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별을 따라 떠난 동방의 박사들

낙타를 탄 동방박사 세 사람이 별을 따라 가고 있습니다.

 “몇 년 전에 나그네별이 나타나서 한바탕 난리를 피운 것 기억하나?”

 “그랬지. 나라에 변고가 생긴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새로운 시대가 온다는 말에 반란 소문까지 돌아서 그 의미를 해석하느라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가.”

 “그래, 바로 그것일세. 별을 관측하고 해석하는 사람이 누군가? 바로 우리야. 그러니 자네가 말하는 그리스도가 오는 것도 하늘의 변화를 통해 예측할 수 있을 거야.”

 “어떻게 말인가?”

 “별을 보는 건 자네보다 내가 더 전문이니, 이건 내가 설명해 주지. 크하하하.”

 드디어 이 친구 녀석에게 할 말이 생겼다. 그동안 가만히 듣고 있느라 좀이 쑤셔 죽는 줄 알았다.

 “잘 듣게. 별을 관찰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듯이, 하늘에서는 신비한 일들이 일어나네. 지난번처럼 나그네별이 지나가는 경우도 있고, 보이지 않던 별이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하지. 또 움직이는 별들이 하나로 모이거나, 별이 비처럼 쏟아지는 일도 생기네. 그리고 그 모든 상황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우리가 하는 일이고 말이야.”

 “물론이지.”

 “그 과정에서 싸우는 재미도 있고…. 흠흠, 뭐 어쨌든 하늘에는 태양이 지나는 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 움직이는 12개의 별자리가 있네.”

 “황도 12궁이지.”

 “끼어들지 말게. 이건 내가 다 설명할 거네.”

 “알았네.”

 “수메르에서부터 전해진 황도 12궁은 별자리마다 의미를 지니는데, 여기에 답이 있네. 내가 예전에 듣기로, 유대의 박사들은 물고기자리를 자기 나라를 상징하는 별자리로 본다고 하더군. 그러니 물고기자리에서 왕과 관련된 무슨 징조가 보인다면, 그걸 해석해서 그리스도가 오는지 아닌지, 알아보면 되지 않겠는가?”

 친구의 얼굴이 놀란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래, 당연히 놀라울 거다. 흐흐흐. 역시 이 맛에 이 친구를 찾아오게 된다니까.

 “그것뿐만이 아니라, 하늘의 다른 징조까지 함께 해석한다면 분명 자네가 말하는 그리스도가 태어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네. 내가 장담하지.”


*  *  *


 두 사람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언제나처럼 수많은 자료를 확인하고, 별을 관측하고, 시대의 징조를 해석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그동안 성경에 빠져 있던 박사는 미뤄두었던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없이 바쁘게 지냈고, 친구에게 나머지 성경을 받은 박사는 설렁설렁 성경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뭐라고 저렇게 난리를 피우는 거야? 갑자기 성경 말씀대로 살겠다는 친구의 모습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물론 선하게 사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산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아니 오히려 더 나빠질 것이다. 누군가가 선하게 살려 해도,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빈틈이 보이면 물어뜯기는 이 세상에서 왜 저리 힘든 길을 자처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다 늙어서 사서 고생을 하다니. 진짜 불쌍한 녀석이다.

 그날 이후로 친구 녀석은 바쁜 와중에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늘을 관측하고 있다. 자신이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물고기자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사실 회의적이다. 그냥 던져 본 말에 낚여 죽자고 달려드는 친구를 보니, 좀 미안한 마음도 든다. 하늘이 얼마나 넓은데, 그곳에서만 무슨 일이 벌어질 리가 없지 않은가?

 박사는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정말로 그 일이 벌어졌다. 며칠 전부터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하늘을 보고 친구가 찾아왔는데, 별의 움직임에 밝은 그뿐 아니라, 친구까지도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궤도, 두 별의 만남이었다. 목성과 토성은 긴 시간을 움직여 물고기자리에서 하나가 되려 하고 있었다.

 “이보게, 자네 말대로 물고기자리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네. 얼마 있으면 목성과 토성이 만날 텐데, 점성학적으로 보면 목성은 엄청나게 좋은 일이나 왕을 상징하는 별이고, 토성은 가난하고, 고독한 등의 아주 흉한 의미가 있는 별이지 않은가?”

 “그… 그렇지.”

 “그렇다면 부당하게 죽임을 당할 유대인의 왕이라는 의미로서 완벽한 것 아닌가?”

 친구의 말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말이 옳다는 보장도 없지 않은가?

 “굳이 그렇게까지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물고기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유대의 왕에 관한 내용으로 한정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닌 것 같네. 우리의 왕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말이야.”

 “이 친구 큰일 날 소리 하는군.”

 “그냥 한 번 해본 말 가지고 눈에 쌍심지 켜지 말게. 그리고 유대 땅을 상징하는 별로 해석하더라도, 그리스도 보다는 지금 유대의 왕에게 흉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겠나? 안 그래도 지금 헤롯 왕궁에서 왕위를 노리는 사건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리스도에 관련된 내용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은가? 별이 지금 이 시기에 물고기자리에서 만난다는 건 분명 의미가 있을 거야.”

 “난 아니라고 보네. 만약 이와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난다면, 그때에는 자네의 의견도 한번 고려해 보겠네. 하지만 이 하나의 사건만으로 그렇게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네.”

 자신의 말에 납득한 친구를 보자, 왠지 안심이 되었다. 만약 그리스도가 정말 온다고 한다면, 그 이후에는 마지막 날도 온다는 말인데, 그러면 안 된다. 아니 그래선 안 된다.

 그러나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란 박사의 생각과 다르게, 한 해가 가기 전에 두 번이나 더 목성과 토성이 물고기자리에서 만나 하나가 되었다. 그때마다 친구가 찾아와 그리스도가 오는 징조로 해석하는 것이 맞지 않겠냐고 따져 물었지만, 그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이것은 그저 지금 유대 왕조에 닥친 위기를 말하는 것일 뿐이다. 박사는 그게 가장 합리적인 해석이라 믿으며, 이 특별한 천문 현상의 반복에 놀란 황실과 온 나라의 박사들, 그리고 백성들에게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전달했다. 박사의 말처럼 헤롯 왕궁에는 바람 잘 날이 없었으니, 그의 주장은 점점 힘을 얻어갔다. 하지만 그는 하늘을 올려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그의 마음속에는 친구의 말이 맞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반복되었고, 그럴 때마다 그는 별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 녀석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고 있었다.


*  *  *


 “짐은 다 쌌는가?”

 “그래.”

 얼굴 가득 즐겁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친구 녀석을 보니, 그동안 혼자 두려워했던 게 왠지 억울해진다. 아니 세상의 마지막 날이 올 수도 있다는데, 저 녀석은 왜 저렇게 밝은 거야?

 세 번에 걸친 목성과 토성의 만남까지도, 아니 그다음 해에 일어난 목성과 토성, 화성의 만남까지만 해도 박사는 유대 땅에 닥친 위기라는 해석을 꺾지 않았다. 화성은 갈등이나 투쟁을 의미하는 소흉성인데, 왕을 의미하는 목성에 대흉성인 토성과 소흉성인 화성까지 근처에서 모이니 의미상으론 점점 더 친구가 말한 그리스도의 삶과 비슷해졌다. 그래서 그때 그는 하마터면 친구의 주장을 인정할 뻔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해석을 합리화하며 고집을 부렸다. 

 하지만 올해 초, 염소자리에 갑자기 밝게 빛나는 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그는 그리스도가 실제로 태어났을 거란 친구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염소자리의 수호성은 토성인데, 그곳에 새로운 별이 나타났다는 것은 흉한 일, 어쩌면 성경에서 말하는 마지막 때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목성이 가장 나쁜 영향을 받는 자리가 염소자리이기에 이것은 몇 년에 걸쳐 일어난 시대의 징조를 돌이켜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그는 계속 두려워하고 있었다. 친구의 말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세상의 마지막이 온다면 자신과 가족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박사는 그 이후로 오랫동안 무기력증에 빠져 있었다. 어차피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데, 일은 해서 무엇 하며, 돈은 벌어 무엇 하냐는 생각이 그를 덮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그를 보고 친구는 계속 이럴 거면 차라리 직접 가서 확인해 보는 게 마음 편하지 않겠냐고 설득했고, 이렇게 두 사람은 유대 땅으로 출발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짐과 혹시나 그리스도를 접견하게 되면 드릴 선물을 챙겨 들고 집을 나섰다. 도시를 떠나는 두 사람에게 젊은 박사 한 명이 말을 걸어왔다. 

 “박사님들,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오랜만일세.”

 “안녕 못하네.”

 “두 분은 여전하시군요. 하하. 그런데 두 분 어디 가십니까?”

 “응, 유대 땅에 확인해 볼 게 있어서 말이야.”

 “확인해 볼 일이라 하시면?”

 “이 친구가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고, 가보고 싶다고 하도 난리를 피워서 같이 가주려고 하네.”

  어이없는 표정을 하고 자신을 바라보는 친구의 얼굴이 보였지만 모른 체 했다. 이런 것에서라도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면, 이 긴 여정을 어떻게 이어 갈 수 있겠는가?

 “박사님들.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도 그 여행이 동참해도 되겠습니까?”

 “자네가?”

 “아니, 이 힘든 길에 도대체 왜?”

 “그냥 왠지 저도 같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희 집에서 조금만 쉬다가 같이 출발하시죠.”

 세 번째 선물을 챙긴 마지막 박사까지 합류한 세 명의 원정대가 파르티아의 수도를 빠져나갔다. 


*  *  *


 “안 그래도, 저 역시 지난 몇 년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박사님들 말씀처럼 유대 땅에 올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라면 납득이 되는 군요.”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 자네는 뭘 그리도 빨리 납득하는가. 자넨 배알도 없나?”

 “진리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그런 게 무슨 소용입니까?”

 “흥.”

 “그러고 보니 물고기자리는 황도 12궁의 마지막 별자리이지 않습니까. 그 별자리가 끝나면 다시 양자리로부터 시작되는데, 우연의 일치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춘분점은 양자리에 있습니다. 박사님들 말씀대로라면 그 그리스도가 물고기자리, 유대에서 부당한 죽임을 당하고, 양자리로 대변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것처럼, 힘든 시대에서 고통 속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생명을 얻게 되는…. 아, 제가 너무 앞서갔나요?”

 젊은 박사의 말에 두 박사는 말을 잊지 못했다.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그런 생각이 그들의 얼굴과 목소리를 통해 드러났다.

 “아니, 정말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

 “자네는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건가?”

 얼굴을 붉힌 젊은 박사는 화제를 돌리려는 듯, 바로 다음 질문을 했다.

 “박사님들. 그런데 유대인의 왕이라는 그리스도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기록상으론 베들레헴에서 태어난다고 되어 있네. 하지만 우리가 처음 그 별을 관측한 지도 벌써 2년 이상 되니, 지금도 그곳에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

 “아니 별이 그때 나타났다고, 그때 태어났다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오기 전에 미리 보여주는 전조 증상일 수도 있고.”

 “그건 그렇지.”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이 그토록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니, 그들의 수도 예루살렘에 있다는 게 가장 상식적인 대답이야.”

 “그럴까요?”

 “난 잘 모르겠네.”

 “내 말 믿게. 세상 어느 나라의 백성이 자신들의 왕을 홀대하겠는가? 그것도 그토록 기다리던 왕을 말이야. 그들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예루살렘에 모시고 극진히 대접하고 있을 걸세. 왕궁이 아니면, 성전에서라도 그렇게 하고 있을 거야.”

 박사는 또다시 고집을 부리며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그 말이 틀렸다는 증거 또한 없으므로 다른 두 명의 박사 역시 일단 예루살렘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세 명의 박사는 유프라테스강을 따라 서북쪽으로 향해 갔다. 그들은 옛날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떠난 그 길 그대로 하란을 지나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가나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들 중에서 누가 먼저 예언을 믿었는지, 누가 더 그 예언을 확신하고 있는지, 누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함께 가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 이방인인 이 세 사람이 함께 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를 향한 그들의 여정은, 하늘의 별처럼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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