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나사렛으로 돌아가기까지 (2)

황폐한 땅에서 나무 하나가 자라나고 있습니다

 “이제 떠나신다면서요?”

 문을 열고 들어온 소년이 물었다.

 “응, 그렇게 됐어. 며칠 전 꿈에서 이스라엘로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거든.”

 “좀 더 같이 지내고 싶었는데….”

 요셉과 마리아는 아쉬워하는 소년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

 베들레헴을 떠나 이집트에 도착한 세 사람은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소년과 그 아버지의 집을 찾아갔다. 여행 경비와 생활비는 박사들이 준 예물을 팔아 충당할 수 있었지만, 유대인으로서 지켜야 할 삶을 살기 위해서는 결국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른 곳에도 유대인 정착지가 있었지만, 알렉산드리아의 경우 지나가는 사람 세 명 중 한 명이 유대인일 정도로 많은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부터 알렉산드리아에는 유대인을 위한 자치 정부가 있을 정도로 유대공동체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런 유대인들을 보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마냥 고운 것만은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마다 무조건 쉬어야 했고, 이것저것 지켜야 할 관습도 많았다. 또 거기에 자신들만이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선민의식을 은연중에 비추는 데다가, 장사 수완까지 좋아서 많은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다른 민족들이 유대인들을 좋게 보려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이 있는 곳에는 자연스레 긴장감이 생기기 마련이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비롯하여, 안토니우스, 아우구스투스 황제까지 각지에 조서를 내려 유대인들이 종교적 전통을 지키게 해주고, 군역도 면제시키라고 했었다. 이 특별대우를 감사함으로 받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여전히 불평불만 하며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조상이 이집트를 떠날 때, 광야에서 하나님을 질리게 할 정도로 불평불만을 일삼다가 심판을 당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다행히 소년과 아버지는 이런 사람들의 범주에 들지 않았다. 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유대공동체에서 자라긴 했지만, 여러 이방인 친구와의 만남과 도서관에서 읽은 책들을 통해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 있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선민의식을 남들보다 조금 더 많이 가진 유대인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앞뒤가 꽉 막혀 율법만을 부르짖는 사람은 아니었다. 당장, 먹고 살기 위해 베들레헴을 떠날 생각을 했다는 것만 봐도 그가 고집불통 유대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또다시 문이 열렸다. 이번에는 소년의 아버지였다.

 “이보게, 요셉. 기어이 지금 떠나야겠는가?”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면 가야죠.”

 “지금 유대 상황이 심상치 않아. 이런 시기에 떠나면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할 수 없네. 자네 혼자도 위험한데, 마리아와 어린 메시야까지 데리고 어딜 간다는 건가?”

 말을 하는 그의 눈동자에 걱정하는 빛이 가득했다.

 처음 알렉산드리아에 왔을 때, 그는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아기를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안 그래도 먹여 살려야 할 사람이 많은데, 객식구까지 셋이나 더 생긴다는 것이 부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그의 마음 한편에 목자의 집에서 대접받으며 세상 편하게 산 것 같은 그들의 모습이 안 좋게 보인 이유도 있었다. 태어난 아기가 메시야라는 것이 확실치 않지만, 일단 그렇다고 하더라도 아무 노력 없이 빌붙어 사는 그들의 모습이 자신의 지위로 남들을 이용하는 사람들과 겹쳐 보여 싫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편견은 오래지 않아 달라졌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율법을 잘 지키려 노력했고, 열심히 일하면서, 사람들을 돕는 일에도 생색내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세상에 진정한 유대인을 뽑는 상이 있다면, 요셉은 그것을 받기에 가장 알맞은 사람이었다.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왔을까?

 자신이 이집트에 와서 만난 사람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수성가해서 부자가 된 사람도 그렇지만, 바리새인이나 제사장 집안인 레위 사람들은 더했다. 그들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것처럼 으스대었다. 직업 특성상 이방인들과의 만남이 많을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그들은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면서 정죄하곤 했다. 그것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지만, 정작 곡식을 살 때의 그들은 이방인보다 더 악랄하면 했지, 결코 못 하지 않았다. 온갖 트집을 잡으며 곡물 가격을 후려치려는 그들 때문에 자신은 하나님과 율법을 말하며 타인을 속박하고, 스스로의 이익을 탐하는 자들이 너무나 싫었던 것이다. 처음엔 요셉과 마리아도 그런 부류라 생각해서 싫었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그들을 보며 자신의 판단을 완전히 수정하게 되었다.

 마리아도 마찬가지이다. 마리아는 나이에 비해 사고방식이 성숙한 사람이었다. 물론 여느 아내들처럼 요셉이 잘못할 때 잔소리를 많이 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잔소리가 이해할 만한 내용이 많다. 그녀가 자신의 의견을 조목조목 말하는 걸 듣고 있노라면, 묘하게 설득되는 느낌이다.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녀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녀는 무언가를 주장하다가도, 상대의 의견이 더 옳다고 느끼면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수정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면은 보통의 여자들과 확실히 달랐다.

 또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희한한 능력이 있는데, 그 방법은 이렇다. 그녀는 무언가를 반드시 해야 할 때,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상황을 넌지시 이야기 한다. 만약 이때 그 사람이 그 일을 안 하려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가서, 저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한다. 그러면 두 번째 사람이 처음 사람을 찾아가 기다린다. 이렇게 되면 원래는 하려고 하지 않은 일이라도, 바로 앞에 와서 명령을 내려달라고 기다리고 있으니, 결국 처음 사람은 할 수밖에 없어지는 것이다. 진짜 보통 현명한 여인이 아니다. 이들이 이런 사람들인 줄 알았다면 진작부터 메시야의 부모라는 것을 인정했을 것이다.

 예전에 아들에게는 태어난 아기가 메시야일지 모르니 잘 지내야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솔직한 심정은 더 이상 실망하기 싫은 마음에 가까웠다. 진짜 메시야가 오시는 것은 너무나 기쁜 일이지만, 아니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동안 스스로 메시야인 척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큰 기대를 품었지만, 그들은 최악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었다. 알렉산드리아에 와서도 느끼는 것은 스스로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들이 오히려 더 문제가 많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권세로 사람들을 속이고 이용한다. 나중에 보면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엉망으로 만든 그들만 부와 명예를 얻고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니 어떻게 메시야가 왔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 처음 아들과 목자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젠 하다 하다 이런 사람들까지 메시야를 팔아먹는구나 하며 거부감이 생겼던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옆에서 직접 경험한 이들은 진정으로 의인이라 할 수 있다. 메시야의 부모라고 으스대지도 않고, 그저 자신의 본분에 맞추어 하루를 살아간다. 요셉은 열심히 일하고, 마리아는 집안일과 육아에 최선을 다한다. 이들은 가치관과 행동마저 바르다. 자신들이 선택받았다고 잘난 척하는 게 하나도 없다.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바른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매일 말씀에 비추어 자신의 죄를 보고, 잘못한 것이 있으면 회개하고 돌이키려 한다. 

 자신이 가장 놀랐던 점은 실패를 대할 때의 그들의 태도이다. 예를 들면 율법을 어기거나, 무언가를 잘못했을 때, 자신 같으면 혼을 내서라도 즉시 그 잘못을 바로잡게 만든다. 자신은 그것이 옳다 생각하는데, 그들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들은 누군가 실패하면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기보다는, 자신들이라도 그런 실수를 할 수 있었을 거라면서, 실패가 나쁜 것만은 아님을 먼저 알려준다. 다음엔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허락하신 이유가 있을 것이니, 그 부분을 먼저 보라고 사랑 섞인 조언을 한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도록 격려한다. 그 뒤로 여러 번 실패하더라도 그들의 태도는 여전했는데, 그들은 끝까지 화를 내지 않고 한 번 더 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런 그들의 태도 때문에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아들의 변화였다. 아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그런 아들이 못마땅해서 많이 혼내곤 했었는데, 오히려 그게 역효과가 난 듯, 아들은 더 주눅이 들었다. 무언가를 가르치면 좀 괜찮아질까 싶어, 이것저것 가르쳐도 봤지만, 효과는 없었다. 아들은 그저 혼자 도서관에 박혀 책 읽는 것만을 좋아했던 것이다. 자신이 이 머나먼 타지까지 와서 고생하는 이유가 자식들 때문인데, 그런 자신의 기대를 전혀 충족시키지 못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속에서 열불이 나곤 했다. 아들의 성격이 저렇게 된 것이 어쩌면 자신의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들에게 잘해주곤 했지만, 솔직히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아들은 두 사람과 어울리며 몰라보게 변해갔다. 두 사람은 아들이 주눅 드는 모습을 보일 때에도 뭐라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었다. 재촉하지 않고 천천히 기다리며, 마음껏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는 그들로 인해 아들은 점점 달라졌고, 결국엔 자신의 앞에서도 말을 더듬지 않게 되었다. 답이 보이지 않던 아들의 성격이 그들로 인해 변했다. 그들의 따스한 사랑과 관심, 격려가 아들을 변화시킨 것이다.

 만약 이런 부모에게서 인생을 배운 메시야라면, 그런 메시야는 자신도 기꺼이 왕으로 섬길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은 얼마나 사랑이 많은 왕이 되실까? 얼마나 오랫동안 참고 기다려 주는 분이 되실까? 그러니 지금은 저 위험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게 둘 수 없다.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그러지 말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지금 들려오는 소식들이 장난이 아니야.”

 “혹시 유대에 무슨 일이 있나요?”

 마리아가 물었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듣게. 거래하는 상인들을 통해서 전해 들은 정보이니 정확할 것일세. 우선 처음 시작은 아켈라오에 의한 유대인 3천 명의 죽음이었네. 유월절 즈음에 일어난 일이었지. 이후 아켈라오는 왕으로 인정받기 위해 로마로 떠났는데, 그때부터 유대 전역에 크고 작은 소요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네. 시리아 총독이던 바루스가 그들을 모두 진압했는데, 부하인 사비누스를 대장으로 한 1개 군단을 예루살렘에 남겨 이 상황을 관리하려 했지. 하지만 그 선택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발생했네.”

 요셉, 마리아, 그리고 아들까지도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많이 놀랐겠지?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 이어지는 내용들이다.

 “사비누스란 작자가 탐욕스러운 인간이라, 왕의 재산을 강제로 탈취하려 하면서, 사람들을 몹시 괴롭히고 학대했는데, 이를 견디다 못한 사람들이 결국 폭발하게 되었지. 오순절이 되었을 때,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이 로마군에 대항해 진을 친 것이네. 그곳에는 유대인뿐 아니라, 이두매인, 갈릴리인, 요단 동편 사람들까지 다 섞여 있었지. 로마군이 강하긴 했지만, 성전 회랑 위에 자리를 잡고 돌을 던지거나, 활을 쏘니 당할 수 있었겠는가? 그 때문에 로마군이 막대한 피해를 입었지. 결국 로마군은 회랑에 불을 질렀는데, 나무와 역청, 밀랍 등으로 만들어진 회랑은 순식간에 불타오르고 말았어. 이 공격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고, 사비누스는 성전 금고를 약탈해서 거룩한 돈을 400달란트나 훔쳐 가 버렸네.”

 “아니, 성전 금고는 누구도 손을 대면 안 되는데….”

 “그러니까 말이야. 당연히 사람들은 더 분노했고, 수많은 사람이 모여 왕궁을 포위하고, 공격하기에 이르렀지. 사비누스도 겁먹었는지, 그때 이후로는 코빼기도 안 보였다고 하더군. 아무튼 이건 예루살렘의 상황이고, 다른 지역들 이야기까지 들으면 더 심각하네.”

 “혹시 갈릴리도 위험한가요? 나사렛은요?”

 마리아의 목소리가 커졌다.

 “나사렛은 워낙 작은 마을이라 소문을 알 수 없지만, 그 주변 소식은 들었네. 갈릴리에서는 유다 벤 히스기야라는 사람이 세포리스를 공격해서, 왕궁의 무기를 탈취하고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고 하더군….”

 “어떻게 해요. 세포리스에 친구가 사는데….”

 요셉이 떨리는 마리아의 손을 꼭 붙잡아 주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 역시 잔뜩 굳어 있었다.

 “갈릴리뿐 아니라, 여리고에서는 헤롯왕의 종이었던 시몬이라는 사람이 스스로 왕이라 선포하며 반란을 일으켰고, 헤롯왕의 친척 여러 명도 각자 자기가 왕이라 말하며 반란을 일으키고 있네. 또 아트롱게스라는 이름의 목자까지도 왕이라 칭하면서 사람들을 데리고 헤롯왕의 병사와 로마군, 그리고 이제는 일반 백성들까지 가리지 않고 다 공격해 죽이고 있다고 하네.”

 “요셉, 우리 가족들과 친구들 어떻게 해요. 베들레헴의 목자님 가족은요….”

 마리아는 요셉의 품에 안겨 눈물을 보였다. 요셉도 마리아의 등을 토닥여주고 있지만, 그 역시 얼굴이 창백해져 있다. 아들 녀석도 놀랐는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이스라엘의 상황은 그만큼 심각하다. 자신도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는 간담이 서늘했었다.

 “이보게 요셉. 이래도 지금 갈 텐가?”

 요셉은 아내 마리아와 소년, 그리고 소년의 아버지를 차례로 둘러보더니, 마지막으로 곤히 잠자고 있는 아기의 얼굴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이 흐른 뒤, 요셉이 말을 꺼냈다.

 “저희를 걱정해 주시는 어르신의 마음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지금 돌아가라 하신 것도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 가족들은 모두 나사렛이란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말 좋은 분들이시죠. 저희가 떠나올 때까지만 해도, 가족들과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게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구레뇨가 로마 황제의 특사로 시리아에 온 뒤에 내린 이 명령이 우리 가족들을 이렇게 갈라놓았지만, 이 사건, 그러니까 고난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이 사건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졌습니다.”

 “메시야의 탄생.”

 소년이 조그맣게 말했다. 요셉은 소년을 보고 씩 웃어주며 말을 이어나갔다.

 “베들레헴에서 메시야가 탄생하실 거란 미가 선지자의 말씀이 이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동방 박사님들의 방문도 받았고, 이제는 이렇게 이집트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마치 유대 민족이 가나안을 떠돌다가, 이집트로 와서 생명을 구하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돌아가라 말씀하셨습니다. 그 옛날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스라엘로 돌아갈 때 왜 걱정이 없었겠습니까? 그들이 가는 곳에는 목숨을 위협하는 강한 적들이 있었고, 위험한 일들이 즐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가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으니까요.”

 소년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요셉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주셨듯이, 저희도 지켜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래 오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보게 요셉…. 그렇게 돌아가더라도 힘든 일이 많이 생길 거야.”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시기에 돌아가라 하신 것도 다 뜻이 있을 겁니다. 아마 저희가 그곳에서 경험하고, 해야 할 일이 있어서이지 않을까요?

 “휴…. 알겠네. 자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더 이상 막을 순 없겠군. 하지만 돌아가더라도 아켈라오가 왕이 될 유대 지방으론 가지 말게. 그곳 사정이 지금 가장 심각하네. 차라리 사마리아를 거쳐 갈릴리로 돌아가게. 사마리아 쪽은 전혀 반란이 없다고 하니 그 길이 가장 안전할 거야.”

 “네, 그 부분은 가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또다시 꿈으로 알려주시겠죠.”

 “그래. 하나님께 자네들의 여정을 지켜달라고 기도하겠네. 그리고 되도록 천천히 가는 게 좋을 거야. 시리아 총독 바루스가 수많은 원군을 데리고 남하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네. 그가 온다면,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은 다 죽고 말 거야. 세포리스를 장악한 유다는 물론이고, 가는 길마다 닥치는 대로 죽이고, 방화를 할 게 분명해.”

 “네, 알겠습니다. 그동안 저희를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자신들을 따뜻하게 맞아준 두 사람의 가족들과 깊은 작별 인사를 하고, 이스라엘을 향해 떠나갔다. 

 앞으로 다시 볼 날이 있을까? 유대와 갈릴리에서 일고 있는 소란은 그 어떤 예측조차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었다. 아기 예수가 이 위기 속에서 부디 살아남아, 세상의 빛, 진정한 왕이 되어주시기를 소년과 아버지는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소년의 아버지 말처럼 로마의 시리아 속주 총독인 바루스는 로마군 2개 군단과 주변 왕들이 보낸 지원군을 데리고, 갈릴리와 유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바루스가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농성하던 유대인들은 로마군과 싸운 것은 자신들이 아닌 외부 사람들이니,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고 변명하기 시작했다. 이에 바루스는 반역을 일으킨 사람들을 잡아서, 죄가 가벼운 사람은 훈방하고 일부는 처형했는데, 이때 십자가에서 처형된 사람이 2천 명에 달했다. 항복한 대부분의 사람은 죄를 용서받았지만, 헤롯의 친척 중에서 반란을 일으킨 사람들은 모조리 처형되었다. 

 하나님은 이런 고난 중에 요셉과 마리아,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을 돌아오게 하셨다. 하나님은 이들이 고난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안전하게 살아가길 원치 않으셨다. 가장 힘든 자리에서 낮은 자들과 함께 하길 원하셨다. 모두에게 힘든 시기, 믿음이 있는 자가 그런 세상을 외면하고 등을 돌리는 것은 결코 옳은 일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도 함께 고난을 겪으셨고, 사람들이 슬퍼할 때, 하나님도 함께 슬퍼하셨다. 연약한 아기로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그 시작부터 사람들의 눈물 속으로 들어가셨다.

 요셉이 가족들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섰을 때, 그들은 처형의 소식과 함께 아켈라오가 유대 지방의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요셉은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두려움으로 하나님께 기도했고, 다시 꿈으로 인도받아 나사렛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들은 돌아간 그곳에서 슬픔에 빠진 사람들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잘릴 때 그루터기는 남듯이, 거룩한 씨는 남아서 그 땅에서 그루터기가 될 것이라는 말씀처럼, 아기 예수는 모든 것이 무너진 땅에서 다시 자라날 거룩한 씨앗이 되었던 것이다. 이로써 예언자를 통해 전하신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의 말씀이 이루어졌다. 

 소년이 말했다.

 “아버지.”

 “왜 그러냐?”

 “저, 나중에 크면 제가 겪은 일들을 사람들에게 전할래요. 제가 메시야를 만났었다고, 메시야의 부모님을 만나 함께 했었다고, 그들은 이런 사람들이라고,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결코 외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그러니 그 메시야도 분명 우리의 상처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분이실 거라고….”

 “사람들이 네 말을 안 믿어 주면?”

 “누군가 들어줄 때까지 전하고, 또 전할 거예요. 혹시 알아요? 제 이야기를 들은 어떤 사람이 나중에 성장하신 메시야를 만나 뵙고, 그분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게 될지. 정 할 게 없으면 나무라도 대신 짊어지겠죠.”

 “예끼, 이놈아. 나무를 왜 짊어져.”

 “요셉은 목수잖아요. 그러면 메시야께서도 아버지의 일을 도와주시려고 나무를 질 날이 올 수도 있겠죠. 그때 잠깐 도와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소년의 아버지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그리고 그때엔 너 혼자 하지 말고, 이 아비랑 함께 전하자. 오늘의 일이 영원히 기억되도록.”

 소년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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