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가나의 혼인 잔치, 물이 좋은 포도주로 변하다

좋은 포도주로 변한 물이 항아리에 담겨 있습니다

 혼인 잔치가 며칠째 이어지고 있다. 모두가 기뻐하는 축제의 현장. 사람들은 포도주를 마시며 그 기쁨을 서로 나누고 있다. 얼마나 많이 왔는지, 여기저기 가득 들어앉은 사람들. 그들 사이를 헤치며 친구가 다가왔다.

 “마리아,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거야.”

 “우리 사이에 고맙긴 뭘. 우리가 한두 해 친구니?”

 “그건 그래. 평생을 함께 해온 소중한 친구지.”

 세포리스로 시집간 친구는 헤롯왕이 죽은 후, 유다 벤 히스기야가 세포리스의 왕성을 공격했을 때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한 번 위험을 겪은 친구 부부는 그곳에서 사는 것을 불안해했고, 그곳을 떠나 근처 가나로 이주했다. 만약 그때 가나로 이사하지 않았다면, 다음에 이어진 시리아 총독 바루스의 공격 때 죽을 뻔했으니, 정말 하나님의 도우심이 아닐 수 없었다. 자신과 요셉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나사렛으로 돌아왔을 때, 친구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 후로 반란이 진압되기까지 연락을 쉽게 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한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반란이 진압된 다음에는 종종 서로에게 들려 안부를 묻곤 했는데, 친구는 자신의 아들을 많이 귀여워해 줬었다. 

 “마리아, 예수는 언제 도착하니?”

 “글쎄 며칠 전에 다른 몇 명과 함께 올 거라고 연락이 오긴 했는데, 오늘쯤 오지 않을까?”

 “몇 명?”

 “왜, 안 돼?”

 “안 되긴, 한 명이라도 더 와서 축하해주면 우리야 좋지. 빨리 보고 싶다, 얘.”

 “나도 그래. 우리 아들 보고 싶다.”

 마리아는 아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나저나, 네 아들은 왜 아직도 결혼 안 하니? 예전에야 아버지 대신 가장 역할을 해야 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동생들도 다 컸잖아. 에세네파에 들어가서 혼자 살 게 아니라면, 왜 결혼을 미루는 거니?”

 친구의 말을 들은 마리아는 요셉이 죽던 때가 생각났다. 

 남편은 아들을 데리고 주변 도시들을 돌아다니며 목수 일을 했었다. 로마의 두 번째 인구조사 명령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시기였는데, 전투와 파괴가 빈번하게 일어나 일거리는 끊어지지 않고 있었지만 그만큼 위험부담도 컸었다. 그러나 남편은 우리 아들과 함께 가는데 뭐가 위험하냐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다.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기쁘다던 요셉. 자신이 가르쳐 줄 수 있는 모든 기술을 모조리 다 전수해 준 날, 요셉은 정말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해했었다. 그러다가 다른 아이들이 태어나고, 커가면서 더 많은 일거리를 찾게 되었고, 남편과 아들은 가끔 서로 다른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그날의 사건이 찾아왔다. 

 남편은 아들과 떨어져 다른 도시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위험한 보수공사를 하다 떨어진 커다란 돌에 머리를 맞아 목숨을 잃었다. 그날의 슬픈 기억이 가족 모두를 힘들게 했지만, 아들은 하늘나라에 가면 다시 만나게 될 거라며, 나머지 가족을 위로해 주었었다. 하지만 어린 동생들은 그런 말을 어떻게 그리 쉽게 하냐며 화를 내었고, 그 사건 이후로 조금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이후에 아들은 장남이자 가장으로서 이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하러 돌아다녔다. 잠을 줄이면서까지 온 가족을 위해 노력한 아들로 인해, 나머지 동생들은 무사히 성장할 수 있었다. 남편 요셉의 죽음으로, 아들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시작되었으니, 아들에게는 떠남이 곧 사명의 시작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랬던 아들이 이제는 가장이라는 역할이 아닌 진짜 사명을 위해 멀리 떠났다가 돌아오는 중이다.

 “너 기억 안 나? 네가 결혼 이야기했을 때, 우리 아들 반응.”

 “아, 그거? 그거는 그냥 농담으로 한 말 아니었어?

 “진심이야.”

 “어머나.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마리아는 친구의 반응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건 자신이 생각해도 좀 황당한 사건이긴 했다. 아들은 결혼 안 할 거냐는 친구의 말에 이렇게 대답했었다. 

 “저의 신부는 예루살렘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모든 백성입니다.”

 그때 당황하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아니, 우리 예수가 어디가 어때서 결혼을 안 해. 잘생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얼마나 성실하고, 성격도 좋고, 듬직한데 말이야. 또 말은 얼마나 잘하는지, 어릴 때부터 예수랑 말해본 사람은 모두 그 아이를 사랑스럽게 여겼잖아. 진짜 나한테 딸만 있었어도 예수한테 시집보냈어.”

 “그렇지만 넌 딸이 없지.”

 “그건 그래. 없으니 마음껏 팔아먹지 뭐. 하하하.”

 여전히 재미있는 친구이다. 이 친구와 있으면 언제나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리아, 네 아들의 말은 예루살렘과 사람들을 위해 헌신한다는 의미일 거야. 그러니 언제라도 기회가 되면 꼭 좋은 아가씨랑 혼인시켜 줘.” 

 그래, 어쩌면 세상 모든 사람은 아들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일 것이다. 유대와 백성들을 위해 헌신하는 사명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자신은 아들의 말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다. 아들 예수는 이 땅을 위해 보내주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다.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신랑.

 하나님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루살렘을 신부로 비유하셨다.

 “네 젊은 날의 헌신과 네 신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어떻게 나를 좇았음을 내가 너를 위하여 기억하노라. 그 때에 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되었나니, 그를 삼키는 자면 다 벌을 받아 재앙을 만났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두려워 말라. 네가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라. 놀라지 말라. 네가 부끄러움을 보지 아니하리라. 네가 네 청년 때의 수치를 잊겠고, 과부 때의 치욕을 다시 기억함이 없으리니,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다.”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바가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주인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예레미야, 이사야, 호세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말씀처럼 아들은 예루살렘과 온 세상을 위해 자신을 신랑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번에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간 것도 그 일환일 것이다. 메시야 사역을 시작하는 필수 과정으로서 말이다.

 “너희 아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았지. 네 남편이 죽고 나서 집안 살림을 전부 떠맡듯이 했잖아. 지금이야 동생들이 다 자랐지만, 그때만 해도 일할 수 있는 사람이라곤 네 아들밖에 없었으니까.”

 “그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무거운 짐을 짊어진 거지.”

 “역시, 네 아들은 훌륭해. 나한테 딸만 있었어도….”

 “또 없는 자식 팔아먹는다.”

 “하하.”

 둘은 웃음을 터뜨렸다. 한참 배를 잡고 웃던 마리아의 친구가 갑자기 먼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마리아, 저기 예수 아니니?”

 마리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길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다른 다섯 명의 사람과 함께 걸어오는 아들의 모습이 있었다.

 “응, 그러네. 드디어 도착했구나.”

 “빨리 사람을 보내서 초대해야지 마음 편하게 오겠지? 이봐요, 저 사람들한테 가서 어서 이곳에 오라고 말해주세요.”

 친구의 말을 들은 일꾼이 즉시 달려갔다.


*  *  *


 아들이 데리고 온 사람들은 모두 갈릴리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이 갈릴리 호수 넘어 벳새다 출신이고, 나다나엘이라는 사람만 이곳 가나 출신이라는데, 이전에 본 적은 없는 사람이었다. 하긴 가나가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니니 그럴 수 있었다. 나사렛처럼 조그만 동네에서나 모두가 알고 지내지, 이런 큰 도시에서는 모르는 사람 투성이인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예수는 여느 때처럼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잔치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친구가 마리아에게 다가와 귓속말로 속삭였다.

 “마리아!”

 “응?”

 “어떻게 해? 포도주가 다 떨어졌어.”

 “뭐? 벌써?”

 “응, 너무 많은 사람이 왔나 봐. 어떻게 하지? 여기도 부족하지 않아?”

 “잠시만…. 내가 어떻게든 해볼게.”

 “뭐? 네가 갑자기 어디서 포도주를 구해와?” 

 “걱정하지 마. 넌 어서 가서 다른 부족한 게 없는지 확인해 봐.”

 “알았어.”

 친구가 떠나자, 마리아는 아들의 앞에 갔다. 아들이 아직 어떠한 기적도 보인 적이 없지만, 늘 세례를 받은 이후부터 시작할 거란 말을 하곤 했었다. 무엇을 시작할지 정확하게 말하진 않았지만, 굳이 물어 뭐하겠는가? 자신과 남편이 삼십여 년 전에 천사에게 들은 말씀이면 충분하다. 아들이라면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포도주가 없구나.”

 “여자여,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습니다.”

 자신의 확신과는 다르게 아들은 거절의 의사를 보였다. 거기에다가 최근 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저 거리가 느껴지는 단어. 여자여. 물론 굉장한 존중의 의미를 담은 말이긴 하지만, 어머니에게 쓰기엔 좀 어색한 말이지 않은가? 처음엔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했지만, 아들은 결코 저런 말투를 바꾸려 하지 않았다.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일부러 거리를 두기 위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마음이 약간은 아픈 단어이기도 하다. 예전에 시므온이 아들로 인해 자신의 마음이 칼로 찌르듯 아파질 거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말해준 것일까? 아무튼 아들이 거절했다고 해서, 쉽게 포기할 순 없는 법이다. 다른 건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을 일하도록 만드는 데 있어서 자신은 진짜 타고난 사람이니 말이다. 

 마리아는 가까이에 서 있는 일꾼들에게 다가가 말했다. 

 “여러분에게 무슨 말을 하든지, 그대로 행하세요.”

 일꾼들은 영문을 모르면서도, 아들 예수의 앞에 가서 서 있었다. 이렇게 해도 가만히 있을 거니 아들아? 아들이 자신을 보지만 어쩔 수 없다. 자신이 이 문제를 해결한다고 했으니,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 하는 것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들은 이내 결심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정결 예법에 사용하는 돌로 만든 물 항아리 여섯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 거기에서 멈추었다. 자신을 비롯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아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일꾼들은 아들의 말을 따라, 항아리마다 물을 가득 채웠다. 각각 물 두세 동이 정도 들어갔으니, 생각보다 많은 양이었다. 물을 다 채운 일꾼들이 돌아보자, 아들이 다시 말했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가져다주어라.”

 일꾼들은 정결례에 사용하는 물을 왜 떠서 가져다줘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듯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아들의 말대로 물을 떠서 연회를 맡은 사람에게 가져다주었다. 아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은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일꾼들을 따라갔는데, 연회의 책임자는 그 항아리의 물을 마시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랑을 데리고 오게.”

 잔치를 맡은 사람은 일꾼에게 불려 온 신랑에게 한마디 했는데, 질책 같기도 하고 칭찬 같기도 한 내용이었다.

 “사람들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는데, 당신은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었군요.”

 영문을 모르는 것은 신랑도 마찬가지였지만, 그 사건을 처음부터 지켜보던 마리아와 다섯 명의 제자, 그리고 일꾼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목격한 듯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예수는 이 첫 번째 표징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었고, 제자들은 그를 더욱 믿게 되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에 그는 어머니와 형제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에 내려가, 거기에 며칠 동안 머물러 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곧 있을 광야의 시험을 준비했다.


이 이야기에서 인용된 예레미야 2:1-3, 이사야 54:4-5, 62:4-5, 호세아 2:16, 요한복음 2:3-10절은 개역한글을 기반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오디오북으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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