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탄생, 베들레헴의 또 다른 여행자

임신한 마리아를 위한 방을 구하기 위해 요셉이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아휴, 추워.”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차가운 날씨다. 따뜻한 알렉산드리아에서만 살아온 자신은 이런 고산지대의 날씨에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놈의 호적 등록만 아니었다면, 진짜.

 자신을 포함해서 많은 유대인이 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유대 왕국의 멸망 때부터 시작해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셀레우코스 왕조를 거치며 대대적인 유대인의 이동이 있었다고 한다. 포로로 끌려가기도 하고, 탄압과 폭정을 피하거나, 먹고 살기 위해 외국으로 간 경우들도 많다는데, 자신의 가족은 후자에 해당했다. 

 아버지는 곡물 무역상 일을 하는데, 이집트와 유대를 오가며 장사를 한다. 아버지는 원래 이곳 베들레헴 출신인데, 더 나은 삶을 위해 가족을 데리고 알렉산드리아로 이주했다. 그게 자신이 태어날 즈음이니까,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다. 

 알렉산드리아는 유대인의 입장에선 외국이지만 같은 로마의 영향권에 있는 도시이기도 하고, 유대인들도 많아서 그렇게 살기 팍팍한 곳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유대에 비해 굉장히 살기 좋은 땅이라 할 수 있다. 척박한 산맥에 있는 유대의 주요 도시들과 달리, 나일강과 지중해를 끼고 있는 풍요로운 항구 도시이기 때문이다.

 옛날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점령하는 지역마다 같은 이름의 도시를 건설했다고 하는데, 그중에 가장 번영한 도시가 자신이 사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이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왕궁과 7대 불가사의라 불리는 파로스 섬의 등대, 학문연구소, 대도서관, 박물관, 천문대, 동물원 등 없는 것이 없다. 누군가가 알렉산드리아를 지중해의 진주라 말했는데, 그 말에 자신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물론 모두가 자신처럼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유대인들은 율법적인 이유로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 사는 알렉산드리아를 싫어한다. 이집트인에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유대인까지 함께 사니 그들 입장에선 도시가 그렇게 느껴질 만도 하다. 이방인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혐오하기까지 하는 유대인들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싫어한들 어쩌겠는가? 알렉산드리아의 원래 주인은 그 땅의 주민들이고, 자신들은 한낱 디아스포라 유대인에 불과한 것을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버지도 이방인을 싫어하는 유대인에 가깝다. 자신이 태어난 후, 먹고 사는 게 힘들어지니 알렉산드리아로 이주했지만, 여전히 마음만은 유대 땅에 남겨둔 사람이 바로 아버지이다. 그래서 아직도 호적이 베들레헴에 남아있는 것이다.

 보통 로마에서 호적 등록을 하라고 하면, 자신이 사는 도시에 하는 것이 관습이다. 하지만 유대인 중에 고집 센 부류들은 기어이 자신의 고향에 호적을 하러 간다. 예전에 어머니가 호적을 옮기자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거짓말 하나 안 보태고, 진짜 온 집안이 뒤집히는 줄 알았다. 아버지의 성격을 다 알고 있다 생각했지만, 그날 본 아버지의 모습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아버지는 자존심을 건드리면 큰일 나는 무서운 사람이다.

 아버지의 주장은 이렇다. 우리의 고향은 유대 땅 베들레헴이지 이곳이 아니다. 이곳은 그저 자신이 운영하는 곡물상의 알렉산드리아 지점일 뿐이다. 물론 아버지의 마음은 이해한다. 아버지에게 고향은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것일 테니까. 하지만 문제는 유대 땅에는 본점이 없다는 사실이다. 본점이 없이 지점만 존재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이해가 안 가는 아버지이다. 

 주변의 유대인 중에는 자신의 아버지와 다르게, 변화된 환경에 순응한 사람도 있고, 정말 드물지만, 유대교를 떠난 사람도 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그들이 실컷 때려주어도 시원찮을 사람들로 보이겠지만, 자신은 그렇게 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버지같이 앞뒤가 꽉 막힌 유대인에 대한 반항심의 발로랄까? 하지만 그러면 뭐하겠는가? 아버지 앞에서는 입도 뻥긋 못하는 처지인데….

 아무튼 그런 아버지 덕분에 자신은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있다. 얼마 전부터 아버지를 따라 곡물 장사 일을 배우고 있는데, 집에서만 혼났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하루 종일 혼나곤 한다. 처음 일을 하면 잘 못하는 게 당연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모습조차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상처받게 하는 것은 아버지의 태도이다. 밖에서는 사람들에게 어떻게든 좋은 모습을 보이려 하면서, 왜 가족들에게는 그렇게 무섭게 대할까? 아버지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런 이중적인 모습을 볼 때마다 인간 자체가 싫어진다. 물론 가장 싫은 것은 아버지 앞에 설 때마다 얼어붙는 자신의 모습이지만 말이다. 

 자신은 천성적으로 느긋하고, 답답한 것을 싫어한다.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는 편이지만, 아버지 앞에서 그런 태도를 보이면 심하게 혼나기 때문에 빠릿빠릿한 척을 하는데, 이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 집에 있을 때면, 혼자 방에 틀어박혀서 정신적인 피로를 푸는데, 밖으로 나오면 그때마다 조용히 있을 곳을 찾게 된다. 아버지를 따라 곡물을 팔러 유대에 올 때에는 친척 집이나, 여관에서 그런 장소를 찾는데, 이번에는 정말 하나도 안 빼고 모든 집마다 사람들로 꽉 차버려서, 어쩔 수 없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밖에 나와 있는 것이다. 

 길가의 넓은 바위에 앉아, 아버지의 고향인 베들레헴을 둘러보았다. 다윗왕이 태어난 곳이고, 아버지가 그렇게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서 뭔가 대단한 게 있을 줄 알았는데, 별거 없다. 이건 그냥 작은 마을일 뿐이다. 그리고 그 마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가지고 온 짐들이다. 아니 호적을 한다더니, 다들 장사를 하려고 오는 건가? 아버지는 이번 호적 기간을 대목으로 보고, 대량의 곡물을 미리 준비해 두었는데,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나 보다. 진짜 장사로는 따라갈 자가 없는 유대인들이다. 자신도 유대인이지만, 진짜 대단하다. 


*  *  *


 “안녕하세요. 혹시 남는 방 있습니까?”

 “아니요. 이미 꽉 찼습니다.”

 “제 아내가 만삭입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미안해요. 사정은 안 됐지만, 다른 집에 가보세요.”

 길 한 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워진 길거리 저편을 응시하자,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몇 안 되는 여관 문을 하나씩 두드리며 방을 찾는 남자. 남는 방이 하나라도 있으려나? 일 년에 몇 번씩 베들레헴을 지나는 아버지도 이런 모습은 처음 봤다고 했었는데….

 자신이 바라보는 그 얼마 안 되는 사이에 남자는 벌써 몇 번이나 거절당했다. 보아하니 임신한 아내랑 같이 온 것 같은데, 슬슬 걱정된다. 이 추운 밤에 밖에서 노숙할 수도 없을 텐데. 

 이제 남자는 여관뿐 아니라, 눈에 띄는 모든 집의 문을 다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계속 거절당하는 소리만 들려온다. 아니, 임산부에게 자기 자리를 비켜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건가? 남자가 점점 다가온다. 남자의 말처럼 나귀에 탄 여자의 배는 엄청나게 불러있다. 그대로 두면 안 될 것 같다. 

 “아저씨, 방 찾으세요?”

 “그래, 혹시 너희 집에 남는 방 있니?”

 “저희 집은 아니고, 저희 친척 집인데. 한 번 말해볼게요.”

 지친 두 사람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보니, 왠지 착한 일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친척 집에도 사람들이 꽉 차 있기는 하지만 아버지가 어떻게든 해주시리라 생각한다. 아버지가 아무리 성격이 못됐어도 이런 도움을 거절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이윽고 눈앞에 자신이 머무는 친척 집이 보였다. 문이 열리고, 춥고 어두운 밖과는 다르게 따뜻하고 밝은 실내가 보인다. 그리고 그 앞에 아버지가 나타났다.

 “너 이 자식, 추운데 어딜 돌아다녀!”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마자, 또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아…아니, 그게… 아니고….”

 아버지는 자신의 뒤에 있는 두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달빛에 비췬 아버지의 표정이 냉혹하게 느껴진다.

 “무슨 일이요?”

 “죄송하지만, 혹시 남는 방 있습니까?”

 “없어요.”

 “이 집이 마지막입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조그만 공간이라도 있다면 저희에게 빌려주세요. 돈은 충분히 있습니다. 정 안되면, 제 아내만이라도….”

 아버지는 문을 열어 집 안을 보여주었다.

 “직접 보슈. 사람 들어올 자리가 있는지.”

 “아….”

 집 안엔 아버지의 말처럼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억지로 밀어 넣으면 한 자리 정도는 나올 수도 있어 보인다. 그리고 정 안 되면 자신이라도 비키면 된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노숙한 것처럼 그렇게 자는 것도 자신은 상관없다.

 “아버….”

 하지만 아버지의 날카로운 표정과 차가운 말투가 입을 막아버렸다. 

 “넌 닥치고 가만히 있어. 그리고 당신들도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다른 곳에 가보는 게 좋을 거야.”

 혹시나 했던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진다. 안식일에 율법을 보고 들으면 뭐 하는가? 그 좋은 교훈들이 삶에서는 전혀 드러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유대인이 최고라는 타령이나 하고 있고. 자기들이 잘 믿으면 조금이라도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모습을 보여야지, 전혀 그런 모습이 없다. 부유한 사람과는 친해지려 하고, 가난한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돈이 되는 사람에게만 친절한 더러운 장사꾼 기질. 닫힌 문을 보며, 마음속에서 분노가 들끓는다. 저런 사람을 아버지라고 따라다녀야 할까?

 “휴…. 어떻게 하죠?”

 “진짜 이런 결과는 상상도 못 했는데.”

 “아저씨, 죄송해요. 괜히 저 때문에….”

 “아냐, 괜찮아. 다른 방법이 있겠지.”

 “그래요. 우리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아, 진짜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다. 자신 같으면 화가 나서 가만히 못 있었을 텐데.

 “혹시 여기에 바람 피할 곳이 없을까?”

 “바람 피할 곳이요?”

 “그래. 동굴 같은 곳도 괜찮고.”

 “아, 맞다. 저쪽에 작은 동굴이 하나 있어요. 목자들이 마구간으로 사용하는 곳이라던데, 지금은 다들 방목하러 나갔는지 비어 있더라고요.”

 “그래? 그 정도면 충분하겠다. 안내 좀 해줄 수 있니?”

 “당연하죠.”

 “고마워요.”

 두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서로를 바라보는 둘의 따스한 표정을 보니, 자신까지도 행복해지는 느낌이다. 이들은 어떻게 이런 힘든 상황에서도 저런 미소를 보일 수 있을까?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

Post a Comment

Next Post Previous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