을 선포할 수 있는 날이 언제 올지는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사가랴는 성전 공사에 참여한 제사장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 굳이 직접 건축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는 나이였지만, 그는 가장 힘든 일을 자원해서 했다. 그보다 훨씬 젊은 제사장들도 쉽게 하지 못하는 일을 소화해 내는 그를 보며 주변에서 대단하다고 추켜세웠지만, 그는 그런 칭찬의 말보다는 다른 것을 받고 싶었다. 바로 기도 응답이었다.
그는 성전 건축에 대한 사명감도 가졌지만,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역시 품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기대는 또다시 무참히 깨어졌지만, 그래도 그 시간은 그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희망을 가진다는 것은 그에 걸맞은 믿음 또한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니 말이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확실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언가를 해주실 것이란 믿음은 거의 사라져 있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기도를 했음에도 주시지 않는 것이라면 자신이 잘못 구했거나,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주실 마음이 없었거나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더군다나 이제는 다 늙어버렸으니 더 이상 어떻게 자식을 기대할 수 있으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실 리 없다. 이것이 사가랴가 자기도 모르게 내린 마음의 결론이었다.
사가랴는 성전에 들어섰다. 이방인의 뜰을 지나, 미문을 넘어, 여인의 뜰에 이르자 꿈속에서 본 아내의 얼굴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직접 보았던 그날의 아내의 표정과 전해 들었던 그날의 사건이 떠오르자, 사가랴는 다시 한번 하나님께 물었다. 이미 자신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포기했지만, 그래도 답이라도 듣고 싶었다.
하나님, 왜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까? 아무리 하나님을 열심히 섬겨도 하나님은 어떠한 응답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율법도 잘 지키고, 하나님이 살라는 대로 살았습니다. 가난한 이웃을 도와주라 해서 끊임없이 도왔습니다. 제사장이라는 직분에 순종해서, 성전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섬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무 대답이 없으십니까? 물론 아이를 주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탓이 아니라, 우리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 그렇다면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고 알려주시기라도 하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야 이렇게 툴툴거리니 그렇게 대하실 수도 있다 생각하지만, 제 아내는 무슨 죄가 있습니까? 아내가 언제 하나님 앞에서 단 한 번이라도 잘못된 행동을 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왜 사람들에게 그런 취급을 당해야 하고, 그런 말들을 들어야 합니까?
가슴 속의 울분을 쏟아내는 사가랴의 얼굴은 다시 굳어져 갔다.
* * *
“사가랴님, 일찍 도착하셨네요.”
제사장의 뜰에 들어서자 젊은 제사장 한 명이 다가왔다.
“아, 자네인가.”
“네, 저도 오늘부터 공사 감독을 맡게 되었습니다.”
“고생이 많군.”
“저야 그저 인부들 감독만 할 뿐인걸요.”
“공사 감독도 힘든 일이야.”
“이 정도는 사가랴님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사가랴님은 직접 성전을 건축하셨잖아요.”
“그랬지.”
“지금도 그 당시 사가랴님의 활약상이 들릴 정도니, 실제론 얼마나 대단하셨을까요? 제가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사가랴님과 함께 큰일을 이룰 수 있었을 텐데요.”
“활약이라…. 성전을 짓는 게 어떻게 활약이 되겠는가. 나에겐 그저 해야 했던 일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네.”
사가랴가 어떤 표정과 말투로 이야기하는지는 관심도 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만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젊은 제사장은 눈치 없이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저는 이 성전이 완공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게 될지, 그것만 상상해도 가슴이 뜁니다. 우리 유대인이 얼마나 대단한 민족인지, 온 세상에 보여줄 수 있지 않습니까. 주변 다른 민족들뿐 아니라 저 로마인들에게까지요.”
“자네는 유대인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이라고 믿고 있나?”
“당연하지 않습니까. 우리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민족입니다. 지금 상황이 어려워서 그렇지, 우리는 언젠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저는 우리 민족을 위한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 할 것입니다. 성전 건축 감독을 자원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자네는 이 섬김을 통해 무언가 얻고 싶은 게 없는가? 거창한 이유 말고 개인적인 응답 같은 것 말일세.”
“유대 민족이 잘되는 것 말고 제게 더 이상 뭐가 필요하겠습니까? 전 그저 이 엄청난 하나님의 사역에 제대로 쓰임 받고 싶을 뿐입니다.”
젊은 제사장의 대답을 들으며 사가랴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이 친구는 순수한 것인가, 아니면 순수한 척하는 것인가? 어느 쪽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의 대답이 더 옳은 것이 아닐까? 개인적인 기도 응답을 바라며 섬겼던 것이 오히려 하나님이 보시기에 잘못된 행동이었을까?
“그나저나 사가랴님은 대제사장님과 친분이 있으시다고요?”
“그래. 대제사장님이 성전에 오셨을 때, 내가 얼마 동안 함께 다니며 안내를 해드렸지.”
“사가랴님은 정말 알면 알수록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비록 귀족은 아니시지만, 귀족과 친분이 있으시고, 부자이시면서도 교만하지 않으시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베푸시고, 제사장들 사이에서 칭찬까지 자자하시니, 저도 사가랴님처럼 모든 면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가랴는 순간 ‘하지만 아이가 없다네!’ 하고 대답할 뻔했다. 이런 스스로를 보며 어이가 없어진 사가랴는 헛웃음이 나왔다. 아이라는 존재가 뭐라고 이렇게 집착하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주신 것도 많은데, 왜 자신은 주시지 않은 것에 메여 감사를 잊고 사는 것일까?
“이보게 사가랴.”
그때, 제사장의 뜰을 나오는 굵은 목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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