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 아버지여….”
어둠이 깊어 가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한 기도 소리가 들려온다.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온 힘을 다해 기도하는 예수님. 그 얼굴에서 흐르는 땀이 괴로움으로 인해 점점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예수님은 곧 자신이 죽게 될 것을 알고 계셨다. 죽기 전에 당할 고통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 고통들은 지금까지 육체를 가지고 살아오면서 수없이 겪었었다. 목수의 삶이라는 것은 다치고, 상처 입고, 무거운 짐들을 짊어지는 일들의 연속이었으니 말이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어떠한 기적도 없이 온전히 인간의 삶에 순종했으니, 살아가면서 아프고 힘들었던 적이 어떻게 없었겠는가? 그러나 이 또한 아버지의 뜻이었고, 그 순종을 통해 사람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으니, 그건 충분히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니 곧 다가올 육체의 고통은 아무리 힘들다고 해도 견디면 되는 문제였다.
하지만 죽음은 완전히 달랐다. 죽음은 생명을 잃는 것이고, 생명이신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의미했다. 그것도 그냥 죽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 위에서 죽어야만 한다. 그 죄로 인해 아버지께 버림받아야 한다. 바로 이 사실이 예수님을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내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시오니, 만일 할만하시거든, 아버지의 뜻으로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준 고난을 거두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하나님에게 사람이 소중하고, 사랑하는 대상이긴 했지만, 하나님 자신과 연합하여 하나가 된 아들보다 소중할 수는 없었다. 하나님 자신이 계획을 시작하셨으니, 그 계획을 중지하실 수도 있었다. 하나님은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가지신 전능함조차, 하나님의 의지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나님께는 전지전능해질 자유도 있었고, 그 전지전능을 벗고 낮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실 자유도 있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은 자신의 계획을 바꿀 수 있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 산에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타락한 적이 있었다. 그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없애기로 마음먹으셨다가, 그 마음을 돌이켜 진멸의 계획만은 그만두셨다. 그때 모세의 간청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영향을 주긴 했지만, 궁극적으로 그 계획을 돌이키신 것은 하나님 자신이셨다. 그때 그렇게 하셨으니, 지금도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런 결정을 절대 내리지 않을 것임을, 하나님 자신도, 하나님의 아들도 알고 있었다. 여기서 계획을 멈추면 사람들을 어떻게 구원해 줄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땀이 핏방울같이 떨어지는 아들을 말없이 바라보고 계셨다.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겪게 될 단절의 고통은 더할 수 없이 힘든 과정이겠지만, 아들은 맡겨진 사명을 완전하게 감당할 것이다.
예수님은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 제자들에게로 오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괴로워하는 예수님을 보는 것을 마음 아파하다가, 슬픔에 지쳐 잠이 들어 있었다.
“시몬아, 자느냐?”
선잠에 빠져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목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하지만 이미 무거워진 눈꺼풀은 그들의 의지대로 잘 움직이지 않았다.
“어찌하여 자고 있느냐? 너희가 나와 함께 한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제자들을 책망하는 내용이었지만, 그 말투에는 그들을 이해한다는 감정이 담겨 있었다. 제자들의 힘든 마음을 예수님께서 왜 모르시겠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을 그 자리에 두고, 다시 돌아가 기도를 시작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폭풍 같던 첫 번째 기도가 끝나고, 이어진 두 번째의 기도는 처음보다는 괴로운 감정이 줄어 있었다. 공생애 기간 동안 종종 사람들과 떨어져, 홀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셨던 예수님은 오늘도 기도를 통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힘을 얻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두 번째 기도를 마치시고, 다시 제자들에게 돌아오셨다. 아까보다 더 깊은 잠에 빠져든 제자들. 예수님은 그들의 얼굴을 잠시 보시다가 그대로 돌아서셨다. 바로 그때 발소리에 놀란 제자들이 잠에서 깨어났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멀어져가는 예수님의 뒷모습. 제자들은 그 슬픈 뒷모습을 보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위로를 드려야 할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의 귀에 앞선 두 번의 기도와 같은 내용의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이제는 잔을 거두어달라는 말이 아닌, 아버지의 뜻대로 해달라는 말에 훨씬 더 힘이 실려 있었다. 마치 이제 아버지가 주신 잔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고 다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 기도를 마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와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자고 쉬어라. 그만 되었다. 보라, 때가 왔도다.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제자들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수많은 등불과 횃불의 행렬이 있었다.
* * *
가룟 유다는 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백성의 장로들이 보낸 무리를 이끌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고 있었다. 이곳은 명절 기간 동안 이미 여러 번 모였던 곳이라, 예수님께서 어디에 계실지는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식사했던 곳으로 찾아갔었는데, 무리는 주변에 숨게 하고, 대제사장의 종 말고와 함께 문을 두드렸다. 그 집 아들이 자다가 홑이불 하나만 걸치고 나와 예수님께서 이미 떠나셨다고 말해주었는데, 그 말을 듣고 무리와 함께 성전으로 가서 더 많은 경비병과 합류했고, 이때 안토니아 요새를 지키는 로마 군의 일부도 동행하게 되었다. 야밤에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총독 빌라도에게는 보고하지 않고 실무자 선에서 이끌고 나올 수 있는 최대 병력인 것 같았다. 그들로서는 명절 동안의 치안 상황에 민감했으니, 갑작스러운 경비병들의 행동이 이상하게 느껴져 돌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서였으리라. 그러나 그들 역시 대제사장과 긴밀한 관계에 있을 테니 이 일을 방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들은 모두 이 상황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 백성의 큰 지지를 받는 예수님과 제자들이 엄청난 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그래서 저 많은 칼과 몽둥이를 들고 있는 거겠지. 그러나 예수님은 생각보다 쉽게 잡혀 주실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누누이 이야기 하시지 않았던가?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라도 예수님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으실 것이다. 다만 다른 제자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자신조차 예측할 수 없다. 워낙 성격 급한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최고의 상황 전개는 제자들이 이 무리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는 것이다. 자신이 이런 역할을 맡았으니, 나중에 그들 얼굴을 보기 편하진 않겠지만, 어쨌든 예수님이 풀려나시면 다시 만나야 할 테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다치는 건 자신도 원치 않는다. 무기 하나 가지지 않고 다니는 녀석들이니 감히 반항은 안 하겠지만 말이다.
가룟 유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흉흉한 무리는 예수님이 계신 곳에 도착했다. 그들의 눈앞에는 단 네 명만이 서 있었다. 예수님, 베드로, 야고보, 요한. 가룟 유다는 다른 제자들이 오기 전에 이 상황을 빨리 마무리하고 싶어졌다. 자신이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장면을 보는 제자가 세 명밖에 없다는 건 그만큼 마음의 부담도 적을 수 있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가룟 유다가 급히 예수님께로 가려 할 때, 예수님이 먼저 제자들 앞을 가로막으시며 무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나사렛 예수요.”
“내가 그다.”
예수님께서 당당하게 자신을 밝히시자, 가룟 유다는 순간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로 인해 뒤에 서 있던 다른 사람들까지 물러서면서, 이들에 떠밀려 땅에 넘어진 사람까지 생겼다.
다시 예수님이 물으셨다.
“누구를 찾느냐?”
“나사렛 예수요.”
“너희에게 내가 그라고 말했으니, 너희가 나를 찾아왔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을 용납하라.”
곁에 있던 제자들과 멀리 있다가 불빛에 놀라 다가온 다른 제자들까지 가리키며 말씀하신 예수님. 가룟 유다는 상황이 점점 자기 뜻대로 풀리지 않자, 조금 주저하게 되었다. 이대로 예수님을 파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변 상황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뒤에 있던 사람들이 재촉하자, 가룟 유다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결심한 듯, 예수님께 다가서며 말했다.
“랍비여, 안녕하십니까?”
그런 가룟 유다를 바라보며, 하신 예수님의 말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든지, 행하여라.”
얼굴을 굳힌 가룟 유다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예수님께 입을 맞추려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 또다시 들려온 예수님의 음성.
“유다야, 네가 입맞춤으로 인자를 파느냐?”
예수님의 목소리에 짙은 슬픔이 담겨 있었지만, 가룟 유다의 귀에는 그저 양심을 찌르는 독설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입맞춤을 마친 가룟 유다는 무리의 뒤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가룟 유다에게서 자신이 입 맞추는 사람이 진짜 예수라는 것을 들었던 무리는 칼을 빼 들고 조금씩 다가갔다. 이를 지켜보던 제자들이 말했다.
“주여, 우리가 칼로 치리이까?”
그들은 이곳으로 오기 전 챙겼던 두 자루의 칼을 이때 쓰라고 준비하게 하신 것이라 생각했다. 성격 급한 베드로가 가장 먼저 움직였다. 베드로는 칼을 휘둘러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오른쪽 귀를 내리쳐서 잘라버렸다. 말고는 귀가 있던 자리를 움켜잡으며 주저앉았고, 떨어져 나간 그의 귀는 바닥을 뒹굴었다. 그 광경에 흥분한 무리가 제자들에게 달려들려는 찰나, 예수님의 커다란 목소리가 온 동산에 울려 퍼졌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아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보다 더 많은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예수님을 지키려던 제자들이 도리어 큰 호통을 받게 되자, 제자들을 공격하려던 무리가 행동을 멈추었다. 이런 상황은 지금까지 누군가를 잡으려 했을 때, 경험했던 사건들과 완전히 달랐다. 예수라는 사람은 왜 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일까? 그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멈추어도 예수님은 결코 멈추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일을 하시기 위해 괴로워하고 있는 말고의 곁으로 다가가셨다. 땅에 떨어진 그의 귀를 원래의 자리에 가져다 대신 예수님. “이것까지는 허락하라.”는 부드러운 말이 들린 후, 그 손이 지나간 자리에는 언제 잘렸냐는 듯 깨끗하게 고쳐진 귀가 있었다.
예수님께서 놀란 무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어 가르쳤으되, 너희가 내게 손을 대지 않고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의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이렇게 된 것은 다 성경과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대제사장의 종 말고는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고, 이 사건에 놀라 움츠린 사람들도 있었지만, 다는 아니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미워하는 자들. 그들은 지금껏 예수님의 기적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 이런 일 정도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기적들을 보면서도, 그들은 예수님을 증오하고 죽이고자 했으니, 이런 기적은 아무런 영향도 줄 수 없었다. 그들에게는 오직 예수를 이대로 두면 더 큰 일이 벌어질 거라는 두려움만이 있었다. 백성의 장로들과 경비대장이 명령하자, 뒤쪽에 있던 경비대가 움직여 예수님을 붙잡았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멀리 달아났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마 26:39-56, 막 14:36-49, 눅 22:42-53, 요 18:4-11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성경 원문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평행 구절의 경우, 모든 내용이 다 포함되도록 하나로 합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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