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 (1)

수가의 우물가에서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의 에발산 근처, 세겜과 가까운 수가라는 마을의 산비탈에서 한 여인이 밭을 일구고 있다. 비싸게 팔리는 농작물들이 가득한 그녀의 밭. 한창 쟁기질 중인 그녀는 연신 이마의 땀을 훔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정오가 가까워져 오면서 머리 위로 솟은 태양이 그녀의 등을 따갑게 내리쬐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랑의 한쪽 끝까지 쟁기질을 마친 그녀는 더 이상 더위를 견디기 힘들었는지, 쟁기를 바닥에 내려두고 밖으로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땀에 흠뻑 젖은 그녀의 옷이 몸에 찰싹 달라붙었다. 일로 다져진 건강한 몸매가 몸의 굴곡을 타고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 굴곡을 따라 올라가면, 그녀의 얼굴이 있다. 예쁘다고도, 또 예쁘지 않다고도 말할 수 있는 그녀의 얼굴. 어떻게 보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얼굴인데, 남들과 다른 조금 특별한 점이 눈에 띈다. 그것은 그녀의 눈이었다. 그녀의 한쪽 눈은 정면을 보고 있고, 다른 쪽 눈은 정면에서 조금 벗어난 다른 쪽을 향해 있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 

 그녀는 눈 때문에 그동안 많은 고난을 겪었다. 어린 시절부터 사람들에게 당했던 놀림은 물론이거니와, 피곤이 겹칠 때면 몸의 이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눈이 충혈 되거나, 사물이 두 개로 겹쳐 보이는 날도 있었고, 그로 인해 두통이 생기기도 했다. 거리 구분이 잘 안되는 건 이제 고난이라고도 할 수 없는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너 같은 애는 돈이라도 있어야 남자한테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며 독설을 일삼았는데, 그녀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들에게 놀림 받을수록 더욱더 억척스레 일해 왔고, 그녀의 넓은 밭들은 그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이 다다른 곳에는 볼품없는 작은 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에발산은 벌거숭이 산이라는 이름 뜻 그대로 나무가 얼마 없었는데, 이런 못생긴 나무조차 이곳에서는 좋은 나무에 속할 정도였다. 그녀는 그 귀한 나무 그늘 아래 들어가 지친 몸을 쉬었다. 

 저 아래에 보이는 자신의 집 안에는 동거하는 남자가 잠을 자고 있다. 한낮이 되도록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남자. 그는 어제 외박을 하고, 오늘 아침에 술에 취해 벌겋게 된 얼굴로 돌아왔다. 어제는 또 어떤 여자의 집에서 잠이 들었을까? 그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단 한 번도 자기 손으로 땀 흘려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괜찮게 생긴 얼굴과 세 치 혀로 사람들을 속이고, 여자에게 기대어 사는 남자. 자신도 처음엔 그의 달콤한 말에 속아 그를 만났고, 자신의 집에 살게 했다. 이런 사람인 줄 전혀 모르고 말이다. 왜 자신은 항상 이런 남자들만 만나게 되는 것일까? 갑자기 마음이 답답해진다.

 자신에겐 남편이 다섯 있었다. 첫 번째 남편은 부모님이 정해준 사람이었는데, 그가 지금까지 만난 남편 중에 그나마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는 일은 없었지만, 그래도 성품은 괜찮았고, 때마다 남쪽에 있는 그리심산을 찾아가 기도를 드릴 정도로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에게도 한 가지 단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가진 장애였다. 그는 어릴 때 사고를 당한 이후로 한 쪽 다리를 심하게 절었는데, 그래서인지 돈을 버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는 돈이 있어야 남들이 자신을 무시하지 않는다며 몸을 혹사 시키곤 했다. 그 결과 남편은 오래지 않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두 번째 남편은 아시리아 혈통의 사람이었다. 그의 조상은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게 멸망할 때쯤, 이 주변으로 이주해 왔는데, 당시에는 꽤 유력한 집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몰락하여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그와 결혼을 결심한 것은 그가 매우 건강했기 때문이었다. 첫 남편과 같이 빨리 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와 결혼했지만, 그는 결혼하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결혼하던 날부터 자신을 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반항도 해보았지만, 힘에서 밀리니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중엔 점점 포기하게 되었다. 그렇게 폭력에 익숙해질 때쯤 남편은 밖에서 다른 사람과 싸우다가 죽었는데, 그 사람이 바빌로니아 혈통의 사람이었다는 게 정말 우스운 일이었다. 

 폭력적인 남편이 싫어서 만난 사람이 세 번째 남편이다. 그는 마케도니아 사람이었는데, 이전 남편들과 다르게 건강하고, 똑똑하기까지 했다. 그는 이성적이었고, 아는 것도 많았다. 자신은 배움이 짧았기에 반대 성향의 그에게 끌렸고 열심히 구애했다. 그는 처음엔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가, 자신에게 돈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자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다. 그의 속셈이 조금 보였지만, 그래도 그의 모든 것이 다 마음에 들어, 상관하지 않고 결혼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돈이 생기자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싶다며 고향인 그리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성공해서 다시 돌아오겠다고 말했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쯤 되니 계속 남자를 만나야 하나 하는 회의도 들었지만, 반대로 오기도 생겼다. 어떻게든 진짜 괜찮은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주변의 비난까지 무릅쓰면서 이 사람, 저 사람과 선을 보았는데, 그 결과 네 번째 남편을 만났다. 

 그는 로마인이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로마인의 종이었다가 나중에 자유인이 된 사람이었다. 그는 이전 남편처럼 똑똑했고, 힘도 좋았다. 그와 함께 마을을 걸을 때면,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이 느껴져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는 이유도 없이 자신을 극도로 무시했다. 뭐라고 말만 하면 입 닥치라며 화를 내었고, 자신은 그의 서슬에 놀라 입을 다물었다. 그와 함께 살 동안, 자신의 생활은 밭일이 거의 전부였다. 그렇게 오래 참고 참다가,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산의 반 이상을 주면서 제발 떠나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그 돈을 받고 자신의 곁을 떠나갔다. 

 다섯 번째 남편은 이두매인이었는데, 그는 유대인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다. 유대에서 살다가 사마리아로 이주해 온 그는, 하는 말마다 유대인에 대한 비판이 가득했었다. 유대인은 이게 문제다, 저게 문제다. 그래서 그들은 안 된다. 그런 말을 들으니,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항상 유대인 욕을 입에 달고 살던 아버지.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그에게서 보게 되자, 알 수 없는 익숙함이 느껴졌고, 그렇게 또다시 마음을 열게 되었다. 사실 그와의 결혼 생활 자체는 무난한 편에 속했다. 다른 남편들과 다르게, 크게 나쁜 부분이 없었던 것이다. 유일한 단점이라고 한다면 씀씀이가 커서 여기저기 퍼주고 다녔다는 정도인데, 자신이 더 열심히 일하면 되니 그것 자체는 문제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결혼도 결국은 파경을 맞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가 저지른 범죄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유대 땅에서 유대인을 죽이고 사마리아로 도망친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 사람까지 병사들에게 잡혀가고 나자, 그 이후엔 결혼에 대한 마음이 사라졌다. 한두 번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계속 결혼이 실패하니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닫고 일에만 몰두하며 몇 년을 살았는데, 올해 초에 지금 집에서 자고 있는 저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처음 만날 때부터 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평생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해주지 않은 사랑한다는 말. 처음엔 그 단어가 너무 어색하게 느껴져 그를 피했는데,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자신을 찾아와 말했다. 사랑해요. 

 그래, 맞다. 저 사람은 자신을 사랑한다. 그는 비록 능력도 없고 바람도 피우지만, 장애를 가졌다고 부모에게조차 무시당한 자신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준 유일한 사람이다. 그가 자신의 돈을 보고 왔다 할지라도, 뭐 어떤가? 돈으로라도 사랑을 살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된 거다. 그러니 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마을 사람들에게조차 무시당하고, 이놈 저놈과 붙어먹는 더러운 여자라는 소리까지 듣는 그녀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마저 자신의 곁에서 떠나버린다면, 자신은 이 세상에서 외톨이가 될 것이다. 그런 두려움이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남자들에게 속고 속았던 고난 속으로 다시 들어가려 하고 있지만,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는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깊은 갈증이 있었다. 평생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과 관심. 그녀는 자신의 돈이나 외적인 조건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아껴줄 누군가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의 남자가 그것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을 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

 그녀는 옆에 놓인 물동이를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그녀가 가진 사람들에 대한 기대처럼 바짝 말라버린 물동이. 그녀는 그 메마른 물동이가 자신의 인생처럼 느껴져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갑자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대로 된 사랑을 영원히 받지 못할 것 같은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터져가는 그녀의 가슴. 해결되지 않는 갈증. 그녀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그녀는 그 갈증 속으로 던져져야만 했다. 하지만 그녀는 또다시 직면하길 거부하고,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그녀는 물동이를 들고 일어나, 산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옛날 야곱이 파놓은 우물, 그 생수를 향해.


*  *  *


 “물을 한 잔 주겠느냐?”

 응? 지금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우물가에 앉아 있던 한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사마리아인이라면 질색하는 유대인들이 이곳을 지나는 것도 신기했지만, 말까지 걸어오다니. 이게 무슨 일이지?

 “당신은 유대인인데,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합니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을 달라고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다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그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한다.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하는 주제에, 자신이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라니. 도대체 왜 자신에겐 이런 이상한 남자들만 꼬일까? 갑자기 화가 난다.

 “선생님.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습니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큽니까?”

 마음속에 쌓여있던 분을 낯선 유대인에게 쏟아내려는 듯, 그녀의 목소리는 한껏 격앙되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엔 요동함이 없었다. 그녀가 아무리 화를 낸다고 할지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는 듯, 그녀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에게선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의지가 보였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를 것이지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남편조차 제대로 쳐다보려 하지 않았던 자신의 눈. 부모조차 미워하게 만든 자신의 눈.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게 만든 이 눈을 그가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그는 진심이다. 그는 진심으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진정한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다. 목마르지 않다면, 그 시간만큼 열심히 일할 수 있으니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여인은 여전히 자신의 관점 안에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랑을 받기 위한 그녀의 외적인 조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한 진짜 갈증, 진정한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성경을 통해 보여주신 진짜 하나님을 만나야 얻어지는 사랑. 그는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너라.”

 “나는 남편이 없습니다.”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주여, 내가 보니 당신은 선지자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합니다.”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압니다.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실 것입니다.”

 “너에게 말하는 내가 그다.”

 이 말을 하고 있는 그의 얼굴은 정오의 햇살보다 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요한복음 4:9-26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성경 원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

Post a Comment

Next Post Previous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