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요약해 보게.”
이 친구는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와 자신의 당연한 권리라 생각하는 헛소리를 내뱉고 있다.
“뭘 말인가?”
“당연히 자네가 읽었다던, 나머지 성경 내용 말이지.”
“그걸 내가 왜 요약해 줘야 하나?”
“그런 각오도 없이 나한테 그 책을 던져준 건가? 자네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숫자를 해석하느라 죽는 줄 알았네.”
“그래, 그 숫자를 이해했는가?”
“말 같은 소릴. 다른 정보도 없이 한 번에 이해하면 그건 인간이 아니야. 자넨 이해했나?”
“아니.”
뭔가를 기대하던 친구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안 그래도 못난 얼굴이 더 못나게 보인다.
“아니, 그럼 자기도 모르는 주제에 그렇게 잘난 척했다는 건가? 그것도 모르고 아침부터 달려온 내가 미친놈이지 진짜.”
“모른다고 하진 않았네.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뿐이지.”
“그게 뭔 소리야?”
“다니엘서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지만, 그 숫자들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는 말일세.”
친구의 얼굴이 또다시 붉으락푸르락 해지고 있다. 저 다혈질 성격을 어찌할꼬. 쯧쯧쯧. 저 친구가 뒤통수를 잡고 쓰러지기 전에 이쯤에서 대답을 해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스도.”
“이번엔 또 무슨 소리야!”
“자네, 아까 나한테 성경의 나머지 내용을 요약해 보라고 했지? 다니엘서뿐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그리스도라는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네.”
“그리스도라면,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잖아.”
“그래, 맞네. 기름 부음을 받은 왕, 제사장, 족장, 예언자, 속죄자 같은 사람들을 말하지.”
“근데 그 많은 성경 내용이 전부 다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라고?”
“정확하게 말하면 그건 아니네. 성경에는 토라라 불리는 율법서가 있고, 유대인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 선지자들의 예언서, 그리고 시편과 같은 성문서 등이 있네. 당연히 그 모든 이야기가 다 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네.”
“근데 요약하면 그리스도라며?”
“그렇게 말한 이유는 성경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이유로 유대인을 선택하는지 나오지 않네. 다만 모든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고 선택했다고 나오기만 하지.”
“그래서?”
“그 이유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성경 전반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봐야 할 것이네. 세상을 창조한, 스스로 있는 자, 나는 나라고 자신을 소개한 하나님이 아무 이유 없이 유대인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거야. 단순히 자신을 섬길 민족이 필요했다면, 유대인이라는 선택은 정말 최악이었거든. 아무리 기적을 보여주어도 배신하고 또 배신하는 민족이 바로 유대인이었으니 말일세. 그럼에도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버리지 않았어. 웬만한 신이라면, 다 없애버릴 정도의 죄도, 하나님은 벌만 내리고 말았네. 회복에 대한 예언까지 주시면서 말이야. 도대체 왜 그러셨을까? 크흠.”
괜히 한번 기침을 해봤다. 이 단순한 친구는 언제 짜증을 냈냐는 듯 자신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 있다. 빨리 이야기 해달라고 눈빛을 쏘아대는 친구. 이럴 때 보면 이 친구가 어떻게 뛰어난 학자이자, 별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박사가 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 모습에 속으면, 이 친구의 진면목을 볼 수 없다. 이 친구는 진짜 대단한 친구이다.
“이스라엘은 왕정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신정국가였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유대인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그들을 어르고 달래시며, 때로는 그들의 심각한 죄를 심판 하시면서 이끌어 가셨네. 그러면서 동일한 한 존재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전하셨지.”
“하나님이 유대를 통치한 목적이 바로 그리스도를 알리는 것이다?”
“맞네.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은 성경 전반에 걸쳐 지속해서 나타나고 있네. 자네도 알다시피 성경은 기본적으로 이야기의 구조로 되어 있네.”
“그렇지.”
“우리가 글을 쓸 때,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가? 때로는 주제와 조금 관련 없는 이야기가 진행될 때도 있고, 소주제를 표현하려고 일부러 등장시키는 이야기도 있네. 하지만 그 전체를 아우르는 진짜 주제는 한 가지이지. 보통 이야기에서는 이 주제를 처음엔 조금씩 보여주다가, 끝으로 갈수록 점점 더 명확하게 드러나게 구성하네. 중간중간에 복선까지 깔면서 말이야. 나중에 이야기가 완결되고 나면 ‘아, 그랬구나.’ 하고 느끼게끔 이야기의 구조를 만드는 것이네. 성경도 잘 읽어보면 이런 부분이 종종 나타나는데,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성경은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한 책일 수밖에 없네.”
“그건 논리적 비약 아닌가?”
“비약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글을, 특히 이야기를 써본 사람은 내 말을 이해할 것일세. 성경의 진짜 주제는 바로 그리스도이네.”
“하긴 다니엘서에도, 기름 부음 받은 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 근데 그 부분이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네.”
“어떤 내용 말인가?”
“분명히 앞쪽에선 영원히 망하지 않을 나라가 세워진다고 하는데, 뒤쪽에선 그 왕이 부당하게 죽임당한다고 기록되어 있었네. 그리고 아무도 그의 임무를 이어받지 못한다고 하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영원히 망하지 않는 왕국이 세워지지만, 그 왕은 부당하게 살해당한다? 자네는 이 말이 이해되는가?”
“그 왕국이 땅의 경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되겠지. 이건 좀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 문제네. 이사야라는 선지자가 쓴 책을 보면, 그리스도가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과 슬픔을 대신 받는다고 되어 있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 우리의 병이 나았다고 말하면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지. 그러니까 부당하게 살해당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또 하나의 임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네.”
“세상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임무가 어디에 있는가?”
친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자신으로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성경에 정말 그렇게 기록된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어깨를 한번 으쓱 해주는 수밖엔.
“그래, 백번 양보해서 부당하게 죽는 건 그렇다고 치자고. 근데 영원한 왕국은 어떻게 설명할 텐가?”
“나라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정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땅과 백성들, 그리고 그들을 다스리는 통치자가 있으면 나라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네.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다면, 그리스도가 통치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백성이 되고, 그가 다스리는 영토가 우리가 아는 땅뿐만 아니라 다른 의미까지 가진 것이라면 말이 맞아떨어지네.”
“그게 무슨 소리야? 다른 의미라니?”
“기본적으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다시 세우기 위해 온 존재이네. 그래서 실제로 왕이라 불리기도 할 거야. 하지만 그는 부당하게 죽임을 당해야 하기에, 고난을 당하는 종으로서의 모습도 있어야 하네. 성경에는 이 두 가지 모습의 그리스도가 다 있네. 이 두 그리스도가 서로 다른 인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면, 이 모순은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밖에 해결하지 못하네. 고난 받기 위해 온 왕. 그가 통치하는 그의 나라는 실존하지만, 또한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땅이 아닌, 그의 통치를 믿는 백성들의 삶을 통해 드러나 보이는 것이기도 하네. 세상 어디든지 그를 믿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그곳이 바로 그의 나라가 되는 것이고, 이렇게 그를 믿는 백성들이 영원히 이어진다면, 그는 죽어도 그의 나라는 영원한 왕국이 되는 거지.”
“흠…. 어렵군….”
“아무튼 이런 이유로, 다니엘서에 나오는 숫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다니엘서뿐 아니라 성경 전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지 안다고 말한 것일세.”
“그러면 그 그리스도에 대해 좀 더 말해보게. 그리스도는 유대 왕국을 다시 세우는 왕을 의미한다고 했지? 그렇다면 이미 그리스도가 온 것이 아닌가? 유대인은 지금 자신들의 왕국을 가지고 있잖아.”
“그리스도는 다윗왕의 후손으로 온다고 했네. 이전의 하스모니안 왕가도 레위 지파 출신이고, 지금의 헤롯 왕가도 이두매인이니, 둘 다 그리스도와는 관계없어. 그래서 유대인들도 여전히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다 들었네.”
“그래,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라는 존재는 아직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군.”
“그렇네.”
“그런데 그 그리스도가 로마의 때에 온다고 했지? 한쪽은 쇠처럼 강하고, 다른 한쪽은 진흙처럼 약하다는 네 번째 나라말일세.”
“난 그렇다고 확신하네.”
“그럼, 우리 시대에 그리스도가 온다는 이야기인데…. 유대인들은 지금 난리겠구먼. 그토록 기다리던 왕이 온다니 얼마나 기대하고 있겠나. 그나저나 그 왕은 로마가 아닌 우리나라의 편에 서려나 모르겠구먼.”
“글쎄 유대인들이 워낙 특이한 민족이라서 말이야.”
“그래, 자기들만 선택받았다고 믿는 이기적인 것들. 내가 그래서 유대인을 싫어하는 거야.”
“너무 싫어하진 말게. 그래도 유대인이 있었으니, 그리스도가 올 수 있었던 것이니까. 그들처럼 자존심이 강한 민족이 아니었다면,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계속 보존해 올 수 있었겠나.”
“근데 아까부터 그리스도, 그리스도 하는데, 그 그리스도는 나나 자네와는 관계없지 않은가? 유대인의 왕이라면, 향후 우리나라에 도움이 될 순 있겠지만, 그건 국가적인 문제일 뿐 개인적인 문제는 아니잖아?”
“나도 처음에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네.”
“그건 또 무슨 소리인가?”
“자네도 알다시피, 다니엘서에는 세상의 마지막 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네. 거기에서 숫자로 표현되는 기한이 실제의 날짜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입장에서 어떤 일을 이루시는 단위를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네. 하지만 이 그리스도의 때가 되었을 때, 세상의 마지막 날이 오리라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네.”
“에이, 그냥 하는 말 아닌가? 영원한 왕국이 올 거라면서, 마지막 날도 온다고 말하면, 또다시 모순에 빠지는 건데.”
“모순은 아닌 것 같네. 그 영원한 왕국의 승리가 곧 마지막 날을 의미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아무튼 그 예언을 보면서 생각했네. ‘이 성경이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면, 어쩌면 내 때가 가기 전에 마지막 날이 올 수도 있겠구나. 그렇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친구는 다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난 결심했네.”
“뭘 말인가?”
“하나님을 믿겠다고.”
“에?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게. 어떻게 우리의 신을 버리고, 이방의, 그것도 유대인이라는 약소민족의 신을 믿겠다는 말인가. 그 신을 믿는다고 자네를 구원해 주기라도 한다던가?”
“이방인이라도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네.”
“그래,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자네는 애초에 신이라는 존재를 믿지 않잖아. 이성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네.”
“나도 아직은 하나님이 믿어지는 것은 아니네. 그저 한 번 믿어보겠다고 선택한 것일 뿐이지.”
“믿어보겠다라. 그런다고 믿음이 생기진 않겠지만, 자네 마음대로 해보게. 나중에 후회하지나 말고.”
“후회는 안 할 거네.”
“그래, 그래. 후회하든 말든 자네 마음대로 하게! 근데 뭘 어떻게 믿겠다는 건가?”
“그야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살아보는 거지.”
친구의 표정이 갑자기 묘하게 변했다. 저런 표정이 되면 뭔가가 생각났다는 의미인데?
“그러니까! 그리스도를 어떻게 기다릴 거냐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
갑자기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느낌이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이 친구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 이 친구는 자신이 생각해 보지 않은 문제에 대해 쑥 하고 찔러 올 때가 있다. 친구의 말이 맞다. 무턱대고 말씀대로 산다고 해서, 제대로 기다리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 하나님도 말씀대로 사는 것만을 바랐다면 말씀만 주셨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알려주셨다. 그러니 말씀대로 사는 것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어떻게 기다리는 것 또한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이다.
“이봐 친구.”
“응?”
“내가 한 수 가르쳐 줄까? 내 말대로 하면 어쩌면 자네가 그토록 바라던 그리스도가 오는 때를 알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 친구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것일까?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